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정부가 27일 0시부터 전격적으로 휘발유 배급제를 실시하면서 일부 주유소들이 습격당하는 등 강한 여론의 반발에 부딪혔다.
지난 14일 0시 정부 관용차를 대상으로 시범적인 휘발유 배급제를 실시한 이란 정부는 배급제 전국 확대 적용 3시간 전인 26일 밤에서야 이 사실을 발표했다.
27일 이란 국영 방송에 따르면 정부의 갑작스런 휘발유 배급제 실시에 화가 난 일부 시민은 테헤란 북서부 푸나크 지역의 주유소에 불을 지르며 항의하기도 했으며 휘발유를 사재기 하려고 주유소에 500m 정도 줄을 늘어섰다.
성난 시민들 주유소..차량 등에 방화
다른 주유소 몇 곳에도 성난 이란 시민들이 몰려들어 돌을 던지며 정부의 휘발유 배급제 확대 실시에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이들 시민은 여론의 반대에도 휘발유 배급제 실시를 강행한 정부를 비난하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배급제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일부 주유소에서는 운전자들이 배급제 실시 전 휘발유를 앞다퉈 사려고 '난투극'이 벌어지는가 하면 성난 일부 젊은 운전자들은 차량을 불태웠다.
이란 정부는 개인 소유 차량 1대당 한 달에 휘발유 100ℓ(정부운영 택시는 800ℓ) 또는 압축천연가스(CNG) 30ℓ까지만 구입할 수 있는 내용의 휘발유 배급제를 이날부터 전격 실시했다.
이란 정부는 배급제에 필요한 전자식 스마트 카드의 기술적 문제를 이유로 들어 국민적 저항의 예상될 만큼 민감한 문제인 휘발유 배급제 전면 실시의 시기를 놓고 여론의 향방을 주시해 왔었다.
이란 정부는 이 같은 휘발유 배급제를 일단 4개월간 실시한 뒤 향후 6개월을 연장한다는 방침이다.
국민적 반발이 예상되는 휘발유 배급제 실시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정책 지지도가 급격히 하락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 견해다.
2005년 대선에서 부의 재분배를 공약으로 삼아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며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임기의 절반인 집권 2년이 지났지만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특히 이란 국민의 생필품이나 다름없는 휘발유 가격 인상에 이은 배급제 실시는 그의 지지기반인 저소득층의 강한 반발을 불러올 공산이 크다.
석유대국 이란 휘발유 배급제 왜?
이란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중 원유 생산량 2위인 '석유 대국'이지만 국내에 휘발유 정제 시설이 부족한 탓에 일일 휘발유 수요량 7500만ℓ 중 40% 정도를 해외에서 수입한다.
이란 정부에 따르면 국내 휘발유 수요량이 매해 10% 정도 증가하는데 국고로 보조금을 지급해 저유가 정책을 유지하는 탓에 정부가 부담해야 할 보조금과 휘발유 수입 비용이 급증함에 따라 배급제를 도입했다.
이란은 2008년 3월까지 휘발유 수입에 25억 달러를 책정해 놓고 있지만 8월이면 그 돈이 바닥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지난해에도 계획보다 배가 많은 50억달러를 사용한 뒤 의회에 추가 예산을 요청했었다.
이란 정부의 휘발유 배급제 실시의 배경엔 이런 정부 재정상 부담을 줄이자는 표면적 이유 외에 서방의 경제 제재 움직임에 대한 사전 대비책이라는 의미가 깔려있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 강행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대(對)이란 경제 제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란이 외국에서 역수입하는 휘발유를 이란을 압박할 수 있는 '지렛대'로 삼고 이란의 휘발유 수입로 차단을 이란 경제 제재의 중요한 카드로 쓸 것이라는 게 중동 정세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전망이다.
이에 반서방 외교노선을 고수하는 이란 현정부는 휘발유 배급제로 국내 휘발유 소비량을 줄이는 한편 액화천연가스(LNG)나 CNG와 같은 가스 소비를 장려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돌리고 있다.
이란 정부가 지난달 22일 휘발유 가격을 ℓ당 10센트로 25% 올린 것도 휘발유 소비량을 줄이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다.
그러나 주요 외신은 이란이 휘발유 배급제를 전면 확대해도 휘발유 수입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석유 거래상들의 전망을 보도, 배급제의 실효성에 이목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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