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대표가 정치의 문외한인 박재승 변호사를 공천심사위원장 자리에 앉히면서 시작된 민주당의 '공천 드라마'는 박 위원장이 금고형 이상 부정·비리 전력자를 공천에서 일괄 배제키로 결정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 의원 등 중진 11명을 탈락시키면서 절정을 맞았다. '측근'도 '공신'도 봐주지 않는 공천 특검에 지난 당내 경선에서 정동영 후보를 만든 일등 공신 이용희 국회부의장은 물론 구(舊)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인제 의원도 나가 떨어졌다.
그러나 '공천 특검'의 칼날은 호남을 지나면서 무뎌졌다는 평가다. 수도권에서는 '공천을 받은 태반이 현역·실세 의원'이란 불만에 '태현실'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졌을 정도다. 박 위원장은 인적 쇄신에 깜냥을 다했지만 대선 패배 후 '인재풀'이 협소해진 상황에서 한나라당처럼 학살 수준의 현역 물갈이를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는 것이 당내 중론이다.
호남 물갈이 성적, 수도권에서 하향 평준화
현재까지 민주당 공천이 완료된 선거구 128곳 가운데 현역 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하거나 불출마를 선언한 곳은 모두 29곳으로 현역 의원 교체 비율은 22.6%다. 한나라당 현역 의원 39%가 공천에서 탈락한 것과 비교하면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애초 공심위가 내걸었던 '호남 현역 의원 30% 물갈이' 공약은 그대로 실행됐다. 총 31개 지역구 중 한병도, 이광철, 채수찬, 이상열, 신중식, 채일병, 정동채, 김태홍, 김홍업, 양형일 의원 등 지금까지 탈락한 현역만 10명에 불출마를 선언한 김원기 전 국회의원을 합하면 물갈이 비율은 35%를 상회한다.
그러나 서울과 수도권에서 현역 의원들이 대부분 재공천을 받은 것이 전체 교체율을 끌어내렸다. 지금까지 비호남권에서 탈락한 의원은 전체 공천탈락 의원의 절반인 10명에 불과했다.
이처럼 비호남권의 구조조정이 저조한 수준에 머물면서 수도권에서 최소한 20% 이상을 물갈이 하겠다는 당초 공언이 지켜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에 경실련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공천 현황을 평가한 논평에서 "민주당의 경우 공천심사위원회가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일관성을 유지해 공천을 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수도권 공천의 경우 경쟁력을 이유로 자질과 능력, 비전문성으로 논란이 됐던 의원들이나 참여정부의 정책 실패를 책임져야할 인사들이 재공천을 받았다"고 비판했다.
'인력난'에 수도권 물갈이 좌절
민주당이 야심차게 기획했던 '공천 특검'이 '여론 지지'라는 추진체를 달았음에도 기대했던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고 마무리된 것은 민주당의 '역량 문제'로 귀결된다.
지난 정부 중반부터 민주당은 물론 민주개혁평화세력이란 일컫는 지지세력 전반이 침체기를 겪으면서 새 인물을 키워내지 못해 이번 총선에서 인물난을 드러냈고, 결국 후발 주자가 마땅치 않아 흠 있는 현역 의원을 재공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낳고 만 것이다.
이에 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쇄신의 애드벌룬을 높이 띄운 탓에 한나라당의 쇄신만 도운 꼴이 됐다"고 평하기도 했다. '쇄신 공천'을 주도해 한나라당 후보들을 '구태 인사'로 몰아가고자 했던 민주당의 계획이 한나라당의 뒷심에 밀려 역으로 한나라당의 물갈이 성적과 비교 당하는 처지가 됐다는 얘기다.
실제로 호남 물갈이에 위기감을 느낀 한나라당은 막판 영남과 수도권 경합지역 공천에서 당내 중진 대부분을 탈락시켰다. 당 지지율을 업으면 정치 신인으로도 승산이 있다는 자신감과 대선 이후 풍부해진 '인재풀'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면 호남 물갈이 비율을 달성해 반쪽이나마 면목을 세운 민주당의 공천작업은 전략공천과 비례대표 공천 등을 앞두고 막판 난기류에 휩싸여 있다.
구 민주계 의원들은 4선 중진 정균환 최고위원이 공천에 탈락한 것을 두고 대대적인 반발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박상천 대표는 20여 곳의 전략공천 지역 중 5개 지역을 '통합의 몫'으로 요구하며 최종 결정권을 가진 박 위원장이 이를 수락하지 않을 경우 "결단을 할 수도 있다"고 경고해 놓은 상태다.
박 위원장과 박 대표 간의 조율을 맡은 손학규 대표는 이날 안으로 전략공천 문제를 매듭짓겠다는 계획이지만 "전략공천에도 계파 안배는 없다"는 박 위원장의 원칙이 변경될 가능성은 희박해, 당내 지분 다툼이 하루가 바쁜 민주당의 총선 채비를 가로막는 막판 걸림돌이 될 소지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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