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인질이 또 살해됐다는 비보를 틈타 이명박 후보 측이 즉각 '몸사리기'에 들어갔다. 아프간 사태가 이 후보 측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박근혜 후보 측과의 전면전을 피해갈 외부적 명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지지율 면에서도 박근혜 후보와 10%포인트 이상 격차를 벌여놨다는 자신감이 이 후보 측의 여유 있는 보폭 조절을 가능케 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명박 후보, 며칠 간 언론 노출 않기로"
이 후보는 이날 오전 '글로벌 청년리더 10만 명 양성계획'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을 잠정 순연했다.
전직 공관장 17인을 비롯한 각계 인사 200여 명이 연달아 기자회견을 열어 이 후보 지지를 선언했지만 이 후보는 기자회견장에 나와 보지도 않았다.
박형준 대변인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여러 가지 힘든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 만큼 후보는 며칠 간 일체 언론 노출하지 않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지지를 선언한 청년 문화예술인 85명은 이 후보에게 '흘러라 청계천아'란 노래를 헌정할 예정이었지만 이 역시 아프간 발(發) 비보를 의식한 캠프 측의 만류로 취소됐다. 공연을 위해 검은 정장 차림으로 연단에 섰던 성악가들은 악보 대신 기자회견문을 읽는 것으로 행사를 갈음해야 했다.
연일 논평을 쏟아내던 대변인실도 이날만은 침묵을 지켰다. 박 후보 캠프 측에서 "역전했다"며 목청을 높여도 이 후보 캠프에서는 장광근 대변인이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라 의아하다"란 구두 논평을 남겼을 뿐 정면대응은 삼가는 분위기다.
대신 이 후보는 평소 친분이 있던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셰이크 모하메드 두바이 통치자 등 이슬람 국가 지도자들에게 협력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내는 등 짐짓 아프간 사태 해결에 진력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아프간 덕 보나'…朴 캠프 '촉각'
이 후보의 여유 있는 행보에 박 후보 측은 조바심을 내는 분위기다. "아프간 사태에 대한 정치 이해득실을 따지지 말라"는 박 후보의 지시 탓에 공개적인 언급은 피하고 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이 후보가 아프간 사태 덕을 보고 있다"는 푸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이 후보의 재산 의혹 관련 공방이 정점에 달했을 때 아프간 사태가 터져 초점이 흐려진데다가 한나라당 합동 유세와 TV 토론회 등에 대한 주목도도 떨어져 박 후보가 막판 스퍼트를 올릴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홍준표 후보 역시 아프간 사태의 악화와 장기화가 이 후보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홍 후보는 30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한나라당 경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조금 줄었다. 이런 식으로 밋밋하게 경선이 가게 되면 조직 활동에 앞선 이명박 후보에게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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