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사진작가 이정수씨입니다. 이정수씨는 1945년 서울 출생으로 1970년부터 문화스튜디오, 문화화랑 미술 디렉터로 활동했고 1982년 한국조각전문전시장을 개관해 운영했습니다. 또, 30년 동안 자신이 일해 온 인사동의 지나친 상업화를 경계하기 위해 98년 전통문화 보존회를 결성해.. 홍보이사 겸 부회장직을 역임했습니다. 1998년 11월 금강산 관광이 처음 시작되던 때부터 금강산을 90 여 차례 방문해 금강산 사진을 찍어 십여 차례 전시회를 열었고 현재 문화사랑방과 금강산아트샵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별명이 '금강산인'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정수 : 금강산을 계절별로 수십여 차례 오르다 보니까 북측에서 선생님은 통일이 되면 금강산에 와서 생을 보내시고... 금강산이라는 호를 달아줬습니다.
박인규 : 제가 그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보통 산에 많이 다니시는 분들은 체격이나 인상이 좀 크신데 너무 아담하셔서 그 체격으로 많은 사진장비를 들고 금강산에 올라가시려면 힘드시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금강산을 많이 다니신 걸로 봐서, 고향이 이북은 아니신가요?
이정수 : 전연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금강산의 아름다운 대자연을 제 앵글의 포지션에 담고자 해서 금강산을 수없이 계절별로 촬영에 임하게 된 것이죠.
박인규 : 금강산을 9년 동안 90여 차례 가셨다면 거의 한 달에 한번 꼴로 가신 건데, 금강산을 사진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마음에 가지신 때는 언제부텁니까?
이정수 : 금강산은 옛 선인들이 남긴 문화유산... 겸재 정선이나 단원 김홍도, 이런 분들이 300여 년 전에 금강산전도나 만폭동이나 많은 회화를 남겼고, 또 많은 문장가들이 금강산의 절정인 정비석씨의 산정무한이나 춘원 이광수, 이런 분들이 글을 많이 남겨서 미술계의 한 사람으로서, 아, 분단 반세기만에 금강산을 볼 수 있게 돼서 사진에 담고자 이런 계기가 선 겁니다.
박인규 : 그렇다면 98년 11월 18일 첫 번째 금강산관광 때도 가셨던 거죠?
이정수 : 그렇죠. 금강호가 동해항에서 출항할 때, 그때는 사진을 찍고자 해서 간 게 아니고 관광개념으로 둘러봤습니다.
박인규 : 실제로 가서 금강산을 보시니 사진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시던가요?
이정수 : 물론 많은 회화작품에서 작품을 봤지만 금강산을 흑백앵글에 담고자 하는 마음이 아주 머릿속에 섰습니다.
박인규 : 저는 사실은 금강산을 뒤늦게, 올 초에 처음 가봤습니다. 아직 다 본 것도 아니고 구룡연만 가봤는데, 어떻습니까. 금강산의 산세, 사진이 굉장히 장비가 많지 않습니까,.. 그걸 들고 산을 누비시려면 힘드시지 않나요?
이정수 : 물론 힘들고 체력적으로 상당히 고통스러운데 작품을 제 앵글에 구사한다는 그런 선이 서서 전혀 그런 걸 못 느끼고, 오로지 금강의 아름다운... 봄은 금강, 여름은 봉래, 가을은 풍악, 이 작품을 제가 구사한다는 욕심밖에 머릿속에 안 남습니다. 그래서 북한 안내원이나 저를 보조하는 분들이, 선생님 연세가 어떻게 되느냐... 그래서 제가 해방둥이라 하면 저를 쳐다보고 선생님 철인적인 힘을 가졌다,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박인규 : 90여 차례면 남측은 물론 북측에서도 그렇게 금강산을 많이 가본 분이 없을 것 같은데. 금강산의 매력을, 물론 사진으로 보는 게 가장 정확한 표현이겠습니다만 금강산의 매력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정수 : 금강산은 계곡미와 산악미, 색채미가 어느 산에 비해도 진짜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바위와 물, 나무하고 조화가 돼서 진짜 산수화... 그래서 화가들이 금강산을 많이 접하고 그림으로 남긴 걸로 생각됩니다.
박인규 : 남측의 설악산도 금강산에 버금간다고는 그러던데 상대가 안 됩니까?
이정수 :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상 설악산 금강산이 같은 맥으로서 이어지는데, 설악산도 외설악은 아주 기암괴석이나, 조화롭게 많이 아름다운 산이지만 거기서 더 올라가서 금강산이 한수 위라고 생각되네요.
박인규 : 금강산도 굉장히 크지 않습니까. 금강산에 가고 싶은 데는 다 가보셨습니까?
이정수 : 그렇지는 않습니다. 금강산이 첫째는 외금강, 해금강, 내금강, 이렇게 삼개분포로 나눠져 있는데, 그 코스를 다 보려면 22개 코스인데 지금 관광객이 접할 수 있는 데가 10여 개 코스밖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박인규 : 지금 그럼 반 밖에 개방이 안 된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정수 : 내년이면 주봉인 비로봉이 개방되고 하면 아마 전반적으로 다 개방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박인규 : 개방된 10개 코스 중에서 이정수씨가 보기에 정말 이것이야말로 절경이다, 금강산에 가신 분들은 반드시 가봐야 된다. 그런 데가 있다면 어디일까요?
이정수 : 외금강에서 좀 산행이 힘듭니다. 한 7시간... 이렇게 산행을 해야 되는데 세존봉이라는 코스가 있거든요. 거기서는 외금강의 동서남북으로 해서 다 보이기 때문에 아주 5대 전망 중에서 1급으로 꼽히는 전망대입니다.
박인규 : 세존봉의 높이가 얼마나 됩니까?
이정수 : 세존봉이 1200여 미터 되는데 그게 굉장히 가파르고 해서 올라가는 산행코스가 길거든요.
박인규 : 7시간이면.... 제가 갔을 때는 구룡연 아니면 만물상 중의 한 군데 간다고 하던데. 진짜 제대로 보려면 세존봉을 나가봐야겠군요.
이정수 : 네. 바로 구룡연에서 비사문으로 해서 올라가는데 거기서 한 절반 정도 올라간 겁니다.
박인규 : 북한 사람들이 자기네 시설이나 찍는 걸 싫어하는데, 처음 이정수씨께서 촬영하실 때 안내원들이 경계하지 않던가요?
이정수 : 물론이죠 상당히 예민하게. 제가 3년간은 제 카메라가방을 그야 말로, 이잡듯이 체크하고 뒤져서 아주 눈초리가... 감시를 많이 받았고, 그게 없어진 게 금강산 관광 3주년 때 북한에서 제 4계절 전시회를 온정각에서 했습니다. 2001년도에. 그때 그 사진작품들을 보고서는 그런 오해가 싹 없어지고, 선생님이야 말로 금강산에 와서 여생을 보내야 되고 통일이 되면, 금강산이라는 제 아호를 북측에서 붙여줬습니다.
박인규 : 사진을 보고 나서 달라진 거군요. 제가 듣기로는 남측 작가가 북한 지역에서 전시를 한 건 이정수씨가 처음이라고 들었는데요.
이정수 : 그렇지는 않습니다. 호주 영주권을 갖고 있는, 호주 영주권자죠, 백남식씨라고 그 분이 평양에서 전시회를 전에 했고. 그러고서는 금강산을 주제로 한 건 제가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박인규 : 지금은 사진촬영에 제약이 전혀 없습니까?
이정수 : 저 같은 경우 거의 제약을 안 받고, 그야 말로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그 얘기는 군사시설은 어느 나라도 찍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그거 말고는 거의 제재를 안 받다시피 하죠.
박인규 : 망원렌즈는 좀 제약이 있다고
이정수 : 200밀리는 제가 특수장면을... 먼 데 있는 걸 찍는다고 미리 사전에 통보를 하면 그것도 허락이 됩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특별대우를 받으신 거군요.
이정수 : 작품을 보고 그 사람들이 감동해서 아마 그런...
박인규 : 물론 북측 사람들이 이정수씨의 사진에 감탄해서 금강산이라는 별명도 지어줬겠지만, 가서 자칫 말을 잘못하면 거기서 억류되는 분들도 계셨어요. 2002년도인가요, 서해교전으로 남북관계가 안 좋았을 때도 가서 촬영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이정수 : 그때는 연습이 아니고, 서햬교전은 실전이었는데
박인규 : 우리 병사들이 많이 죽었죠.
이정수 : 저 역시 금강산이 미완성으로 촬영이 끝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제가 여름 봉래산을 찍기 위해서 봉래호, 그때는 배가 다닐 땝니다. 집에서 카메라가방을 챙겨서 내가 금강산의 봉래호를 타기 위해서 간다고 하니 집사람하고 자녀들이 그냥 카메라가방을 뺏고, 아빠 이산가족 되면 어떻게 되려고 하느냐 해서 상당히 만류한 것도 제가 작품이 미완성에 그치지 않을까 이런 압박관념에서, 그냥 강행해서 봉래호를 탔습니다. 그런데 거기 승선인원이 700명 내지 900명이 타기로 돼 있었는데 한 100여 명에 지나지 않고, 관계자나 관여된 사람들만 승선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박인규 :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놔라! 하고 가셨군요
이정수 : 제 작품을, 여름사진, 봉래를 찍기 위해서
박인규 : 사진촬영하면서 여러 가지 겪은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은데, 북측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라든가 어려움이라든가 그런 건 없었습니까? 한두 가지만 말씀해 주시죠.
이정수 : 많죠. 예를 들어서, 제가 반복해서 상팔담을 찍기 위해서 그 장소를 수없이 방문해서 촬영에 임하니까, 선생님 사진이라는 게 한 번 두 번 찍으면 그만이지 자꾸자꾸 찍어다가 뭐에 쓰려고 자꾸 오느냐, 이런 반문을 던질 때... 이상하다, 솔직히 금강산의 아름다운 절경 찍는다면서 군사시설 체크하러 오지 않느냐 하는, 제가 이런 오해도 받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해금강 같은 데를 찍기 위해서는 거기는 포가 장진돼 있는데, 거기는 상당히 삼엄하고 민감하게 대치하는데 감시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제 앵글을 셔터를 못 끊게 하고 화인더로 확인해보고 이런, 아주 곡절이 많았습니다.
박인규 : 나오실 때 선생님이 찍은 필름들을 다 검사하지 않나요?
이정수 : 제 사진은 안 하고요. 할 수도 없고. 저는 디카가 아닌, 전부 슬라이드 원판필름에 다 찍기 때문에 검사할 수가 없습니다.
박인규 : 90차례를 가셨으면 금강산의 안내원 이런 분들 다 아시겠네요?
이정수 : 자기네 말로 선생님 모르면 오히려 간첩이다. 이런 표현을 할 정도로 저를 전부 알고 있습니다.
박인규 : 앞으로 그럼 이정수씨가 주도해서 금강산을 주제로, 소재로 활동하시는 예술가 분들을 모으실 수도 있겠네요. 금강산 작가회 같은 거
이정수 : 그래서 내년이,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10주년을 기해서 금강산을 주제로 해서 종합전시회를 한 번 열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박인규 : 혹시 북측의 화가라든가 사진작가는 그쪽에서 만나보시지 못했습니까?
이정수 : 간혹 오는데 그 분들이 하는 말이, 선생님 사진이 기가 막히다고... 그러면서 자기네들은 이런 테크닉을, 현상이나 인화해서 발휘를 못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박인규 : 내년에는 남측 작가, 예술가끼리 한 번 전시를 하시고, 5년 뒤에는 북측 작가들과 같이 하면 남북화해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정수 : 맞습니다. 정확히 보셨습니다.
박인규 : 한 번 기대를 해보겠습니다.
올해고 금강산관광이 만 9년째가 됐어요. 9년 동안 관광의 패턴이랄까 많이 바뀌었죠?
이정수 : 물론 금강산이 첫째는 코스가 많이 바뀌어서 열리기도 했고. 또 초창기에는 배로 기천명 지나지 않게 관광이 됐는데 지금 하루에도 수천 명씩 대한민국 국민이 금강산을 보기 위해서 금강산을 접하고 있고. 또 때론 북측에서 종사하는 관광 총회사라고 합니다. 거기서 옛날 같이 않고 아주 부드러워지고, 두드리면 열린다고, 상당히 안내를 많이 해주고 이런 걸 느낄 때 아주 감개무량하죠.
박인규 : 만 9년이 지나면서 북측 안내원들의 태도라든가 자세 같은 것도 많이 달랐을 것 같은데요. 느끼시기에 어떻습니까?
이정수 : 처음에는 굉장히 의욕적이고 그랬는데, 지금은 굉장히 동포애적인 인간적으로 접하는 걸 볼 때, 상당히 그 분들도 거리가 좁혀졌다고 생각이 돼요
박인규 : 남측 관광객들과 같이 가실 거 아닙니까?
이정수 : 항상 우리 관광객이, 코스 코스 산행을 할 때는 전부 북한 안내원들이, 또 설명도 직접 해줍니다. 전에는 우리 남측의 조장들이 코스 설명이나 안내를 했는데 지금은 북한에서 다 그런 걸 담당하고 있죠.
박인규 : 봄에는 금강이요 여름엔 봉래, 가을엔 풍악, 겨울엔 개골. 계절마다의 특징,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정수 : 아마 지구상에 많은 산이 있지만 금강산만큼 이름이 네 가지, 다섯 가지로 불리는 산은 금강산 밖에 없습니다.
박인규 : 그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이정수 : 예. 그리고 봄에는 금강이라는 게, 새순들이 돋아나서 빛을 받으면 반짝반짝하기 때문에, 다이아몬드석 같이 보여서 금강이라고 불리고. 여름에는 숲이 무성하고 안개가 자욱하게 운해가 낍니다. 그러면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머문다 해서 봉래라고 하고, 그 나무 무성한 것들이 전부 오색단풍으로 물들어서 화려해지기 때문에 풍악이라고 하고. 마지막 겨울로 들어가서는 나무들이 전부 앙상하게 뼈대만 가지하고 돌하고 표출되기 때문에 드러난다 해서 개골이라고 불리고, 하나가 더 있습니다. 금강산은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눈이 많이 오면 설봉산이라고 불리죠.
박인규 : 그렇군요. 90여 차례 가셔서 사진을 찍으셨는데, 지금까지 작품으로 만드신 건 대략 몇 점이나 되십니까?
이정수 : 글쎄 수없이 필름을 많이 소모하고 시간을 보내고 작품을 구성했지만 계절별로 해서... 한 계절에 한 10여 점씩 해서 한 40여 점, 때로는 100여 점에 지나지 않는, 마음에 드는 게, 작품을 얻었다고 할까
박인규 : 그것밖에 안 됩니까? 저는 한 천여 점 정도 예상했는데
이정수 :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무엇보다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흑백으로 촬영한 것, 흑백 오리지널프린트된 사진을 더 제가 좋아하고. 앞으로는 더 흑백을 열심히 촬영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박인규 : 저는 사실 언론에 보도된 사진만 몇 장 봤는데 조그만 사진이지만 색감이나 이런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혹시 이정수씨의 금강산사진을 보려면, 인터넷 사이트나 이런 거 없습니까?
이정수 : 제 사이트가 있습니다. '금강산사랑 이정수'만 한글로 검색하면 다 뜨게 돼 있고
박인규 : '금강산사랑 이정수' 들어가 보시면.... 사진으로 봐도 굉장히 멋있더라구요. 이정수씨께서는 디지털카메라 안 쓰시고 필름카메라만 쓰신다구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이정수 : 디지털은 아직까지도 가볍고, 자연에서 주는 음양대비가 좀 약하고
박인규 : 힘이 안 느껴진다, 그런 건가요?
이정수 : 쉽게 얘기해서 힘이 없고, 필름카메라는 힘이 있고. 이런 차이점이 아주 압도하죠.
박인규 : 금강산은 90여 차례 가셨기 때문에 이제는 찍을 만큼 찍으신 것 같은데 앞으로도 찍으실 계획이 있으십니까?
이정수 : 자연을 접하는 건 제 평생을 다해도 저는 접하지 못한다고 봅니다. 금강산이 내금강, 그야 말로 외금강, 해금강 3개분포로 나눠져 있는데 아가 서두에 얘기했듯이 한 10여 곳에 지나지 않게 개방이 돼서, 개방이 안 된 데를 촬영하면 아마 제 여생을 금강산에 열정을 다 쏟아야 될 것으로 생각되네요.
박인규 : 최근에는 백두산 쪽으로도 발길을 돌리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이정수 : 백두산이 아마 내년 4월이면 직항로가 개설돼서 대한민국 국민이 백두산을 아마 우리 한반도 땅에서 영산인 백두산을 감상할 텐데, 아쉽지만, 늦었지만 그나마도 남북화해무드가, 경제협력이 돼서 이뤄지는 게 아주 사진인으로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박인규 : 그동안 백두산 사진은 한 번도 안 찍으셨나요?
이정수 : 그렇지는않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백두산을 촬영을 중국 쪽으로 먼저 촬영을 해왔습니다. 북측으로 해서 촬영한 건 몇 번 안 되지만 앞으로는 백두산의 사계를 담고자 더 아마 바쁜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박인규 : 백두산은 민족의 영산이고 금강산은 천하절경인데, 백두산과 금강산을 비교한다면 어떨까요? 느낌이 어떨까요? 다르죠 물론?
이정수 : 잘 보셨습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장엄하고 웅장하고, 과연 사계절이 분명하게 표현되고. 금강산은 아기자기하고, 여하튼 산수화가들이 얘기하는 산수가 절정이고 이렇게 비교됩니다.
박인규 : 저는 사실 백두산에는 몇 번 가봤는데 백두산에 느낀 건, 높다, 아름답다기보다는 크다, 참 크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걸 사진으로 담는다는 게, 금강산은 워낙 절경이 많으니까 오밀조밀하게 찍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백두산은 뭘 찍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이정수 : 아마 우리 관광객이 천문봉이든 운문봉이든 이런 봉우리에서 천지만 보고 내려오시는데, 백두산을 동서남북으로다가 자연이 지니고 있는 걸 접할 때 무궁무진한 자연의 오묘한 생태계나 이런 그야 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정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박인규 : 연세가 60이 넘으셨는데 무거운 사진장비 들고 산에 오르시기 힘드시지 않습니까?
이정수 : 지금은 상당히 힘들고 벅찹니다. 그래서 현지에서 백두산 같은 데서는 조선족을 포타로 활용해서 이용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마지막으로 그동안 우리나라의 주요한 산들을 찍고 오셨는데, 앞으로의 계획 같은 게 있으시면 간단히 말씀해 주시죠.
이정수 : 한반도는 사계절이 분명하기 때문에 상당히 아름다운 자연을 지니고 있습니다. 옛날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금강산이 그만큼 절경이라는 걸 내적으로 표현한 거고. 백두산은 민족의 영산이고 우리 한반도의 제일 높은 봉우리기 때문에 제가 한라에서 우리 한라산에서부터 백두, 묘향산이든 칠보산이든 설악이든 태백이든 지리산이든 해서, 서울과 평양에서 대동맥을 백두대간을 촬영해서 사진전을 한 번 크게 하는 게 사진가의 꿈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박인규 : 금강산, 백두산, 한라산, 다 명산이긴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는 건 또 별도의 일인 것 같아요. 앞으로 진짜 그런 명산들을 사진에 담아서 서울과 평양 동시전시회 이런 게 한 번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정수 : 제가 바라는 게... 바로 사진인으로서 꿈이고 바람입니다.
박인규 : 기대해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이정수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금강산관광 9주년을 맞아 금강산 전문 사진작가 이정수씨와 함께했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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