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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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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288>

멀리 삼신산(三神山)을 바라보며 (상)

일요일 정오, 어둡던 하늘에서 한 소나기가 호쾌하게 내리뻗는다.

순간 하늘로부터 우렁차고 급한 북소리 울리고, 여러 갈래 거센 바람이 길가는 이의 우산을 뒤집어놓는다. 거센 빗방울이 달구어진 아스팔트 위로 세차게 튀어 오르며 희부연 연기를 만든다. 옷을 적시건 말건 놓칠 수 없는 여름날의 화려한 풍광(風光)이라, 한참 넋 놓아 바라본다.

자연의 돌변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서 환타지, 그래서 오늘의 글감은 환타지로 정했다. 복(伏)중에 심각, 진지한 얘기는 더위를 더할 뿐이니.

삼신산(三神山)에 관한 얘기인 바, 이 속에는 우리의 상상을 자극하는 온갖 것이 다 들어있다. 두 번에 나누어 얘기한다.

아주 오래 전, 지금의 발해만 일대, 그러니까 요동반도와 산동반도 사이의 바닷가에 우리 겨레의 조상들이 살고 있었다. 아마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도 더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쓰던 말도 원시 중국어가 아니라 우리말이었다.

그들은 농사와 고기잡이로 생활을 했다. 그렇기에 그들의 문화도 대륙성이 아니라 해양문화라 해야 할 것이다. 해양문화는 대륙문화에 비해 훨씬 풍부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그리스 신화 역시 해양문화의 소산이기에 다채롭다.

무연한 수평선은 사람들의 상상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저 바다 건너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바다 끝에는 땅의 끝을 이루는 험한 낭떠러지가 있는 것은 아닐까? 저 바다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생명체나 존재가 있으리라는 상상 등등.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던 그들은 수평선 저편에 난데없이 커다란 건물들과 산들이 생겨났다 없어졌다 하는 신비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우리가 신기루(蜃氣樓)라고 부르는 것이다.

신기루란 말 자체만으로도 대단히 재미있다. 신(蜃)이란 바다 속에 사는 용으로서 그것이 기(氣)를 뿜어내면 누각이나 산과 같은 형상, 즉 루(樓)를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발해만 일대의 경우, 신기루는 바다위에 생겨나기에 마치 바다의 도시와도 같아서 해시(海市)라고 했다. 이에 해시신루(海市蜃樓)라고 일컫기도 한다.

신기루는 더러 산의 형상을 만들기도 한다. 그 광경을 본 어부들은 그곳이야말로 먹을 걱정, 병 걱정 없는 이상향(理想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제주 어민들의 전설인 '이어도'와 같은 배경이라 하겠다.

그 산들이 나타났을 때, 어부들은 가고자 해도 더러 겁도 났을 것이고 또 다가가서 본들 신기루이니 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더더욱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할밖에.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삼신산(三神山)이다.

그래서 말하기를 삼신산은 멀리 있는 것은 아니나, 접근하려면 안개가 일거나 파도가 거세어져서 섬에 배를 댈 수가 없다는 식으로 설명되기도 했다.

삼신산이라 한 것은 산의 모습이란 것이 주봉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봉우리가 있는 것이니 그래서 삼신산이라 했거나, 신기루가 나타나는 장소가 여러 군데였기에 갑론을박 끝에 세 개의 신산(神山)이 되었을 것이다.
세 산은 이름 하여 봉래(蓬萊)산, 방장(方丈)산, 영주(瀛洲)산이다.

세월이 가면서 점점 얘기는 윤색되어지고 다채로워졌을 것이다. 그 산들에 가면 불로불사의 신선들이 살 것이고, 또 보통 사람도 그곳에 가면 불로불사할 수 있는 영약(靈藥)을 얻어 그들처럼 신선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온갖 신령한 동물들이 그곳에서는 사람과 얘기하고 놀아주기도 할 것이며 사시사철 추위도 더위도 없는 상춘(常春)의 땅일 것이라 여겨졌다.

현실의 삶은 굶주림과 질병, 전쟁과 투쟁으로 가득하기에 그런 이상향에 대한 감정은 더 커져갔을 것이다.

이리하여 동아시아의 신선 사상은 삼신산(三神山)을 중심으로 형성되어갔던 것이고, 그런 신선 사상을 형성한 주체는 우리 조상들이었다.

나중에 우리 조상들은 중국 최초의 왕조인 상(商)나라를 세웠다. 상의 사람들은 그 조상이 태양 새인 현조(玄鳥)로부터 태어났다는 전설을 지녔다.

아울러 발해만 일대에서 떠오르는 태양에 대한 신화인 부상(扶桑)신화도 그들이 만들었다.

열 개의 태양이 바다 가운데의 섬에 있는 부상(扶桑)나무 밑에 있는 함지(咸池)에서 하루에 하나씩 차례로 떠오르는데 어느 날 한꺼번에 열 개의 태양이 뜨는 바람에 세상이 불바다가 되고 이에 활에 능한 장사가 아홉 개의 해를 쏘아 떨어뜨렸다는 후예사일(后羿射日)의 고사가 생겨났다.

수많은 신화학자들이 부상(扶桑)이란 말에 대해 연구를 해왔다. 뽕나무 상(桑)은 그 모습만으로도 태양의 알들이 열리는 모습이라 금방 이해할 수 있었지만, 왜 부(扶)라는 말을 앞에다 달았는지에 대해 알 순 없었다.

그것은 중국말이 아니라 우리말이기에 그런 것이다.

부(扶)란 말은 그것이 우리말의 태양을 가리키는 옛말인 '불'이었기에 그런 것이다. 지금 불은 '타오르는 불'이란 의미로 쓰이지만 원래는 태양 그 자체였던 것이다. 따라서 부상(扶桑)이란 태양나무인 것이다.

우리의 모든 난생설화(卵生說話)에서도 알은 그냥 알이 아니라 하늘의 가장 큰 알인 태양인 것이다.

열 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린 후예(后羿)의 이름에서도 짐작이 된다. 후예란 이름에서 예(羿)는 새의 깃털 우(羽)와 올라간다는 뜻의 승(升)이 결합된 글자이다. 새의 깃털은 새의 상징이고 그 새는 태양 새였던 것이다.

이처럼 동아시아에서 태양 새에 관한 신앙을 가졌던 모든 사람들은 동이족 계통에 속하는 사람이라 후예 역시 우리 갈래인 것이다. 태양 새는 현조(玄鳥)이고 삼족오(三足烏)이며 까마귀이자 까치, 제비인 것이다.

중국 전국시대의 연(燕)나라 역시 발해만 일대에 살던 우리 겨레이며 그들은 태양의 사자(使者)인 제비를 받들었던 사람들이다.

후일 그 지방에 세워진 정권들은 한결같이 연(燕)이란 국호를 썼으며, 또 고구려 왕족들과 잦은 통혼을 통해 우의를 다지기도 했다.

마치 청을 세운 만주족이 몽골 부족들과 잦은 통혼을 한 것과 같으니 이는 그들 사이에 상당한 연결고리가 있었기에 그런 것이다. 이처럼 연과 고구려 사이에도 상당한 문화적 친연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태양 새에 관한 신앙으로 해서 그들은 머리에 새의 깃털을 달고 다녔는데, 고구려 벽화에 그려진 무사들도 그렇고 조선시대 관리들 역시 관모에다가 깃털을 달았다. 이태백이 지은 고구려 무사에 관한 시에도 깃털을 단 씩씩한 고구려 무사라는 말이 나온다.

반면 중국의 무사를 묘사한 그림에는 깃털이 없다. 즉, 신앙의 원형이 다른 것이다.

이처럼 발해만 일대에 살던 우리 조상들은 바다가 주는 자극과 상상을 통해 다양한 전설과 신화를 만들었고 그 중심에 삼신산(三神山)의 신화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삼신산에 가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했을까? 1993년 백제 고분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에 그대로 펼쳐져있다. 이 향로는 박산향로(博山香爐)라는 양식의 걸작품으로서 여기서 박산이란 바로 삼신산을 말한다.

향로의 밑 부분은 용이 떠받들고 있고, 꼭대기에는 봉황이 날개를 펼치고 있다. 그 사이에 23개의 첩첩한 산으로 된 심산유곡에 폭포도 흐르고 있다. 또 악기를 연주하는 신선들과 여러 신령한 동물들이 새겨져있다.

그야말로 선경(仙境)이니 백제의 왕과 신하들은 향로의 그윽한 향내에 취해 삼신산을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삼신산을 묘사한 글 하나를 소개하겠다. 서유기(西遊記)에 나오는 글이다. 책은 한 술 더 떠서 손오공이 태어난 곳이 삼신산의 원줄기인 화과산(花果山)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격을 더 높인 것이다.

책에 화과산은 '삼도지래룡(三島之來龍'이라 적혀있으니, 이는 삼신산을 이루는 용(龍)-여기서 용은 풍수용어로서 산의 능선-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화과산을 묘사한 글은 바로 삼신산에 대한 묘사라고 봐도 좋을 것이니 여기에 옮겨보겠다.

"그 기세와 위엄은 넓고 푸른 바다를 누르고, 은빛 산과 같은 조수(潮水)가 용솟음치니 고기들은 동굴 속으로 숨어든다. (중략)

까마득한 낭떠러지 위에서 채색 봉황이 쌍으로 지저귀고 가파른 절벽 앞에선 기린이 홀로 누웠구나. 산봉우리에는 때로 금계가 우짖고, 석굴에는 해룡의 자태가 서렸구나. 숲에는 목긴 사슴과 영리한 여우 떼가 뛰놀고 나무위에는 영특한 날짐승과 검은 두루미가 깃들었도다.

기화요초(琪花瑤草)는 시들 때가 없고 푸르른 송백(松柏)은 늘 봄날이라. 선도(仙桃) 복숭아는 언제나 열매를 맺고 매끄러운 대나무에는 늘 구름이 서렸도다. (중략)

이야말로 온갖 시내가 흘러드는 곳에 하늘을 받드는 기둥이요, 만겁(萬劫)토록 변함없는 대지의 뿌리로다."

이 글을 백제금동향로에 새겨진 모습과 함께 감상하면 우리 조상들이 그렸던 삼신산(三神山)의 모습을 확연하게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다음 회에 잇기로 한다.

(전화:02-534-7250, E-mail :1tgkim@hanmail.net)
김태규의 명리학 카페 : cafe.daum.net/8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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