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신경림 시인입니다. 신경림 시인은 1935년 충북 충주 출생으로 1956년 <문학예술>에 '갈대'와 '묘비'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습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민예총 공동상임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스웨덴 시카다 상과 만해문학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현재 동국대학교 석좌교수를 맡고 있습니다. 시집으로는 [농무],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뿔]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는 [민요기행], [시인을 찾아서]등이 있습니다.
박인규 : 열 번째 시집이 나왔는데요, 우선 축하드리고요. 작가에게 작품이라는 건 자식과도 같다는데, 열 번째 자식을 세상에 내보내면서 어떤 느낌이셨습니까?
신경림 : 글쎄요. 시집 내본 사람들은 다 똑같은 심정이겠지만 항상 하여튼 시집을 낼 때는 열 번째고 열한 번째고 똑같이 처음 낼 때와 똑같은 감동도 있고 설렘도 있고 두려움도 있죠.
박인규 : 등단하신 때가 1956년이었는데요,
신경림 : 오래됐죠.
박인규 : 제가 그 해 태어났습니다.
신경림 : 그렇습니까?
박인규 : 그 해 태어났습니다. 52년 동안 열 권의 시집이면 제 생각엔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신경림 : 많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은 양이죠. 대개 아마 제가 평균쯤 될 겁니다.
박인규 : 이번 시집 제목이 '낙타'에요. 낙타라는 시도 시집의 맨 앞에 실렸고, 언론평을 보니까 낙타를 굉장히 주목하면서 저승과 이승, 저승에 갈 때의 느낌을 담았다는 평들이 많았는데요, 낙타를 표제시로 뽑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신경림 : 낙타를 물론 그전에 동물원에서 보긴 봤지만 3,4년 전 몽골에 갔을 때 낙타를 봤습니다. 사막에서. 그걸 보면서 낙타한테서 어떤 내 자신의 모습 같은 걸 찾았고, 또 말하자면 그것뿐 아니고 어떤 삶의 고달픔 같은 것이랄까, 어려움 같은 것을 안고 이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고서, 아, 저것이야말로 내가 세상을 보는 눈 같은 것을 대신해줄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서 낙타라는 시를 썼죠.
박인규 : 시집의 일부를 인용해 보자면, 만약 가능하다면 낙타가 되어 이승으로 돌아온 뒤 다시 저승길을 갈 때 세상에서 가장 가엾은 사람을 등에 태우고 가겠다.
낙타처럼 살고 싶다는 말씀으로 이해도 될까요?
신경림 : 낙타처럼 살고 싶다는 뜻보다는, 한 마디로 말해서 낙타한테서 내 자신의 모습을 본 거라고 이해해 주시면 될 것 같네요.
박인규 : 어떤 언론보도를 보니 이 시는 퇴고 같은 거 안 하시고 머릿속에 갖고 계시다가 단숨에 써버리셨다고 하더라구요.
신경림 : 대신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생각했죠. 써놓고 고치지는 않았지만 쓰기 전에는 머릿속에서 많이 고치길 계속했던 거죠
박인규 : 계속 머릿속에서 발효시키고 익히셨군요. 이번 시집을 보면 1,2,3,4,5부로 돼 있는데 1부와 2부를 보면 삶과 죽음에 대한 얘기가 많아요. 연세도 70 넘으셨으니 그런 시를 쓰시게 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어떻습니까?
신경림 : 그렇죠 예. 그런 생각도 했죠. 죽음도 삶의 연장이지 삶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1,2부의 시를 읽어주시면 될 것 같네요
박인규 : 저는 사실 쭉 시집을 보면서 오히려 뒷부분이 편하게 읽혔다고 할까요? 보니까 네팔, 터키, 미국, 남미, 프랑스, 심지어 평양.... 기행시들이 많더라구요.
신경림 : 많이 다녔으니까요 최근에
박인규 : 여행시를 많이 쓰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세요?
신경림 : 원래 제가 여행을 좋아하는데요, 여행이라는 게 떠나는 것만이 의미있는 게 아니고, 여행하면서 자연도 사람도 만나고, 또 일도 보고 사람 사는 모습도 보고. 그러면서 여행 자체가 저한테는 시를 쓰는 공부고 시를 쓰는 한 과정이었죠.
박인규 : 사람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신경림 : 여행하면서 자연, 사람을 만나서 갈등 같은 것도 느끼고, 그런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여행이 제게는, 말하자면 여행 자체가 시를 쓰는 한 과정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박인규 : 저희 프로그램에 고은 시인이 한 번 나오셨는데 그 분도 외국을 나간 게 90년대 초인가 그렇다고 하시더라구요. 신경림 시인은 외국여행을 처음 하신 게 언제부터입니까?
신경림 : 제가 문민정부 들어서고 나서 여권이 처음 나왔으니까요, 그 전까지는 여권을 안 내주다가 93년인가 94년 그럴 겁니다.
박인규 : 거의 60 다 되셔서 다니신 거군요. 고은 시인 같은 경우도 외국 갔다 오시더니 그동안 우리 얘기만 했구나 그런 말씀 하신 것 같은데, 신경림 시인께서도 여러 나라를 다니시면서 우리들과 좀 다르던가요 사는 게?
신경림 : 사람 사는 건 말이 다르니 다르기도 하겠지만, 또 같은 것 같아요. 속을 들여다보면 비슷비슷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가졌죠.
박인규 : 오히려 시를 보면 세계화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나오고, 프랑스 보르도에서....
신경림 : 사실 시 자체는 가장 세계화가 어려운 거 아니겠어요? 시라는 건 일종의 사투리인데 가장 뒤늦게 세계화가 되고 세계화가 되는 동시에 시는 지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거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시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고, 그럴수록 사투리만이 이해할 수 있는,사투리만이 보여주는 게 있으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중요하기는 더 중요하다. 세계화가 안 되는 면에서, 안 되니까 더 중요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인규 : 시라는 건 각자의 모국어로 시를 쓰기 때문에 방언 같은 것이기는 하지만
신경림 : 방언 같은 것이고 결코 세계화가 잘 안 되는 것이겠죠.
박인규 : 제가 국제뉴스를 가끔 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쓰신 시 중에서는 '팔레스타인 해방 만세'라는 시집이 참 가슴에 와 닿았는데요. 보니까 콜롬비아에서 열린 세계 시인대회에서 시인들이 낭송을 하는데, 시집 보니까 앞에서는 이라크 시인들이 열화와 같은 박수를 받았고, 한국 시인들은 좀 먹고 산다고 안 끼워주는 것 같더라, 섭섭했다.
신경림 : 거기서도 가장 인기있는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이나 이라크 이런 쪽에서 온 사람들. 이른바 피압박민족들, 동료의식 같은 걸 느껴서 그런가봐요. 한국은 그래도 잘 사는 편에 속하니까 한국사람에 대해서는 그렇게 큰 감동을 보이지 않더라구요
박인규 : 뒷부분에 보니까 호텔에 가서 생맥주를 마시는데 어떤 아가씨한테 어디서 왔냐 그랬더니, 팔레스타인 해방 만세라고 말하니까, 우리 누이들도 3,40년 전에는 저렇게 당당했겠지... 하면서 나도 저 무리에 끼어드는 것 같아서 두렵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신경림 : 그렇죠. 다시 그 옛날로 돌아가는 건 제가 원치 않는 거니까요
박인규 : 저희도 이제는 그런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말 같기도 한데요. 시집 중에서 '아, 막달라 마리아조차' 이런 시에서는 세계화,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우리는 어떻게 보면 신자유주의의 덕을 보고 있었다고 할 수도 있고 또 많은 분들은 피해를 입기도 하고. 요즘 우리 사회를 보시면 어떤 생각 드십니까?
신경림 : 글쎄요, 우리가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의 덕을 볼지도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피해를 크게 입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저 같이 시를 쓰는 입장에서는 신자유주의라는 건 정말로 두렵고 싫기도 하고 저항감도 느끼는 거죠.
박인규 : 많은 분들이 예전에 한 5,60년대가 먹고 살기는 어려웠지만 사람 사는 정은 더 있었다고 말씀하시고
신경림 : 그렇죠. 사람 사는 정은 있었지만 그것이 꼭 행복했다는 얘기는 아니고, 그러나 하여튼 먹고 살긴 참 힘든 시절이죠. 5,60년 전에는 말할 수도 없이 가난했으니까 우리가. 그렇지만 어떤 따뜻한 흐름 같은 것, 사람과 사람 사이의 흐름 같은 건 틀림없이 있었죠.
박인규 : 이번에 나온 시에서도 보니까 어렸을 때 아마 신선생님의 고향집인 것 같은데요, 사랑방엔 할아버지가 계시고 건넌방에는 아버지가 계신다, 하면서 그 집이 그리워진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아게 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도 사람 사이의 정을 다시 느낄 수 있고 그런 방법은 결국 시를 통할 수밖에 없는 건가요?
신경림 : 그렇죠. 결국 시가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문제와 관계 없이 사람 사는 정 같은 걸 느끼게 해주고 갖게 해주는 것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박인규 : 이쯤에서 열 번째 신작 시집의 표제시이기도 한 '낙타'를 신경림 시인의 낭송으로 한 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경림 : 낙타
낙타를 타고 가기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 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 것도 못 본채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박인규 : 네. 신경림 시인의 열 번째 시집에 실린 낙타를 신시인의 직접 낭송으로 들어보셨습니다. 저는 이번 시집에서 말미에 '나는 왜 시를 쓰는가'라는 산문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는데요, 선생님은 70년대 농무라는 시집으로 데뷔하시면서, 그 당시 그런 표현이 적당한지 모르지만 참여시인 중 한 분으로 꼽히기도 하셨고. 그 이후 죽 시작의 과정을 말씀하셨는데, 오히려 80년대 이른바 민중, 민중의 고난을 강조하는 글을 쓸 때가 가장 어려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신경림 : 네. 제가 사실 시를 쓰면서 가장 시 쓰기 힘들던 시절이 80년대였죠. 중압감 같은 것도 있고.
박인규 : 독재시대기도 했고
신경림 : 그런 시가 하는 역할이 컸으니 그런 시를 안 쓸 수 없고. 그러나 그런 시를 쓰면서 좀 더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시를 쓸 길은 없는가, 이런 고민도 늘 했죠. 어떻게 보면 가장 신명이 안 났던 시절, 시를 쓰는 일에, 그때였던 것 같아요
박인규 : 선생님 본인 말씀으로는 2002년도에 뿔이라는 시집을 내면서 말하자면 시의 갈 길을 확고하게 찾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신경림 : 확고하게 찾았다는 건 좀 이상한 말이겠지만, 여하간 내가 시를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굳히게 됐죠.
박인규 : 56년도에 등단하실 때는 서정시인이셨고, 그러다가 그 당시 사회상을 보시면서 이렇게 사람들이 어렵게 사는데 내가 지금 서정시를 쓸 때냐
신경림 : 그렇죠. 서정시만 써서 되겠는가, 그런 생각을 했죠. 그때만 해도 아직 전쟁의 흔적이 남아있어서 서울, 맨 허물어진 집, 상이군인, 거지, 창녀들이 득시글득시글하던 곳이 서울이었죠. 그런 속에서 내가 맑고 깨끗한 갈대 같은 시만 써가지고서 정말로 감동을 주는 시를 쓸 수 있겠는가, 그런 회의에 빠지면서 시를 한 때 못쓰고 시골로 내려간 일이 있습니다.
박인규 : 그때가 20대 한 10년 동안 굉장히 여러 가지 많은 일을 해보셨다던데요
신경림 : 중요하게 뭘 한 건 아니고 그냥 떠밀려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문학을 포기하고 딴 것을 해보겠다고 이것저것 찾아 헤매던 시절이 있었죠.
박인규 : 그 당시의 여러 가지, 말하자면 많은 일들을 하시면서 그런 경험이 시작의 어떤 자양분이 된 겁니까?
신경림 : 그렇죠. 체험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됐죠. 그리고 세상을 더 깊이있게 공부하는 계기도 됐고요.
박인규 : 선생님께서는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는 아름다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시를 쓰고 싶은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고 하셨는데. 아직도 그런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신경림 : 그 아름답다는 게, 아름다운 말을 써서 아름다운 게 아니고, 시로서 아주 문학성, 예술성이 짙은 시를 쓰고 싶은 유혹이 항상 있는 거죠. 아마 그런 유혹을 안 느끼는 시인은 없을 겁니다. 또 그것은 유혹이 아니고 어떻게 생각하면 바로 모티브가 되겠죠 시를 쓰는...
박인규 : 등단하신 지가 50년이 넘으셨고 시집도 열 권이나 내셨는데, 대개 등단 50주년 되면 행사라든가 출판기념회를 하는데 그런 걸 전혀 안 하시고 넘어가셨어요.
신경림 : 저는 뭐 그런 거 잘 안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시집 열 권 냈지만 한 번도 출판기념회라는 걸 해본 적이 없습니다.
박인규 : 뭐 특별한 소신이 있으신가요?
신경림 : 소신보다도, 전 그런 거 귀찮아요. 거추장스럽고
박인규 : 올해가 일반적으로 한국 현대시 100년이라고 말해요. 이게 아마 육당 최남선 선생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1908년에 나왔으니 그렇게 말을 하는데
신경림 : 그 작품을 기준으로 그렇게 얘기들을 많이 하죠.
박인규 : 말하자면 최남선 선생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기원으로 한국 현대시 100년, 이렇게 잡는 게 타당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신경림 : 글쎄요. 저는 개인적으로 주요한의 빗소리. 20년인가 그렇죠 아마? 그때서부터 신시를 잡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전까지 우리나라 시라는 건 신시라고 하기 어려웠죠.
박인규 : 그 의미는 어떤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건가요?
신경림 : 사로서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건 시로서 그것이 시다운 걸 갖추고 있지는 못하죠.
박인규 : 그럼 현대시 100년이라고 일단 하지만 문단에서는 나름대로 100년을 기념하는 행사 같은 건 없습니까?
신경림 :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저도 그 얘긴 못 들어봤습니다 별로.
박인규 : 저의도 중고등학교 때는 예를 들면 김소월이나 뭐, 물론 그 당시에는 정지용 같은 분들은 월북시인이라고 해서 못 보게 했습니다만. 저희들 어렸을 때 시인들의 위상이랄까, 그것과 요즘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어떻게 보십니까? 예전의 식민지 시대의 시인들...
신경림 : 그땐 시인도 몇 명 안 됐고, 더 중시됐지만 지금은 시인이 참 많지 않습니까? 몇 백 명, 몇 천 명 수준이 됐으니. 그러니 여간 좋은 시를 쓰지 않아서는 잘 두각을 나타낼 수도 없고 인정을 받지도 못하는 세상이 됐죠.
박인규 : 저희가 황석영 작가를 모셨는데, 그 분은 거의 단정적으로 이제는 시집은 상업적으로는 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신경림 : 그렇죠. 거의 그렇다고 생각해야 되겠죠.
박인규 : 그렇다 하더라도 계속 시를 쓰시는 분도 있고. 아까 신경림 선생이 말씀하신 것처럼 세계화시대일수록 어쩌면 방언 같은 시가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신경림 : 아무리 독자가 없더라도 시가 덜 중요해진다는 뜻은 아니거든요. 시는 시 나름대로 뭔가 세상을 향해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있으니까, 지금 시가 안 읽히는 건 세계적 추세인 것 같아요. 다른 나라도 시가 안 읽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시가 하는 역할이 덜 중요해졌다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박인규 : 요즘 젊은 분들이 쓰는 시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너무 난해하다. 자기만의 느낌을 말하는 것 같다, 잘 알 수 없다는 말씀들 하시는데요. 신경림 시인께서 보시기에 요즘 젊은 사람들의 시경향, 어떻게 보십니까?
신경림 : 요즘 젊은 사람들의 시, 난해한 시가 참 많죠. 물론 잘 쓰는 좋은 시도 많습니다. 시인도 많고 다양하고. 그런데 일부 시인들은 지나치게 난해하고 지나치게 남들이 못 알아듣고 소통이 안 되는 시를 써서 오히려 독자들을 시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경향도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시도 역시 말로 하는 예술이니까, 일종의 대화죠. 남과 나누는 대화인데, 그러니 소통이 일단 중요하죠. 소통이 돼야 되겠죠.
박인규 : 저는 사실 대학 때 소설, 시 읽고는 거의 사실 못 읽는 편인데요. 요즘 신선생님은 시를 많이 보실 거 아닙니까?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들을 보시면서 혹시 이런 시인들은 참 요즘 시대상황이나 보편성이 있다, 이렇게 좀 소개해 줄 만한 시인들이 있으신가요? 젊은 시인
신경림 : 갑자기 생각이 안 나는데 많이 있죠. 좋은 시인들 많습니다. 예컨대 김선우 같은 시인
박인규 : 이 분은 여자분이시죠
신경림 : 문태준 이런 좋은 시인들이 많죠. 많이 있는데 얼른얼른 이름이 안 떠오릅니다만
박인규 : 제가 갑자기 질문을 드려서.
그렇다면 앞으로의 선생님의 시작 방향이랄까요? 이번에도 보니까 세계화에 관한 시도 많고. 특히 제가 약간 주의깊게 봤던 건 하느님 말씀을 많이 하시면서 쓰나미라든가 카트리나 같은 자연재해 말씀하시면서, 하느님이 별로 세상일에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는 불평 같은 것도 하셨던데요...
신경림 : 대재앙이 닥쳐서 당하는 사람들 보면 한결같이 다 가난하고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고. 그런 걸 보면서 뭔가 분노 같은 걸 느껴서 그런 시를 썼었죠. 제가 무신론자는 아니고, 또 뭐 하느님을 독실하게 믿지는 않지만, 무신론자도 아니고. 그러나 분노 같은 건 어쩔 수 없이 느낄 수밖에 없었죠.
박인규 : 요즘 젊은 시인들과 자주 교류도 하시죠? 젊은 시인들, 거의 자식뻘 될 텐데 해주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시와 관련해서, 이렇게 좀 시를 써라, 라든가
신경림 : 시라는 게 다 자기 고집이 있는 거니 남의 충고 잘 안 듣죠. 그러나 일단 소통이 되는 시를 썼으면 좋겠다. 또 시가 안 읽힌다고 너무 불평하지 말고 시가 스스로 독자를 찾아가는, 대중적인 시를 쓰라는 건 아니지만, 독자를 시인 스스로 찾아갈 줄도 아는 시를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소통이 되는 시를 써라.
약간 화제를 바꿔보겠습니다. 신경림 선생님은 작년에 노무현 대통령 방북하실 때 같이 갔다 오셨죠? 평양 가신 건 그때가 처음이셨습니까?
신경림 : 아니오. 그 전전에도 한 번 갔다온 일이 있습니다. 남북작가회담 할 때 100여명 갈 때 같이 갔죠.
박인규 : 작년에 갔을 때도 북한 문인들을 많이 보셨나요?
신경림 :
많이는 못 보고, 이쪽에서도 소설가가 몇 사람 갔으니까 그쪽에서도 상대역으로 시인, 소설가 한 두세 사람 나왔죠.
박인규 : 선생님도 북한의 시작품이나 소설 같은 것들 많이 보십니까? 우리와 비교해서 어떻습니까?
신경림 : 많이 읽어봤죠. 글쎄 이런 얘기 하면 뭣할지 모르지만 북한시라는 건 재미없죠. 우선 수령님, 그러니까 그 체제찬양, 혹은 반미, 뻔하지 않습니까 내용이? 그런 내용만 가지고서 시를 쓰니까 상상력에 제한을 받으니까 좋은 시가 나올 수 없죠
박인규 : 예술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자유스러워야 되는데 사회의 이념을 벗어나지 못하니까
신경림 :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요
박인규 : 혹시, 남측에서 오신 분이기 때문에 솔직한 말씀들을 안 하시겠지만 북측 문인들의 그런 데 대한 갑갑함 같은 건 못 들어보셨습니까?
신경림 : 전혀 안 하죠.
박인규 : 아.. 예. 최근에 통일문학이라고 해서 남북문학교류, 남북의 작품들을 한 군데 모든 책들을 펴냈는데, 그렇게 이데올로기의 제한을 받는 문학이라 하더라도 남북 간의 문학 교류는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신경림 : 그렇죠. 아무래도 북쪽이 그런 경향의 문학이지만 그렇다 해도 남북문학을 교류해서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그쪽에 제한이 있다는 걸 미리 전제해 두고, 그렇지만 서로 교류할 필요는 있다
신경림 : 그러면서도, 그렇게 다 알지만 하면 의미가 있는 거죠. 서로 아무래도 이해하게 되니까요
박인규 : 그렇죠. 굉장히 좀 어렵사리 해서 지난 2월인가 1월에 통일문학이란 책이 나왔는데 남한에 못 들어온다고 해요.
신경림 : 저도 못 봤습니다.
박인규 : 그걸 어떻게 봐야 될까요? 국정원인가 통일부 쪽에서 몇 가지를 문제 삼아서 반입 불허 조치를 내렸다는데
신경림 : 그쪽 작품은 으레 그러려니 생각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쪽 작품 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그러려니 하고서 넘어가 줘야지, 그쪽은 그러니 안 된다. 그렇게 하면 교류가 참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선생님 보시기에 북쪽 작품이 이념이나 체제의 한계에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그런 교류를 하는 게 좋겠다.
신경림 : 물론 북쪽, 그런 이념 그런 문제도 있지만 언어의 세련미 같은 데 있어서 수준이 아주 낮다고 볼 수밖에 없죠.
박인규 : 우리와 문학적으로는 비교하기 어렵겠지만 북한 사람들의 생각을 일단이라도 보기 위해서는 교류가 필요하다.
10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이번 통일문학 같은 경우도 남북관계가 어려워질 거라는 일반적인 생각과 함께 남북 간의 문학교류도 어려워지는 거 아니냐는 걱정도 많은 것 같아요.
신경림 : 글쎄요. 그건 어려워지면 안 되는데요. 저는 물론, 지금 새 정부가 옛날과 똑같이 하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여하간 교류를 계속하고 더 확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옥죄지 말고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 더 이해하게 만들고,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어요?
박인규 : 가급적이면 남북 간의 교류의 폭을 넓히는 게 좋겠다.
80년대에 선생님 같은 문인들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민주화라든가 이런 걸 얘기하다가 이른바 진보개혁정권이 10년을 집권하고 보수정권이 들어섰는데요. 요즘의 사람들의 살림살이나 이런 거 보시면 어떤 느낌 드십니까?
신경림 : 글쎄요. 저는 정권교체 같은 건 잘 됐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정권이 10년 했으면 보수정권이 또 한 10년 해도 괜찮겠지요. 서로 단점을 메우고 서로 장점을 보게 되고, 그러면서 더 조화롭게 발전해나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문학도 마찬가지죠. 문학이 보수정권이 섰다고 해서 저희한테 무슨 위해가 가해지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자유스럽게 우리가 글 쓸 수 있는 건 언제든지 어떤 정권하에서도 마찬가지죠.
박인규 : 그런 식으로 서로 돌아가면서 하면서 뭔가 장단점을 느껴보는 게 필요할 수도 있다.
열 번째 신작 시집 낙타의 출간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리고요.
시인이란 직업은 사실 정년이 없는 직업이니까 앞으로의 활동계획 같은 걸 마지막으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신경림 : 앞으로 더 좋은 시를 쓰고자 하는 게 제 기본적인 생각이고, 동요도 좀 더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손주도 있고 하니.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동시, 동요도 써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시도 더,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 말하자면 더 다른 방향의 시도 써볼까 합니다.
박인규 : 실험적인 시.
사실 좀 죄송스러운 말씀인지 모르지만, 제가 선생님 시집을 집까지 가는 지하철 안에서 40분 동안 후딱 읽었는데 굉장히 잘 읽히더라구요. 앞으로도 잘 읽히면서도 시대의 의미를 잘알 수 있는 좋은 시 써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신경림 : 고맙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최근 10번째 신작 시집 '낙타'를 출간한 신경림 시인을 초대해, 그가 이번 시집에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뭔지, 그리고 올해로 100년이 되는 한국 현대시의 나아갈 길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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