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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해적 석방 하루전 韓선원 인간방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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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소말리아 해적 석방 하루전 韓선원 인간방패로"

"납치 초기 눈만 뜨면 한국인 골라 구타"

마부노 1,2호를 납치한 소말리아 해적이 사살상 석방합의가 된 3일 오후 12시45분께(두바이 현지시간)부터 석방이 공식화된 4일 오후까지 만 하루동안 한국 선원을 '인간방패'로 삼으며 석방 마지막까지 생명을 위협한 것으로 드러났다.
  
  마부노호 선주 안현수(50)씨는 4일 밤 두바이의 한 호텔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지난 5월 15일 납치 뒤 174일에 걸친 피를 말렸던 석방협상의 뒷이야기를 비로소 털어놨다.
  
  그는 지난달 28일 막바지 석방협상을 위해 두바이에 온 뒤 언론과 접촉을 피하며 석방협상을 마무리했다.
  
  안 씨는 "사실 3일 오후 1시께 석방합의가 됐고 인근에서 (지난달 28일) 납치된 일본배에서 연료 등을 마부노호로 가져왔는데 미군 군함이 공격을 해와 마부노호가 움직이지 못했다"며 "해적들이 한국인 선원을 방패막이로 세워둬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해적을 공격한 미군은 납치된 일본 선박때문에 주위를 포위했던 병력인데 마부노호로 연료를 싣고오는 조그만 해적의 배를 공격하다 마부노호에도 10여발 맞았고 이 파편을 한석호 선장이 머리에 맞아 경상을 입었다고 안 씨는 말했다.
  
  그는 "땡볕에 미군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한국인 선원을 선상에 집합해놓고 손을 들게 했다"며 해적들을 원망했다.
  
  그는 "어제(3일) 석방합의 뒤 마부노호가 출발한 오늘 오후 4시35분까지 만 하루 동안 선원들이 겪은 고통과 생명에 대한 위협은 피를 말렸다"고 긴박했던 마지막 순간을 전했다.
  
  해적들은 피랍 초기 선주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몸값을 올리기 위해 한국인 선원만 골라 매일 새벽 일어나기가 무섭게 구타를 했다"며 "한국인만 사막으로 트럭에 포장을 씌우고 끌고 다녔다"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살렸다.
  
  그는 "해적은 내가 자신들의 요구만큼 몸값을 준비하지 못하 형편인 것을 알자 가족과 한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구타했고 언론에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전화를 걸도록 했다"고 말했다.
  
  해적은 환각성분이 있는 '카트(khat)'란 잎을 씹은 뒤 총을 난사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고 매일 구타에 시달리다 못한 선원들은 "인근 군함에 포를 쏴달라고 해달라", "배에 불을 지르겠다"며 차라리 죽여달라는 '인간한계'의 상황까지 도달했다고 했다.
  
  해적 측은 처음 3개월간 24명 전원 석방을 조건으로 500만 달러를 요구했으나 부족 원로, 현지 국회의원 등 안 씨가 구축했던 소말리아 현지 인맥을 통한 다각적인 노력으로 몸값을 '대폭' 낮췄다고 그는 밝혔다.
  
  납치 기간이 장기화하자 해적도 지쳐 내부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고 부족 원로들도 장기 납치에 대한 압박을 가해왔으며 이 해적 집단에 돈을 댔던 사람이 더는 자금을 대줄 수 없다고 말하자 해적도 조급해 지면서 협상이 타결됐다.
  
  그는 또 납치사건이 일어나자 마자 지난해 알았던 현지 부족사람 1명을 채용, 위성전화를 주면서 해적의 상황을 파악하도록 하는 등 석방을 위해 신속히 대처했다.
  
  지난 8월8일 몸값 협상이 가까스로 타결됐지만 선박 납치에 직접 가담하고 선원들을 억류했던 '바다 위' 강성 해적과 육지에서 안 씨와 협상을 진행했던 두목격인 해적 본부와 몸값에 이견이 생기면서 석방이 무산됐던 때가 가장 큰 위기였다.
  
  설상가상으로 근처에서 덴마크 선박이 1대인데도 당시 타결된 마부노호의 몸값보다 2배 높은 금액으로 풀려나자 해적들의 태도가 돌변했고 가진 돈이 얼마 없어서 고통을 겪었는데 한국 국민이 많이 도와줘 석방에 이르렀다고 안씨는 말했다.
  
  이는 아프간 피랍사태 초기에 탈레반 지도부와 납치를 주도한 지역 탈레반 간 이견으로 석방 협상이 무효화한 것과 비슷하다.
  
  특히 해적들은 통신시설을 장악해 외부와 연락을 엄격히 통제했으며 안 씨측이 통사정해야만 겨우 피랍 선원과 연락을 할 수 있도록 해 어려움을 겪었다.
  
  과도정부 체제하인 소말리아는 3000㎞에 달하는 해안에 중앙정부의 치안력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해적이 일종의 '비즈니스'라고 안 씨는 말했다.
  
  젊은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해적 '사업'에 가담하며 이들에 조직적으로 자금과 음식, 무기를 대는 '투자가'도 있고 육상에서 협상을 담당하는 '매니지먼트' 역할도 나눠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전화와 이메일로 협상을 직접 진행했으며 통역을 담당한 현지인이 해적 내부의 상황을 긴밀히 알려 주는 등 상당히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이 현지인은 지난해 동원호 피랍사건 때 역시 통역으로 활약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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