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지도부와 경선관리위원회가 23일 하루 앞으로 다가온 광주전남 합동연설회를 포함한 모든 연설회·유세 일정을 무기한 중단하기로 전격 결정하면서 한나라당 경선 레이스가 또 다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지도부와 경선관리위원회는 22일 제주 지역 연설회에서 이명박-박근혜 양 후보 지지자들 간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 상황에서 특별한 대비책 없이 광주 행사를 강행할 경우 인명피해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연기를 결정했지만, 박 후보 측은 최근 박 후보가 상승세를 탄 상황에서 리듬을 끊어놓기 위한 이 후보 측의 책략에 지도부가 동참한 것이라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불상사 방지 대책 마련 후 연설 일정 속개"
이날 오후 긴급히 소집된 한나라당 경선관리위원회는 2시간여의 논의 끝에 이날 이후 예정된 모든 합동 연설회 일정을 중단키로 결정했다.
최구식 선관위 대변인은 "어제 제주 연설회에서 본 것처럼 각 캠프 간 과열경쟁이 심각한 상황이라는데 모두가 인식을 같이 했다"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조치를 취한 후 연설회 일정을 속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각 후보 캠프에서 지지자들 간 과열 경쟁을 방지하고 소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서약서를 받은 후, 나머지 12개 지역 유세 일정을 재확정 하겠다는 것.
최 대변인은 "경선 12일을 남겨두고 양 캠프 간 서약서 제출이 끝나면 유세를 다 마칠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 결정이 안 되면 일정이 줄어들 수도 있다"며 연설회와 유세가 속개되더라도 그 일정이 축소될 수 있다는 데에 여지를 두기도 했다.
홍사덕 "용납할 수 없는 사당화 기도"
제주 연설회에서 이명박-박근혜 지지자들 간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 것이 불미스러운 일이었다는 데에는 양대캠프 모두 이론이 없으나, 경선이 29일 남은 가운데 지도부가 나서서 유세일정을 모두 철회한 것 역시 이례적인 극약처방으로 여겨진다.
이에 박 후보 캠프에서는 이 후보와 지도부 간의 '교감' 가능성을 거론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날 저녁에 소집된 긴급 선대위회의에서는 지도부 결정에 대한 맞대응으로 경선 일정 연기를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홍사덕 박근혜 후보 캠프 공동 선대위원장은 당 선관위 발표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당화 기도"라며 "당을 어지럽게 만드는 이러한 작태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맹비난했다.
홍 위원장은 "60, 70년대 토목공사 수주경쟁이 추잡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공당의 경선절차를 이렇게 휘젓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천재지변도 아닌데 일정을 중단한다는 게 무슨 말이냐"고 비꼬았다.
홍 위원장은 "이 모든 요구가 어느 캠프 때문에 시작되고 결론이 난 것인지 여러분도 잘 알 것"이라며 "이명박 후보는 국민 앞에 나서는 것이 그렇게 자신이 없다면 민주정당의 합의된 절차를 방해할 게 아니라 다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해, 아예 당 선관위의 결정에 이 후보 측 입김이 작용했다는 박 후보 측의 '심증'을 기정사실화하기도 했다.
親 이명박 계 "연설회 중단" 지도부에 압박
경선관리위원회에 앞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후보 측 인사들이 연설회 연기를 강도 높게 요구한 것은 박 후보 측의 '심증'에 신빙성을 더하는 요소다.
이 후보 캠프에서 사실상 선대본부장 역할을 맡고 있는 이재오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어제 유세장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었다"며 "내일은 1만3000명 정도의 선거인단이 있는데 3000명밖에 들어갈 수 없는 유세장이라면 어떠한 사태가 일어날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병석 원내수석부대표 역시 "지금 현재 특별히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제한도 없는 상태에서 내일 광주 행사를 그대로 치르게 된다면 싸움이 날 것"이라며 "1만 여명이 들어올 수 있는 연설회장을 새로 구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에 강재섭 대표최고위원은 "어제 현장에서 박관용 위원장이 어제의 사태를 보고 취소까지 고려하자고 말했다"고 밝혔고, 최고위원회가 선관위에 광주·전남 연설회 연기 검토를 요청한 결과 연설회 전체 일정의 무기한 중단이란 유례없는 처방이 내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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