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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號' 운명을 쥔 '박근혜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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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명박 號' 운명을 쥔 '박근혜 시나리오'

한나라당 경선 이후, 패자의 선택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당선됐다. "참으로 길고 지루한 과정"이란 당선자의 소회처럼 안팎에서 날아드는 돌멩이에 수도 없이 터지며 거둔 '신승(辛勝)'이다. 보통 힘겨운 승리를 거둔 승자 앞에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위로의 말이 놓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후보에겐 '낙'을 누릴 겨를이 없다. '이명박의 승리' 앞에는 까마득한 비포장도로가 깔렸기 때문이다.

이 후보의 승리가 '한나라당의 승리'로 완성되는 첫 관문의 열쇠는 경선 패자인 박근혜 후보가 쥐고 있다. 이 후보의 향후 구상과 박 후보의 경선 이후 시나리오가 맞물려야 한나라당 전당대회 모토인 '아름다운 동행'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경선 기간 내내 평행선 대치를 거듭해 왔던 두 주자의 '머릿속'이 같으리라 기대키는 어려워 보인다. 이에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 후보의 정치력 검증은 이제부터"란 말이 공공연히 들린다.

'빅2' 모두에게 '아름다운 동행'은 가능한가
▲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은 13번에 걸쳐 경선 승복을 맹세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지켜지기 어렵다는 전망도 적잖다.ⓒ뉴시스

한나라당 예비후보 4명은 지난 13번의 합동연설회를 '경선결과 승복'을 다짐하는 맹세로 시작했다. 설령 경선에서 지더라도 10년 정권교체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분루를 삼키고 한 알의 밀알이 될 용의가 있다는 것.

박관용 경선관리위원장은 지난 16일 이, 박 양대 진영 측의 원로 27여 명을 따로 모아 '모든 후보가 경선 결과에 흔쾌히 승복하고 다시 하나가 된다'는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 같은 다짐과 맹세가 그대로 지켜질 경우 이 후보는 여권 후보가 정해질 때까지 스포트라이트를 단독으로 받으며 50%를 넘나드는 한나라당 지지율을 한껏 누리면 된다. 계획대로 9월 초쯤엔 '해외 스케줄'을 잡아 본선 경쟁력을 업그레이드 할 수도 있다.

경선 레이스를 마무리 하며 이 후보는 "정권 교체를 위해 박 후보가 선거를 총괄해 주는 자리를 맡아준다면 더 이상 고마울 수가 없겠다"며 "진심으로 부탁을 드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선대위원장을 맡아 '정권교체의 과업'을 이룬 다음 박 후보는 당권을 잡고 '차기'를 노리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 이 후보 진영의 희망 섞인 관측이다. 이 후보 지지자들이 외치는 "오빠 먼저"란 구호에 담긴 맥락이기도 하다.

'밥줄 건 사생결단'이 낳은 결과…

여기까지가 '빅2'가 한 길을 걷는 '아름다운 동행'의 시나리오다. 그러나 이 길에는 난관이 많다.

먼저 박 후보가 이 후보를 지지할 명분이 부족하다. 경선 내내 이 후보를 "필패카드"로 규정해 온 박 후보였다. 이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말을 뒤집어야 하지만 '원칙론자'인 박 후보가 쏟아놓은 말을 주워 담기란 난망하다는 것이 주변의 일관된 관측이다.

주변 인사들 간의 '화합'도 말처럼 쉽지 않다. 경선이 치러진 19일까지 투표용지 촬영 논란을 두고 박 후보 측은 "매표정치"라며, 이 후보 측은 "자작극"이라며 서로를 삿대질 했다. '땅떼기 대통령', '최태민의 유훈정치' 등 서로를 향해 주고받은 치명적인 독설도 적지 않다.

비단 감정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미 박 후보 측에서는 김무성 의원이, 이 후보 측에서는 정두언 의원이 '살생부'를 거론한 바 있다. 양대 진영이 '정치 생명의 밥줄'이라 할 수 있는 공천권을 담보로 일전을 치렀음을 알리는 지점이다.

이에 패자가 공천권 등을 포함한 일정 지분을 나눠 갖는 중재안이 거론되지만 이 '전쟁'이 캠프 내 핵심 인사들만의 것이 아니기에 간단치가 않다.

예를 들어, 박 후보 캠프에서 클린선거위원장을 맡았던 함승희 전 의원은 양양 출신이다. 양양지역은 정문헌 의원의 지역구다. 정 의원은 중립을 선언했지만 정 의원의 부친인 정재철 전 의원이 이 후보 지지를 선언해 정 의원 역시 이 후보 측 인사로 분류된다.

중립지대에 있다가 막판에 이 후보 지지를 밝힌 경남지역 모 의원은 박 후보 핵심 인사와 공천권을 다퉈야 할 처지다. 분구됐던 그의 지역구의 인구가 다시 줄어 2008년에는 다시 핵심 인사의 지역구와 합쳐지게 생긴 것이다. 박 후보가 대표 시절 당직을 맡으며 '친박'으로 분류됐던 그가 이 후보 쪽으로 간 데에도 결국 공천권에 대한 계산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현재 한나라당은 한 지역에서 현역 의원이 특정 후보를 공개 지지하면 그 라이벌은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식으로 두 패로 나뉘어 있다. 지분협상이 이뤄지려면 어느 한 쪽의 '통 큰 결단'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2013년까지인 대통령 임기 중 총선이 두 번(2008년과 2012년) 치르게 되는 구조는 협상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승자가 두 번의 공천을 하게 돼 있는 구조적 요인 때문에 분열의 가능성은 높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객관적 공천 보장? 말처럼 쉽지 않은데…
▲ 20일 오후 서울 잠실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제9차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후보가 인사후 자리로 이동하며 이명박 후보를 지나치고 있다. ⓒ뉴시스

이에 당 지도부는 승자가 공천권을 독식하는 구조를 제도적으로 해소하는 방안을 묘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강재섭 대표는 19일 기자회견에서 "공천심사위원회의 독립성을 더욱 공고히 해 경선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과오보다는 본선 승리를 위해서 열심히 하는 사람이 더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앞서 중립인사 그룹인 '중심모임'에서도 국회의원, 당협위원장 연석회의 추천인사로 후보인단을 구성한 후 당 지도부가 이들을 중심으로 심사위원을 선임하는 '공직후보 심사제도' 도입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박 후보 측은 지도부나 중립선언 인사들의 '지향성' 자체를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선 룰' 관련 논란을 겪으면서 "당 지도부가 이 후보 측에 줄 섰다"는 심증을 굳혀온 박 후보 측이 제도 개혁에 대한 이들의 약속을 믿고 흔쾌히 판에 뛰어들기를 바라기 어려운 것이다.

박 후보 쪽에서 백보 양보한다손 치더라도 이 후보 측에서 쉽사리 공천권을 당에 넘겨줄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대통령 임기 내내 함께할 '여당 인사'들을 뽑는다는 의미를 감안할 때 승자가 그만큼 절제된 리더십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정권을 잡아도 공천권을 행사하지 못하면 '현실 정치에선 허수아비가 아니냐'는 푸념이 나올 만도 하다.

이 후보 캠프 다른 한편에서는 공천권은 고사하고 '박근혜 선대위원장'을 두고도 내부 반발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 후보 진영 내에서도 차기 당권을 노리는 그룹이 존재하고 이들에게 박 후보 진영과의 공존은 '적과의 동침'에 비견되기에 화합을 위해 이 후보 진영 내부 인사들을 설득하는 작업도 녹록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완주 불가론', 분열의 서막되나

이 처럼 화합으로 가는 구절양장(九折羊腸)을 일별해 본 사람이라면 '분열의 시나리오'에 힘을 싣게 마련이다.

물론 당장 박 후보가 탈당 수순을 밟으리라는 관측은 높지 않다. 박 후보는 투표일인 19일 오후 여의도 캠프 사무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어제하고 오늘이 말이 다르면 되겠느냐"며 경선결과 승복 의사를 거듭 확인했다. 유승민 정책메시지 단장 ("박 후보는 져도 당에 남을 것"), 이혜훈 대변인("함께 가는 것은 너무나 기본이기 때문에 안 될 것이라는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등도 이 점만은 명확히 해 두고 있다.

현행 선거법상 경선 출마자의 경우 탈당 후 대선에 독자 출마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탈당은 '무모한 수'라는 것은 일반의 관측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후보 측은 박 후보가 '내용상의 불복'을 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당에 남아 '이명박 흔들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당 내에서 후보를 계속 공격해 지지율을 가라앉힌 다음 '후보 교체론'이 부상하기를 기다리는 목적이다. 1997년 이회창 후보가 경선 후 두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으로 지지율이 급락하자 '후보 교체론'에 시달렸고, 2002년에는 노무현 후보가 지방선거 패배 등으로 지지도가 속락하자 고역을 치룬 바 있다. 1997년에는 제 3 후보로 떠올랐던 이인제 씨가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감행했고 2002년에는 정몽준 후보가 노 후보를 교체할 대안으로 제시됐었다.

박 후보 측이 경선 종반부터 제기한 '본선 완주 불가론'은 그 맹아로 꼽힌다. 홍사덕 선대위원장은 지난 17일 "이명박 전 시장은 '도곡동 땅'과 BBK 금융사기사건 의혹 외에 사법처리가 가능한 선거법 위반 사안이 6건이나 된다"며 "이 후보를 본선 완주가 불가능한 후보"로 규정했다. 경선 후에도 이 같은 주장을 계속하다가 도곡동 땅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발표나 BBK 의혹 관련 김경준 씨의 증거 제시 등 외부변수와 맞아떨어지면 경선 와중 네거티브 공세의 수준을 넘어서는 파급력을 낼 수 있다.

경선 결과도 시빗거리가 될 수 있다. 19일 선거과정에서 기표소 내 촬영 논란을 두고 양 캠프가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 기표소에서 기표 후 투표용지를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일이 발생하자 박 후보 캠프에선 "이 후보 측이 매표정치를 하고 있다"며 대대적으로 반발했다. 박 후보가 역시 "굉장히 우려스럽다. 가장 심각한 일"이라면서 "이런 선거과정을 보면 어떻게 정치를 할 것인지 우려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이 후보 측은 박 후보가 '부정행위→선거무효'의 논거를 구사하며 선거 후 경선불복의 단초로 이번 사건을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이 후보 측은 선거를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에서 박 후보가 "화합"을 다짐하는 대신 부정행위에 대한 경고음을 낸 것을 불길한 징조로 여기는 분위기다. 박 후보 측의 반응을 살펴야할 일이지만 상황에 따라 불법선거 논란이 고소·고발 전으로 번질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이다.

당 내에서는 당원·대의원 선거에서 앞섰지만 일반국민 여론조사에서 뒤짚힌 선거 결과가 박 후보 측의 아쉬움을 가중시켜 승복을 더욱 어렵게 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朴 후보 정치생명 걸린 '고부담 시험대'

박 후보 진영이 이 같은 '내용상의 불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눈앞의 이익은 몇 가지가 된다. 일단 후보 교체론이 부상해 패자 부활전을 치를 수 있다면 최상의 전략이다. 이 후보가 본선에서 패하면 당권은 자연스레 박 후보 쪽으로 기울게 된다. 양대 진영이 날선 대립을 거치면서 '박 후보 측에서는 이 후보가 정권을 잡는 것보다 야당을 5년 더 하는 게 낫다'는 분석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박 후보 측의 막판 탈당 가능성을 전망하는 이도 있다. '흔들기'를 해 보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지지자들을 챙겨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지역주의 극복 등의 명분을 내걸고 범여권과 손을 잡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범여권의 후보가 정해지는 10월께에 영남 세력 끌어안기 노력이 본격화 되면 박 후보 측의 '몸값'이 치솟을 수 있다는 것이다.
▲ ⓒ뉴시스

그러나 이 모든 경우의 수에서 박 후보 개인이 안게 될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전략이 성공할 경우 박 후보 주변이 챙기게 될 실익과 무관하게 원칙론자로서 박 후보가 가진 대중적 매력은 지우지 못할 상처를 입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선거철마다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했던 '박풍(朴風)'도 옛날 얘기가 된다.

70%를 상회하는 투표율로 대변되는 한나라당 경선 흥행 효과도 진흙탕 아래로 고꾸라질 공산이 크다. 속살을 드러낸 구태 앞에선 '정권 교체에 대한 열망'마저 식어버린다면 50%를 넘나드는 한나라당 지지율도 맥없이 빠져들 가능성이 농후이 농후하다.

이처럼 박 후보는 자신의 정치생명은 물론, 이 후보의 당락과 한나라당의 운명이 걸린 갈림길 앞에서 쉽지 않은 선택을 해야할 처지에 놓였다. 승리의 꽃 목걸이를 목에 건 이 후보보다 주먹을 말아쥔 채 연단을 내려선 박 후보 앞에 언론사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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