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국가산업단지인 서울 디지털단지 노동자 3000여 명이 정부와 사용자 단체에 근로기준법 준수 약속 등을 내용으로 하는 '노동권 개선 협약'을 체결하자고 제안했다.
30일 서울 남부지역 노동자 권리 찾기 사업단인 '노동자의 미래'는 관악지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산업단지 내에서 일어난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들을 일부 공개하며 이같이 제안했다.
노동자의 미래가 공개한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들에는 근로계약서 미작성, 연장근로 강요, 시간외수당 미지급, 연차휴가 강제지정, 부당해고 등이 포함돼 있다. 지난 약 1년 6개월간 전화 신고, 길거리 상담 등을 통해 수집한 사례들이다.
일례로 K의류생산업체에서 일하는 김지윤(가명) 씨는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채로, 일주일 평균 54시간씩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월급은 120만 원 수준이었다. K 업체는 이 월급에 모든 수당이 포함되어 있다며, 법정 연장수당을 별도로 지급하지 않았다고 노동자의 미래는 밝혔다.
K 업체에서 벌어진 일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근로기준법 제17조에 따르면 근로계약 시 임금의 구성항목, 계산방법, 지급방법, 근로시간, 휴일, 연차휴가에 관한 사항이 명시된 근로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노동자가 따로 요청하지 않아도 근로계약서를 의무적으로 서면 교부해야 한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의 김요한 공인노무사는 "K업체가 지급한 임금을 법적 기준에 따라 계산해보니 최저임금 위반이었다"며 "만약 근로계약서를 작성해 김 씨가 스스로 자신의 시급과 월급을 확인하고 계산할 수 있었다면, 최저임금도 못 받으면서 억울하게 일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자의 미래는 K 업체뿐 아니라 단지 내 상당수 사업장이 근로계약서 서면 교부를 이행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많은 노동자가 사전 약속과 달리 적은 임금을 받거나 초과시간 근무를 강요받아도 제대로 문제 제기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들은 "최소한의 기준인 근로기준법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서울 디지털단지의 현실을 보면, 지금이 과연 2012년이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며 "대한민국이 정말로 법치국가라면, 근로기준법 위반 사업장들에 엄격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이들은 "노동법 위반 사례를 노동부나 사법기관에 신고해봤지만, 공단에 만연한 불법 관행이 사라지지는 않고 있다"며 "근본적인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노·사·정 3자가 근로기준법 준수 협약을 맺자"고 주장했다. 이들이 말하는 노·사·정 3자는 민주노총 남부지구협(노), 서울 디지털단지사용자협의회(사), 관악지청·구로구청·금천구청(정) 등이다.
노동자의 미래 오상훈 집행위원장은 "서울 디지털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 3000여 명이 근로기준법 준수 협약 체결을 촉구하는 데 서명했다"며 "노동부부터 전향적인 태도로 협약 체결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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