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국사편찬위원회 정옥자 신임 위원장입니다. 정옥자 위원장은 1965년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했고 1988년 같은 대학에서 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81년부터 27년간 서울대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지난해 정년퇴임을 해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규장각 관장과 문화재위원회 문화재위원 그리고, 유네스코 문화분과위원회 자문위원을 역임했고 이번달 초 국사편찬위원회 신임 위원장으로 취임했습니다.
박인규 :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옥자 : 찾아주셔서 감사힙니다.
박인규 : 우선 취임 축하드리고요. 서울대 규장각에서도 첫 여성관장이셨는데요, 이번에 국사편찬위원회에서도 첫 여성위원장이 되셨어요. 한 마디 소감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옥자 : 예. 항상 '첫'자가 붙어 다녀서 몹시 부담스러운데요 그만큼 일할 의욕도 생깁니다. 그래서 제가 하여튼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1981년도에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가 됐을 때도 제가 알기로는 국사학과 최초의 여성교수였던 것 같은데요 그만큼 여성계에서도 정옥자 위원장님의 행보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정옥자 : 네. 그런데 여성계라는 제 요즘엔 어디를 얘기하는지 잘 몰라요 사실은, 대다수 분들은 각자 생각을 하고 그러겠지만 우리는 지금 여성계를 주로 여성들이 모여서 활동하는 어떤 단체를 자꾸 생각하는데, 저는 대부분의 보통 여성들 그런 분들과 공감하고 싶습니다.
박인규 : 특별히 여성운동이라고 이름붙여서 여성운동이 되는 게 아니라 자기 위치에서 일을 열심히 해서 능력을 키워가는 것이 여성운동이다.
정옥자 : 네. 너무 목청 높인다고 되는 일은 아니고 각자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봉사하는 정신으로 일하다 보면 여성의 지위는 올라가리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하긴, 정옥자 위원장께서 살아오신 길이 여성의 지평을 넓혀온 바도 있는 것 같고요. 저희가 예전에 한 번 이만열 전 전임 위원장을 모신 적 있긴 한데요, 그렇긴 합니다만 일반인들이 혹시 잘 모르는 것 같아서 국사편찬위원회가 하는 일이 주로 어떤 것인지 소개해 주시죠.
정옥자 : 굉장히 오래된 기관이에요. 이번에 62주년이 됐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뭐 국사관이란 이름으로도 시작했는데요, 또 이름이 국사편찬위원회가 됐는데 우리 역사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그걸 책으로도 내고 DB화해서 일반에게 서비스하고. 그런 게 아마 기본이고. 그리고 그걸 연구해서 책으로도 내고. 또 최근에는 대중에게 다가갈 노력을 많이 해서 한국사능력 자격시험도 보고 있고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역사정보를 DB화해서 여러 기관이 힘을 합해서 그걸 만들어서 웹에 올리고
박인규 : 일반에게 보급한다
정옥자 : 네. 그래서 일반에게 보급하고 그런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국사를 연구, 편찬, 보급한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정옥자 : 간단히 말하면 그렇죠.
박인규 : 한국사 검증시험에 대해서는 말씀을 들어봤는데 시험 보시는 분들이 많이 있나요?
정옥자 : 꽤 있다고 해요. 그런데 이제 초창기라 아직은 홍보가 잘 안 됐는데 중요한 건 그래서 그 자격증을 땄을 때 그걸 가지고 뭘 하느냐 그게 제일 중요한 거예요. 그래도 자격증이기 때문에 관심있는 분들이 많죠. 그런데 기업체나 이런 데서 입사시험을 볼 때 이 점수를 갖고 일정 부분 반영한다면 일석이조라고 생각해요. 일부러 시험 보느라 많은 인력과 돈 낭비할 필요도 없고, 그리고 국민들에게 우리 역사에 대해 관심갖고 공부할 기회를 주게 되고. 그래서 저는 기업체가 이 자격증을 일단 활용해 줬으면. 그게 제 희망입니다.
박인규 : 취임하신 지 아직 2주일이 안 되셨기 때문에 지금까진 업무파악하시고 그랬을 텐데, 지금까지 보아오신 걸로, 앞으로 편찬위원장으로서 이런 일을 좀 해보고 싶다. 그런 계획이 잡히셨나요?
정옥자 : 아직은 여기 제대로 잘 굴러가고 있는데 제가 갑자기 일을 벌여서 너무 그러면 직원들 동요할 것 같고. 다만 저는 하여튼 역사의 대중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제가 교수로 있을 때도 연구실에서 너무 고답적으로 상아탑을 고수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박인규 : 대중과 소통하자.
정옥자 : 그렇죠. 역사도 결국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하는 건데 그걸 갖다 혼자서 나만이 아는 언어로 나 혼자 떠들고 나 혼자 써봐야 무슨 소용 있는가. 그래서 제가 연구는 물론 기본적으로 열심히 해야 돼요. 그러지 않으면 남의 얘기 여기저기서 베껴서 말하는 것밖에 안 되는, 힘이 없습니다. 내가 기본적으로는 연구를 하고 내가 거기에 문리가 터야 돼요. 그런데 그걸 갖고 대중에게 쉽고 재밌게 알려주는 걸 제가 많이 생각했는데, 뭐 그전에는 학자니까 그냥 역사에세이 그런 걸 썼어요. 그래서 매스컴이 원하면 역사에세이를 써주고 칼럼도 써주고 그랬는데 제가 규장각에서는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니까 제가 문화상품까지 개발했어요. 이건 문화를 알리는 운동이다, 그래서 거기 있는 좋은 의궤자료 문양이 나오면 그걸 활용해서 문화상품을, 스카프까지 만들었어요. 그래서 굉장히 열심히 재밌게 하고, 그제서야 서울대 교수들까지도 아, 이런 게 있었구나. 규장각이 이렇게 소중하고 재밌는 데구나. 그렇게 했는데 여기 와서도 역시 대중화할 방법을 강구하겠습니다. 그래서 아까 말한 한국사능력 자격시험과 역사DB사업은 아주 중요사업으로 해나가겠습니다.
박인규 : 역사의 대중화를 말씀하셨는데 최근 TV드라마를 보면 세종대왕, 정조대왕... 굉장히 많은 드라마가 나오는걸 보면 분명 우리 대중들이 역사에 대해 관심은 많다고 보여지는데, 실제로 제도권이랄까요, 시험을 보면 예를 들면 공무원시험에서 국사가 없어지고, 또 서울 시내 일부 사립대학에서 국사를 수능필수과목으로 하겠다고 했다가 또 안 하겠다고 하고. 약간 편차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봐야 될까요?
정옥자 : 예. 국민들은 관심이 많은데. 그건 역사를 재미없게 해놓은 사람들의 책임도 있죠. 연구자들도 책임이 있고, 너무 세계화를 잘못 이해해서 우리 것은 필요 없고 세계화해서 살면 그만이지, 영어나 하면 되지, 뭐 이런 사고방식이 널리 퍼지는 것 같은데 거기에는 약간 오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역사 대중화에 자꾸 관심을 갖는 건 국민들이 재밌어야 돼요. 재미없이 억지로 그냥 머릿속에 지식을 집어넣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지금은. 특히 청소년은 안 되는 거고, 그래서 재밌게 역사를 전달해 줘야 되는데 지금 역사라는 학문이 전통시대와 달라졌어요. 전통시대에는 문학의 사촌이었습니다. 옛날얘기에요. 그래서 제가 어려서 어른들 졸라서 들은 옛날얘기들도 지금 와서 보니 다 역사얘기에요. 다만 재밌게 윤색해서 거의 문학에 가깝게 스토리를 얘기해 주신 거더라구요. 예컨대 인현왕후, 장희빈 얘기라든가 그게 다 역사 아니에요. 그런데 그걸 재밌게 얘기했기 때문에 지금도 기억해요 그 스토리를. 그런데 역사가 근대 이후 서구학문체계를 받아들이면서 사회과학화해서,
박인규 : 논문이 돼버렸군요.
정옥자 : 예. 그래서 이제는 전부 분석적이고 통계도 내고 사회과학적인 방법론이다 해서 너무 딱딱해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전통적인 어떤 스토리 중심의 역사로 가면서 연구자들이 좀 역사를 풀어쓰고 문사철을 함께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메시지도 있어야 되고 재밌게 스토리를 구성해야 되고 그 안에 역사적인 사실을 넣고. 그러니 그건 연구자들의 책임이죠. 그걸 대중과 소통하는 중간역할이 있어야 된다고 보는 거예요. 매스컴이라든가 아니면 역사를 재밌게 풀어쓰는 평전을 쓰는 사람들이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필요한데 그게 잘 안 되고 있고요.
박인규 : 물론 역사를 재밌게 쓰는 건 연구자들 몫이기도 한데, 또 국민들이 역사를 제대로 배우게 하기 위해서는 학교교육에서 필수로 가르친다거나. 그런 부분에서 우리 정부나 기업이나 부족하지 않은가요?
정옥자 : 그쪽에선 이걸 자꾸 전공 위주로 얘기해요. 역사하는 사람들이 제 밥그릇 챙기기 위해서, 자꾸만 역사를 해야 된다, 강화해야 된다, 이렇게 주장하고 주입하려고 한다. 이렇게 또 오해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또 사실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이게 상호작용을 해야 되는데 너무 우리 사회가 모든 걸 이해관계로 따지니까 역사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제대로 얘기 못하고 인식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오해의 갭, 이것들이 우리 역사교육의 큰 문제가 되는데 저는 아무튼 연구하는 사람들이 노력해야 된다고 봅니다. 무조건 역사교육 해야 된다, 그런 주장 되풀이 해봐야 아무 소용 없고요. 흥미유발해서 국민들이 아주 재밌어서 하게 해야 되고 그리고 시험에서 자꾸 역사를 제외하는 건 결국 나라가 해체되는 것과 똑같아요. 굉장히 위험한 거예요. 세계화될수록 오히려 국가 단위로는 분명하게 정체성을 다지지 않으면 아주 위험한 거죠. 세계화가 결국은 전 세계가 하나 된다고 해도 단위는 국가 단위로 사는 거죠.
박인규 : 그것과 관련해서 제가 조금 전 여쭤봤습니다만, 서울 시내 7개 사립대학에서 2010학년도 대입 수능시험부터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겠다고 했다가 이명박 정부에서 수능과목을 축소하겠다고 하니까 다시 재고하겠다, 이렇게 나왔어요. 혹시 이게 국사편찬위원회 권한 내의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대학에 대해서 재고해 달라고 요청하시거나 그럴 수 없습니까?
정옥자 : 전혀 권한이 없습니다. 요청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국사라는 게 오히려 세계화시대에 한국인이 중심을 갖고 한국인이라는 분명한 자각과 자존심을 갖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역사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보고, 반드시 국사를 필수로 해서 한국인으로서의 교육을 분명히 하고 그러고서 세계화해서 세계에 나가서 활동해야 되는데. 제가 이거 몇 년 전 얘기지만 일본에.. 꽤 오래됐어요. 일본 교토 나라 쪽으로 갔는데 제가 학회 끝난 다음 투어를 시켜준다고 하면서 거기 많잖아요 유적이. 그걸 설명하는데 전문가 뺨치게 하는 거예요. 가이드가 아니고 교수가. 그러니까 제가 전공이 뭡니까? 그랬더니 전혀 상관없어요. 일본사나 일본문화나 일본문학이 아니고 전혀 상관없는 일이에요.
박인규 : 일본 사람들은 기본교양으로 자기 역사에 대한 걸 많이 알고 있군요.
정옥자 : 네. 그래서 제가 너무나 놀랐어요. 어떻게 이렇게 유창하게 잘 알고 설명하느냐 했더니 자기들은 이미 고등학교 때까지는 일본사에 대한 기본을 다 습득하고 대학교 때 더 심화시켜서, 그래서 일본인으로서 누구한테라도 자기 역사와 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준답니다. 누가 와도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걸 엄청나게 자랑스럽게 자부심을 갖고 설명을 너무 잘하니까 제가 그때 아주 한탄을 했어요. 우린 왜 이걸 못하는가. 그러니까 우리도 그런 건 해야 된다는 거죠.
박인규 : 세계화와 개방이 될수록 국사교육은 오히려 더 중요하다.
정부나 기업관계자, 각 대학에서 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드라마 말씀을 잠깐 드렸습니다만, 최근에 역사드라마가 굉장히 많이 나오고 우리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랄까 그런 게 많은데, 일각에서는 역사드라마에 나온 사실들이 좀 실제와 다르고 견강부회한 측면이 있다고 우려도 하시는데요, 역사학자로서 드라마에 나타난 역사상 같은 건 어떻게 보십니까?
정옥자 : 네. 그런데 많이 나아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역사드라마가 다 후궁들의 궁중암투밖에 나온 게 없었는데 요즘엔 많이 좋아졌어요. 정조의 개혁정책 같은 것도 예컨대 서얼허통 문제라든가, 신해통공... 그게 상업자율화정책인데, 그건 정조 후반기에 나와야 되는데 벌써 세손 시절에 그런 의지를 갖고 있다는 걸 쭉 깔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이게 결국 조선왕조실록 무료서비스 번역본이 굉장한 역할을 한다고 봐요. 그런데 그게 틀렸어도 오역이 있어도 그걸 보면서 이 사람들이 쭉 스크랩하면서 메시지만 갖다가 포장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드라마는 드라마기 때문에 얼마든지 픽션과 허구인물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박인규 : 사실을 엄밀하게 따를 필요는 없다.
정옥자 : 네. 그러니까 그렇게 어떻게 역사드라마 갖고 공부하고 그게 틀렸냐 맞았냐 그것만 갖고 따지는 건 문제가 있지만, 실증하고 고증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안 되는 것만 픽션으로 해야 돼요. 그러니까 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걸, 무식해서 오류를 내면 안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실증, 고증을 기본적으로 해서 할 수 있는 한 다 그걸 깔고. 그러니까 팩트와 픽션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팩트는 다 실증해서 깔고 그 다음에 픽션 부분은 예컨대 인물 허구로 넣고, 또 자료와 자료 사이에 빈 공간이 많아요. 그럴 경우엔 역사학자조차도 직관과 상상력을 발휘합니다. 우리조차도. 그런데 하물며 작가한테 그 부분을 뭘로 채우라고 할 거예요. 그건 당연히 상상력과 직관으로 하는데 그럴 때도 아주 그럴싸하게 해야 된다는 얘기죠. 그게 팩션이죠. 팩트와 픽션. 아, 이건 정말 그럴 듯하네... 그 정도는 가야 역사드라마가 수준이 높아진다. 그러나 지금도 높아지고 있어서 난 참 0다행으로 생각하고 격려하고 싶어요.
박인규 : 약간 다른 주제의 질문 드려볼까 하는데요, 이른바 개혁진보정권 10년 뒤에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특히 근대사에 대한 해석, 이 문제에 관해 충돌이 굉장히 많습니다. 모 언론을 보니 위원장님께서는 참여정부의 과거사 청산작업이 조금은 조급한 측면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정옥자 : 난 그게 그렇게 틀렸다고 생각은 안 해요. 연구든 해야 돼요. 해야 되는데 목적이 앞서면 안 되고 좀 연구를 신중하게, 아주 객관적으로.
박인규 : 말하자면 그 시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확실한 연구가 쌓인 다음에
정옥자 : 네. 확실한 연구가 필요해요. 그래서 친일파청산문제도 한 번은 연구해야지요. 그 사람들 친일파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너무 조급하게 평가해서 단죄를 하면 그게 결국 우리한테 상처가 된다는 거죠. 적극친일파라든가 겉으로는 친일하면서 속으로는 또 독립자금 대고 그랬잖아요. 그런 걸 다 연구를 끝내고 마지막에 정리해서 차등적으로 등급을 매겨야 된다고 봐요. 제가 그 전에 동아일보에 한 번 썼어요 이런 얘기를
박인규 : 조급한 단죄보다는 신중한 역사연구가 앞서야겠다.
정옥자 : 신중한 연구를 해서 객관화시키고 약간 뜸을 들이면서 하면 좋겠네요.
박인규 : 70년대에는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아주 새로운 역사인식인 것처럼 굉장히 많이 읽혀졌고. 최근 한 3,4년 사이에 또 '해방전선에 대한 재인식'이라는 책이 나오면서 해방전선에 대한 또 따른, 저희가 최근에 이인호 교수도 모셨습니다만 건국을 너무 폄하하고 있다는 말씀도 하고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해방 이후의 역사를 보는 눈이 너무 극단으로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이 부분을 어떻게 저희가 종합하고 균형적인 역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정옥자 : 그렇게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건데 왜 그런지 다 근현대사 하는 사람들이 그러네요. 극과 극으로 그렇게 할 필요 없어요. 사실은. 인정할 건 인정하고 문제점은 문제점대로 찝으면 되는 거지. 예컨대 이승만 대통령도 그렇죠. 건국의 아버지라고 미화하면서 추켜세울 것까지야 없지만 뭐 하여튼 대한민국을 기본적으로 건설하는 데 기여한 건 인정하고
박인규 : 공은 공대로 인정하고 과는 과대로 평가하고
정옥자 : 네. 그 분이 자기 독재를 연장하려고 해서 4.19까지 촉발한 문제는 문제가 있고 인의 장막 속에서 확실하게 현장을 몰라서 문제된 거, 그런 건 또 말을 해야 되고. 저는 박정희 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산업화에서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에 상당히 기여한 걸 누가 아니라고 해요, 그건 사실인데. 그래서 그건 그거대로 하고 인권 문제라든가 이런 데서는 문제가 있다는 건 과로. 역사라는 건 균형감각이에요. 균형감각을 딱 갖고 사실적으로 연구해서 평가를, 이런 공이 있고 이런 과가 있다는 걸 알려주면 되지 뭐 이건 완전히 잘됐다, 이건 완전히 잘못됐다.
박인규 : 이른바 100 대 0. 흑과 백.
정옥자 : 흑백논리는 안 된다고 보는 거죠.
박인규 : 약간 거창한 질문이 될 수 있겠습니다만, 우리 해방 이후 역사를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선진화로 가고 있다. 그런 말씀들을 많이 하세요. 지금 50년 동안 보수정권, 10년 동안 진보정권, 다시 보수정권이 됐는데 물론 선생님의 전공은 조선 후기로 알고 있습니다만 동시대 살아오신 분으로서 우리 시대가 나아갈 방향이나 이런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잘 나가고 있는 건지, 어디로 나가야 되는 건지...
정옥자 : 저는 세계화라는 건 개인이 부정할 순 없다고 봅니다. 그건 시대의 흐름이기 때문에, 세계화를 어떻게 거역하겠어요. 그리고 세계화 하려면 당연히 선진화해야지요. 세계화 속에서 우리가 제대로 적응 못하고 노력 안 하면 후진으로, 완전히 탈락돼버릴 테니까 세계화 속의 선진화라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렇게 해서 적응하고 살아야 되니까. 그런데 너무 실용주의를 기준 없이 적용할 경우는 좀 위험할 수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특히 외국과의 관계에 좀 많이 우리가 신경을 써서 국익도 챙겨야 되고, 또 우리가 세계질서에 기여할 만한 것, 최빈국을 지원하는 문제라든가 이런 건 우리가 선진국이 될수록 더 기여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권리와 의무를 적당히, 다시 말하면 명분과 실리를 균형을 잘 맞춰야지 어떤 부분에서는 우리가 후진국 행세를 하면서 우리는 지원받아야 된다고 하고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는 선진국이다, 이러고 나서면 안 되는 거예요. 권리와 의무를 거의 비중을 같이 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경제, 물론 경제선진화가 기초가 돼야지요. 경제 없이는 아무 것도 안 되니까요. 그런데 그게 결국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경제적인 게 필요한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건 기초죠. 그리고 이 실용주의도 방법론이지 목적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실용주의를 할수록 어떤 기준과 방향과 원칙이 꼭 필요하고, 그걸 통해서 우리가 실용주의를 하면서 국제적으로도 명분과 실리를 확실하게 챙기고, 그러면서 사실은 세계평화질서, 그리고 문화국가로 가는 쪽으로 우리가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개인적인 질문도 좀 드려볼까 합니다. 6.25 때 상당히 어려운 일을 겪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정옥자 : 네. 제 고향이 강원도 춘천입니다. 거기가 38선과 아주 근접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어려서도 가끔씩 저쪽에서 총소리가 나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국지전이라는 건데, 그러다 말고 그러니까 당연히 그런 줄 알고 살아왔는데, 6.25 때는 그게 진짜 전쟁이었다는 걸... 그걸 실감한 건 벌써 시간이 경과한 다음이에요. 왜 그러냐면 방송에서... 제 기억으로 생생하게 기억하는 게,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 그 얘기는 제가 지금도 생생해요.
박인규 : 그걸 들으셨어요?
정옥자 : 그럼요. 라디오에서. 그러고 있다가 언제 피난을 시작했는가 하면 38선 쪽에서 피랍민들이우리집 앞에까지 오고, 총알이 마당에 박히니까 그제서야 이게 전쟁이구나. 그리곤 그때 서둘렀는데 이미 늦은 거예요. 거기서는 피난하는 게 결국 서울에 와서 남쪽으로 가는 길밖에 없어요. 그리고 애들이 어리니까 피난이 빨리 진행이 못 된 거죠. 그래서 청평호수에 가서 이미 서울이 점령된 거예요. 서울은 점령당했으니 못 간다. 그러면 다시 춘천으로 들어와야지 어떡하겠어요.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가, 우린 독 안에 든 쥐다. 서울도 못 가고 춘천 가도 잡히면 죽고. 그때 유언비어가 심해서 손에 못이 안 박힌 사람은 다 그냥 그 자리에서 즉결처분한다고.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가 거기서 자살을 선택하신 거예요.
박인규 : 위원장님 보시는 앞에서
정옥자 : 네. 배를 빌려서 거기 다 타고 가는데, 딱 중간에 거기가 스물네길이래요. 지금은 더 높아졌겠죠. 근데 그때는 아무튼, 그 얘기들을 다 기억하니까요. 사람 길 스물네길이다, 사람 키로. 거기 그 지점에 가서 동생들 다 데리고 자살하셨으니까
박인규 : 아홉 살 어린 나이에 아버님이 동생들까지 다 데리고 자살하시는 걸 보셨기 때문에 굉장히 충격이 크셨을 것 같은데요...
정옥자 : 평생 가는 거죠.
박인규 : 그 경험이 혹시 역사학을 공부해야겠다는 데 영향을 미친 건가요?
정옥자 : 미치다마다요. 전쟁만은 하여튼 절대 안 된다. 그건 그때부터. 그리고 전쟁은 참, 인류가 만들어냈지만 개인이 피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개인한테는 천재지변과 비슷해요. 그러니까 참 전체가 변해야지 개인이 노력해서 되는 일은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더 그 후에 고민을 많이 했고 사관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하고. 결국은 제국주의사관 때문에 이런 것들이 계속되는구나, 그러니까 제국주의사관을 극복해야 되는데. 그게 전쟁사관이니까
박인규 : 그렇다면 정옥자 위원장님 보시기에, 올바른 역사랄까... 그건 어떻게 나아가야 제대로 나가는 역사입니까. 평화가 제일 중요한 겁니까?
정옥자 : 그렇죠. 그래서 제국주의역사관을 빨리 극복하고 넘어서야 되는데, 아직도 세계가 그걸 극복 못했잖아요. 그러니까 끊임없이 우리가 그런 쪽을 향해서 가야 되는데 그러려면 학자는 학자 나름대로 이론적인 걸 뒷받침해야 되고, 정치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그걸 넘어서기 위한 노력을 해야 되고. 그런데 말로만 평화를 외치지 실제는 안 그렇잖아요. 어차피 지금 세상이
박인규 : 전쟁으로 고통을 겪으신 분이 그런 말씀을 해주시니까 훨씬 더 가슴에 와닿는다는 느낌이 드네요
정옥자 : 평생 그런 쪽을 생각했기 때문에 저는 식민사관극복을 굉장히 중요한 내 과제로 생각하고, 식민사관에서 주로 공격 대상이 주선 후기더라구요. 그래서 왜 그럼 조선후기를... 당쟁론, 사대주의론, 문화적 독창성의 문제, 그게 다 조선후기 문제더라구요. 그래서 상당 부분은 제가 거기서 벗어났어요. 사대주의론도 제가 극복했고 당쟁론도 극복했고 문화적 독창성론도 극복해서, 저는 하여튼 학자로서 이론적으론 거기서 극복하고 그런 논리들을 만들어냈어요 제가.
박인규 : 저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역사에서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 말도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역사를 많은 분들이 제대로 알아야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생각되고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역사편찬위원회를 어떻게 끌고 가실 건지, 못다 하신 말씀 있으면 마무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옥자 : 하여튼 전 관장님들이 하신 일 중에서 순기능이 있는 건, 참 괜찮다 이런 건 열심히 계승하겠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있는 건 수정하겠습니다. 급격한 변화나 그런 건 없을 거고 역사의 대중화 쪽으로는 적극 노력을 하겠습니다.
박인규 : 정옥자 교수께서 여성으로 국사편찬위원회 관장 되신 것만 해도 새로운 역사를 쓰셨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쨌든 한반도의 평화로운 역사를 위해서 많은 역할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정옥자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국사편찬위원회 정옥자 신임 위원장과 함께, 세계화와 실용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에서 국사의 중요성과 올바른 역사 교육의 방향은 무엇인지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