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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은 어떤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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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아프간은 어떤 나라?

험한 지형에 강한 자존심...외세 지배 허용 안 해

한국과 아프가니스탄은 닮은 점이 제법 많다. 둘 다 지정학적 요충지에 자리잡아 역사적으로 숱한 질곡과 간난신고를 겪었다. 특히 강대국의 침탈과 내전 등 그로 인한 고통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독자적 정체성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 남았다.
  
  정도의 차이가 크긴 하지만 두 나라는 지금도 내적 불안성 속에 갈등과 대립을 겪고 있다. 한국이 남북분단의 아픔을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면, 아프가니스탄도 종족 간 불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두 나라 모두 자국에 미군이 들어와 있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물론 한국이 서구 가치를 적극 수용하고 경제 성장을 이뤘다면,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 가치를 고수한 가운데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다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봐 닮은 점이 생각 밖으로 많다는 건 아시아권에 속하며 실크로드를 통해 오랫동안 문화적 교류를 해왔다는 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은 무엇보다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에 위치한다는 지리적 특성에서 비롯한 듯하다. 물론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역사를 진취적으로 발전시켰다면 거대한 제국으로 발돋움할 수도 있었다. 그럼 눈물과 투쟁으로 점철된 그들의 수난사를 따라가보자.
  
  ◇ 아프간의 지정학적 위치 = 아프가니스탄은 유라시아 대륙의 정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땅의 넓이는 65만㎢ 가량으로 한반도의 세 배 크기다. 바다와는 1천㎞ 가량 떨어진 내륙국이고, 국토의 절반이 높이 1000m를 넘을 정도로 산악국이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힌두쿠시로 7500m를 헤아리며, 특히 파미르 고원이 연결되는 북동부는 5000m가 넘는 험산들이 즐비하다. 이처럼 험준한 산악지대여서 전쟁이 일어나도 지상군의 행군은 물론 통신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숱한 외침을 물리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자연지형의 도움이 컸다.
  
  아프간은 여러 민족이 함께 어울려 사는 다민족, 다문화, 다언어 국가다. 지배적인 종족이 '아프간족'으로 불리는 파슈툰족으로 50%에 가깝다. 이들은 크게 길자이 부족과 두라니 부족으로 나뉜다. 이어 타지크족이 25% 가량으로 두 번째를 차지하고, 하자라족(10%)과 우즈벡족(8%)이 그 뒤를 잇는다.
  
  지금의 국경선은 19세기 말에 영국이 그어놓은 것이다. 인도를 지배한 영국이 이른바 '듀런드 라인'이라는 분계선을 획정했다. 남진하는 러시아와 맞대결했던 영국은 아프간을 완충지대로 이용한 것이 오늘의 아프간 영토가 된 것이다.
  
  ◇ 종교와 사회 = 인구 약 3천만 명 중 99%가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무슬림이다. 그중 수니파가 85% 가량이고, 시아파는 15% 정도를 차지한다. 전래된 지 1300여년이 된 이슬람교는 5천 개에 가까운 모스크(이슬람사원)가 말해주듯이 주민들의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아프간은 험한 산과 사막이 대부분을 차지해 생활도 고립ㆍ분산적이다. 각 종족이 독립성이 강하며, 전통을 엄격히 준수한다. 생존을 위해서는 상호협력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아프간을 200여년 동안 통치해온 파슈툰족은 용맹성이 세계 어느 민족이나 종족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 수차례 아프간을 점령했다가 패퇴한 영국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끈질긴 민족'이라며 치를 떨 정도다.
  
  '파슈툰왈리'라는 엄격한 행동규범을 추종하는 이들은 명예를 매우 중시한다.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모욕을 당하면 반드시 복수하며 자기가 못하면 대를 이어서라도 한다. 즉, 파슈툰의 불문법인 파슈툰왈리 중 첫번째가 '바달(badalㆍ복수 또는 응징)'인 것이다. 이들에게 남성의 수염은 지혜와 용맹, 강인함을 상징한다.
  
  또한 이들은 매우 친절하다. 불문법의 두 번째가 '환대'라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다시 말해 자신들이 부당하게 모욕당하거나 공격받을 경우에는 매우 공격적으로 저항하나 그렇지 않을 때는 더없이 친절하다.
  
  ◇ 근대의 수난과 저항 = 동서문명이 만나는 십자로에 위치한 탓에 아프간 사람들은 편할 날이 드물었다. 외침의 연속이었고, 그에 따른 내전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침략군의 무덤'이라는 용어가 함축해주듯이 외국군은 철저한 바달의 대상이 돼 쫓겨가곤 했다.
  
  근래 들어 아프간을 괴롭힌 대표적 나라가 영국이었다. 한때 '팍스 브리태니카'를 구가하던 영국은 아프간을 놓고 러시아와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을 벌이는 상황에서 아프간 내정에 지속적으로 간섭하며 세 차례의 전쟁을 치렀으나 모두 실패하고 물러섰다.
  
  1839년에 시작된 제1차 앵글로-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칸다하르에 근거지를 둔 아프간군의 대공세 속에 4500명의 영국군과 1만2천 명의 지원인력이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이 궤멸되면서 막을 내렸다. 물론 영국이 세운 허수아비 정권의 수장도 살해의 운명을 맞았다.
  
  영국은 1879년 또다시 침공해 패배를 설욕코자 했으나 완강한 저항에 밀려 이듬해에 철수했고, 1919년에 3차 앵글로-아프간 전쟁을 벌였지만 역시 실패하고 아프간의 독립을 허용하는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영국과 이 지역의 패권을 다투던 러시아의 잇단 침공도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이들은 영국이 쫓겨난 사이인 1865년과 1885년에 아프간을 차지하려 했으나 '복수의 화신'들에게 끝내 잡아 먹히고 말았다.
  
  ◇ 현대의 수난과 저항 = 1964년 절대군주제를 폐지하고 아프가니스탄공화국을 선포했지만 배후조종과 직접침략 등의 방법으로 옛 소련의 내정간섭은 집요하게 이뤄졌다.
  
  1973년 쿠데타의 배후인 소련은 내전으로 혼란이 거듭되는 아프가니스탄을 평정키 위해 1979년에 군대를 동원해 개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아프간 사회의 전통적 반외세 감정에 불을 붙였고, 이슬람 세력을 중심으로 한 대중적 저항이 날로 거세졌다.
  
  결국 소련은 아프간 저항군인 무자헤딘(이슬람 전사)들에게 5만 명의 병력을 잃고 1989년에 철군해야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세기에 영국이 침략과 패배를 거듭하면서 '팍스 브리태니카'의 종언을 재촉했듯이 소련도 아프간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다가 체제붕괴라는 최악의 운명을 맞아야 했다.
  
  소련군이 물러가고 그 허수아비격인 나지불라 정권도 무너졌으나 평화는 오지 않았다. 7개 단체로 구성된 무자헤딘 연합 정부는 치열한 내분과 갈등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아프간은 극도의 혼미 상태로 다시 빠져들었다.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한 무장종교그룹 탈레반이 등장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탈레반은 파죽지세로 진격하며 수도 카불을 점령해 1996년 정권을 수립했다. 그리고 철저한 이슬람주의를 관철시켰다. 그러나 2001년 9.11테러를 계기로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하면서 탈레반은 카불을 내주고 칸다하르 중심의 산악전과 게릴라전으로 전환했다.
  
  당시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 조직을 9.11의 배후주범으로 간주했고, 아프간은 이들을 비호하고 있다는 이유로 1차 공격대상이 됐다. 미국은 소련이 그랬듯이 대규모 군대를 진주시키고 하미드 카르자이를 수반으로 한 친미정권을 출범시켰으나 탈레반은 소멸되지 않은 가운데 반격의 공세를 날로 강화하고 있다.
  
  ◇ 저항과 반격의 힘 = 소련군 침공에서 현재까지 28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프간은 국토가 극도로 피폐해지고 민생 역시 도탄에 빠졌다. 거의 날마다 폭탄테러가 발생하고 탈레반과 미군의 전투도 계속돼 살상과 부정부패가 일상이 돼버렸다.
  
  이런 가운데 아프간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탈레반에 들어가거나 반대로 아프간 경찰에 취직하기도 하며 가족간, 부족간, 종족간 갈등과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지난해만 4천여 명이 사망했다는 보도는 아프간이 말 그대로 지옥도를 연출하고 있음을 웅변해준다.
  
  미국이 아프간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파슈툰족 등 아프간인들의 자존심이 세계 어느 민족보다 강하다는 점을 꼽아야 할 것 같다. 이들은 군사력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세지만 벌써 6년 넘게 끈질기게 버텨내고 있다. 전쟁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 게릴라전의 귀재가 된 이들 탈레반은 소총은 물론 견착식 박격포를 들쳐 매고 산악지대를 평지처럼 뛰어다닌다.
  
  이들에게 저항의 연료를 제공하는 것은 뜻밖으로 미국일지 모른다. 확실한 근거없이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희생양으로 아프간을 몰아간 데 대한 반감이 워낙 거세다는 얘기다. 이는 바달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아프간인들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모욕으로, 이 모욕감은 탈레반의 지원자를 꾸준히 늘려가는 요인이 되고 있다.
  
  '자존심의 문명-이슬람의 힘'의 저자인 권삼윤 씨에 따르면, 1980년대 아프간 전쟁에 참가했던 한 소련군 장교는 "아프간 병사들은 내가 20년 동안 전선에서 마주친 어떤 병사들보다 뛰어났다. 미국, 러시아는 물론 유럽의 어떤 나라도 섣불리 덤볐다간 파멸의 벼랑으로 몰릴 것"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이 장교는 "그들은 공격을 당해 쓰러져서도 총을 부여잡고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쏘아대는 무서운 병사들이다. 그들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고 회고했다.
  
  이와 관련해 유달승 한국외대 이란어과 교수는 "이슬람 경전인 코란의 화장실 투기사건 등 미군의 잇단 반이슬람 행위를 계기로 반미 분위기가 최근 고조되고 있다"며 "한때 붕괴직전까지 갔던 탈레반이 이런 민심을 바탕으로 힘을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7월 29일 방영된 'KBS스페셜'의 '2007 아프간-지독한 전쟁'편 제작진도 탈레반을 제거하려는 6년 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탈레반 세력은 강해지고 있으며 민심은 미군과 그 연합군에서 등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제작진은 미군이 민간인 사상으로 이어지는 야간 공격을 무차별로 퍼붓고 이슬람 전통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가택수색 등을 함으로써 그 같은 방식에 배신감을 가진 주민들이 탈레반에 대한 우호적 동조로 돌아서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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