"한미 군사동맹은 역사적으로 남겨진 산물"이라는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과 신정승 주중 한국대사에 대한 신임장 제정 지연 의혹 등에는 한미 전략동맹을 추구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몇몇 중국 언론들의 비판적인 논평, 한국 대통령을 여전히 노무현으로 명시하고 있는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등도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여겨지고 있다.
이에 친강 대변인이 "한국을 무시하고 한미동맹을 폄훼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는 시각은 억측이고 근거가 없다"고 사후 해명했고, 우리 외교부도 신임장 문제에 대해 "오히려 중국의 호의적 조치"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의혹의 눈길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국내의 한중관계 전문가들은 언론이 일부 사례를 과도하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 탄생에 따른 한미일 3각공조 부활에 대한 중국의 우려가 분명히 드러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관련 기사 : 냉랭한 韓中관계…빛바랜 정상회담 ; 中 "한미 군사동맹은 지나간 역사의 산물")
■ 이남주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신임장 제정 문제에 대한 외교부의 설명에 수긍이 가고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는 후진타오 주석의 인상이 굳어 있었다는 등의 평가는 과도한 면이 없지 않다.
문제는 친강 대변인의 발언이다. 작심하고 한 말은 아니지만 중국의 속내가 우발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중국의 우려를 더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그리고 의도적으로 보여준 것은 <해방일보> 논평이다. <해방일보>는 이 대통령이 한미동맹과 한미일 연합안보체제를 강조하고 미국의 네오콘과 일본의 신(新)우익을 기쁘게 하는 추세가 있어서 지역 정세에 불안한 요인으로 여겨지고 있다며, 그런 우려가 전혀 근거 없진 않다고 썼다.
(<해방일보>는 "이 대통령이 냉전적 사고를 바탕으로 미·일과 관계 재정립에 나섰다면 어떻게 최고경영자(CEO)적 마인드로 국가를 경영할 수 있고, 어떻게 한국경제를 한 차원 더 발전시킬 수 있겠는가"라고도 썼다)
중국의 이러한 태도는 이명박 대통령의 한미동맹 강화에 대한 중국의 우려가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또한 앞으로 중국이 한미동맹을 직접 건드리지 않더라도 그와 관련한 의제를 다루자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중국은 한국의 미사일방어망(MD) 및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정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등을 향후 한반도 정책을 짜는 시금석으로 본다. MD와 전략적 유연성은 장기적으로 보기 때문에 매번 한중간의 의제가 되진 않겠지만 나름대로 중국의 입장을 언급할 가능성이 있다.
■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친강 대변인의 발언은 우선 한미 전략동맹에 대한 우려가 드러난 것이다. 동북아 안정이라는 중국의 외교적·전략적 목표와 상충될 수 있는 정책을 이명박 정부가 선택한 것에 대한 경고를 보낸 것이다. MD, PSI 등 동북아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중국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라고 하는 '비핵·개방·3000 구상'에 대해 후진타오 주석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은 것도 눈에 띈다. 한국이 중국에서 비핵·개방·3000을 얘기하려고 했던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 중국은 북핵 해결과 대북 상응조치를 동시에 병행해야 한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밝혀왔는데 비핵·개방·3000은 선(先)핵폐기론이기 때문에 생각의 차이를 드러낸 것이다.
한중정상회담에서는 언제나 한반도 평화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이번에 그 부분이 빠져 있다. 한국은 한국의 입장을 말하고 중국은 그걸 무시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중국에 가서 대북정책과 관련된 중국의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요청하겠다고 한 것도 무지의 소치다. 북중관계는 서로의 이익을 추구하며 협력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중국은 항상 한국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인식은 정 반대였다. 남북관계가 중단되다 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를 하고 있다.
미국, 일본, 중국은 우리 외교의 가장 중요한 상대인데 한 달 여 만에 세 나라와 정상회담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그러다 보니 미국하고는 쇠고기 문제, 일본과는 독도 문제, 중국의 비판 같은 게 나왔다. 너무 급하게 서둘러 의제 조율에 실패했고, 외교적인 망신만 당했다.
3국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의 외교적 입지가 더 축소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걸 보면 역시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한국의 외교적 위상과 비례한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다. 6자회담이 다시 시작됐을 때 한국의 위상과 역할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 이욱연 서강대 중문과 교수
중국의 외교적 의도를 과장되게 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친강 대변인의 한미동맹 언급은 의미가 아주 크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이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동아시아 역내 협력을 강화하는 기존의 흐름이 있고, 중국과 일본도 장기적으로 중요하게 보는 사안이다. 그러나 한미동맹을 강화하겠다는 건 중국인들이 보기에 과거지향적이라는 것이다. 중국 지식인들도 이명박 정부의 그같은 시대인식은 잘못됐다는 말을 노골적으로 한다.
중국인들 사이에는 '한국이 한미동맹을 강화해봐야 얼마나 하겠냐'는 냉소적인 시각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안보나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미국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에 앞으로 은밀한 견제가 계속될 것이다.
■ 외교전문가
신임장 문제는 후진타오 주석이 (지진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기 때문에 결례로 볼 건 아니다.
그러나 친강 대변인의 발언은 결례 차원이 아니라 정책 방향이나 국가 전략에 대해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한미 전략동맹을 만든다고 하고, 한미일 공조를 부활한다고 하고, '비핵·개방·3000'이라는 대북 구상을 발표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한미 군사동맹을 역사의 시각에서 보는 것이다.
과거와 같은 군사적 대립으로는 동북아의 평화협력을 만들 수 없고, 동북아는 미래를 향해 가야 하는데 (한국이) 역사의 산물을 강화하고 과거로 회귀하려는 추세에 대해 중국이 좌절감을 가지는 것이다.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표시다. 한미동맹을 단순히 강화한다는 것과 전략동맹을 만드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전략은 세계 경영의 차원에서 하는 말이다.
중국은 또 남북이 교류·협력을 해서 한반도 정세가 안정되길 바라는데 '비핵·개방·3000'은 도움이 안 된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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