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이 진보적, 보편적 관점에서 북한 인권 문제 제기 방침을 밝히고,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이 반박하면서 북한 인권 문제가 진보정당 간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얼마 전까지 북한 인권문제를 둘러싼 논쟁 구도가 주로 '진보 대 보수'에 있었다는 것을 떠올려 보면, 주목할 만한 변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논쟁의 성격과 방향이 생산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게 전개되고 있다.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과의 '차별성'을 부각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고, 민노당은 진보신당의 접근을 보수세력 '눈치보기'나 냉전세력에 '편승'하는 것이라고 공격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두 정당을 포함한 우리 사회가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북한 인권문제가 진보 정당간의 정쟁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든다.
진보신당의 문제점
우선 진보신당의 접근법이 어설픈 감이 있다. 진보신당에 몸담고 있는 일부 인사들은 민주노동당과의 분당 과정에서 당내 자주파에 대한 비판을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을 '군사왕조집단'이라고 칭한 바 있다. 이는 진보신당이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접근하면서 '이름 불러 망신주기'(naming and shaming)를 하지 않겠다는 정신을 '미리' 저버린 것이다. 그리고 대화의 상대를 이런 식으로 칭한 것은 대화의 문을 스스로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한 진보신당의 공식적 입장은 아니지만, 창당 과정에서 일부 인사들은 남북관계를 주권국가 대(對) 주권국가의 관점에서 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쉽게 말해서는 안될 성질의 문제였다. 이러한 남북관계의 관점에서는 '평화'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통일'에 대한 성찰적 접근이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보신당은 북한 인권문제라는 '고차원의 문제'를 공식 거론하기에 앞서, 정비되지 못한 북한관과 통일관을 가다듬었어야 했다. 스스로 약속한 총선 이후 제2의 창당 과정에서 이러한 모습을 기대해본다.
'환골탈태' 다짐한 민주노동당은?
민주노동당의 반응은 더욱 답답하고 안타깝다. 분당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환골탈태'를 다짐했지만, 적어도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노당이 4월 1일 발표한 통일외교정책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내용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민노당의 변화에 한계를 절감케 한다.
민노당은 진보진영의 북한 인권문제 거론이 '냉전세력에 편승'하는 것이고 보수진영을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다. 민노당을 포함한 진보진영이 북한 인권문제에 무관심하고 외면하는 사이에, 보수진영은 이 문제를 독점하다시피 해왔다. 그 결과는 진보진영 스스로 '아킬레스건'을 드러내면서, 보수진영에게는 '블루 오션'을 선사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남북관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젊은 세대들의 상당수가 북한 인권문제에 우선 주목하고 있는 현실을 민노당은 직시해야 한다. 이들마저도 보수세력, 냉전세력이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민노당은 "대화란 일방적 주장이나 강요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존중에 기초해서 협력적이고 건설적으로 되어야 하며 특히 남북관계는 더욱 그러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상대방의 문제점까지 눈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일정 정도의 긴장을 감수하더라도 선의와 진정성을 가지고 상대방의 문제를 제기하고 함께 해결하자고 얘기할 수 있을 때, 진정한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선의와 진정성을 갖춘 진보진영이 북한에게 인권문제를 얘기할 수 있을 때, 북한으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를 살펴보는 계기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때로는 언성이 오가고 얼굴을 붉히게 되겠지만, 이러한 진통을 겪지 않고서는 북한 인권 상황의 개선도, 진정한 평화와 통일도 요원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권'의 이름으로 평화와 관계개선을
북한 인권문제는 크게 두 가지 성격을 갖고 있다. 하나는 일부 과장되고 확인되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북한의 인권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객관적 현실'이다. 다른 하나는 진보진영의 외면과 침묵 속에 국내외의 보수세력이 북한 인권문제를 독점하고 악용하고 있다는 '정치적 현실'이다.
진보진영은 후자뿐만 아니라, 전자에도 주목해야 한다. 북한의 인권 현실에 눈감으면서 후자를 문제삼는 것은 그 자체로도 균형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킬레스건만 부각시키는 결과를 초래해왔기 때문이다.
'인권'의 이름으로 평화와 관계개선을 얼마든지 말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비참한 현실이 잘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전쟁은 인권의 탄압 정도가 아니라 말살을 가져온다. 따라서 남북관계의 악화를 불사하고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보수진영의 논리는 그 자체로 이미 비인권적이다.
국가보안법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이명박 정부를 포함한 보수진영은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할 때에는 '보편성'을, 국가보안법의 필요성을 강조할 때에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강조한다. 실소를 자아내는 인권관이 아닐 수 없다. 민노당을 포함한 진보진영은 이러한 이중잣대에 주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을 인권의 관점에서 비판해왔듯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전제되어야 한다. 스스로 이중잣대의 굴레에 매여 있으면서 이명박 정부의 이중잣대를 비판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보수적 인사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따라야 할 모델로 중국과 베트남을 거론한다. 그런데 미국이 중국 및 베트남과 국교를 정상화한 지, 각각 30년과 13년이 지났다는 사실은 거론하지 않는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북한과 관계정상화를 하면서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북한 인권문제 제기는 평화와 관계개선을 위태롭게 한다'는 민노당의 변치 않은 인식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인권의 이름으로 평화와 관계개선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말하고, 북한과 구축해온 신뢰와 대화 채널을 활용해 인권 문제도 거론하겠다고 국민들에게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민노당의 '환골탈태'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민노당만큼이나 북한과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정당도 없지 않은가?
(<오마이뉴스>와 동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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