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생존자의 퇴장
KBS가 봄철 개편을 맞아 <드라마시티>를 폐지한다. 1984년 <드라마게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으니 지난 25년의 시간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더 안타까운 건 <드라마시티>가 지상파 TV 단막극의 마지막 생존자라는 것이다. 일찌감치 막을 내린 SBS 오픈드라마 <남과 여>까지 떠올릴 필요도 없다. 지난해 3월, 664편을 남긴 채 브라운관에서 사라진 MBC <베스트극장>의 잔영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으니까. 이대로 마지막 생존자의 쓸쓸한 퇴장을 지켜봐야 하는 걸까.
단막극이 항상 천대받았던 것은 아니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베스트극장>은 금요일 밤 10시에 방송되었다. 시청률도 꾸준히 10% 초반이 나왔으니 나쁘지는 않았다. 지금 그 시간대에 방송 중인 <섹션TV연예통신> 시청률도 10% 초반을 기록하고 있으니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시청률을 떠나 종종 눈이 번쩍 뜨이는 놀라온 작품들로 시청자를 즐겁게 하기도 했다. 미국 에미상과 함께 세계 4대 TV 프로그램 시상식으로 불리는 몬테카를로 TV 페스티벌에서 최고 작품상인 골든 님프를 받은 <늪(베스트극장, 2003)>은 전설처럼 회자된다. 한때 영화화 이야기가 돌았을 정도로 잘 만든 코미디 <S대 법학과 미달사건(드라마시티, 2003)>이나 20, 30대 시청자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태릉선수촌(베스트극장, 2005)>은 아직도 인터넷과 불법 다운로드 공간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단막극의 몰락
잘 나간 적은 별로 없었지만 꾸준히 제 역할은 하던 단막극의 '몰락'은 방송시장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단막극은 지상파 방송사가 호시절을 누리던 때의 부산물이다. 90년대에는 지금처럼 드라마가 한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는 일이 드물었다. 지상파 드라마에 광고 한두 개 붙는 건 꿈도 꿀 수 없던 시절이었다. 단막극을 꾸릴 여유는 충분했다. 게다가 당시에는 외주 제작이라는 개념이 없었으니, 지속적으로 공채 출신 PD와 신인 작가가 훈련하고 '입봉'할 수 있는 현장이 필요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단막극이 가장 합리적 선택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방송환경이 다채널, 다매체로 변하며 방송시장에서 경쟁은 점점 치열해졌다. 지상파 방송사의 평균 시청률은 계속 떨어졌고 시청률 하락은 광고이탈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방송사는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정리했고, 단막극은 언제나 퇴출 우선순위였다. 사업적 관점에서야 편당 제작비 9천만 원에 광고수익 2천만 원 정도를 얻는 <드라마시티>가 합리적 선택일리 없다. 외주 제작이 대세가 된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외주 제작과 함께 스타 PD, 작가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신인 PD와 작가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제한적이다. 또 어느 정도 경력을 쌓으면 회사를 그만두고 외주로 옮기는 게 현실이다. 방송사 입장에서 PD와 작가 양성에 열의를 느낄 리 없다.
시청자도 단막극 퇴출을 비판할 입장은 아니다. 토요일 밤 11시 30분이라는 시간대에 시청률이 얼마나 나오겠냐는 주장도 가능하지만, 그 시간대로 단막극을 쫓아낸 건 시청자의 선택이었다. 심지어 비슷한 시간대에 경쟁한 <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미국 드라마에 더 관심을 보였으니 단막극의 종말에 기여한 시청자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 장편 드라마에 미드, 일드 등 챙겨봐야 할 드라마가 넘치는 상황에서 시청자에게 단막극까지 신경 쓰라고 요구할 순 없는 노릇이다.
왜 단막극이 필요할까
이런 '현실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단막극이 왜 필요할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문화적 다양성 확보에 있다. 지상파 방송사의 연속 드라마들은 대체로 전형적 형식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는 편이지만 대체로 사극, 멜로, 전문직 등의 장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소재도 제한적이다. 하지만 단막극에서는 다양한 소재를 바탕으로 장르적 실험이 빈번하고 기존의 관습적 표현을 비트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KBS 편성기획팀의 한 관계자는 "<드라마시티>가 다양한 실험정신을 제대로 발현하지 못했다"고 주장하지만, 스릴러 장르의 구조 위에 엇갈린 시간 배치로 지적 유희의 즐거움을 주었던 <이중장부 살인사건(드라마시티, 2007)>이나 조용필의 히트곡을 모티프로 멜로 장르를 경쾌하게 변주한 <우리들의 조용필님(드라마시티, 2007)> 같은 드라마는 단막극의 틀이 아니면 좀처럼 보기 힘들다.
또한, 단막극의 경우 기업 PPL이나 시청률에서 자유로운 편이기에 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드러내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대체로 사회 주류의 보수적 관점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연속 드라마에 비해 단막극은 마이너리티나 민감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자율성이 보장되는 편이다. 80년대 '원진 레이온 사건'을 토대로 노동자의 신산한 삶과 공권력의 오만을 신랄하게 풍자한 <김동수 간첩 조작사건(2006, 드라마시티)>이나 여성 스턴트맨의 도전을 그린 <액션배우 정맑음(2004, 베스트극장)> 등은 드라마의 자율성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이처럼 TV에서의 문화적 다양성 확보나 다양한 사회적 관점을 드러내는 '공적' 가치를 위해 단막극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윤리적 판단을 떠나 산업적 측면에서도 단막극은 중요하다. 문화산업은 창작자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다. 그렇기에 문화산업으로서의 드라마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PD, 작가, 스태프, 연기자가 배출되어야 한다. 지금은 인기 작가, PD가 있으니 아쉬울 게 없다. 하지만 이러한 인력이 천년만년 갈 리 없다. 김수현 작가가 평생을 사는 것도 아니고 김종학 PD가 언제까지 드라마를 연출할 것인지는 본인도 모를 것이다.
최근 드라마의 완성도를 한층 높이며 각광받고 있는 젊은 PD와 작가들은 대부분 단막극을 통해 기초를 다졌다. 단막극은 현장을 스스로 통제하고 자기 작품을 책임지는 법을 배우며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하는 기회와 훈련의 장이다. 조연출이나 보조 작가 생활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경험이다. 반복되는 실험과 훈련 속에 '살아남은' 창작자는 드라마 산업의 탄탄한 기반이 된다. <늪>으로 TV 영상의 깊이를 보여준 김윤철 PD는 <내 이름은 김삼순>, <케세라세라> 등을 통해 드라마의 미학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와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호흡을 맞춘 김도우 작가는 <액션배우 정맑음> 등에서 실력을 쌓은 후, <내 이름은 김삼순>, <여우야 뭐하니> 등으로 시청률과 작품성을 동시에 얻는 인기작가로 안착하는데 성공했다. 이처럼 잘 만든 단막극 한 편은 드라마 산업의 20년, 30년을 책임질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한다.
단막극의 미래는?
문화적, 산업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단막극의 시대는 끝나고 있다. 단막극의 종말은 당장의 시청률 경쟁과 상업주의가 대세가 되어버린 방송 산업의 씁쓸한 현실을 보여주는 징후적 사건이다. 경제, 실용이 최우선이 된 사회의 부산물인 셈이다. 하지만 떠나는 단막극을 위한 송가를 부르고 싶지는 않다. 그 보다는 "변화를 수용해 제대로 된 <드라마시티>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는 KBS의 주장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싶은 심정이다.
실제, MBC는 <베스트극장>을 폐지하며 단막극을 <옥션하우스>, <비포&애프터 성형외과> 등의 시즌제 연속 드라마 형식으로 변형했다. 동일한 등장인물과 설정 아래 신인 PD와 작가를 투입해 스릴러, 멜로, 코미디 등의 다양한 장르적 변주와 소재를 실험한다. 아직까지는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무리하게 연속성을 유지하려다 보니 갈수록 새로운 도전보다는 '관습적 표현(클리셰)'에 매몰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시행착오가 반복되다 보면 언젠가 진취적이고 참신했던 <베스트극장> 유의 '단막극 정신'을 다시 볼 날이 오리라는 기대감 정도는 준다.
KBS는 MBC의 시행착오를 연구해 새로운 형태의 단막극을 보여줄 수 있을까. '제대로 된 <드라마시티>'의 평가기준을 두 자릿수 시청률과 광고 수익에만 두지 않는다면 충분히 응원할 생각이 있다. 단막극뿐만 아니라 뉴스, 시사고발, 다큐멘터리 등등 '돈이 안 되는' 프로그램이 점점 사라지는 현실에서 <드라마시티> 존속만 주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새로운 고민과 도전을 녹여 단막극이 시청자와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만 있다면 잠깐의 휴식 정도는 눈감아줄 수 있다. 하지만 단지 시청률과 상업적 이유만으로 자신들의 공언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 대가는 누구도 대신 치러줄 수 없을 것이다. 공영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 상실과 꾸준히 얕아질 드라마 인프라는 단기적인 적자보다 회복하기 훨씬 힘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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