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재담소리, 서울식으로 부르는 판소리"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재담소리, 서울식으로 부르는 판소리"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5/22] 서울 무형문화재 38호 재담소리 예능보유자 백영춘 명창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혹시 '재담소리'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서울, 경기 지역에 전해오는 풍자와 해학이 담긴 민속극인데요 점점 잊혀지고 있는 재담소리를 살려내 맥을 잇는 명창이 한 분 있습니다. 바로 서울 무형문화재 38호 백영춘 명창이 그 주인공인데요 백영춘 명창은 지난 3월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처음으로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에서 열리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축제'에서 공연을 가질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백영춘 명창과 함께 10여 년 동안 꾸준히 추진해온 재담소리 복원 작업과 공연 계획을 비롯해 우리 소리에 대한 자세한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서울 무형문화재 38호 재담소리 예능 보유자 백영춘 명창입니다. 백영춘 명창은 1946년 서울 출생으로 17살 때부터 경서도창을 익혔고 故 이창배 선생께 민요 선소리 산타령을 사사해 1977년 이수자로 인정받았습니다. 1999년부터 '재담소리' 복원 작업을 시작해 장대장타령을 꾸준히 공연해 왔습니다. 경서도 창악회 이사장을 역임했고 2002년 서울재담소리보존회를 설립해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올해 3월 서울시로부터 무형문화재 38호 재담소리 예능 보유자로 지정받았습니다.

박인규 : 우선 축하드립니다. 지난 3월 서울시로부터 무형문화재 38호로 지정받으셨는데요. 지난 10여 년간 전통예술을 복원하기 위해 애쓴 노력을 인정받으신 것 같습니다. 소감이 어떠십니까?

백영춘 : 고맙습니다. 여러 분한테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이번에 지정받아서 후계양성에 전적으로 기를 수 있어서 좋습니다.

박인규 : 맥이 끊길 뻔했던 재담소리를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했고 이어받을 수 있게, 토대가 마련됐다. 그런데 저희가 사실 판소리나 서도민요, 경기민요, 이런 얘기는 잘 아는데 재담소리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어떤 겁니까?

▲ ⓒ프레시안

백영춘 :
그렇죠. 대중들한테 알려지지도 않았고, 해방되면서 해방 이후에는 무대에 올려진 적이 없고 장님타령 같은 건 박해열 선생님이 6,70년대까지 무대에서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장대장타령 등 박춘재 선생님이 하셨던 재담소리는 해방 이후론 맥이 끊어졌다고 볼 수 있죠.

박인규 : 재담소리라고 하니까요, 판소리는 판을 열어서 한 분이 이야기를 노래와 함께 끌어가는 것. 재담소리도 마찬가집니까?

백영춘 : 마찬가지죠. 판소리가 호남의 육자배기토리를 하는 거라면 재담소리는 서울 경기지방에서 하는 경토리의, 그것도 하나의 판소리니까

박인규 : 경토리라는 건 서울식으로 부른다는 말씀이시죠?

백영춘 : 그렇죠. 이쪽 음색이죠.

박인규 : 말씀 듣고 보니 예전에 이은관 선생이 하시는 배뱅이굿이라는 게, 그것도 이선생이 혼자서 죽은 배뱅이가 돌아온다, 그러는데 그거랑 같은 맥락입니까?

백영춘 : 같은 맥락인데 그건 서도토리가 많이 들어가고 황해도, 평안도 이쪽 소리

박인규 : 이건 순전히 서울 쪽으로

백영춘 : 서울쪽에서 전승된 거니까

박인규 : 노래와 이야기로 이어가는. 약간 실례되는 질문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어렸을 땐 장소팔 고춘자씨 해서 만담이란 걸 했는데 재담과 차이가 있습니까?

백영춘 : 여러 분들이 아마 그렇게 오해하실 수도 있어요. 민요만담이라든지 만담은 이런 건 귀에 많이 익으셔서, 그런데 재담소리라니까 생소해서 그러는데 원래 1900년대 초에 그 사람도 경기소리명창이시지. 박춘재 선생이 자기의 해학과 풍자 이런 걸 해서 말하자면 요즘의 개근대... 1인 혼자 엮어가면서 말하면서 노래하고 장단도 치면서 하시던 걸 1910년도쯤, 그때 당시 그 분이 고종황제 시절 가무별감이란 직호를 갖고 계셨어요. 지금으로 보면 연예국장 이런 정도 되겠죠. 그래서 거기 계시면서 동대문에 있는 전차차고내에 광무대라는 소극장을 개관하셔서, 개관기념공연으로 장대장타령이라는 자기의 레퍼토리를 가지고 연희본으로 소리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렸던 것이 오늘날 저희들이 보전해야 되는 재담소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젊은 사람들한테는 전통개그다. 하면 쉽게 알아듣겠군요.
저희가 알기로 판소리는 보통 혼자 하시는데 배뱅이굿도 혼자 하시고, 재담소리도 혼자 하십니까?

백영춘 : 초에는 혼자 하셨어요. 그래서 자기가 판소리마냥 아니리도 하고 다 하셨는데, 장단까지도 혼자 치면서 하셨어요. 판소리는 고수가 따로 있지만. 그 후에 혼자... 대화가 있어서 서로 주고 받는 대화가 있어서 문영수라는 분을 같이 해서 파트너를 뒀어요. 그 분이 고수, 장단도 치면서 뒷말도 받아주고 상대해주고 이러면서 연희본으로 짜여지게 됐죠

박인규 : 판소리에서 창극으로 발전한 것처럼 재담소리도... 아까 박춘재 선생이 유명하신 분이라고 하셨는데 해방 이후에는 별로 공연이 없었다. 왜 사라졌을까요 이게?

백영춘 : 1909년에 콜롬비아레코드에서 녹음하신 장대장타령이라는 게 있는데 그땐 혼자 하셨어요. 1919년대부터 연희본으로 들어가서 극장에서 그때부터 각광을... 20년대 30년대 아주 각광을 받았죠. 날마다 신문에 날 정도로

박인규 : 그 당시엔 판소리와 인기가 거의 맞먹을 정도였겠네요. 그러던 것이 왜 해방 이후에 사라졌을까요?

▲ ⓒ프레시안

백영춘 :
제자분들이 많지 않아서 뒤를 이은 분들이 많지 않아. 두어 분 계셨는데 장님타령 같은 건 전부터 내려왔는데 장대장타령 하는 건 그 분 이외에 하신 걸 잘 볼 수 없었대요. 그 분 하시는 것만 듣고 우리 정득만 은사님이 배우셔서 저한테 일러주셨어요

박인규 : 박춘재 선생님이 말하자면 후진양성을 좀 못하셨군요.

백영춘 : 그렇죠. 그때만 해도 남자들이 소리를 한다는 건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무대활동도 많지 않았고.

박인규 : 백영춘 선생님은 원래가 경서도창을 익혔고 이창배 선생한테 선소리 산타령... 경기민요 쪽을 주로 배우셨는데 어떻게 해서 재담소리를 다시 되살려 보자는 생각을 하신 겁니까?

백영춘 : 소리를 한 지 한 30년 만에 무대작품을 올리려고 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항상 하는 레퍼토리만 있으니까, 우리가 하는 거 말고 스토리 있게 할 게 없습니까 해서, 얼른 옛날에 정득만 선생님한테 장대장 타령이 생각나서 이런 것이 있다 했더니 그럼 그걸 한 번 하자. 그래서 극본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기 시작한 거죠

박인규 : 박춘재 선생 제자 중 한 분이 정득만 선생이고, 정득만 선생 제자가 백영춘 선생이고. 말하자면 박춘재 선생의 손자 되시는 거로군요. 그렇지만 공연본 음반 이런 게 1910년 20년대에 나왔다는데 그거 복원하기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백영춘 : 그래서 초창기엔 그런 고음반이 있다는 것도 잘 몰랐습니다. 선생님이 일러주신 걸 기억해서 저 나름대로 노래를 붙여서 곡도 붙이고 사설도, 사설은 이창배 선생님의 가요집성이라는 데 다 실려 있어요 원본이. 그 사설을 기본으로 해서 무대에 올렸고 그 후로 몇 년 지나가니까 그 음반이 좀 뭐라고 합니까? 새로 CD를 다시 나오는 것. 디지털로.. 그렇게 된 게 나왔어요. 그때 그걸 들어 보니까 선생님이 1909년도 19년에 해놓으신 거 들어보니까 저희들이 한 거랑 흡사하더라구요. 선생님이 옳게 가르쳐 주셔서 그런 톤이. 저희들은 서울경기소리를 항상 하니까 항상 그 토리를 노래하니까, 맥락은 똑같으니

박인규 : 보통 판소리 하면 다섯마당. 흥부가, 심청가, 춘향가 이렇게 나가는데 재담소리는 대표적인 작품이 몇 개나 있습니까?

백영춘 : 장대장타령, 장님타령, 혼자 하시는 개그는 개넋두리라는 것도 있고, 그리고 먼저 지정된 중요문화재 79호로 지정된 발탈재담도 박춘재 선생님이 하신 거예요. 발에도 탈을 씌워서, 이동환 선생님이 해서 지정되셔서 맥락을 잇고 있죠

박인규 : 말하자면 복원된 건 장대장타령과 장님타령이 가장 원형에 가까운 거군요? 어떤 내용입니까?

백영춘 : 장대장 타령은 양반집 귀한 아들을 기원해서 낳아서, 그런데 너무 똑똑해서 5대 독손인데 일찍 죽을까봐 별감을 불러서 자식을 맡겼더니 잡기를 가르쳤어요. 그러니까 얘가 머리가 똑똑하니까 그쪽으로 달통한 거야. 그러니까 장안을 누비고 다니면서 한량노릇을 하는 거야. 그래서 장대장이라고 별호를 얻어서 한창 놀면서, 그러니까 어머니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니까 집안이 망했어요. 배운 건 없고 쓰고 돌아다니니까. 망해버리고 할 수 없이 친구들한테 가서 만포첨사라는 작은 군직 하나를 얻어요. 장단땅에 있는 작은 마을 사또인데 거기 부임길 떠나면서 일어나는 해프닝. 그리고 장단땅에 가서 굿하는 무당한테 반해서 인연을 맺어서 부인을 삼아 살다가, 서울에서 양반와 무당이 같이 살 수 없으니 몰래 감추고 살다가, 허봉사에게서 점을 보다가 허봉사가 수작을 하니까 망신을 주고, 굿당에서 가서 굿을 하다 제가 신이 올라서 굿을 하다 허봉사에게 들켰어. 그래서 신랑한테 이르겠다 이르지 말라, 그런 내용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박인규 : 부잣집 귀한 아드님이 노는 얘기군요. 장님타령은 어떤 겁니까?

백영춘 : 장님타령도 마찬가집니다. 그것도 조금 있는 집안 마나님이 거리에 나갔다가 옛날에는 시각장애인들이 거리를 다니면서 점을 보라고 행상하는 게 있어요. 부르니까, 여보 장님 하고 반말 정도는 불러서 좀 얕이 보고 깔보려고 하다가 장님의 지혜에 눌려서 결국 나중에 골탕을 먹었다는 거고요. 두 작품이 다 그때 시대 1900년대 초에 개혁시대, 양반, 상놈이 무너지면서 평등사회를 구가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판소리는 보통 5시간, 짧아도 두세 시간 하는데 재담소리는 얼마나 해요?

백영춘 : 장님타령 같은 건 대화로만 해서 한 20분 정도 주고 벋고. 그 안에 소리도 몇 곡 들었고. 장대장 타령은 소리도 쭉 엮어가면서 소리도 많이 들었고 판소리모냥 아니리... 사설 자체가 노래로 만들었어요. 곡을 붙여서 대화를 하면서 가서 이건 한 50분 정도 소요됩니다.

박인규 : 판소리가 너무 많이 알려지다 보니 외국에서도 한국의 전통소리 하면 주로 판소리를 생각하세요. 남도소리... 경서도 소리를 하시는 분들 입장에서 경서도 민요의 특징. 판소리와 비교해서 이건 정말 자랑할 만하다. 어떤 게 있을까요

▲ ⓒ프레시안

백영춘 :
우리나라 소리의 분포를 보면 함경도, 강원도, 이쪽 지방에 동북민요라고 해요. 그쪽음악은 동해안 바닷물 같아서 그런지 몰라도 아주 맑고 청아한 노래가 되고. 또 황해도 평안도쪽 지방, 서관지방이라고 하죠. 거긴 산세도 그렇고 이조시대 때 보면 억압을 당했잖아요. 홍길동전도 나오게 되고. 눌려서 그런지 하여튼 애절하고 눌림에... 수신과 토리의 노래가 있고. 님도, 전라도 지방의 판소리.. 육자배기토리의 그런 게 있고. 경기지방에 서울경기의 경토리가 있는데, 경서쪽의 소리는 아리랑, 노들강변, 이렇듯이 순수한 전래민요도 있고 거의가 경서토리를 보면 무속, 경기굿소리에서 따내온 소리. 굿음악에서 나온 소리가 거의 많습니다. 신앙음악이라고 볼 수 있죠.

박인규 : 99년부터 복원해야겠다 해서 거의 10년 만에 서울시로부터 인정을 받으셨는데 어려움은 없으셨습니까?

백영춘 : 많았습니다. 처음에 무대 올릴 때만 해도 소리극이란 게 남도판소리는 창극으로도 많이 하고 국립창극단도 있으니까 많이 발전했는데 이쪽에는 창극단도 없고 사설단체에서 하려니까 지원도 받을 수 없고. 우리 최영숙 선생이 가산을 다 탕진했지. 나중에는 인정을 받아서 시에서도 지원도 조금 받아서 공연하고 했는데 넉넉하지 못하니까. 그래서 죽 내려오다가 무형문화재로 어떻게 해서 체계적인 전승활동을 해야겠다 싶어서 그쪽으로 몰두하면서 원형을 찾아야 되니까, 그 원형을 찾는 과정에서 많은 힘이 들었습니다.

박인규 :
청취자들께서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옆에 계신 최영숙 선생님이 부인 되시죠? 좀 이따가 공연을 위해서 나와 계십니다. 재정적 어려움 외에 사실은 복원하시느라 너무 건강이 안 좋으셔서 시력을 거의 다 잃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백영춘 : 제가 지병이 있어서, 당뇨병을 앓고 있었는데, 저는 소리에만 들어가면 제 몸을 돌볼 줄 몰라요. 미쳐서 했고. 이게 한 4,5년 됐는데 합병증이 망막증이 왔는데 안과에 가니까 수술을 해보라고 권하더라구요. 수술을 해도 그때는 50대 50이다. 의사들은 항상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그랬는데 안 될 수도 있고 더 나빠질 수도 있고 더 좋아질 수도 있는데 한 2,3년은 쉬어야 된다. 일 못한다. 내가 또 소리를 한다고 했더니 더더군다나 소리 하시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3년 살다 죽더라도 그럼 소리하다 죽는 게 낫다고 해서 수술을 안 받았습니다.

박인규 : 재담소리 복원하고 본인의 시력을 바꾸신 셈이네요. 아주 안 보이시는 게 아니고 조금 보이시는 거죠?

백영춘 : 조금 보입니다. 무대만 올라가면 그래도 하고

박인규 : 보니까 장대장타령이나 장님타령이나 시각장애인들이 많이 나오셔서 연기하기는 더 좋다는 말씀도

백영춘 : 좋다기보다도 허봉사역이라든지 이런 걸 한 10년 하니까, 그래서 그랬는지... 서편제에서도 소리꾼의 눈을 멀게 하잖아요? 사물을 보면 소리가 안 난다고, 그렇듯이 저는 눈을 떴을 때도 눈감은 감정으로 역할을 했으니까. 지금은 그렇게 눈감은 역할을 안 해도 감았으니까 감정이 좀 자연스럽다고 할까요.

박인규 : 10년 동안 인고 끝에 만들어낸 재담소리.
여기서 잠깐 백영춘 명창의 재담소리 가운데 장대장 타령의 일부를 들어보겠습니다.
장구반주는 최영숙 선생님이 해주시겠습니다.

백영춘 : 네. 장대장 부인이 아까 무당이라고 했잖아요. 살다가 허봉사한테 무당인 게 들통이 나서 신랑 장대장한테 이르겠다 이르지 말라, 이러는 대목입니다. 으름장을 놓는 거예요.

<장대장 타령 일부...>

박인규 : 박인규의 집중인터뷰가 3년쯤 됐는데요, 라이브 공연은 처음입니다.
제가 대학 때 맛배기로 판소리를 조금 배웠거든요. 판소리에서도 경조를 가르치고 하는데 제가 감히 평할 순 없겠지만 배선생님 소리를 들어보니 내공이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생각이 드는 게, 재담소리를 잘 모르니까 별칭 서울판소리라고 해도 많이 알려지지 않을까? 약간 자존심 상할 수 있지만 더 잘 알아들으실 것 같아요.

백영춘 : 그렇죠.

박인규 : 내일,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으신 이후 처음으로 공연하신다고 들었는데 어디서 하십니까?

백영춘 : 경복궁 경희궁에서 서울시 무형문화재 축제가 있습니다.

박인규 : 서울시 무형문화재 여러 분이 나오시는 군요. 내일은 오늘 부르신 대목을 하시나요? 어떤 대목을 하시나요?

백영춘 : 앞에 대목부터 전체, 20분이니까 스토리는 다 갑니다. 줄여서 줄여서 하니까 50분짜리를 20분에

박인규 : 몇시부터 합니까?

백영춘 : 7시부터 할 거예요.

박인규 : 입장료 같은 거 있습니까?

백영춘 : 없을 거예요. 아마

박인규 : 노래 좋아하시는 분들 가서 한 번 들어오시면 좋겠네요. 서울판소리...

백영춘 : 많은 관심 가져주시고, 생소하니까... 정이 들 거예요

박인규 : 백영춘 선생님과 부인이 경서도 창학회라는 걸 운영하시는데 어떤 일을 하십니까

백영춘 :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체계적인 전승방법을 생각하다가 사단법인을 개설했습니다. 경서도 창학회라는 사단법인을 개설해서, 경서도에 있는 모든 장단, 연희 이런 걸 다 망라해서 체계적으로 교육, 공연, 보급하기 위해서 2002년도에 설립해서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지금 혹시 재담소리를 제대로 이수자처럼 배워야겠다 그런 분들이 있습니까?

백영춘 : 지금 많이 있습니다. 지정된 건 금년도에 됐는데 전승활동은 2002년부터 했으니까 지금 굉장히 꽤 많습니다. 그리고 재담소리를 하려면 경서도창을 아주 망라해서 기본적으로 하는 사람만 할 수 있으니까

박인규 : 그렇군요. 경서도창의 기본바탕이 있어야 할 수 있겠네요.
요즘 언론보도를 보면 전통문화가 중요하다, 복원 계승하자 하면서도 실제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돼도 여러 가지 지원이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전승은커녕 생활도 어렵다. 그런 말씀도 많이 하시는데 서울시 무형문화재가 돼서 도움, 지원이 충분하십니까?

▲ ⓒ프레시안

백영춘 :
도움은 많이 되죠. 연금도 조금 나오고 공연할 때마다 지원해 주시니까, 넉넉지는 못하지만 그나마라도 저희 힘든 걸 덜어주시니 좋고. 첫째는 일반 대중들이 관심을 더 가져주시면, 국악은 참 그게 어려운데. 서울시에도 문화재단이라는 단체가 있잖아요. 거기서 물론 무대종목이라든지 이런 데서 죽 지원을 해오고 있어요. 그런데 하도 단체도 많고 이러니까 선정되기가 하늘의 별따기 같고 선정이 안 돼도 공연은 해야 되니까 자산을 들여서 해야 되고. 그런데 앞으로는 전통예술회에서 기업이나 이런 단체에서 후원을 좀 하는 시스템이 많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부에서 자산 가지고 단체들을 다 하는 게 힘들고

박인규 : 요즘 대기업에서 여러 가지 음악회를 하는데 재담소리 가지고도 한 번 할 수 있겟네요.

백영춘 : 그렇죠. 전통쪽으로 많이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박인규 : 선생님의 약력을 보니까 17살때부터 경서소리를 배우기 시작해서 쉰 넘어서 재담소리를 복원하기 시작해서 10년 동안 고생을 해서 이제 드디어 재담소리라는 것도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한 장르다, 인정받게 되신 거예요. 앞으로 보급도 많이 하고 제자도 키우셔야 할 텐데 앞으로의 계획을 간단하게 마지막 마무리말씀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백영춘 : 여태까지 평생을 이렇게 왔듯이 외골수로 살아왔잖아요. 건강도 잃어가면서...
이것이 저는 제 팔자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타고난. 다시 태어나도 다시 음악을 할 것이고 제 주위에 있는 분들, 음악하시는 분들을 또 만나고 싶고. 그리고 앞으로 대대적으로 우리 제자들이 이어만 간다면 이것이 수백년까지 이어가고 싶습니다.

박인규 : 지금 돌아가시면 안 되고요, 앞으로 보급시킬 일이 많이 남으셨기 때문에.
무엇보다 내일 공연 잘하시고 앞으로 서울판소리, 재담소리를 많이 확산시키는 역할을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백영춘 : 고맙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서울 무형문화재 38호 재담소리 예능 보유자 백영춘 명창과 함께 10여 년 동안 꾸준히 추진해온 재담소리 복원 작업을 비롯해 우리 소리에 대한 자세한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