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 동생의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좀 전에 동사무소라고 하면서 처형 연락처를 가르쳐 달라고 저한테 연락이 왔어요. 주민등록인가 뭣 때문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내 핸드폰 번호를 알았는지, 이상하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제부의 연락처를 도대체 어떻게 알아냈을까? 그리고 주민등록 때문이라면 나한테 연락을 해야지 왜 제부한테?
그러면서 순간 내 머리를 스친 건 요즘 전화로 개인 정보를 알아내 돈을 빼가는 신종 사기 사건이 많다는데 혹시 동사무소를 가장한 사기극? 황당하기 짝이 없는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신종 사기극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라도 동사무소에 우선 전화를 해야 알 수 있는 일. 동사무소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선거업무를 차질 없이 지원하기 위해 9월 3일부터 10월 22일까지 주민등록 일제 정리를 실시한다고 했다.
그래서 통 담당 공무원과 통·반장으로 이루어진 합동조사반을 편성, 철저한 사실조사를 통해 거주 주민들의 주민등록사항과 실제 거주 사실을 정확히 조사하고 있다며, 이 기간에 등록된 사람의 거주 여부가 확인되지 않을 경우 주민등록을 '직권말소'시킨다고 덧붙였다.
동사무소 공무원과의 전화 통화로 알게 된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조사반이 내가 사는 집에 방문했지만 귀가가 늦은 나를 만날 수 없었고, 전화도 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그 다음 방법으로 선택한 게 바로 전산망을 통해 친인척의 연락처를 찾는 것이었고, 그렇게 걸려든 동생의 남편 핸드폰으로 전화를 한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자기 동에 등록도 되어 있지 않은 정보를 동사무소가 그렇게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냐"고 따지자 돌아온 공무원의 대답은 더 가관이었다. 주민등록을 말소시키지 않으려고 자신들은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는 것!
정말 너무나 친절한(?) 공무원의 행동에 감사의 인사라도 해야 하나? "오히려 방문을 했다면 메모를 남기거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거나 그것도 안 될 경우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집 주인에게 물어보는 게 기본적인 상식이 아니냐"고 계속 항의하자 전화를 받은 동사무소 공무원은 그제야 "자신이 한 게 아니라 잘 모르겠다"며 발뺌을 했다.
"어떤 근거로 공무원들이 주민들의 개인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도 "자신은 담당자가 아니"라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결국 정확한 답변을 듣기 위해 '국가 기관 간의 개인 신상정보 열람에 관한 근거 법률 및 규정'을 알려달라는 내용으로 동사무소에 정보공개청구를 해야 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더욱 절망적이었다. 호적법 시행규칙 제21조에 따르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으로 직무상의 필요에 의하여 청구를 할 경우 호적부를 열람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아무리 이러한 법률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기재된 호적부의 신상 정보 외에 어떻게 사돈에 팔촌까지 친인척들의 호적부를 공무원들이 마음대로 모두 볼 수 있냐며 법률적인 자문을 구해봤지만, 호적부 열람의 범위를 제한하는 규정이 없을 뿐 아니라 '직무상의 필요'가 넓게 해석돼 현행법상으로는 합법적인 절차로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정보의 집적과 독점을 통한 감시와 통제의 빅브라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주민들의 거주 여부를 조사했던 담당 공무원은 나에게 직접 전화를 해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며 죄송하다는 말을 연거푸 했고, 심지어 상급 공무원까지 집에 찾아와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를 했다고 동거인이 알려줬다.
하지만 일선에서 여전히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공무원들의 주민 신상정보 열람과 사용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물론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손쉽게 곶감 빼먹듯 주민들의 정보를 줄줄이 볼 수 있는 관행을 없앨 수 있는 건 개인정보열람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좀더 촘촘히 손질하고 인권적으로 바꾸는 일일 게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에이 별거 아니야"라며 그냥 넘기거나, "어쩔 수 없지"라며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맞서 인권을 지키려는 '까칠함'이 아닐까.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 최근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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