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깃발 아래 글로벌 경제체제를 이룩한답시고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무역개방 요구가 드센 21세기에 나온 얘기가 아니다. 지금부터 170년 전,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쥐락펴락하던 '19세기의 패권국가' 영국의 상인들이 중국(청나라) 관리들에게 던진 시비조의 물음이다.
자유무역이란 허울 좋은 이름 아래 영국 상인들은 중국을 거대한 아편중독국으로 만들었다. 많은 중국인들이 아편중독으로 몸을 망치고 집을 잃었다. 무기거래업자들을 흔히 '죽음의 상인'이라 일컫지만, 아편무역업자들 또한 '죽음의 상인'들이었다. 뇌물을 먹고 아편 밀반입을 눈감은 중국 세관 관리들과 돈벌이에 눈이 먼 중국 아편유통업자들은 죽음의 하수인들이었다.
영국 자본가들의 자유무역론
지금 돌이켜 봐도 영국 상인들의 재테크는 놀라울 정도다. 인도에서 헐값에 사들인 아편 판매대금으로 중국의 은을 챙기거나 중국차를 사모아선 유럽으로 내다팔아 몇 십 배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냈다. 이걸 가리켜 '삼각무역'이라고 하는가.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던 영국은 아편 무역에 불법 딱지를 매겼으나, 그것은 겉치레에 그쳤다. 전세계 곳곳에서 약탈무역을 하던 영국 자본가들의 이익이 곧 영국의 국가이익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때 그들이 내세운 경제 이데올로기가 바로 자유무역론이었다.
1839년 6월, 무려 21일 동안 중국 광뚱성의 호문(虎門) 바닷가에서는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압수한 아편들을 폐기하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동그란 대포알처럼 생긴 검은 아편 덩어리들을 칼로 자르고 잘게 부수어 물에 빠뜨리면, 거품과 함께 연기가 생겨났다. 기록에 따르면, 폐기된 아편은 2만 상자가 넘었다고 한다.
아편 폐기의 주역은 강직한 성품의 청나라 흠차대신 임칙서(林則徐). 그는 "아편을 없애지 못하면 중국이 망한다"며 도광(道光) 황제를 설득한 뒤 광뚱으로 내려갔다. 영국상인들의 아편을 압수하고, 밀거래로 떼돈을 벌던 중국 상인들을 붙잡아 다른 곳도 아닌 영국공관 앞에서 목매달아 죽였다(이는 1996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장악한 탈레반 정권이 아편재배를 엄격히 금지하고 밀매업자들을 공개처형했던 사실을 떠올린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한 패배로 막을 내렸다. 목선을 타고 구식 총으로 무장한 중국군은 영국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철선에다 강력한 대포를 갖춘 영국군은 19세기의 슈퍼 파워였다. 중국군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무자헤딘 전사들처럼) 서양 오랑캐의 침공에 맞서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키겠다는 기개만큼은 높았으나, 기개만 갖고 될 일은 아니었다. 연전연패 끝에 난징조약(1842년)으로 홍콩을 내주고 상하이를 비롯한 5개 항구를 개방해야 했다.
난징조약은 서구 제국주의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강요한 불평등조약들을 말할 때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 뒤로 영국의 아편 상인들은 거침없이 중국인들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만들었다. 미국을 도와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린 지방군벌들이 전세계 공급량의 90%를 차지하는 아프가니스탄 아편재배로 큰돈을 벌고 그것으로 자파 세력확대에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유무역이 뭔지 전쟁으로 가르쳐야"
중국이 홍콩을 돌려받던 1997년, 중국영화사상 최대의 제작비(1천5백만 달러)를 들여 만든 영화가 '아편전쟁'(감독 시에진)이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과 측근신하들이 영화 속에서 주고받은 말들은 자유무역 깃발을 내세웠던 더러운 전쟁(dirty war)의 경제적 본질을 드러낸다.
△빅토리아 여왕= "임칙서는 어떤 인물이요?"
△신하= "의지가 강하고 거칠며 애국심이 강한데, 극단적(extreme)인 성향이라 합니다" (참고로, 21세기 들어 미국 부시대통령과 영국 토니 블레어 전 수상은 전세계 반미반영 저항세력을 'terrorist' 또는 'extremist'라 불러왔다).
△빅토리아 여왕= "내가 임칙서라 해도 아편을 압수해 없앴을 것이요. 그러나 문제는 아편이 아니지. 영국 상인들의 생명이나 재산도 아니고... 만일 다른 나라에서도 중국처럼 자유무역을 거절한다면, 대영제국은 1년도 못가고 말 거요. 이게 바로 중국으로 군대를 보내는 이유지. 중국에게 자유무역이 뭔지를 (전쟁을 통해) 가르쳐 줘야겠어. 다른 나라에게 중국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
19세기 패권국가 영국으로선 아프리카, 인도와 더불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중국이라는 또 다른 거대시장을 놓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던가. 19세기 서구자본주의 경제의 대외팽창과 그에 따른 위기상황이 21세기 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프간과 이라크에선 군사력으로, 한국에선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이름으로지만, 그 공통의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다.
아편전쟁이 '19세기의 더러운 전쟁'으로 기록된다면, 21세기 미국-이라크 전쟁은 어떻게 기록될까. 미 부시대통령이 주장했듯 사담 후세인 독재에 신음하던 이라크 민초들을 해방시킨 '정의의 전쟁'일까, 아니면 아편 대신 세계 제3위의 매장량을 지닌 이라크 석유를 노린 '더러운 전쟁'일까. 대답은 쉽지만, 그 뒤 해법이 간단치 않다는 게 문제다.
(시사주간지 <한겨레 21> 최근호에 실은 글을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필자 이메일: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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