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장'은 민족운동에 헌신한 인물을 위해 시민·사회단체가 주도하는 장례형태로 '고(故) 조문기 선생 겨레장 장례위원회' 측은 1994년 고 문익환 목사의 장례 이후 두번째라고 밝혔다.
위원회 측은 이날 오전 7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 두차례 노제를 지낸 뒤 오후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3묘역에 안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제는 서울 청량리동 민족문제연구소 앞과 부민관 폭파 의거 현장인 현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향년 81세인 고(故) 조문기 이사장은 생존 애국지사들 중 마지막으로 의사(義士) 호칭을 받은 인물로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강관주식회사에서 조선인 노동자 2000여 명을 규합해 대규모 소요를 일으킨 뒤 국내로 돌아와 유만수·강윤국 선생과 함께 '대한애국청년당'을 결성,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벌였다.
1945년에는 아시아 각국의 거물급 친일파들이 모인 '아시아 민족 분격대회'가 열리던 부민관에 폭탄을 터뜨린 '부민관 폭파 의거'를 일으키기도 했다.
해방 후에도 그는 활발한 민족주의 운동을 벌여왔으나 이승만 정부에서 '이승만 암살 조작사건'에 연루,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이후 그는 "독립이 되었어도 그 독립은 친일파들의 독립이요, 해방이었다"며 독립유공자로 이름 올리기를 거부했으나 80년대 뒤늦게 독립운동 사실이 알려지면서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1999년부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을 맡은 그는 생전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진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사전 발간을 불과 6개월 남짓 남겨두고 별세함으로써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조 이사장은 지난 2006년 11월 혈액암 진단을 받고 장기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한편 10일 민족문제연구소는 고인 비롯한 1945년 '부민관 폭파 의거'를 이끈 주역 3인의 청년시절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고(故) 조문기 이사장을 중심으로 강윤국 선생과 고 유만수 선생이 나란히 앉아 있다.
이 사진은 조 이사장 등이 부민관 폭파의거 직전에 서울 한 사진관에서 함께 찍은 것으로 추정되며 최근까지 조 이사장의 아내 장 여사가 보관해오다 역사기록 편찬작업을 진행 중인 연구소가 넘겨받아 소장해 왔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