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합당은 말 그대로 '번갯불에 콩 볶듯' 이뤄졌다. 공식 절차로는 신당 정동영 후보가 11일 언론을 통해 민주당에 통합 논의를 제안한 지 하루 만이고 비공식적으로는 지난 2일 합당을 위한 비공식 TF팀을 꾸린 지 딱 열흘 만이라고 한다.
이러한 '속전속결' 통합은 물론 양 당 모두 공론화 과정이나 당 내 합의를 위한 중앙위원회 논의 한번 거치지 않고 날치기로 처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벼락치기로 만들어진 당이 모순투성이인 것은 당연한 일.
오충일과 박상천이 공동대표?
양당이 예고했던 대로 오는 19일 선관위에 합당 등록을 마치면 가칭 '통합민주당'은 신당의 오충일 대표와 민주당 박상천 대표가 공동 대표를 맡게 된다.
시민사회진영의 대표적 재야 인사로 대표적인 진보적 목사로 꼽히며 87년 6.10 항쟁을 주도했던 주역 중 한 명인 오충일 대표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직후 사법고시에 합격해 판사와 검사를 거치며 승승장구 하면서 한때 공안부에 몸담았던 이력으로 일각에서 '공안검사 출신'이라는 비난까지 듣는 박상천 대표는 그 이력에서부터 크게 대조된다.
또 지난 8월 신당 창당과 함께 정치에 몸을 담은 정치 3개월 풋내기인 오충일 대표와 1988년 총선에서 당선돼 정치 생활을 시작한 4선의 원로 정치인인 박상천 대표의 동거 체제가 당 내 각 그룹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내년 총선 등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렇지 않아도 신당 내에는 오충일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어 있는 마당이다.
'통합민주당'의 대선후보는 지지율에서 앞선 정동영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양 당은 후보단일화 과정으로 TV토론과 여론조사를 예정하고 있지만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예측이다.
게다가 가칭 이인제 후보가 단일화의 패자가 될 경우 선대위원장을 맡게 돼 있어 2번의 경선 불복, 8번의 당적 변경을 거친 인사가 선대위를 총괄하는 모양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민주당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가 당선되자 민주당 일각에서는 "밖에는 분당 주역 정동영, 안에는 경선 불복 이인제냐"는 한탄이 나오기도 했다.
절차 생략, 과정 생략한 대선 후보의 결단?
이렇게 얽히고 엮인 과거사에도 당장 지지자들에게 별다른 해명이나 정리작업을 보여주지 않아 화학적 결합에 성공할지도 불투명하다. 양 당이 이날 합의 사항에서 밝힌 건 "올 12월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라는 것뿐이다.
그로 인해 양당 내부의 반발이 적지 않다. 당장 통합 선언이 발표된 12일 광주에서 열린 민주당 지역 선대위 발대식에는 "사죄와 반성 없는 통합이 웬말이냐, 배신자들이여 속죄하라", "민주당 영원히 지켜내자" 등의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민주당 홈페이지에는 "합당하느니 당 간판을 내리자", "민주당의 마지막 자존심까지 내버리냐" 등의 항의 글이 올라왔다.
신당 내에도 당장 불만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잠재된 불만들이 상당하다. 지난 8월 신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기존 정치권과 50 대 50으로 지분을 보장받았던 시민사회세력에게 이번 합당은 달갑지 않은 결과가 됐다. 이번 합당을 두고 신당 김현미 대변인이 "아무래도 오충일 당 대표의 결단이 컸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양길승, 김상희 최고위원을 포함해 시민사회 진영에서 결합한 중앙위원 29명은 이날 성명을 내고 문국현 후보와 권영길 후보가 대상에서 배제된 통합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민주당이 한나라당의 정책과 구별되지 않는 출총제 완화, 금산분리 완화, 3불정책 비판 등 민주개혁세력의 그간의 성과를 부정하는 상황에서 1대1 합당 및 총선 후 전당대회 같은 논의는 국민들에게 정도를 상실한 야합적 통합으로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또한 "당의 중대한 의사결정과정이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에서 심도있게 검토되거나 중앙위원회를 통해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형식적으로 처리되는 등 내용과 절차 상 중대한 흠결을 안고 있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민주당과의 통합을 지역주의 정치로의 복귀라고 비판해온 친노세력도 달갑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친노 의원인 이화영 의원은 "황당하다. 지분 유지를 위해 합당하는 게 아니냐"며 "한국정당 정치의 최고 위기이자 정당 민주주의의 엄청난 퇴행"이라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선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인데다, 시민사회세력이나 친노세력 모두 정치적 입지가 극히 좁은 상황이라 갈등이 밖으로 표출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날 4인 회동에서도 정동영 후보는 "내년 총선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거듭 자제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합 고리가 약한 당이 감당할 수 없는 폭발성이 큰 사안을 일단 대선 이후로 미루려는 안간힘이다.
효과도 미지수
가장 문제는 통합 및 단일화 효과다. 최근 답보 혹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두 후보의 지지율은 합해도 20%에 못미쳐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을 넘지 못하고 있다.
신당은 범여권 단일화 효과에다 정동영 후보가 확보하고 있는 호남표를 결집시키고 이인제 후보가 갖고 있는 충청권의 지지 기반을 가져오면 호남-충청-수도권의 서부 벨트도 구축할 수 있다는 기대도 걸고 있지만 단일화의 부정적 파장이 커질 경우 역효과도 배제할 수 없다.
정동영 후보가 "중요한 것은 후보 단일화가 아니라 감동"이라고 스스로 말했듯 이념적 지향이나 대의 명분보다는 지분 다툼 같은 정치공학만 부각된 통합에 국민들의 지지를 보내줄 것도 어려운 일이다.
이날 통합 협상을 지켜보던 한 당직자는 "옛 열린우리당이던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합해져 '통합민주당'이 됐다는 것을 알리는 데만 40일이 다 갈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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