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허준영 원장입니다. 허준영 원장은 1951년 대구 출생으로 69년 영남대 약학과에 입학해 73년 약사 면허를 땄고 73년 경희대 의대에 편입해 1978년 의사 면허를 취득했습니다. 85년 내과 전문의를 취득해 계명대 동산의료원과 안동성소병원 내과에서 근무하다. 87년 내과를 개업했고, 94년 영남대 의대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같은 해 열경의료재단을 설립해 이사장 겸 원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2001년 다시 대구한의대에 입학해.. 2005년 한의사 면허를 취득했습니다.
박인규 : 대구에서 올라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죠? 허원장을 뵈면서 처음 든 느낌은, 의사, 한의사, 약사, 면허가 세 가지시라니 젊은 사람들이 보면 엄청 부러워하겠다. 요즘 그 셋 다 인기직종 아닙니까? 32년에 걸쳐 따신 건데요 처음엔 약사를 하셨어요. 약대를 가신 이유는 뭐죠?
허준영 : 제 원래 꿈은 문과대였습니다. 문학이나 철학을 하려고 처음 학교를 졸업하고 문과를 지망했습니다.
박인규 : 그럼 시험도 문과로 보신 거군요.
허준영 : 네. 1차 문과에 실패하고 권유에 의해 약대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한의사셨거든요. 그래서 한의사와 양의학과 관계가 있을 것 같아서 약대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박인규 : 본래 꿈은 문학이나 철학이었지만 아버님의 권유로 약대에 들어가셔서 나름 열심히 공부하셔서
허준영 : 네. 약대 공부하면서 문학에 도전하려고 했는데 약대 공부도 호락호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서 결국 공부를 접고 말았습니다.
박인규 : 대학 졸업하시자마자 약사면허를 땄고 약국을 또 운영하시다가 1년 만에 의대를 가셨어요.
허준영 : 그 당시 약국은 굉장히 열악했습니다. 요 사이 같이 아침 8시에 문을 열고 저녁 한 7시에 문 닫는 약국이 아니고, 그 당시만 해도 아침에 보통 세벽 4시 5시에 문을 열고
박인규 : 그 당시면 통금 끝났을 시간
허준영 : 네. 새벽 12시 1시까지
박인규 : 왜 그렇게 문을 ...
허준영 : 그때는 자유경쟁시대였으니까요. 의약분업이 되기 전이었고. 또 저녁에 술 먹는 사람들 드링크류나, 또는 술 깨는 약을 원하는 사람도 많았고. 또 아침에는 리어카꾼이나 지게꾼들이 진통제라든지 이런 걸 찾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너도나도 일찍 문을 열어서 보통 서너 시간 자는 형태로 굉장히 고달팠죠. 마음과 몸이
박인규 : 요즘으로 치면 동네 슈퍼 하듯이 활짝 열어놓고 했군요.
허준영 : 네. 마음과 몸이 고달프고 그에 따라 뭐 큰 이익이 있지도 않았습니다.
박인규 : 그렇다면 약국을 하기 힘들어서 의사를 해보자 하신 겁니까?
허준영 : 그런 것도 있었고 또 한편으론 아버지가 한의사를 하면서, 그 당시만 해도 한의사와 양의사의 차별화가 있었습니다.
박인규 : 사회적 지위가 달랐죠. 그때는 한의사는 말하자면 쳐주지도 않았죠.
허준영 : 그 당시만 해도 양의사에게 많은 무시를 당하는 시대였거든요. 그래서 아버지의 동경 어린 마음가짐도 있었습니다.
박인규 : 실제로 보면 약사로 활동하신 기간보다는 의사가 되셔서 내과 의사를 한 20년 정도 하시다가 다시 한의대에 들어가셨어요.
허준영 : 제가 내과 의사를 하면서 얼마 뒤 중소병원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한방병원을 같이 경영하게 됐습니다. 한의사는 아니었는데요. 그래서 한의사와 양의사의 집담회 같은 게 자주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이 한의사에 대한 이질성, 한의사에 대해 모르는 것도 많았고 한의사의 진단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한의사가 이러저러하게 말씀하는데 뭔 뜻인지 모르겠다.
허준영 : 그것을 전연 제가 이해할 수가 없고, 제가 가진 상식으로는 도저히 한의학을 이해하기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박인규 : 말씀 듣고 보니 굉장히 학구열 같은 게 뜨거우신 분 같은데, 2001년도에 대구한의대 들어가셨는데 만 50에 들어가셨어요. 요음 한의대 인기가 엄청나지 않습니까? 의사긴 합니다만 어차피 대학은 시험 봐야 들어가는 거고 어렵지 않았습니까?
허준영 : 열심히 공부했고, 그리고 한의대가 갑자기 인기가 좋아진 건 2000년도에 의약분업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한의학이 크게 급상승했습니다.
박인규 : 바로 그 해인데
허준영 : 네. 2001년도
박인규 : 한 번 시험봐서 합격하신 거예요?
허준영 : 네
박인규 : 예전에는 고시3과라고 해서 행정고시, 사법고시, 외무고시 합격하면 천재라는 말도 했는데, 의사에서 세 가지 면허시험을 보신 분은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만, 뭔가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아니냐 그렇게 보시는 분도 있는 것 같아요.
허준영 : 저는 어떤 때는 방송통신대학 이런 걸 생각해 봤습니다. 본디 문학이나 철학을 꿈꿨는데,
박인규 : 의사나 이쪽 방면 아닌 인문학 쪽
허준영 : 네. 그걸 생각해 봤는데 그것은 면허증도 없고 자격증을 주는 학문이 아닌 것 같고, 그래서 결국 면허증에 한 번 더 도전해 보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박인규 : 나이 50에 대학 공부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하시면서 어렵지 않으셨습니까?
허준영 : 굉장히 어려웠죠. 제가 아버지가 한의사를 하셨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양방에서 치료 안 된 불임여성들을 임신시켜 드리고, 또 제 친구가 관절염이 걸려 대학병원에서 다리를 절단하라고 했는데 아버지가 치료해서 고치는 걸 보고, 한의학이 대단한 학문이라는 걸 그때 어린 마음에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의학을 하면서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많이 가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의과대학 졸업시험을 쳤을 때 140명 중 3등 했습니다.
박인규 : 진짜 열심히 공부하셨군요.
허준영 : 네. 그러니까 제가 140명 중 3등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내 덕도 많습니다. 아내가 노화방지주사도 놔주고
박인규 : 아내 되시는 분도 의사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혹시 처음에, 2001년도에 한의대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부인께서도 말리셨을 것 같은데
허준영 : 그땐 아버지도 많이 말리셨습니다. 아버지도 지금 어떻게 늙어서 그 외우는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며 또 지금 먹고 살 수 있는데 왜 하필이면 그 어려운 공부를 하려고 하느냐, 건강도 생각해야 되지 않겠냐고 걱정하셨습니다. 어머니도 걱정하셨고 아내고 걱정했는데, 그래도 아내는 열심히 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제 딸이 서울대 다닐 땐데 그 딸과 나이가 비슷한 애들과 같이 공부하면서 제가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박인규 : 노소동학을 하셨군요.
허준영 : 네. 하루도 안 빠지고 학교에 매일 출석했고요. 또 저녁에도 우리가 시험을 치면 중간이나 기말시험을 칠 때 한 열흘씩 칩니다. 그럼 거의 밤샘 일을 많이 했습니다. 비 오는 날은 굉장히 처량하고 특히, 또 머리에 비듬이 떨어지거나 무좀이 있고 모든 데가 괴로울 때는 정말 치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참 은근과 끈기, 도전정신을 가지고 헤쳐나갔습니다.
박인규 : 과연 의지의 한국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73년도에 약사면허, 78년도에 양의사면허, 또 2005년도에 한의사면허. 지금 그 세 가지 면허를 가지시고 실제 진료를 하시나요?
허준영 : 약사면허는 그렇게 쓰임새가 없지만 양의사면허와 한의사면허는 조금 이용해서,
박인규 : 환자를 보시는 거죠?
허준영 : 네. 환자가 오면 우선 양방의 청진을 하고 한방의 맥진을 해서 환자의 체질을 감별하고, 그 체질에 따라서 약물을, 또는 침이나 뜸이나 또는 민간적인 약물을 이용해서 한 번 써보고, 속이 아픈 사람은 내시경을 해서 한의학이나 신약을 체질적으로 써보고. 요새는 또 특별히 한의학을 선호하는 일부 시민들도 있습니다.
박인규 : 한의와 양의를 겸하셨으니까 그 전에 양의만 하실 때하고 한의까지도 익혀서 환자를 보시면서 한의를 아니까 이런 점이 다르더라. 혹은 좋다든가 어떤 점이 있을까요?
허준영 : 양의는 1더하기 1은 2거든요. 양의는 너무나 과학적이고 융통성이 사실 없거든요. 한방은 1 더하기 1이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기 때문에 1 더하기 1이 2 또는 100도 80도 될 수 있고, 치료의사의 주관에 따라 또는 환자 주관에 따라도 바뀔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위 음양오행이나 위주로 하는 전일화된 학문이기 때문에 그 학문에 대해서는 정말 과학화가 되면 어떤 오묘한 진실이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박인규 : 양의가 과학적이라면 어떻게 보면 한의는 철학적인 부분이 있다.
허준영 : 철학적이면서 예술적인 면이 있지 않나.
박인규 : 그렇지만 한의도 과학화될 필요는 있다.
허준영 : 과학화가 물론 돼야 됩니다.
박인규 : 2005년도에 면허를 따시고 3년 가까이 진료하셨는데, 내가 한의가 아니었다면 이 병은 몰랐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경우도 있었습니까?
허준영 : 양방이 지금 굉장히 발전을 많이 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워낙 투자를 많이 하고 과학화시켜서 모든 병을 많이 고쳤습니다만. 특히 만성질환이나 소모성, 퇴행성, 알레르기성 질환, 암, 바이러스성 질환 이런 종류는 아직도 연구는 하고 있지만 많이 미치지를 못합니다. 그런 건 어떤 타깃이 따로 있지 않기 때문에 한방이 보는, 한방에서는 위장을 치료할 때 양방은 국한된 위장을 치료하지만 한방은 전일화된 것이기 때문에 위장이 나빠도 여러 장기의 허와 실을 같이 따져 치료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이런 양방에서 다 미치지 못하는 질환에 대해서는 한방도 크게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박인규 : 허원장이 양의사로 활동하시다가 한의사면허까지 따니까 혹시 허원장이 운영하시는 병원에 오시는 환자분들께서 꼭 허원장한테 진료받고 싶다, 그런 분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어떻습니까?
허준영 : 아직은 제가 한방과 양방의 접목을 확실히 시킨 상태가 아니어서 그런지 조금 오긴 합니다만, 제가 좀 더 접목시키려고 노력을 많이 하겠습니다.
박인규 : 국내에 지금 양의와 한의를 겸하는 분들이 한 100명쯤 된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분들이 양의 한의 통합진료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계신 게 있나요? 어떤 부분들이 있을까요?
허준영 : 1년에 한두 번 정도 동서의학회라고 연구를 합니다. 학회 비슷하게. 아마 작년에 처음 한 번 했습니다. 제 기억으론
박인규 : 어떤 주제를 가지고, 말하자면...협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허준영 : 한방과 양방을 겸해서 치료해서 환자를 좀 더 빨리 좀 더 고통을 덜하게 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좀 더 적은 부담을 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인규 : 양방과 한방을 같이 시술하면, 협진하면 그냥 양의만 하는 경우와 또 그냥 한의로만 하는 경우하고 어떤 장점이 있을 수 있을까요?
허준영 : 예를 들면 요통이 있다든지 이런 환자가 있을 때는 침이나 뜸, 부항을 먼저 하고 양약을 좀 쓰게 되면 좀 치료효과가 더 빠른 것 같고요. 빈혈이 없는 허약한 환자는 보기나 보혈을 시키는 보약을 먹는 것이, 양약에는 영양이 뚜렷한 영양제가 많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그런 보약 종류가 좋을 것으로 봅니다.
박인규 : 상호보완할 수가 있다.
허준영 : 네. 그래서 미국 같은 데는 한의학을 대체의학이나 보완의학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허원장께서는 의사, 한의사, 약사, 의료 관련 모든 면허를 갖고 계신데. 그러면서도, 아무리 의사가 좋아도 병을 낫는 데 가장 중요한 건 환자 본인의 의지다,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어떤 이유에서 그런 말씀을 하신 거죠?
허준영 : 우리나라 병은 거의 스트레스병이 많지 않습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자기의 의지가 확실히 있으면 무슨 병이라도, 죽을병이라고 극복해서 이겨나갈 수 있고 그것은 우리가 책이나 잡지에서도 그 예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박인규 : 그 말씀은 의사가 아무리 도와줘도 환자가 살려는 의지가 없거나 부족하면 어렵다는 말씀이신가요?
허준영 :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박인규 : 다른 질문 하나 드려보고 싶은데요, 저희 프로그램에 이른바 민중의술 그런 거 하시는 분이 나오셔서, 질병의 한 80% 정도는 꼭 의사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스스로 할 수 있다. 판사님이신데요 그 분이, 그런 운동을 하시고. 예를 들면 침이나 뜸 놓는 것까지도 왜 꼭 의사만 해야 되냐, 이런 건 좀 맡겨야 한다. 그런 주장을 하시던데요. 병은 반드시 의사가 고쳐야 되는 겁니까, 민중의술이랄까 일반 사람들이 하는 것도 허가하는 게 좋은 건가요? 어떻게 보십니까 의사로서? 굉장히 논쟁적인 주제인 것 같긴 한데
허준영 : 그건 아직 우리나라가 제도화가 돼 있기 때문에 면허증을 따신 여러 선생님들께서 얼마만한 반발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고.
박인규 : 상당히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허준영 : 그래서 그건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지 않겠나
박인규 : 제가 여쭤보는 건 환자들의 살려는 의지가 치료에서 중요하다면 꼭 전문적인 처방이 없어도 일반인들이 하시는 걸 허용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의사로서는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허준영 : 그런데 그 공부하는 과정이 상당히 어렵거든요. 그리고 체계화된 공부가 필요할 것으로 아마 저는 생각됩니다. 그렇게 말하시는 분은 특정 질환에 대해서는 많이 알 수 있겠지만 전반적인 것이 중요하지 인체제, 저는 그런 면에는 좀 의심이 갑니다.
박인규 : 그렇다 하더라도 민중의술이 있다 하더라도 의사의 처방이나 도움이 있는 게 좋겠다.
허원장께서는 약사이시기도 하고 의사시기도 하고 한의사시죠.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약사와 의사와 한의사 간의 관계가 썩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예를 들면 한 2000년인가 의약분업 때 굉장히 의약 간에 갈등이 많았고. 지금 의사 약사 간의 관계는 잘 협력되고 있나요? 현안은 없습니까?
허준영 : 지금도 많은 갈등을 갖고 있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소위 밥그릇싸움. 그래서 항상 그걸 갖고 있고. 한의사나 의사, 의사나 약사 이런 쪽에 많은, 아직도 갈등이 해결이 덜 된 것도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박인규 : 지금 의사와 약사 간에는 어떤 것이 가장 큰 현안으로 걸려 있나요
허준영 : 의약분업에 대해서 잘못됐다. 그 자체를. 또 소위 약사들이 의료행위를 하고 있는 것도 있는 것 같다.
박인규 : 말하자면 머리 아픈데 약 좀 주세요, 하면 약 주시고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허준영 : 어떤 의심을 많이 하는, 또는 자기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이런 여러 가지. 2000년도 의약분업 때 병원이 문을 닫는 바람에 그때
박인규 : 파업도 하시고 그랬죠 병원에서
허준영 : 아까운 국민들이 생명을 많이 잃지 않았습니까. 그런 걸 볼 때 저도 물론 자책해야 되고 저 스스로도 잘못됐지만. 스스로, 우리가 건강을 생각하는 의료인이라면 조금 더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박인규 : 밥그릇싸움이라고 표현해서 약간 저속한 것 같긴 합니다만, 수입이라는 건 중요하긴 하죠. 다만 이것이 국민건강을 볼모로 삼지 않고 의사와 약사가 협력해야 된다는 게 원론적인 이야긴데 왜 잘 안 되고 있을까요?
허준영 : 아마 제 생각엔 어릴 때부터, 또는 우리나라의 환경이 '사'자, 이런 문제도 굉장히 많이 내포돼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자 신랑 이런 쪽에 그런 의미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어야 되겠다는 강박적인 관념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인규 : 제가 보니까 한의사가 지어 주시는 약에 대해서, 특히 양의 내과 같은 데서는 이른바 중금속이 많다, 그래서 먹지 말아라, 간에 안 좋다는 말씀 많이 하시는데 어떤 쪽 얘기가 맞는 겁니까?
허준영 : 그것이 아직도 확실히 규명이 안 되고, 한방에도 보면 간을 보하는 약도 있고 간의 힘을 증강시켜 주는 여러 가지 약이 증명도 돼 있고, 사실 소간제나 억간제, 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약들이 있습니다. 그 약을 먹으면 효력이 있고, 그런데 그 효력을 완전히 증명화시키는 것이 아직도 숙제라고 봅니다.
박인규 : 양의쪽에서 분석해 보면 간에 안 좋은 성분도 나오게 되고. 허원장께서는 세 가지 면허를 다 갖고 계시니까 약사와 의사와 한의사가 서로 경쟁도 하면서 국민건강을 위해서 일하는 직종 아닙니까. 그 분들을 중재시킨달까 그런 역할을 해보실 생각은 없으세요?
허준영 : 아마 제 생각에는 지금 20대, 30대 의사 한의사들은 아마 그런 날이 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박인규 : 서로 간에 진정한 대화를 할 수가 있다.
허준영 : 왜냐면 그때는 지금 다 실력이 좋은 사람들이 한의계에 들어가 있지 않습니까? 공부라는 게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다 그게 문제거든요. 저도 학교에 대해서 저도 의료보험의 희생자인데요. 제가 중학교 들어갈 때 시험을 쳤습니다. 그때 국가재건최고회의라고 있었는데 갑자기 체육시험을 배로 올리는 바람에 체육을 그땐 키가 작아서 못했거든요. 그 바람에 일류중학교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다시 재수하는 바람에 그것이 나의 인생을 이렇게 좀 다른 길로 가도록 만드는 하나의 큰 것이 되는 걸 보면 우리 교육지표가 제일 중요하다고 전 생각합니다. 교육의 진단 이런 것.
박인규 : 예전에는 말하자면 위계질서가 있어서 의사가 제일 높달까, 약사, 한의사 이런 식으로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게 없어졌기 때문에 앞으로는 진정하고 대등한....
허준영 : 의사와 한의사들이 대등합니다. 지금 한의사들이 고등학교 학교 다닐 때 양의사들만큼 더 실력이 있습니다. 아마 지금 30대의 학생들은 아마 나오면 한의사의 말 하나가 다 먹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의사들이. 왜냐면 학교 그게 계속 올라가더라구요. 학력이. 옛날 우리 때는 천지차이.
박인규 : 앞으로 한 1,20년이 지나면
허준영 : 제 생각에는 한양방이 접목될 것이며 우리 국민들이 더 좋은 보건환경을 가지고 좋은 치료를 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박인규 : 그런 기대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양한방 통합의료를 통해서 의료의 질이 올라가긴 하겠습니다만, 또 그것과 관련해서도 허원장께서는 현대의학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갈수록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허준영 : 현대의학을 지금 많이 발전했습니다 워낙. 그 발전의 끝에 가면 면역이라든지 자가면역 이런 쪽으로 자꾸 치닫고 있는데, 그럼 결국 동양의 한의학 같은 맥락을 하는 날이 아마 올 겁니다 제 생각이. 현대의학이 발전돼서 박테리아 죽이는 이런 데는 필요해지는 항생제 이런 건 개발을 많이 했지만 어떤 전인적인 정신적인 병을 치료하는 데는 아마 한방의학도 굉장한 역할을 해야 될 것이며 양의사들도 한의사들의 도움을 그때는 받지 않겠나,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박인규 : 현대의학의 돌파구를 여는 데 한의학이 상당한 역할을 할 수가 있다. 허원장께서는 양의사로서는 30년째 되셨지만 한의사로서는 4년밖에 안 되신 어떻게 보면 신참의사신데요, 하실 일이 많을 것 같아서요. 앞으로 세 가지 면허를 가진 의료인으로서 어떤 활동계획 갖고 계신지 마지막 마무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허준영 : 저는 앞으로 한의학을 좀 더 공부하고 싶습니다. 현재 제가 경영하는 병원이 좀 더 정상화되고. 요새 중소병원이 어렵기 때문에 정상화되는 날, 그때 되면 다시 한의학 공부를 한 번 좀 더 하고 싶습니다. 대학원을 다녀서 한의학 학문을 좀 더하고 싶고, 만약 그게 잘 안 되면 방송통신대학이나 다시 다녀서 문학이나 철학 쪽 공부를 좀 더 할까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항상 도전하고 싶습니다.
박인규 : 학구열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고요. 제가 보기엔 오히려 한의학을 좀 더 공부하셔서 과학화를 통해서 현대의학의 한계를 돌파하는 데 한 역할을 하시면 어떠실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앞으로 많은 활약 기대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허준영 : 고맙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약사, 의사, 한의사를 겸하고 있는 허준영 원장과 함께. 남다른 인생 경력과 양·한방 통합의술에 대한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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