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성공회대 김민웅 교숩니다. 김민웅 교수는 1956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61년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79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코리아타임즈 기자로 일하다가 82년 정치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델라웨어대학교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이후 미국에서 목회자, 언론인, 국제문제 전문가로 활동했고 미국의 대외정책과 한미 간 미래지향적 관계에 대해 연구했으며 2000년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교에서 윤리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04년 귀국해 현재 성공회대학 사회과학정책대학원에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변화과정을 분석하는 '세계체제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자유인의 풍경'이란 책을 이번에 내셨어요. 우선 축하드립니다. 우선 책을 보니까 지금까지의 여느 책과는 다르던데, 지금까지가 세계적인 문제에 관한 딱딱한 책이었다면 이번에는 이런 표현이 적당할지 모르지만 내용도 말랑말랑하고 그림이 많이 들어가 있더라구요. 그림을 직접 그리셨다고 들었습니다.
김민웅 : 그랬어요. '자유인의 풍경'은 기본적으로 시, 소설, 연극, 영화, 신화, 철학,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도대체 인간에게 주어질 수 있는 행복이, 희망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는 내용을 담아 봤어요. 그리고 그림도, 삽화 형식입니다만 그림을 보면서 함께 좀 생각해 보고 행복한 기억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했습니다. 인문학이 요새 위기다 뭐다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만 보통의 사람들한테 다가갈 수 있는 소재나 영역을 통해서 좀 본질적인 질문들을 편안하게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을까, 이런 생각이었죠.
박인규 : 책을 보면서 저는, 성공회대에 계시죠.. 신영복 선생님이 내신 여행기를 보면 본인의 글과 함께 그림을 많이 그려 놓으셨는데 상당히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혹시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으신 건 아니신가...
김민웅 : 그런 건 아니구요 원래는 그냥 책에 글만 내놓기로 했었던 건데, 사실은 제가 2004년도에 귀국해서 EBS에서 김민웅의 월드센터라는 시사방송을 진행하는 가운데 마지막 3분에서 5분 정도 에세이를 방송했어요. 그것을 또 진행자이신 박인규 선생께서 대표로 계신 프레시안에서 정리를 해서 올렸죠. 그걸 다시 또 내용을 보강해서 글을 만든 겁니다. 어쨌든 그림을 실을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한길사 김언호 대표께서 삽화를 좀 넣자. 그래서 가져왔는데 내가 그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그려서 보여드렸더니 좋다고 시작을 했는데, 그렇게 그려보게 됐네요. 굉장히 즐거웠어요.
박인규 : 교육방송에서 방송하시는 것, 프레시안에 연재한 것보다는 훨씬 내용이 길어지고 깊이가 있어졌던데, 그런 식의 책을 내게 된 특별한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나요?
김민웅 : 방송을 할 때나 프레시안에 정리해서 내놓을 때도 늘 생각했던 게 뭐냐 하면 아까 딱딱한 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내지 않았느냐 하셨지만, 제가 성장과정에서 가장 먼저 늘 기쁘게 생각하면서 활동했던 영역이 인문학이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사실. 시 쓰고 평론 쓰고 문학 하고. 또 우리 세대가 그런 인문주의적 영향력에 의해서 성장한 세대라고 얘기할 수 있는데 그런 걸 최대한 나눠보고 싶었고. 또 그 다음 여러 가지 정세의 변화에 대한 얘기를 하지만 늘 아쉬웠던 것은 그 안에서 인간의 소중한 여러 가지 삶들이 있지않습니까? 이걸 드러내는 데에는 사회과학적 표현이라는 것이 좀 아쉬운 점이 많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방송을 통해서도 그걸 좀 되살리고 싶었고 그 결과가 아마 '자유인의 풍경'이라는 책으로 나온 것 같아요
박인규 : 사회과학 전공하시는 분 책 치고는 상당히 사람냄새 나는 책을 쓰셨는데, 혹시 그건 미국에 계시면서 교회 목회 활동을 하시던 경험이 많이 작용한 거 아닌가요?
김민웅 : 물론 그것도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서, 목회라는 건 사람들의 고통을 늘 경청하고 함께 마음을 나누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게 일종의 훈련이 되긴 했겠죠. 그러나 또 평소에도 늘 제가 바라던 삶 자체가 '자유인의 풍경'에 나오는 삶의 내용이에요. 주로 제가 해왔던 것이 세계 체제, 국제정세에 관한 얘깁니다만 결국 그것은 사람들이 정말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게 아주 구체적으로 마음을 나누는 소통의 과정이나 그것을 표출할 수 있는 표현의 양식이 굉장히 많은데 그런 것은 빠진 채로 구조의 문제, 정서의 문제, 이렇게 하다 보면 아무래도 좀 삭막하지지 않겠어요? 진짜 필요한 것은 빠져 버리는, 그러니까 늘 좀 함께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죠.
박인규 : 책이 나온 지가 한 일주일 남짓 된 것 같은데 주변에서 반응 같은 건 좀 오나요?
김민웅 : 제가 얘기하기 쑥스럽긴 합니다만 우선 내용을 보기 전에 그림을 보고, 어? 그림도 그렸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우선 1차적인 반응인 것 같구요. 읽으신 분들은 나름대로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시는 것 같아서 저도 격려가 됩니다.
박인규 : 개인적으로 다는 못 읽어봤습니다만 최근에 읽어본 책 중에 인상깊었던 게 이번에 '자유인의 풍경'이라는 책하고 올 초인가요 진중권씨가 쓴 '호모코리아니쿠스'라는 책이었는데 공통점이 이거였던 것 같아요. 인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느낀 게 어떤 거냐면 박노자라는 분이 우리나라 문학작품을 얘기하면서 제3세계 민중들의 고통 이런 것들을 역사와 사회에 기대서 많이 얘기하는데 사람에 대한 성찰은 좀 단순한 것 같다. 깊이가 상당히 떨어지는 것 같다는 말씀을 했거든요. 그런데 진중권씨 책이나 이번에 김민웅 교수님 책을 보면 역사와 사회의 문제를 얘기하면서도 바로 사람의 문제를 얘기했다는 측면에서 우리 사회과학도 상당히 좀 깊이를 가져가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김민웅 : 그렇게 읽으셨군요. 저는 평소에 늘 어떤 생각을 하는가 하면, 실존과 역사가 만나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실존을 강조할 때는 어떤 큰 흐름이나 방향을 잃기 쉬울 것 같고, 역사만을 얘기하게 되면 구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삶을 얘기하는 데 있어서 아무래도 부족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역시 초점은 실존하는 인간인 것 같아요. 그것이 어떠한 역사적 상황에 놓인다 하더라도 사람으로서 바라는 갈망이라는 게 분명 있는 것이고. 그것은 아주 오래 전에 살았던 사람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놓여있는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서 성취하는 방식도 달라질 것이고 하겠습니다만, 또 그것을 처리하는 자세도 다르긴 하겠습니다만. 그란 우리가 과거의 오랜 작품을 읽고 공감하는 것을 보면 사람이 갖고 있는 본질적 갈망이라는 게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것이구요. 그런 뜻에서 사회과학도 사실은 인문주의적인 방향으로, 인문학적인 서술로 쓰는 방식도 한 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럴 때에 사회과학적인 분석 이런 것이 보통의 대중들에게 이건 내 얘기네, 절실한 얘기네, 하고 공감을 하고 함께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진정한 힘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박인규 :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의 위기다. 인문학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얘길 많이 하는데, 이런 식의 비교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김민웅 교수께서는 미국에서 한 20년 동안 살아오셨어요. 귀국할 수 없어서 못 오신 적도 있었지만, 어떻습니까... 우리 사회의 풍토를 보면서 우리 학문이 좀 파편적이다. 심지어는 좀 식민지성이 있다는 얘길 하는데, 국내에 들어와서 활동해 보시니까 국내의 학문상황이랄까, 어떻게 보십니까?
김민웅 : 딱 그렇게 얘기를 던지면 너무 비판적인 얘기가 될 것 같아서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느낀 대로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이런 내용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에 '자유인의 풍경'을 통해서 제가 얘기하고자 했던 것도 그런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는데, 여러 분야를 전방위적으로 다가가서 그것을 소위 이것도 알고 저것도 알고 하는 얕은 수준의... 딜레당트라는 말을 쓰는데, 그런 게 아니고 각 분야의 나름대로 전문적인 핵심에 다가가는 노력들을 오랫동안 축적해야 된다고 저는 봐요. 그렇게 해서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 유기적으로 하나가 돼서 뭔가 흐름이 있는 얘기를 던질 수 있겠죠. 저는 돌아와서 기대했던 것은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이 전방위적으로 경계를 넘나들면서 뭔가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 것이 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구요. 사실 원래 이런 전방위적인 삶이라는 건 원래 우리나라에 있었던 거거든요.
또 하나는 이런 것이 정말 절실한 우리 삶의 문제와 맞닿아서 계속 던질 수 있는 것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예를 들어 이런 것... 최근에 보면 프랑스철학 같은 게 상당히 많이 유행하지 않습니까? 일본의 지식인들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자만 일본 지식인의 경우나 미국 지식인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좀 주목될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요새 데리다, 들뢰즈 얘기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푸코라든가.. 이럴 때에도 프랑스의 상황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그것이 우리의 삶과는 어떻게 이어지는 거지? 이 질문이 우리한테 무슨 필요가 있는 거지? 해서 파고들어가야 되는데 프랑스에 가서 그냥 프랑스에 머물다가 오는 게 아닌가. 일본의 지식인들 보면 프랑스에 가서도 반드시 일본으로 돌아오고요.
미국 지식인들도 보면 다른 나라의 여러 가지 지적 상황에 대한 걸 고민하면서 다시 또 미국으로 돌아오고. 그러니까 어디로 가든지 잃지 않고 자기 길로 돌아오거든요. 그래야만 이런 화두나 질문이나 고민이 우리의 피와 살이 되는 거 아니냐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그런 게 좀 아쉬워요. 그래서 이런 결과가 예를 들어 논술교육 같은 경우에도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아이들한테 최근에 해체주의까지 질문을 던지는 논술문제가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게 도대체 아이들한테 행복이나 장래 꿈이나 갈망이나 고민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설명이 하나도 안 되거든요.
박인규 : 전방위적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이 필요하고 자기의 문제를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김민웅 교수 같은 경우 언론인도 해보셨고, 목사도 해보셨고 교수도 해보셨고 방송인도 해보셨고 그런 경험이 약간은 유리하게 작용한 거 아닙니까?
김민웅 :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까 우리의 삶의 경험 가지고 얘기했지만, 멍석 펴고 놀고 노래를 부르면 가수가 되기도 하는 거고, 또 거기서 담소를 하면 이야기꾼 되기도 하는 것이고, 다 우리 삶의 내용이거든요. 거기 모여서 시를 한 수 지으면 문학이 되는 것이고. 이런 다양한 삶의 행복함을 누릴 수 있는 문들이 굉장히 많은데 우리가 너무 차단하면서 사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자유인의 풍경'에 보면 그림 하나가 '세상의 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만 소라, 깃털, 호랑이 가죽, 또 나무 나이테, 몇 가지 그림을 그렸는데, 그리면서 느꼈던 것이 세상에서 자기 존재를 표현하는 무늬라는 게 이렇게 다양할 수 있을까. 이렇게 섬세하게 여러 가지 다양한 개성들을 나타낼 수 있을까, 이런 걸 느꼈어요. 역시 마찬가지로 사람 사는 모양도 계절에 따라서, 시기, 성장과정에 따라서 여러 가지 무늬를 표현할 수 있는 내면적인 본질적 힘이 있다고 저는 믿는데 그런 것들이 최대한 발휘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 그래서 너무나 틀에 묶여 버린, 최근에는 그 틀을 벗어나려고 하는 젊은 세대들의 여러 가지 노력들이 있긴 합니다만 그것도 추세에 따라가는 모습이 있어서, 정말 개성적이고 또 뭔가 특별하고 그러면서도 모두의 행복과 연결되는 그런 모색도 해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어요.
박인규 : 이 책을 쓰시면서 아무래도 젊은이들을 많이 염두에 두신 것 같은데, 한 인터뷰에서는 이 책을 통해서 젊은이들에게 대안적 상상력을 제시하고 싶었고 경계를 넘어서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젊은이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기를 바라십니까?
김민웅 :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정말 행복한 게 뭐지? 그리고 절망할 때는 어떻게 절망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지? 그리고 용기가 없을 때는 어떻게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가령 이리로 가고 있다고 한다면 자기의 선택은 꼭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인가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죠. 그리고 보통 아주 상식적으로 주어지는 지식들이 있는데 그것도 한 번 다르게 좀 뒤집어 보면서 아주 창의적인 발상도 좀 해보고. 그럴 때에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내용이 훨씬 다양해지고 선택할 수 있는 용기도 아주 자유롭게 펼쳐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박인규 :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한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어떤 지식인이든 사람이든, 자기의 경험이 삶에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군요. 개인적인 질문도 좀 드려보고 싶은데요, 56년 일본에서 태어나서 61년 한국에 돌아왔어요. 그 당시의 경험이 본인의 삶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던데...
김민웅 :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마침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이 좀 나이가 드신 분이에요. 의사소통에 있어서는 그분이 많이 도움을 주셨는데 그런 속에서 상처를 많이 받죠 아이가. 내가 어디 속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잘 모르겠고. 돌아와서 한국이 하난 줄 알았는데 두 개더라구요. 남과 북. 그런 상황도 상당히 황당했고. 같은 말을 쓰고 있는 것 같은데 서로 아주 맹렬한 비난을 하는, 그런 것도 차차 알게 됐죠. 정리가 안 되는 거예요 도대체. 그러한 상황이 저한테 민족이 뭐지? 하는 것에 대한... 최근에 민족에 대한 논쟁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긴 합니다만, 실존과 깊이 맞닿아 있는 문제에요.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내가 누군지를 해명할 수 없는 샹황이죠.
박인규 : 말하자면 어렸을 때부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군요. 그런데 미국에 가셔서 처음에는 정치철학을 공부하러 가셨는데 신학을 하셨고, 미국에 대한 공부를 굉장히 오래 하셔서 지금 국내에서는 몇 손꼽히는 미국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데, 미국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고민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김민웅 : 일본 문제가 아주 깊이 고민되면서 우리 역사를 새롭게 이해하는 과정이 저한테 있었어요. 초등학교 시절이었지만 제 나름대로는 역사와 관련한 책들을 열심히 보면서 도대체 이게 뭔가 생각을 많이 하게 됐고, 그러면서 우리의 처지에 대한 일정한 각성들이 생기기 시작한 거죠. 성장하면서 보니까 박인규 선생께서도 아시지만 미국과 우리와의 관계가 만만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미국에 갔을 때는 미국 공부를 하려고 갔던 것은 아니에요. 당시 대학에서 공부했던 우리 세대들은 당시 읽지 못하게 한 책들이 많았기 때문에, 가서 그 책들 좀 보자 했는데 막상 가서 미국의 현실을 보고 미국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우리가 새롭게 보이더라구요. 80년대 해방 전후사의 인식 같은 책도 나와서 한미관계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있긴 했습니다만 그것은 주로 우리와 미국의 접촉면에 대한 역사였죠. 미국의 역사가 내적으로 또 세계 체제로 성장 발전하면서 어떤 고민과 움직임들을 보여왔는가를 하나씩 점검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면서 20세기와 21세기에 미국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인류가 나가는 길에 대한 줄기가 분명한 고민을 하기는 쉽지 않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 문제에 깊이 다가가게 된 거죠.
박인규 : 우리 사회에서 미국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라고 할까요? 80년 광주항쟁이 한 번 있었다면 그 다음이 2002년이었다고 기억되는데 그 당시를 빌어서 특히 노무현 대통령 같은 분은 미국에 대해서 할 말을 하는 분이다. 이런 것이 대통령 당선되는 데 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의 행보를 보면 많이 달라진 것 같다는 평가들이 많구요. 특히 한미FTA에 대해서는 일부에서는 이상하다는 얘기까지 나오는데 노무현 정부의 미국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보세요?
김민웅 : 저는 그 부분은 상당히 비판적으로 보고 있어요. 미국에 대해서 너무 잘 모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구요. 대통령 자신이 미국에 대해서 잘 몰랐다는 얘기를 했었습니다만, 그래서 처음에는 상당히 비판적인 언사들을 냈죠.
박인규 : 사진 찍으러는 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취임 3개월 돼서는 미국에 가서...
김민웅 : 갔다 와서는 압도당한 느낌을 받았던 모양이에요 제가 보기에는. 미국이 그런 면모가 분명 있죠. 강대국이니까, 또 워낙 갖고 있는 게 많으니까 생각보다 좀 그러네. 과거 생각했던 것처럼 맞상대하기는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미국은 두 가지 면모를 극명하게 갖고 있는 나라라고 저는 봅니다. 19세기 이후부터 제국이라는 형태로서 세계를 제패하는 패권국가로서의 면모를 가지면서 그 영향권에 들어있는 나라의 민중들에게 많은 고통을 줘왔던 역사가 있죠. 지금도 그런 면모가 있구요. 또 다른 한 면에서 보면 미국의 건강한 역량을 지켜내는 힘도 있거든요. 이 두 가지를 아주 균형있게 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와 미국의 관계에 있어서 바로 이러한 비판적으로 봐야 할 부분에 대해선 아주 분명하게 보면서 극복의 대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구요.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20년 동안, 정확히는 23년 있으면서 배운 바가 참 많아요. 제가 오늘날 미국에 대해 여러 가지 얘기를 하는 것은 미국 안에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미국이 인류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이 뭔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노력들이 이뤄졌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건데 그것을 깊이 우리가 성찰해서 자산으로 삼게 된다면 아마 우리한테도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박인규 : 그렇지만 한국사람 입장에서 보면 일제로부터 해방을 비롯해서 6.25를 지나, 또 경제성장에 이르기까지 미국하고 친해서 우리가 손해 본 게 없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한미FTA도 되면 우리가 득이 되면 됐지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은 것 같은데, 김민웅 교수께서는 한미FTA를 반대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어요. 그 이유가 뭔가요?
김민웅 : 기본적으로 이런 거예요. 나라들이 서로 친하게 지내면 다 좋은 거죠. 그런데 국제현실이라는 게 단순하지가 않구요. 그동안 마치 미국과의 관계가 우호적인 상태가 지속되면서 우리가 얻은 게 많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빼앗기는 것도 적지 않게 있거든요. 이런 것들은 잘 드러나지 않고 언론들도 얘기해 주고 있지 않죠. 이런 실상들을 명확하게 알게 되면 보통의 국민들도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한 마디로 FTA라고 하는 것은 흔히 얘기하기를 미국의 선진적 시스템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우리도 그만큼 선진화되는 게 아니냐, 이런 논법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만 내용을 명확하게 들여다 보면 이런 것이 있어요. 미국에서는 하지 못하는 것을 여기서는 하는 것이 굉장히 많아요. 금융이나 이런 것에서 미국은 의외로 규제가 굉장히 심합니다.
쉽게 하지 못하구요. 식품안전 관련해서도 굉장히 엄격하죠. 미국에서의 시장경제라는 건 어떤 공정성이라든가 일정한 틀을 벗어나면 다시는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징벌을 가하는 법적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면 FTA시스템이라는 것은 규제를 해체하고 미국의 자본이 한국시장에서 힘을 갖도록 만들어 주는 장치가 꽤 있죠. 미국에서도 하기 힘든. 그러니까 미국의 선진시스템이 도입되는 측면보다는 미국에서 하지 못하는 것까지 할 수 있게 해주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만큼 우리는 많은 걸 내줘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미국시장에 우리가 가서 판을 좀 벌이면 괜찮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을 하는데, 그쪽에서도 여기 오거든요. 그러면 만약 이쪽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경제적 역량이 약하게 될 때는 뭘 가지고 미국시장에 갈 것인가도 한 번쯤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박인규 : 저희 얘기가 처음에는 인간에 대한 성찰로 시작해서 미국에 관한 문제, 한미FTA까지 왔는데 사실 이게 다 관련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은데요, 앞으로 우리 사회의 지식인의 한 분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 설명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민웅 : 우리 사회가 인간의 행복을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모색하는 노력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진보, 보수의 대안경쟁도 필요한 것이구요. 또 진보는 진보대로 정말 보통의 사람들의 삶에 깊이 다가갈 수 있는 노력들을 무한히 해야 될 것 같구요. 또 보수는 보수대로 역사에 대해서 좀 더 정직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이것은 맨 처음 얘기했던 것처럼 실존과 역사가 어떤 방식으로 만나느냐 하는, 그런 좀 추상적인 논의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모두가 정직해 보자는 것이죠. 그리고 대중들의 갈망에 대해서 좀 진정하게 경청해 보자는 것이죠. 이런 것을 위한 교육도 굉장히 필요한 것이구요. 그래서 진보나 보수가 한국 사회의 향방을 놓고 정말 진지하게 힘께 모여서 얘기해 보는 기회가 앞으로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여기에 기여할 수 있는 노력들이 있다면 해보고 싶구요.
보다 본질적으로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자유인의 풍경'을 출간하면서 마음속에서 기원하는 바입니다만, 우리나라에 필요한 인문학 운동을 새롭게 펼쳐나가는 노력들을 좀 해봤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이런 데 관심갖고 있는 지식인이나 활동가들, 또 보통의 대중들이.. 보통이라고 말하면 좀 구별하는 듯한 느낌을 줘서 죄송한데 그런 건 아니고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의 생활인들로서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인문학.. 하면 동양고전, 서양고전, 이것부터 시작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접근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대중의 문화, 시, 소설, 연극, 영화,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걸 함께 나누면서 본질적인 질문에 아주 깊이 육박해 들어갈 수 있는 그러한 성찰의 힘이 사회적으로 성장하게 된다면 이것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논의를 보다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박인규 : 한 촌로가 쓰신 책 이름이 '혼자만 잘 살면 뭔 재민겨'라는 책이 있답니다. 사실은 어떻게 보면 우리의 태도일 것 같은데, 모두가 잘 살 수 있고, '자유인의 풍경'에서 말씀하신 그런 사회가 될 수 있는 시작이라고 생각되구요. 앞으로도 계속 많은 역할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민웅 : 고맙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성공회대 김민웅 교수를 초대해 우리 사회 인문학이 위기를 맞은 이유는 뭔지 신간 ''자유인의 풍경''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뭔지 얘기 나눴습니다.
* <자유인의 풍경: 김민웅의 인문학 에세이> 출간 기념 "북 콘서트"가 7월 20일 오후 8시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 있는 책방 "이음아트"(02-745-9758/blog.naver.com/eumart)에서 열립니다. 낭독과 음악, 그리고 김민웅 교수의 "유쾌한 삶, 인문학의 즐거움" 강연이 있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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