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세에 이어 40여일 남은 총선에서 '견제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고비가 하나 더 남았다는 데에도 당내 이견이 없어 보인다. 공천 쇄신을 통해 면모일신을 이뤄서 '참여정부 심판론'의 태풍을 차단하는 일이다. 탈당한 유시민 의원이 말한 "희생의 제의(祭儀)"다.
이에 대의명분을 쥔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은 "국민 눈높이 공천"으로 요약되는 '쇄신 공천'에 시동을 걸었지만 '쇄신 대상'이 된 측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내부 갈등이 커져가는 모습이다.
현역 '밥그릇'을 뺏어라!
29일 오전 민주당 영등포 당사 회의장에 먼저 도착한 박 위원장은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온 최인기 정책위의장이 들어오자 "최고위에서 제 얘기가 안 나왔습니까"라고 물었다.
최 의장이 "별로 안 나온 것 같다"고 답하자, 박 위원장은 "나왔을 것이다. 얘기를 해주셔야 회의를 진행한다. 제가 경우에 따라 회의를 진행하는 게 우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박 위원장의 활동을 두고 지도부 내의 불편한 기류가 있음을 의식한 발언이다.
박 위원장은 전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손학규 공동대표, 정동영 전 대선후보, 강금실 최고위원 등은 물론 박상천 공동대표를 비롯한 호남 중진들까지 수도권에 출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위원장은 14세기 영국이 프랑스 항구도시 칼레를 함락시켰을 때 법률가와 부유한 상인이 앞장서서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았고 결과적으로 시민 전체를 살릴 수 있었다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당원들은 쇄신의 대상이 되는데 자기는 편하게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지도부가 격전지로 나오라는 박 위원장의 요구에 박상천 대표를 위시한 호남 중진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박 대표 측 한 관계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 실정 책임자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라며 "경기도지사를 지낸 손학규 대표와 박 대표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결국 박 대표를 비롯한 구 민주당 인사들을 몰아내려는 불순한 의도가 아닌지 의심된다"고 반발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모를 리 없는 박 위원장이 역시 구 민주당 출신인 최 의장을 통해 경고음을 날린 것이다. 박 위원장과 박 대표는 비례대표 공천권 문제를 두고 이미 한 차례 힘겨루기를 한 바 있다.
공천을 둘러싼 '박재승 대 호남중진' 간 대결구도는 호남 물갈이 원칙을 두고도 진행되고 있다.
박경철 공심위 홍보간사는 지난 26일 "호남 현역의원에 대한 1차 심사만으로 30%를 교체하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발표했다. 박 간사는 "전북에서 3명, 광주전남에서 6명은 1차 심사단계에서 공천배제가 결정됐다"며 아예 구체적인 수치까지 공개했다.
의정활동 등을 상대 평가해 하위권 30%에게는 아예 공천을 배제한다는 결정에 호남권 현역의원들은 '역차별' 등을 주장하며 반발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내주께 1차 탈락 의원 명단이 발표될 경우 당내 분란은 그때부터 본격화될 전망이다.
'비리 전력자' 구제 두고는 후퇴 조짐도
'수도권 징발론', '30% 물갈이' 등을 둘러싼 갈등이 잠재적 뇌관이라면 비리전력자 처분을 둘러싼 공천기준 논란은 벌써 불붙은 쟁점이다.
공심위는 29일 회의에서는 공천배제 기준을 정할 예정이었지만 최종 결정을 다음 차수로 미뤘다. 박 간사는 "일단 오늘 논의 바탕 위에 다음 차수 회의에서 세칙을 결의하기로 했다"며 "다음 회의는 면접 절차가 끝나는 다음 주 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박 위원장을 비롯한 외부 인사들은 예외규정 없이 부정·비리 전력자들은 무조건 공천에서 배제하는 '원칙론'을 내세웠지만, 이 경우 현역 중진과 동교동계 인사들의 정치생명이 위태로워지는 만큼 당내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유화론'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화론'은 비리전력자의 경우에도 '동기'에 따라 예외를 둬 개인 비리자와 정치자금법 위반자를 구분하자는 얘기다.
박 간사는 '성문에 불이 났는데 연못의 물을 끌어다 불을 끄고 보니 연못의 물고기가 다 죽었더라'는 초나라 고사를 인용하며 공심위 내 후퇴 기류를 우회적으로 전하기도 했다. 박 간사는 "우려를 표명하시는 분들의 목소리도 상당히 경청할 만한 목소리들이 있었고 그것은 당연히 어떤 판단을 내리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민주당 내에서는 개혁 공천의 관건으로 여겨지는 박지원 전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홍일 의원이 '예외조항'으로 구제될 경우, 물갈이 비율과 관계없이 쇄신의 효과가 반감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수도권 한 의원은 "민주당인 기준을 바꿔서 두 인사를 살려낸다면 김현철 씨를 날린 한나라당보다 못한 공천이란 평가를 받을 게 불 보듯 뻔하다"며 "가까스로 살려낸 반전의 기회를 우물쭈물하다 망쳐버리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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