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치료보다는 예방 차원의 트래킹과 체조, 기 운동, 영양 섭취법, 수면법이 인기를 끌고 있다. 아마 건강 산업이 최대 호황이 아닌가 한다."
독일의 삼림지대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그 곳에서 멀지 않은 대표적인 요양도시 바트 메르켄트 하임의 한 요양원 책임자는 세계적인 추세인 '웰빙' 바람에서 독일도 예외가 아니라고 말한다.
돼지고기와 소시지 등 기름진 육류를 주식으로 하는 독일인에게 당뇨병과 고혈압 등 성인병은 당연한 운명으로 여겨졌지만 몇 년 전부터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자'는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 남성보다는 여성, 노인보다 젊은이가 더 열심이다.
이런 사회적인 추세에 힘입어 삼림휴양지대인 슈바르츠발트 인근 '바트(Bad)'에서 시작되는 온천 샘물 지대에는 요양시설이 부쩍 늘어났다.
바트 메르켄트하임은 독일 중부 내륙지방에서 고대 로마로 통했던 로만틱 가도의 중간쯤에 위치한 인구 2만의 숲으로 둘러쌓인 작은 요양도시다. 이곳에는 환자들의 토탈테라피(Tataltherapy)를 위해 10여 개의 요양원과 요양공원, 재활병원이 빼곡히 자리잡고 있다.
산 속에 세워진 쿠어하우스 쾨니히(Kurhaus Koenig)는 이 도시에서 두 번째로 큰 요양원으로 치료를 겸해 트래킹과 기체조, 식이요법 등을 즐기려는 환자들로 넘쳐난다.
쿠어하우스 쾨니히의 홍보책임자 크리스티나 포이트(38)는 "특별한 질병이 없더라도 휴양이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서가 있으면 누구나 요양시설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며 앞으로 이용 환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실제로 독일 의료법에는 치료와 재충전을 위해 법적으로 10일 이내의 휴가가 보장돼 있고 장기간 요양이 필요하다고 주치의가 진단할 경우 가능하다. 이 기간 동안 경비는 보험회사와 국가기관에서 지불한다.
크리스티나는 "숙소동과 치료동 등 5개 건물과 90개 룸을 갖추고 있는 시설 이용을 위해 지난 가을부터 예약한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다"며 강조한다.
독일에서는 5월에 보기 힘든 27도를 오르내리는 더위인데도 도시 곳곳을 관통하는 산책로에는 동계올림픽 노르딕 스키 선수처럼 양손에 스틱을 잡은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걷고 있다. 이중 대부분이 30, 40대 여성이 주를 이룬다.
요양원이 재활병원과 다른 점은 환자가 원하는 곳을 선택해 단기간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 치료 방법과 시간, 장소도 환자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아침 식사를 마치면 산책과 수중치료, 마사지, 물리치료, 수영과 크래킹, 승마 중에서 치료를 받는다. 최근에는 동양의 명상과 기체조가 환영을 받는다고 한다.
병원처럼 병실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휴일에는 가까운 도시를 관광하거나 저녁시간에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서 볼링과 카드놀이 등을 하는 것도 이곳을 찾는 재미 중 하나다. 치료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일주일에 400~700유로(약 50~90만원)의 비용이 들며 개인이 든 보험회사에서 지불한다.
이 도시에서 두 번째로 큰 쾨니히 요양원에는 체조교사와 수영▪.수중치료사, 마사지사, 물리 및 작업치료사, 요리사, 행정요원 등 총 30명이 일한다. 의사는 이 도시에 있는 10여 개의 요양원을 돌며 환자 상담과 진료를 맡는다.
지역 문화의 중심지가 된 요양공원
재활환자에게 정서적 안정은 치료에 우선하는 필수 조건이다. 특히 심리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경치 좋은 곳에서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다면 환자의 재활치료는 몇 배나 빨라질 수 있다.
요양 공원 사무국의 베티나 각스타터(38)씨는 "공원에서 건강에 좋은 샘물이 나온다는 소문이 나면서 호텔이 세워지고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이제 음악공연을 비롯해 지역문화의 중심지로 변모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요양 환자들을 위해 도시 전체가 요양원과 이들을 위한 산책로가 있는 것도 부러운데 맛 좋은 샘물까지 솟는다니 질투감마저 든다. 바트 메르켄트하임 요양공원은 모두 21헥타(21만 제곱미터, 6만3636평)의 숲과 2000 그루의 아름드리 나무, 100만 그루의 튜율립과 장미로 이루어져 매년 100만 명이 넘는 환자와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공원을 산책중인 70대 부부 마르쿠스▪ 엘리자베스 부부는 "10여 년 전 우연히 이곳을 알게 돼 휴가철에만 찾아왔지만 이제는 아들부부와 손자까지 함께 와 휴식을 취하면서 이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인근 지역을 관광 다닌다"고 말한다.
샘물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지역의 명소가 되면서 공원 안에는 1993년 1000석 규모의 실내 콘서트 장과 야외공연장이 들어섰다. 나무와 유리로만 지어진 것이 특징이다. 자연 채광을 이용하기 위해 3면을 유리로 하고 바닥과 천정, 벽체를 결이 살아있는 나무로 마감한 결과 마치 한옥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오후 4시부터 공원중심에 있는 야외공연장에서는 8인조 실내악 연주단이 연주를 시작하자 공원 곳곳에서 일광욕과 산책을 하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나무와 꽃이 내뿜는 향기 속에서 휠체어에 기댄 채 음악을 듣는 노부부의 모습이 아름답다.
공원의 안쪽에는 사람들이 다리를 하늘로 향한 채 여기저기 누워있다. 나무 위에 설치된 8개의 스피커에서는 명상음악이 흘러나온다. 사람들의 표정이 더 없이 평온하고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
요양공원이 사랑 받는 명소가 되기까지 두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한 사람은 1836년 10월 이곳에서 양질의 샘물이 나오는 것을 발견한 프란츠 게리히라는 양치기였다.
그는 숲 속 한 가운데에서 소금 끼를 잔뜩 머금은 온천샘물이 솟아나는 것을 발견하고 오랜 노력 끝에 최고의 광천수임을 입증함으로써 오늘의 바트 메르겐트하임을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마로니에 숲 중앙에는 양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석상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일반 휴양객이 묵는 호텔이 있고 호텔 담을 따라 마음과 몸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약초가 종류별로 가지런히 심어져 있다.
볕이 잘 드는 곳에 작은 동상 하나가 더 서있다. 세바스티안 크나이프 신부의 흉상. 그는 목동이 발견한 이 샘물을 대외적으로 알리는데 공헌했다고 했다.
칼과 알버스 라고 각각 이름 붙여진 샘물이 처음으로 솟아나는 곳을 성지처럼 만들었는데 평소에는 나오지 않던 샘물은 수도꼭지에 손을 대자 온도차이로 인해 갑자기 물이 괄괄 쏟아졌다.
물을 마시자 진한 소금기와 광천수 특유의 시큼한 맛이 느껴진다. 아마 이곳에 며칠 머물기만 해도 모든 시름과 질병이 절로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명상과 음악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곁을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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