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를 1년 반 남겨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에 대한 탄핵 요구 목소리가 좌파 진영을 중심으로 점차 높아지고 있다.
과거 반전 집회에서 "부시를 탄핵하라(Impeach Bush)"는 구호가 돌출발언에 가까웠다면 최근에는 집회 어디서나 탄핵을 요구하는 피켓을 볼 수 있게 됐다. 지난 1일 부시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자신의 여름 별장으로 초대하자 수백 명의 반전운동가들이 그 앞 뜰에서 "탄핵"을 외치기도 했다.
민주당 주도 의회에서 지난 5월 상하원을 모두 통과한 철군 전제 이라크 전쟁비용법안에 부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탄핵안 제출을 검토하겠다"는 발언이 공개석상에서 나왔다.
이 같은 기류를 타고 미국 독립기념일인 4일에 맞춰 로스앤젤레스 한 중심가에 '탄핵 본부(Impeachment headquarters)'가 문을 열었다. 녹색당 활동가들이 주도하고 민주당원 일부가 결합한 것이다.
미국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조직이 자생적으로 꾸려진 것은 바닥을 모르는 지지율 하락과 함께 부시 정권의 위기를 알리는 또 하나의 징후로 여겨진다.
탄핵 요건 리스트에 '리비 사면' 추가
로스앤젤레스 베벌리 센터 인근에서 열린 '탄핵 본부' 개소식에서 녹색당 활동가인 바이런 드 리어 씨는 "탄핵은 미국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애국적 의무"라고 강조했다.
탄핵의 주된 명목은 이라크를 침공하는 과정에서 부시 정권이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전쟁의 최대 명분이었던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 보유설이 근거가 없다는 점은 부시 정부 내에서도 인정을 하는 바다.
테러와의 전쟁이란 미명 아래 이뤄진 시민권의 축소와 사생활 침해 등 '탄핵 요건 리스트' 맨 아랫줄에는 최근 '리비 사면'이란 항목이 추가됐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2일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 신분노출 사건으로 징역 2년 6개월 형 등을 선고받아 수감 위기에 처한 루이스 '스쿠터' 리비 전 체니 부통령 비서실장에 대해 징역형을 면제해 주는 '일부사면' 조치를 단행했다.
보수층 여론에 부합하기 위해 사면권을 행사한 것이지만, 대통령이 개별 형사 사건에 관여하지 않아온 기존 관행을 깨고 사법부의 판결을 무력화시켰다는 점에서 진보 진영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리어 씨는 "음주운전으로 구속된 패리스 힐튼의 수감기간이 리비보다 길었다는 게 아이러니 하지 않냐"고 꼬집었다.
'탄핵본부', 서명운동·선출직 로비 착수
이날 개소식에는 이 지역 출신인 맥신 워터스 하원의원도 마이크를 잡았다. 1998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발의됐을 때 누구보다 완강히 반대했던 워터스 의원은 이번엔 "조직을 통해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며 부시 탄핵을 지지했다.
워터스 의원은 탄핵안이 제출될 경우 제일 먼저 거쳐야할 관문인 하원 사법위원회 소속이기도 하다.
사법위원회에서 워터스 의원 외에도 탄핵에 찬성하는 의원이 더 있는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데니스 쿠시니치 오하이오주 하원의원이 제출해 놓은 체니 부통령에 대한 탄핵안의 경우 찬성할 사람이 얼추 14명 정도"로 전망했다.
이에 '탄핵본부'는 매주 토요일 로스앤젤레스 번화가에서 탄핵을 지지하는 서명을 받고 선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로비에 들어갈 계획이다.
"실제로 탄핵되면 공화당에 좋은 일"
그러나 주류 정치 인사들은 '탄핵 본부' 개설이 갖는 상징적 의미에 주목하면서도, 실제로 부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추진될 경우에는 좌파진영이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역효과가 발생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민주당 성향 칼럼니스트인 해롤드 메이어슨은 "탄핵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때까지만 유용한 오락"이라고 말했다.
부시가 탄핵될 경우 이라크 상황을 정리해야할 책임이 탄핵을 감행한 민주당으로 넘어올 텐데 민주당 역시 이를 감당할 역량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또 탄핵에 대한 반감과 부시 대통령에 대한 동정론으로 민주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공화당 성향 정치평론가인 아놀드 스타인버그 역시 탄핵은 2008년 대선 구도를 공화당에 유리한 쪽으로 끌어 갈 것으로 전망했다.
스타인버그는 "탄핵은 좌파 진영을 흥분시키는 효과를 내겠지만 동시에 이성적인 민주당 지지자들과 무당파의 지지를 줄일 것"이라며 "탄핵을 밀어붙인다면 2008년 선거는 민주당의 침몰로 끝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부시 대통령을 앉아서 비판하는 것과 실제로 탄핵안을 추진하는 것은 정치적 무게가 다르기에, '탄핵 본부'의 운동이 여론의 지지를 얻어 탄핵안이 의회에 제출되더라도 상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 실제로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다수의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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