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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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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284>

하지

운명은 이미 정해져있는가?

하지(夏至)가 지났으니 이제 곧 매미가 울기 시작하겠다. 녹음 속에서 들려오는 매미 울음, 한 마리가 울기 시작하면 모두가 따라서 우니 마침내 숲 전체가 울게 된다. 늦여름의 빠질 수 없는 정취(情趣)이다.

매미 중에서 쓰르라미는 저녁부터 새벽녘까지 운다. 쓰르라미는 한선(寒蟬)이라 하는데, 차가운 매미라는 뜻.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의 저녁 무렵 숲 속 서늘한 소로(小路)를 거닐다가 쓰르라미 울음을 만나면 영문 없이 쓸쓸한 정서를 담게 되니 또한 계절의 별미(別味)일 것이다.

더위가 시작되는 이맘때가 되면 필자는 늘 긴 글을 읽기 시작한다. 역사대하물이나 서유기나 봉신방 연의와 같은 신괴(神怪)소설 종류, 더위를 잊기 위한 독서이기에 그렇다. 이번에는 '제왕삼부곡'을 읽고 있다. 몇 년 전에 읽었는데 다시 읽고 있다.

작가의 필명인 이월하(二月河)가 실로 멋이 있다. 황하가 흐르는 근처에서 태어난 작가는 2월의 황하가 다시 수량이 늘면서 힘차게 흐르는 모습에 다시 재기하는 중국민족의 힘찬 얼을 느꼈기에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대하소설에 관한 한 그 역량이 실로 대단한 사람이라 느낀다.

제왕삼부곡은 청 제국의 걸출한 세 명의 황제, 강희와 옹정, 건륭에 관한 역사소설이다. 그 중에서 강희는 청나라를 반석위에 앉혀놓았으며, 중국 역사상 가장 개명(開明)한 군주로 불리기에 조금의 손색이 없다.

오늘날 중국 영토는 사실 강희제에 의해 최대한으로 넓혀진 결과라 할 수 있다. 그가 즉위한 것은 1662년 임인(壬寅)년이었다. 중국의 국운(國運) 주기로 살펴보면 국운의 상승 제1파가 1648년에 정점을 친 후 내리막을 달리고 있던 때였다.

힘없는 명(明)제국은 이미 무너졌지만 한인(漢人)들은 만주족의 통치를 거부하고 있을 당시였다. 여덟 살의 나이로 즉위한 강희는 맹랑하게도 십오 세의 나이에 섭정의 권한을 휘두르던 고명대신 오배의 전횡을 제거하였다.

이어서 반청 사상을 지닌 한인 지식인들을 유화책으로 끌어들여 내치(內治)를 굳히고 외정(外征)을 통해 강역을 넓혔다.

그는 1662년부터 1722년까지 무려 40년 동안 정력적으로 일하면서 청 제국을 반석위에 앉혀놓았다.

책을 읽으면서 하게 되는 생각과 의문은 이렇다.

국운이 상승한 결과 강희제라는 영명한 군주가 나온 것인가? 영명한 군주가 있었기에 국운이 상승하는 것인가? 어느 것이 먼저인가?

강희제를 이은 철저하고도 냉정한 전제군주 옹정제는 과연 그토록 매정한 사람이었는가?

옹정제가 자리를 이어받은 시기는 두 번째 상승 물결이 하강 곡선을 긋고 있을 때였다.

그는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었고 부패한 관리들에 대해 처벌도 엄혹했지만 결과 재정은 건실해지고 식량이 풍부해져서 백성들의 삶이 윤택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인기는 없었지만 나라는 부강해졌던 것이다. 그 뒤를 이은 건륭제는 강희와 옹정의 치세와 내실을 다진 기반위에서 화려하고 풍요로운 태평성세를 열었다.

문물의 영화가 극에 달해 고금의 방대한 책들을 총 망라한 사고전서(四庫全書)도 건륭 치세에서 간행되었고, 인구도 두 배로 늘었다.

건륭의 치세는 우리나라 조선의 영조와 정조의 시대에 해당된다. 우리가 영정조 시대를 나름 좋았던 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도 당시 중국의 청 제국이 최전성기를 이어가고 있었다는 점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건륭제의 치세 말기에 이르러 어느덧 제국에는 그늘이 드리우고 있었다.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라 할까.

중국의 국운 주기로 보면 1798년은 360년 주기의 절반에 해당되는데, 건륭제는 1799년에 세상을 떠났다. 건륭제의 사망과 함께 중국의 국운은 서서히 하강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1840년에 일어난 아편전쟁은 더 이상 청 제국이 강자가 아님을 만천하에 보여준 일대 사건이었다. 우리 조선도 사실 그로부터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접어들었다.

다시 돌아와서 근원적인 질문은 운명은 이미 그리고 미리 예정되어 있는 것인가?

이 질문을 놓고 오랫동안 씨름해 온 필자의 생각은 '그렇다'이다. 하지만 정해져 있다는 것에 대해 약간의 설명을 곁들일 필요가 있다 여긴다.

그것은 계절에 관한 것이다.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그것이 지나 가을과 겨울이 이어진다. 자연의 순환이다. 운명도 정해져 있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삶도 그런 자연의 순환을 따른다는 의미에서 정해져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지금 그대가 만물이 번창하는 여름을 지나고 있다면 이윽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올 것이다. 정해져 있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지금 그대가 겨울을 지나고 있다면 세월이 가서 만물이 움트는 봄을 맞을 것이다. 정해져 있다는 것의 의미이다.

운명을 연구하면서 얻어낸 통찰은 결국 이런 것이다.

사람마다 태어난 연월일시에 따라 그 순환의 주기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태어나자마자 겨울이지만 세월이 지나면 봄을 맞이한다. 어떤 이는 태어날 때가 여름 호시절이지만 살다보니 가을과 겨울을 맞아 신고(辛苦)의 삶을 살게 된다.

운명(運命)에서 이른바 운(運)이라 함은 바로 이 인생의 계절적 순환을 일컫는 것이다. 다만 어느 계절에서 시작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을 뿐이다.

이처럼 운명의 계절적 순환도 정해져 있지만 또 한 가지가 이미 정해져있다. 그것을 운명에서 명(命)이라 한다.

그것은 부모, 그리고 더 길게는 조상으로부터 받게 되는 환경이다.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할 때 그것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다. 미모와 건강, 능력 모두 부모로부터 받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받았어도 재산을 물려받지 못하면 부모 복이 없다는 말을 한다. 어리석음이다. 자신은 아무 것도 못 받았기에 열심히 해서 성공을 했으니 다 자신의 능력이라 자부하는 이들도 많다. 바보 같음이다.

자수성가할 수 있었던 바로 그 능력은 어디에서 왔는가? 능력과 의지 역시 부모로부터 받은 것인데 몇 푼의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다고 투정을 하고 있으니 그렇다.

이미 받아서 태어난 부존자원이 풍부하면 명(命)이 좋은 것이고, 계절의 순환 주기도 순탄하면 운(運)마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운은 길게 보면 누구나 공평하도록 되어있다.

운의 주기는 60년이니 한 계절의 주기는 15년을 이룬다. 태어났을 때가 겨울이어도 길게 잡아 15년이 지나면 봄을 맞이하는 것이고, 30년이 지나면 절정의 세월인 여름을 맞이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순서의 문제는 있지만 누구나 30년은 호운(好運)이고 30년은 그렇지 않은 것이니 공평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타고난 명에 관계없이 누구나 한 철은 있는 법이다. 그리고 명에 관계없이 호시절을 지난 자는 몸과 마음을 삼가고 분수를 지키면 영욕(榮辱)의 경계(境界)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평화의 시대를 열었던 덕천가강(德川家康)이 한 말이 있다.

부족(不足)함을 일상(日常)으로 여기면 불편함이 없을 것이고,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서두르지 말라는 말이다.

그런 마음가짐이면 세상은 누구나 보람을 얻고 알찬 삶을 살 수 있는 곳이라 여긴다.

(전화:02-534-7250, E-mail :1tgkim@hanmail.net)
김태규의 명리학 카페 : cafe.daum.net/8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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