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전 세계권투챔피언 홍수환 선숩니다. 홍수환 선수는 1950년 서울 출생으로 1978년 인천체대를 졸업했습니다. 69년 권투에 입문해 74년 WBA 밴텀급 챔피언과 77년에는 WBA 주니어 페더급 챔피언 벨트를 따내며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특히 77년 핵토르 카라스키야와의 챔피언 타이틀 매치에선 4번이나 KO를 당하고 승리를 거둬 4전5기의 신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선수생활 은퇴 후.. KBS와 iTV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했고 현재 체육관을 운영하며 기업체 강의 등을 맡고 있습니다.
박인규 : 우선 축하드립니다.
홍수환 : 네 감사합니다.
박인규 : 77년에 4전5기 신화를 이뤘을 때... 저도 기억하는데요, 정확하게 몇 월 몇 일이었습니까?
홍수환 : 1977년 11월 26일. 현지 시각이고요 한국 시간으로는 1977년 11월 27일 오전 11시였습니다.
박인규 : 제가 서울서 어느 식당에서 TV를 봤던 기억이 생생한데요 감회가 남다르시겠어요.
홍수환 : 글쎄요 30주년이라고 하니까 참 세월이 너무 빨라요. 벌써 30년이라니까
박인규 : 이번 행사는 상당히 성대하게 치르셨다던데
홍수환 : 네. 제 집사람이 가수니까 많은 가수분들이 와서 축가도 해주고. 사실은 카라스키야 선수를 부르려고 했는데 카라스키야 선수가 지금 파나마의 산 미겔리또(San Miguelito)의 시장입니다.
박인규 : 정치인이 되셨군요.
홍수환 : 네. 그래서 올 수 있는 기일이 11월 21일부터 24일까지밖에 안 된다고 해서 제가 그건 무시를 하고 그냥 제 체육관에서 조촐히 지인들 모시고 아주 재밌게 했어요.
박인규 : 한동안 홍수환 선수께서 TV에도 모습을 많이 보이셨고 라디오도 진행하신 걸로 아는데 최근에는 체육관을 운영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홍수환 : 네. 제가 홍수환 이승연의 라디오챔피언 1년 했고요. 그 이후로는 체육관을 차려서 후배 좀 양성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작년에 시작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왕년의 유명 권투선수로는 굉장히 늦게 시작하셨습니다 체육관을
홍수환 : 그렇죠. 그런데 아주 예쁘게 차리려니 시간이 좀 많이 걸렸습니다.
박인규 : 요즘엔 어떤 분들이 많이 오시나요? 선수 하려고 오시나요?
홍수환 : 요즘엔 선수생활보다는 자기 체중관리나 건강관리,
박인규 : 예전에는 헝그리정신, 그래서 사실 시골출신, 특히 그런 분들이 출세와 돈을 거머쥘 수 있다고 해서 열심히 권투를 했는데 요즘은 달라졌군요.
홍수환 : 그러니까 헝그리스포츠였던 복싱이 이제는 아주 제일 부자운동이 돼서 이제는 아주 그런 고급운동이 돼버렸어요.
박인규 : 권투의 위상이 예전과는 달라졌습니다. 권투팬 입장에서는 옛날처럼 챔피언이 많이 안 나오는 게 아쉽긴 하지만, 스스로 즐기는 스포츠가 됐군요.
홍수환 : 그렇죠. 지금 제 입장에선 그렇게 열심히 권투를 하라고 그러진 않아요. 복싱이 자꾸 인기가 떨어졌다고는 하는데 그것보다 좋은 스포츠가 많이 생겼고 매 안 맞고도 돈 많이 버는데 뭐 매맞고 돈 못 버는 운동 할 필요 있습니까
박인규 : 그런데 최근에 소아암 환자들을 위한 가발기증운동을 시작하셨어요. 어떤 내용입니까?
홍수환 : 제가 쓰고 있는 게 가발이거든요. 그래서 때마침 우리 집사람이 소아암 어린 환자들이 삭발을 하는 게 좀 안타까웠나봐요. 그래서 그 아이들이라도 우리가 조금씩 도와줘야겠다, 그래서 특히 여자아이는 머리를 완전히 깎았을 때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생머리를 해주려고 하면 학생들... 돈도 좀 들어가고 그래요. 외관상 덜 애처로워 보이죠. 소아암 환자가 머리도이렇게 빡빡 깎으면 애처로워 보여서 가발이라도 조금 기증을 해서 자신감도 좀 불어넣어 주고 남들이 볼 때도 좀, 보기에도 안타깝더라 그것보다는 좀 나을 것 같아서
박인규 : 시작하신 지 얼마 안 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홍수환 : 지금 갓 시작했어요.
박인규 : 말하자면 몇 명이나 혜택을 입었습니까?
홍수환 : 지난 달에 세 명하고, 그 다음에 조금 액수는 작지만 조금씩 도네이션을 하고
박인규 : 그 얘기를 들은 소아암 환자들 중에서는 나도 그런 가발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할 것 같은데요, 가발 만드는 비용이 작지가 않다고 그러던데
홍수환 : 그렇죠. 그리고 가발도 이제 쓰던 어린아이가 또 물려줄 수도 있고 해서 어느 정도의 가발 확보가 되면 그렇게 부담가지 않는 상태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인규 : 홍수환씨의 청을 받아서 가발회사에서 몇 사람의 환자들을 도와주고는 있습니다만 그렇게 해서는 좀 약간 멀리 퍼지기 어려울 것 같고 혹시 이 방송을 듣고 도와주고 싶다, 그런 독지가들이 나서면 좋겠네요.
홍수환 : 그런 분들이 계시면 세브란스복지재단 쪽으로 연락하시면 소아암 환자들 가발 계통으로 최선생이라고 연락하시면 정말 좋은 뜻으로 우리 어린아이들을 도울 수 있어요. 또 우리 마음들이 기적을 일으켜서 아이들을 도울 수도 있고요.
박인규 : 홍수환 선수가 시작하신 가발기증운동이잘 퍼져서 소아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홍수환 : 감사합니다.
박인규 : 지금 뵈니까 말이죠. 권투선수들은 많이 맞고 그래서 코도 좀 비뚤어지고 그러던데 홍수환 선수는 전혀 안 그러신 것 같아요.
홍수환 : 복이죠. 정말 10년 권투를 하고 50번을 싸웠는데 코 한 번 안 찌그러졌다는 게 참 복입니다.
박인규 : 기록을 보니까 50전 41승. 그 중에 14KO, 5패 4무... 이신데 50전이면 굉장히 많이 하신 건데 권투를 어떻게 시작하시게 됐어요?
홍수환 : 저는 아버지가 참 복싱을 좋아하셨고요. 제가 4남3녀 가운데 둘째 아들인데 저도 권투를 좋아했지만 아버지가 저만 데리고 권투구경을 가졌어요. 그게 제가 권투를 좋아하게 된 이유고. 그런데 어렸을 때 봤을 때 제가 아버지께 질문을 했죠. "아빠, 저 사람은 코피가 나는데 왜 안 울지?"그렇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아버지가, "야, 선수는 안 우는 거야." 그 말씀이 아직까지 생각이 나네요. 선수는 울지 않는다. 그래서 정말 사나이나 큰 일 하시는 분은 정말 남자대장 하면 울지 않는다. 참 아버님 말씀이 끝까지 생각날 때도 있었지만 아버지 때문에 권투를 하게 됐는데 아버지가 너무 일찍 돌아가셨어요. 49에 돌아가셔요. 제가 지금 58이니까 저보다 9년을 더 짧게 사셨죠. 그래서 극구 반대하는 어머니한테 권투를 한다고 하고 몰래 권투를 시작한 것이 동기가 됐죠.
박인규 : 아버님 살아계셨을 때 상당히 유복한 가정이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이렇게 말하는 게 좀 뭐하긴 합니다만 그동안 6, 70년대 권투하신 분들이 사실 집안이 좀 어렵고 그야 말로몸 하나로 출세한다는 생각으로 하신 분들이 많은데 홍선수 같은 경우는 집안에서 반대가 많았을 것 같아요.
홍수환 : 뭐 큰형까지 반대했고, 저는 최형철이라는 선수가 아직도 생각나는데 체육관 관내에서 시합을 했어요. 그런데 저는 자신이 있어서 큰형도 와서 보라고 하고, 그래서 큰형을 오라고 해서 체육관 관내에서 시합을 했는데
박인규 : 말하자며 연습게임을 하신 거군요.
홍수환 : 예. 제가 코피까지 터지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뭐 우리 큰형이 "네가 무슨 권투를 한다고 그러냐," 그러면서 별로 기대를 안 했죠.
박인규 : 첫 번째 챔피언을 따신.. 1974년 7월이죠?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제가 그때 고3이었어요. 홍수환 선수의 이름을 전혀 몰랐는데, 14회 KO를 했다고 하고 제 기억으론 MBC에서 계속 방영을 했는데 여러 번 막 다운시키고. 그때 이후로 홍수환 선수의 이름이 알려진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홍수환 : 맞습니다.
박인규 : 그때 남아공까지 가서 이기신 거 아닙니까. 그때 승리를 확신하고 가신 겁니까?
홍수환 : 그땐 뭐 여러분 아시다시피 비디오테이프도 없던 시절이죠. 아놀드 테일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주특기가 뭔지도 모르고 오로지 그저 내가 동양 챔피언이면 20만원 받는데 2000만 원짜리 세계 챔피언이 되느냐, 아니면 20만 원짜리 동양챔피언이 되느냐
박인규 : 그 당시 동양챔피언이 20만원밖에 안 됐습니까?
홍수환 : 그렇죠. 동양챔피언이었지만 동양에서 더 이상 싸울 상대가 없었어요 저는. 그 시합이 마지막 단계에요. 거기서 졌으면 관둬야 되고 거기서 이겨야 나는 2000만원짜리 된다. 이거 하나 위해서 이때까지 권투를 했으니까 이거 해야 된다 그런 정신적인 자세가 굉장히 강했죠.
박인규 :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까지만 해도 챔피언벨트를 따려면 국내로 불러들여서 경기를 했잖아요. 그 당시 멀리까지 가셔서 사실 그때 간다는 것도 보도가 별로 안 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홍수환 : 그렇죠. 보도도 별로 안 됐을 뿐만 아니라 가서 이긴다는 기대도 안 했죠.
박인규 : 팔을 막 휘두르시면서 리틀 알리라는 별명도 얻으시고.. 그 당시 아놀드 테일러 선수에 대한 정보를 홍수환 선수가 묵으셨던 호텔 사장이 전해줬다는 보도도 있던데
홍수환 : 그랬죠. 아놀드 테일러가 새로운 세계챔피언이 되면서 트레이너를 교체했습니다. 그래서 교체당한 구 트레이너가 약간의 앙심을 먹고 제게 좋은 뉴스를 전해줬죠. 저 선수에게는 네가 계속 움직이면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 저는 사실, 뭐 적지에 가서 아웃복싱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그러지 않아도 저도 계속 움직이면서 들어가야 된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놀드 테일러 측의 코치가 그런 말을 할 때 아, 이것이 맞아들어가는 작전이구나. 거기다 우리 김준호 선생님이 참 쇼맨십을 가르쳐 준 선생님이거든요. 그래서 똑같이 권투해서야 이길 수가 없다. 뭔가 네가 이기고 있을 때 적절한 쇼맨십이필요하다. 그래서 그때 8회전인가 제가 코너에 몰아놓고 때리면서 빙글빙글 돌리다가 때렸더니 그때 당시 아놀드 테일러의 팬을 비롯해서 모든 남아프리카의 복싱팬들이 제 편이 돼버린 거예요. 그래서 참 어렵지만 제가 적지에서 판정으로 이겼다는 건, 그들의 마음을 그 당시에 잡았죠.
박인규 : 그 당시에 판정이었습니까?
홍수환 : 네.
박인규 : 저는 하도 많이 다운을 시켜서 그야 말로 호랑이굴에 들어가서 잡으신 격인데 이긴 다음에 어머니하고의 통화가 또 아주 화제가 됐어요.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또 어머니께서는 "대한국민만세"라고 하셨죠? 미리 준비한 멘트였습니까 그게?
홍수환 : 준비 안 했고요, 저는 사실 시합 끝나고 나서 1회전 3분을 15회전을 뛰면 45분을 때리고 맞고. 꼭 한 시간이거든요. 그럼 사실 정신이 없습니다. 그때 아물아물한 정신에 어머니 목소리가 전화기 이어폰을 통해서 들어오니까 그때 뭐 제가 좀 침착하고 이것이 방송을 통해서 국민 여러분이 들으신다 하면 뭐 좀 점잖이 이야기했겠죠.
박인규 : 그때 방송되는 줄 몰랐군요.
홍수환 : 전 뭐 방송되는 줄 모르고 평상시 어머니하고 저하고의 대화처럼.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랬죠.
박인규 : 그 뒤에 자모라인가요? 두 번째인가 챔피언벨트 방어에 실패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홍수환 : 네. 실패했죠.
박인규 : 상당히 저희들도 실망했는데 카라스키야와의 경기는 정말 대단했어요. 그것도 적지에 가서 하신 거 아닙니까?
홍수환 : 그렇죠. 제가 자모라에게 질 때는 내가 적지에 가서 따왔으니 적지에 가서 방어를 하자, 그런 각오로 갔었죠. 제게 질문을 주셨지만 제가 세계챔피언 차지하러 갈 때는 동양챔피언이었을 때 그때는 사람들이 잘 몰랐어요. 그러니 제가 오히려 연습하기 편했는데 제가 세계챔피언이 돼가지고 오니까 그때 당시 정말 영웅이었어요. 그러니 어디서 밥을 먹는지 어디서 연습을 하는지, 그 다음에 대통령까지 만나고 왔으니까 부대 지프차로 운동 보내주니까 너무나 억압돼 있던 분위기였고. 또 시합이 내일인데 오늘 사령관님 보고다 이렇게 되면 몸을 컨디션 조절을 못해요
박인규 : 말하자면 행동의 자유가 없어진 거군요.
홍수환 : 그렇죠. 오히려 동양챔피언 때 그때가 세계챔피언을 향해서 도전하러 갈 때가 오히려 더 연습하기는 좋았다. 그래서 내가 밖에 나가서 차지해 왔으니까 나가서 방어를 하자. 그리고 1차 방어전 끝나고 알폰소 자모라 선수 18전 18승 18KO승. 정말 강한, 그래서 나가서 시합을 하게 된 거죠.
박인규 : 그 다음에 카라스키야하고의 싸움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계시지만 4전5기. 한 번 두 번 ,한 세 번쯤 쓰러지면 어떻게 보면 일어나기가 싫을 것 같기도 한데 어떻게 일어나실 수가 있었어요?
홍수환 : 그것도 제가 복받은 권투선수죠. 제가 뭐 6회나 8회 이 정도 가서 맞고 쓰러졌으면 아마 못 일어났을지도 모르는데 정말 1회전은 제가 우세한 경기로 끝났고 2회전에 제가 다운을 당했기 때문에 아직도 제게 스테미너가 있었고. 또 그 순간적으로, 조순현 선생님이 트레이너로 가셨는데 조순현 선생님이 참 짧은 시간에 저에게 영양가 있는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가 적지에 판정 바라고 왔냐. 1회전 더 뛰고 말아라. 이래 지나 저래 지나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박인규 : 최대의 힘을 발휘해라
홍수환 : 네. 3회전에 지나 15회전에 지나 마찬가지니까 1회전 더 뛰고 말아라. 그 1회전만 더 뛴 3분이 정말 제 인생 30년을 바꿔버렸습니다. 참 극적으로, 정말 말씀을, 저의 머리에 쏘아붙이는 말씀이 아직도 생각나고.
박인규 : 그런 말씀을 해주신다고 해도 선수가 못 따라가면 할 수 없는 건데요 사실
홍수환 : 그게 콤비죠. 선생님이 이번 회전에 눕혀라 그러면 알았습니다 그러고 실천하러 나가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선생님은 명령을 내렸는데 몸은 못 따라가는 선수가 있기도 하고.
박인규 : 네 번 다운 당하고 결국은 KO승 한 게 기네스북에 올랐다고도 하던데 맞습니까?
홍수환 : 네. 영국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제가 직접 갖고 있지는 않지만 기네스북 한국 담당자들이 그렇게 말씀을 해요.
박인규 : 4전5기를 하신 홍수환 선수도 믿기지 않았겠지만 그렇게 패배를 당한 카라스키야도 굉장히 좀 기가 막혔을 것 같은데 나중에 혹시 카라스키야로부터 무슨 얘기를 들으신 게 있습니까?
홍수환 : 예. KBS 도전지구탐험대. 제가 21년만에 카라스키야를 만나러 갔었죠. 아주 재밌는 TV프로그램이었는데 그때 당시 제가 카라스키야 선수에게 물어봤어요. 너는 3회전에 어떠한 기분으로 나를 대하러 나왔느냐, 그러니까
박인규 : 끝내려고 나왔겠죠.
홍수환 : 아니, 그냥 1회전은 봐주려고 나왔대요. 2회전에 나를 네 번 다운시키고 들어갔더니, 너무 빨리 이기면 재미 없다. 그러니까 1회전은 좀 봐주고, 풀어줘라. 그래서 자기는 마음을 푹 놓고 나왔다는 거예요. 우리는 1회전 더 뛰고 말어, 하는 각오로 목숨 걸고 나온 거고 그쪽은 1회전 좀 봐줘라 하고 마음 놓고 나왔으니까 갭은 둘 차이가 난 거죠.
박인규 : 방심을 한 거군요. 한 마디로. 홍수환 선수가 어디선가 그런 말씀을 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NEVER GIVE UP. 절대 포기하지 마라. 이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홍수환 : 그럼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찬스가 옵니다. 포기하는 사람은 찬스가 안 옵니다.
박인규 : 홍수환 선수께서는 요즘 기업체라든가 이런 데 강연도 많이 나가시죠? 하시면서 '오늘의 나'가 있기까지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이다.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혹시 지금 58년째 사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 없었습니까? 카라스키야 때 말고, 그 이후로
홍수환 : 권투를 처음 하고 이제 동양챔피언 되기 전도 사실은 힘들었어요.
박인규 : 처음 데뷔전에서 졌다고... 무승부였나요?
홍수환 : 무승부였죠. 아마추어는 두 번 나가서 다 졌고. 그래서 참 그게 고비였는데 그때 참 힘을 불어넣어 주신 분이 어머니셨고. 선수와 매니저 관계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전적을 보면 12월 7일에 한국에서 시합을 하고 닷새 후에 12월 12일에 괌도에 가서 시합을 하죠. 닷새 만에 10회전 시합을 두 번이나 하는
박인규 : 그게 가능합니까? 한 달 이상을 쉬어야 될 것 같은데
홍수환 : 그때 우리나라는 GNP가 74불이었고. 국민총소득이 필리핀이 170불이었고 태국이 220불일 그때 시절이니까 제기 시합을 해야 매니저들이 돈을 벌거든요. 그때도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리고 세계챔피언 되고 나서 힘든 건 모든 사람들이 제 얼굴을 알아보니까 참 힘들더군요.
박인규 : 유명하다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군요.
홍수환 : 아이 뭐, 저는 정말 부담없이 운동할 때가 오히려 더 행복하지 않았나
박인규 : 7,80년대에 상당히 많은.. 유명우 선수라든가 장정구 선수라든가 이런 권투챔피언들이 나왔는데 지금은 뭐 한 명 있을까 말까... 제가 정확하게 아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홍수환 : 지금은 한 명도 없죠. 지인진 선수가 이제 그냥 챔피언 상태에서 은퇴했기 때문에
박인규 : 다른 종목으로 갔다는
홍수환 : 네 K1으로 갔기 때문에, 그건 개인 문제니까 제가 터치할 일은 아니지만, 글쎄요 요새는 복싱이 세계챔피언도 없고 여러분도 봐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잘못은 제 자신이나 권투위원회에 있는 거죠. 소비자 성향에 못 맞추면 안 되지 않습니까 세일즈 하는 사람이, 어떤 품목이라도. 복싱도 복싱팬에 우리가 맞춰주고 복싱팬들의 변화에 맞춰줘야 되는데 지금 솔직히 우리나라 권투선수들 4회전 뛰어봐야 40만원 받는데 거기서 30% 매니저가 가져가고 나면 28만원 받는데, 대한민국 어느 젊은이가 12분을 매를 맞고 때리고 28만원 받겠습니까. 적어도 중국집에 가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최하위의 임금 정도는 받아야지요. 그것도 80에서 100만원은 되는데 매맞고 40에서 28만원 되는데 누가 권투를 하겠습니까.
박인규 : 말하자면 권투를 재밌는 스포츠, 흥미있는 스포츠로 만들어야 되는데
홍수환 : 그렇죠. 그리고 회장단에서 저변확대를 해서 아직도 복싱을 좋아하시는 분이 많으니까 가서 도와달라고 하고, 서로 움직여야 되고. 전 세계챔피언 출신들을 다 알아서 좋은 자리로 앉혀서 우리 세계챔피언으로 하여금 좋은 스폰서들을 다 끌어들이게 해서 얼마든지 발전할 수가 있는데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박인규 : 지금 그 말씀은 권투위원회에서 말하자면 홍수환 선수 같은 스타 선수들을 별로 그렇게 활용하지 않는다.
홍수환 : 활용 안 할 정도가 아니고 아주 배척하는 거죠. 우리 홍수환, 유명우, 유재두, 염동균, 장정구, 이런 사람들이 지금 권투위원회에 가서 뭐 좀 도와주려고 해도 뭐 정관관계도 그렇고 아주 이게 뭐 우리가 세계챔피언들이 이때까지 열심히 세계타이틀 방어해서 돈 벌어서
박인규 : 사실은 스타가 나와야 인기가 생기는 건데요
홍수환 : 그럼요. 권투위원회에 건보금으로 모아놨던 건 단 돈 한 푼도 없고 말이죠. 이거 사실 조사해야 돼요.
박인규 : 저희가 조오련 선수도 한 번 모셨습니다만 그 분도 수영연맹이랑은 그렇게 관계가 좋으신 것 같지 않더라고요. 어떤 스타플레이어들이 그 종목의 발전을 위해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있을 것 같은데
홍수환 :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홍수환이라고 하면 제가 건방진 말이 아니고 제가 권투분야에서는 대한민국의 대표거든요. 홍수환, 유명우, 유재두, 염동균, 장정구, 이런 사람들을 활용을 해야지요. 그리고 우리도 도와줘야 되는데 사이가 나쁘니까 우리가 가기가 싫어요. 그러니까 권투선수 홍수환이라면 제가 우리나라의 복싱은 내 시대보다도 더 발전시켜야 된다는 욕심이 있거든요. 그러나 저쪽에서 그런 맞장구를 안 쳐주기 때문에 오히려 싸움밖에 일어나지 않아요. 그래서 이게 참 문젭니다.
박인규 : 권투위원회에서도 왕년의 유명한 스타들을 활용하는 아이디어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홍수환 : 그럼요. 활용해야 우리도 고맙죠.
박인규 : 요즘은 홍수환 선수께서는 권투선수이기보다는 인생을 사는 태도, 자신감 이런 것에 대해서 강연을 많이 하시는데요, 마지막으로 연말을 맞아서 청취자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나 계획 있으시면 마지막으로 마무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홍수환 : 하여튼 청취자 여러분, 건강하시고요. 제가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제가 사실 기업체에 강의를 나가서 되는 사람이 아니고 권투후배를 키워야 되는 사람이거든요.
박인규 : 또 세계챔피언도 키우고 싶은 생각도 있으시고요
홍수환 : 그렇죠. 그것이 이제 있을 곳에 있을 사람을 둬야 된다는 말씀인데 정말 우리가 실력있는, 그쪽 분야의 실력있는 사람을 인정하는 그런 사회가 돼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죠. 강사님들 저보다 좋은 강사님들 많죠. 그러나 왜 제가 강사를 하겠습니까. 저는 지금이라도 체육관을 차리고 보다 저보다 더 나은 선수를 키우고. 기록이 왜 서있습니까. 기록은 깨지기 위해서 있거든요. 4전5기로 했던 홍수환이라면 5전6기를 할 수 있는 후배가 나올 때까지 키워야 되고. 정말 권투위원회에서도 그런 활동상황을 좀 배려를 해서 다시 일어나는 한국권투가 돼야 됩니다. 저는 이 점을 꼭 여러분에게 아주 속이 시원하게 한 번 꼭 홍수환이가 드디어 자기의 후손을 참 멋있는 선수 하나를 자기 못지않게 키웠구나 하는 그런 기대를 저는 저버리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금 이 라디오를 통해서 꼭 한 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에 김정범이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잘 알지 못하거든요. 그 선수는 34승 31KO승입니다. 그 사람은 홍수환이보다도 더 나은 사람입니다. 팬 여러분이 그 선수에게 조금만 신경을 써주신다면 홍수환이를 버금가는 권투선수가 태어나고 다시 옛날의 인기있는 권투종목으로 그 김정범 선수는 세울 수 있습니다. 만들 수 있습니다.
박인규 : 혹시 홍수환 선수가 키운 선수입니까?
홍수환 : 저는 지금 세계타이틀매치를 해주려고 제가 주선하고 있습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박인규 : 홍수환 선수께서 NEVER GIVE UP.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는 정신으로 사셨다니까 앞으로도 홍수환 체육관에서 제2의 세계챔피언이 나오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홍수환 :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전 세계권투챔피언 홍수환 선수와 함께했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