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12일 후보 단일화 및 '당 대 당 통합'을 발표함으로써 범여권의 시선은 '2차 단일화 대상'인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쪽으로 쏠리고 있다. 신당 측은 후보 등록일인 오는 25일 전에 문 후보와의 단일화도 마무리 짓는다는 목표로 물밑접촉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그러나 '단일화의 대상'인 문 후보 측의 반응은 아직 조심스럽다. '한나라당 집권 저지'라는 단일화의 대전제를 외면치는 못하면서도, 세력이 큰 쪽이 주도하기 마련인 '단일화 프레임'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것이다.
문국현 "국민 마음 여는 정치 하시라"
문 후보 측 곽노현 대변인은 신당과 민주당의 통합 발표에 "정책정당 포기행위"라고 비판했다.
곽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비전과 정책을 뒷전으로 몰아낸 채 실정(失政) 정치인들만의 짧은 이해타산으로 이뤄진 양당 합당선언을 정책정당의 기치를 무너뜨린 후진정치의 전형으로 본다"며 "이와 같은 몰가치적 정치행태를 극복하는 일에 향후 전력을 다할 각오를 밝힌다"고 밝혔다.
창조한국당 곽광혜 대변인도 "정동영 후보와 이인제 후보의 지지율이 갈수록 하락하는 위기의식 속에서 무조건 몸집만 불리면 지지율이 상승할 것이라는 정체성 없는 과거식 선거공학"이라고 비판했다.
곽 대변인은 "정체성 확보도 없이 세력 확대만을 위한 무원칙하고 졸속으로 이루어지는 양당 간의 합당과 단일화 추진에 대해 심히 염려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합천 해인사를 방문한 문국현 후보 역시 "그동안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실망이 많았는데 이제라도 국민들의 마음을 여는 정치를 하시길 바란다"며 덕담을 하면서도, 스스로 단일화 참여 가능성에 대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전날에도 문 후보는 "정동영 후보가 이인제 후보와 통합하는 것은 재벌과 특권층 개혁에는 관심이 없고 통합이나 단일화를 통해 새로운 정국을 이끌어볼까 하는 생각이므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지지율 오르면 승부수 걸어볼 수도"
이처럼 범여권의 '1차 단일화'에 대한 문 후보 측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그러나 문 후보 측의 공격 포인트는 '원칙없는 단일화'에 있다. 단일화 자체를 "뜨내기식 정치야합", "정권연장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 등으로 매도한 한나라당의 공격과는 그 함량과 초점이 다른 것이다.
문 후보 측도 'IMF 환란의 주범(한나라당)이 또 다시 정권을 잡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범여권 후보 단일화의 대전제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는 편이다. 다만, 여권 역시 지난 5년의 과오가 있기에 손을 잡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고원 전략기획단장은 "한나라당이 밉다고 양극화를 심화시킨 여권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지 않냐"며 "실정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유의미하고 역동적인 변화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 후보 측은 일단 삼성 비자금 특검 도입을 위한 '정동영·권영길·문국현 3자회동'으로 '2차 단일화'의 애드벌룬을 띄워놓은 채, 다음 주까지는 상황을 관망하며 독자행보를 이어갈 계획이다.
그 이후의 행보는 지지율과 함수 관계에 있다.
일단 문 후보 측은 지난 11일 MBC TV <시사매거진 2580>이 공개한 'MBC 선거방송기획단'의 여론조사 발표에 고무된 모습이다. MBC가 여론조사기관 '엠비존'에 의뢰 8,9일 양일간 모바일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문 후보는 11.2%로, 정동영 후보(12.3%)와의 격차를 오차범위 내로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 다른 기관의 여론조사에서도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 이후 꺾였던 지지율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판단 아래, 캠프 곳곳에선 "단일화에 승부를 걸어볼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자신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실제로 다음 주께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의 지지율이 정 후보와 근접하거나 정 후보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날 경우, 문 후보 쪽에서도 '2차 단일화' 논의에 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흡수통합으로는 단일화 못 해"
그러나 내주까지도 문 후보의 지지율이 제자리걸음을 할 경우는 얘기가 달라진다. 대선 이후 총선에서 원내 교섭단체 이상의 독자 세력화를 목표로 하는 문 후보에게 대선후보 자리를 내놓는 일보다 더 최악의 시나리오는 단일화를 통해 '범여권 세력'으로 뭉뚱그려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장유식 대변인은 "민주당과 통합하듯 '흡수통합'하려는 식의 자세를 갖고는 우리와의 단일화에 진척을 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단일화의 기본 전제로 '국정실패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앞세우고 있는 문 후보 측이 '신당 세력의 백의종군' 등 원론적인 요구를 내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실상 후보 자리를 내놓으라는 주문에 협상 자체가 좌초될 공산이 크다.
한나라당 내부 분열이 진정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신당 측은 '당위' 차원에서 협상을 압박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와 관련해 고원 전략기획단장은 "시간에 쫓겨서 원칙을 저버릴 경우 단일화 한다 한들 '실패한 단일화'밖에 더 되겠냐"고 답했다.
현실 정치에 지분이 적은 문 후보 측은 단일화의 '당위'보다는 '성과'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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