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장외후보'인 문국현(전 유한킴벌리 사장)후보가 13일 김근태 열린우리당 전 의장을 만났다. '비전과 가치'를 공유했다는 게 양측의 설명이지만 대선가도에서 유의미한 정치적 교감을 나누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을 주장하고 있는 문 후보는 넌지시 김 전 의장의 도움을 구해본 듯 하지만 김 전 의장은 오히려 문 후보에게 '범여권 세력의 단결'을 강조해, 문 후보의 독자창당 계획과 여권 대통합 구상 간 좁힐 수 없는 거리만 재확인된 셈이 됐다.
"서로의 비전과 가치가 같다"지만…
"점심이나 같이 하며 얘기를 나누자"며 회동을 먼저 제안한 문 후보 측은 두 사람이 1시간 30분가량 비공개로 만나 나눈 '교감'을 부각시켰다.
문 후보 측 고원 공보실장은 "문 후보와 김 전 의장은 서로의 비전과 가치가 같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세계화, 남북문제, 반부패 등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노선 상 공감대를 확인했다"는 설명이었다.
실제 자리에서도 문 후보는 "내가 얘기하는 '사람중심 경제'의 뿌리가 민주화 정신이고 민주화 정통 세력인 김 전 의장과도 통하는 것"이라며 김 전 의장과의 공통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 전 의장의 액센트는 후보 단일화를 통한 범여권의 단결에 찍혀있는 듯 하다.
김 전 의장은 "문 후보가 민주신당 경선에 들어오지 않은 것은 이해한다"면서도 "단일화에 대한 의지와 노력을 버리지 말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후보가 "대선 전후해서 정계개편이 있을 수 있다"며 "그 때 만들어질 새로운 정치세력은 경제인이 대거 포함된 형태로 지역적 연고나 구태정치를 극복할 것"이라고 말한데 대해서도, 김 전 의장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수긍을 하면서도 "가치와 노선이 맞는 사람들과 많이 만나서 대화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장외' 고집하는 文, '대통합' 못 버리는 金
이날 회동을 앞두고 문 후보 측에서는 '개혁연대' 차원에서의 의미 있는 성과를 기대한 것이 사실이었다.
문 후보 측 김헌태 정무담당 특보는 "대선 이후를 내다보는 장기적 정책연대를 염두에 둔 만남"이라며 "개혁블록으로서의 상징을 갖는 분들과 각자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 후보 측은 김 전 의장 외에도 소위 '개혁성향'으로 분류되는 민주신당 의원들과 비공개 회동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김 전 의장의 경우 민주신당 창당에 대한 책임감 탓에 문 후보를 명시적으로 지지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연대 가능성에 대한 '시그널' 정도만 확인해도 나쁠 게 없다는 게 문 후보 측의 판단이다. 민주신당에 실망한 민주개혁세력 지지자들이 '이심전심'으로 문 후보를 지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선 이후 총선에서는 양 측 간 실질적 연대로 발전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대통합 흐름을 주도한 김 전 의장으로서는 장외를 고집하는 문 후보를 지지하기 쉽지 않다. 예비경선 과정에서 문 후보와의 연대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던 천정배 전 법무장관이 경선 후에는 관망세로 돌아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김 전 의장의 한 측근은 "김 전 의장은 불출마 선언 이후 문 후보에게 대통합 과정에 합류했으면 좋겠다는 것을 요청한 적이 있고 문 후보는 신당보다는 독자흐름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날 만남에서도 각 자 입장에서 할 얘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문 후보가 독자창당을 선언한 마당에 민주신당 경선에 합류하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통합의 관점에서 후보 단일화 가능성을 신당과 문 후보 측이 배척해선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 측근은 "명백하게 원칙 있는 통합의 연장선에서 문 후보와 시민사회 역시 통합을 이끄는 가치와 지향을 선도하는 그룹이 됐으면 좋겠다"며 거듭 문 후보의 '합류'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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