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파주저널 한성희 기자입니다. 한성희 기자는 1958년 경기도 파주 출생으로 1997년 파주지역신무인 파주저널에 입사해 현재 편집부 차장을 맡고 있습니다. 민통선 마을 등 파주지역에 대한 기사들을 각종 언론에 연재하고 있으며 2006년 '여기자가 파헤친 조선왕릉의 비밀'을 출간했습니다. 파주시 공순영릉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어제가 6.25였는데 저희가 6.25 특집을 하다 보니까 민통선 마을을 한 번 알아보자. 알아보니 한성희 기자께서 가장 전문가로 정평이 나서 이렇게 모시게 됐습니다.
한성희 : 전문가는 아니고요 그곳에서 태어나 살다 보니, 또 언론 쪽에 종사하다 보니까 좀 관심도 많고 아무래도 다른 분들보다는 조금 많이 알겠지요.
박인규 : 우리가 보통 민통선 하면 일반인들이 쉽게 못 들어가는데 정도로 알고 있는데 정확하게 민간인통제선이라는 게 어떤 겁니까?
한성희 : 민간인통제선은 국토분단, 남과 북 동서로 155마일 휴전선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2km, 북쪽으로 2km, 이 지역을 DMZ... 비무장지대 그 아래, 거기서부터 밑으로 군대에서 군사작전상 민간인을 통제하는 선을 민통선이라고 하죠.
박인규 : 일정한 거리가 돼 있지 않은 모양이죠?
한성희 : 그렇죠. 거리가 돼 있지 않고 지역마다 다르죠.
박인규 : 민통선 안이라는 건 일반인들은 들어가기 쉽지 않은데 거기 마을이 있다는 말이잖아요. 그게 파주지역에만 있는 겁니까, 다른 데도 다 있습니까?
한성희 : 전국적으로 다 있죠. 휴전선 부근엔 다 있죠.
박인규 : 혹시 민통선 안에 있는 마을이 몇 개나 있고 몇 명이 사시는지는
한성희 : 그것까진 잘 모르겠지만 파주시 같은 경우는 시 면적이 서울시와 안양시를 합친 크기에요. 그런데 약 23% 정도가 민통선 면적이죠. 굉장히 넓어요. 그 면적은 대충 안산시 정도로 보면 될 겁니다. 파주시 민통선 안에 네 개 면이 있어요. 두 면, 진서면, 장단면은 민간인이 거주하지 않고, 할 수 없죠. 또 진동면에 해마루촌이라는 마을이 하나 있고 군내면에 통일촌과 잘 아시는 대성동 자유의 마을이 있죠. 이렇게 세 개 마을입니다.
박인규 : 대성동 자유의 마을은 저희들이 초등학교 때도 많이 들은 것 같은데
한성희 : 세계적으로도 관심받고 있는 동네죠.
박인규 : 거기가 민통선 안에 있으면서도 더 DMZ 안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성희 : DMZ 안에 있는 유일한 마을이죠.
박인규 : 비무장지대 안에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한성희 : 들어갈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곳이죠. 개념으로는. 휴전협정을 하면서 남과 북.. 두 마을에 가장 가까운 데 상징적인 마을 두 개를 합의 봤어요. 북한에 기정동 마을, 남한에 대성동 마을. 대성동 마을 같은 경우에는 원래 장단군 조산리였는데 원래 조산리 살던 토박이 분들이 전쟁 끝나고 돌아와서 거기서 계속 살게 된 거죠.
박인규 : 대성동 자유의 마을 계시는 분들은 토박이 분들이시네요. 지금 몇 분이나 살고 계세요?
한성희 : 한 180 분 정도
박인규 : 거기 사시는 분들은 병역의 의무도 조세의 의무도 없다던데, 좀 희한하더라구요.
한성희 : 유엔사 특수법률이 적용되는 마을이죠. 세계에서 관심을 받는 이유가 바로 그건데요 파주시 행정구역이긴 하지만 유엔사 특수법률이 적용되기 때문에 그 마을 사람들은 유엔사 법률에서 벗어날 수 없죠. 병역의무 없고 납세의무가 면제되고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전국에 있는 어느 중학교든지 본인이 원하면 다 갈 수 있고.
박인규 : 한성희 기자는 거기 들어가 보셨겠죠? 거기서 개성공단이 바로 보인다면서요?
한성희 : 그렇죠. 거기 마을회관 2층에 올라가면 그냥 맨눈으로도 다 보여요. 바로 앞에. 그렇게 멀지가 않거든요. 물론 기정동 마을은 더 훤히 보이고.
박인규 : 자유의 마을은 원래 거기 있던 걸 살려 둔 거고 통일촌인가는 나중에 생긴 걸로 아는데
한성희 : 통일촌은 통일대교 아시죠? 현대 정주영 회장님께서 소를 몰고 갔다는 걸로 유명한데 그 다리를 지나자마자 있어요. 물론 통일대교 앞은 군인들이 지키고 있어서 통행증 없는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죠.
박인규 : 저도 한 번 가봤습니다. 통행증 내고 주민등록증 맡기고 들어가더라구요.
한성희 : 네. 미리 또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돼요. 통일촌 같은 경우는 대성동 마을보다는 좀 들어가기 쉬워요. 대성동 마을은 보름 전에 미리 신청해서... 그 마을사람이 초대하는 경우는 좀 쉬워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지금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하루 40명 정도가 딱 관광객으로 있는데 그나마도 날마다 갈 수 있는 게 아니고
박인규 : 그럼 대성동 사시는 분들이 나오는 건 별 문제가 없나요?
한성희 : 나오는 건 문제가 없죠. 그런데 거기 있는 분들이 안 나오려고 하시죠. 비교적 연 5천 이상 수입을 올리고 있으니까 농촌 마을 치고 잘 사는 축에 속하죠.
박인규 : 통일촌은 언제 어떻게 생겨난 겁니까?
한성희 : 1973년도에, 거기가 1사단 관할인데요 그쪽에 제대군인들, 또 파월 갔다 왔다가... 장병은 아니고 주로 하사관 제대하신 분들, 또 영관급 장교들, 이런 분들 또 그 당시 마지막 화전민들, 이 분들한테 신청을 받았어요. 그쪽 40세대, 또 실향민들 화전민들 40세대 해서, 4만 5천 평 놀고 있던 땅을 분할해 줬어요.
박인규 : 1인당 4만 5천 평이요?
한성희 : 한 가구당.
박인규 : 굉장히 많이 준 거네요.
한성희 : 그렇죠. 그런데 원래 거기가 공동묘지를 밀고 조성한, 그리고 73년도니까 거의 한 20년 동안 버려진 땅이었잖아요. 그러니까 말도 못했죠. 잡목이 우거지고, 그걸 개간하다시피 한 거죠.
박인규 : 통일촌에는 몇 분이나 살고 계세요?
한성희 : 통일촌에는 한 150가구가 있고 한 470분 정도.
박인규 : 좀 크군요. 마지막으로 해마루촌은 생긴 지가 얼마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한성희 : 그렇죠. 거기는 신생마을이고 전국 행정단위 면 단위 중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곳이에요.
박인규 : 거기가 면입니까?
한성희 : 네. 진동면
박인규 : 몇 분이 사시기에..
한성희 : 151명이요.
박인규 : 굉장히 작은 곳이네요. 서울로 치면 아파트 하나도 안 되는데,
한성희 : 그렇죠. 지난 5월 통계자료에 의하면 151명인데, 거기 계신 분들도 역시 전쟁 전에는, 지금 현재 민통선 지역이 거의 경기도 장단군 장단면이었어요. 그랬다가 전쟁 끝나고 파주시로 행정구역이 편입된 거죠. 그런데 거기 살던 분들은 있잖아요. 그런데 이 분들이 못 들어갔죠. 거기가 민통선으로 막혀 있었고 출입영농도 못했으니까. 그러다가 출입영농을 허락하기 시작했어요.
박인규 : 출입영농이라는 건 살기는 바깥쪽에 살면서 농사지을 때만 들어가고.
한성희 : 아침에 농사지으러 들어갔다가 저녁 6시 되면 나와야 되죠. 그쪽도 역시 자기 땅을 도로 찾아서 한다지만 전쟁터여서 지뢰가 많아요. 지금도 70년대에서 90년대 사이에 지뢰를 매설한 게 많아서 민통선 안에 산다는 건 어떻게 보면 지뢰하고의 싸움일 수도 있어요.
박인규 : 지뢰 얘긴 나중에 쫌 여쭤보기로 하고, 해마루촌은 문을 연 게 2000년입니까?
한성희 : 2000년도에 파주시에서 장단군 실향민들을 대상으로, 출입영농자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농사짓기 힘드시다고 해서 인위적으로 거기다 마을을 조성했어요. 가구당 200평씩 분할을 했죠. 그래서 거기 사시던 분들이 거의 다 장단군 실향민들이에요.
박인규 : 거기 사시다가 남쪽에 살다가 다시 들어가신 거군요.
한성희 : 서울에 계시던 분도 있지만 대부분 다 파주시 인근에 사셨어요.
박인규 : 대략 해마루촌에는 몇 분이나 사십니까?
한성희 : 151명, 51가구.
박인규 : 저도 한 3년 전인가 해마루촌에 한 번 가봤어요.
한성희 : 2001년도에 입주를 시작했으니까 이제 생긴 지 한 6년?
박인규 : 집들이 아주 훌륭하던데요? 별장 같던데요..
한성희 : 외국의 훌륭한 별장촌에 온 것 같죠? 공기 깨끗하고 맑고. 대부분 어르신들이 많죠.
박인규 : 한 기자께서는 자유의 마을이나 해마루촌, 통일촌을 다 다녀보실 텐데 거기 사시는 분들은 주로 농사를 지으시겠네요?
한성희 : 다 농사죠. 농사 외에는 공장 같은 게 없어요. 들어올 수도 없고, 100% 농사를 짓는다고 봐야지요.
박인규 : 아까 말씀하시면서 자유의 마을 같은 경우는 연간 수입이 한 4천, 5천 돼서 다 그 정도로 소득수준이 높으신가 보죠?
한성희 : 예. 그쪽에 계신 분들은 좀 고소득 작물들.. 장단콩 있죠. 유명하죠 품질하고. 소비자들한테 인정받았고. 그리고 파주개성인삼. 사실 장단군과 개성은 경계지점이었거든요. 거기가 옛날에 개성인삼이 나오던 곳이었어요. 그 인삼의 우수성으로 해서 인삼축제를 하면서 파주인삼축제 할 때 굉장히 많은 분들이 오셔서 그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았죠.
박인규 : 일단 농사를 지으시지만 특수작물을 하시고 단위면적을 넓게 하시니까 소득은 괜찮은데.. 요즘 한미FTA다 뭐다 해서 농촌들이 걱정이 많은데 거기까진 영향력이 없나요?
한성희 : 그분들한테 제가 얼마 전에 들어가서 물어봤더니 걱정이 많이 된다고 하시죠. 또 지금은 옛날처럼 손으로 농사짓는 시대가 아니라 다 갖춰야 되거든요. 트랙터니 이양기니, 그런 걸 갖추는 데 농기계 값이 한두 푼 아니죠. 사람 구할 길 없고 그런 걸 다 들여오다 보니까 빚을 지게 되죠. 그 영농빚이 가구당 한 1억씩이라고 해요. 그런데 통일촌에 계신 분들은 중간에 떠난 분들도 더러 있고, 그때 교차해서 들어오신 분들도 있는데 아마 그 시기에는 그게 좀 가능했던 것 같아요. 지금 계신 분들은 대부분 20년 이상 된 분들이고. 대부분 초기에 분할받은 땅들을 그대로 다 지니고 계세요.
박인규 : 아까 잠깐 지뢰 말씀을 하셨는데 지뢰피해가 지금도 발생하고 있는 겁니까?
한성희 : 그건 우리나라 지뢰 지금 알려진 것만 해도 여의도 면적이 80만 평이라고 하죠? 그것의 30배가 우리나라의 지뢰밭으로 돼 있어요. 그런데 미확인 지뢰밭.
박인규 : 정확하게 위치를 모른다는 거죠?
한성희 : 그렇죠. 어디에 묻혔는지 모르죠. 그건 여의도의 한 23배 정도. 그게 지금 민통선 안에 다 깔려 있죠.
박인규 : 그 민통선 안에 마을 근처에도 있다는 얘깁니까?
한성희 : 그렇죠. 길 옆에만 들어가도 안 돼요.
박인규 : 실제로 주민들이 피해를 입으신 사례가 많나요?
한성희 : 많이 입었죠. 민통선 안에 있는 마을.. 통일촌이라든가 혹은 출입영농자들, 대성동 자유의 마을 이런 분들은 농사를 지으면서도 지뢰와의 싸움을 벌이고 살았다고 봐야 되죠.
박인규 : 지금이라도 마을 근처의 지뢰밭을 정비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한성희 : 그 마을에서 농사짓거나 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어요. 농지나 길 다니는 건 문제가 없는데 그 길 위를 벗어나서 산에 함부로 들어가거나, 지금 민통선 출입이 많이 완화됐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많이 들어오거든요. 방문하러 들어오고 하는데, 이 분들이 도토리나 산나물 캐러 들어갔다가 경고를 주의를 주는데 안 들으세요. 그래서 지뢰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고. 또 장마 지고 나면 쓸려 내려오는 지뢰들, 그런 건 부지기수죠.
박인규 : 지금이라도 적어도 마을 근처는 정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까 말씀하신 중에, 자유의 마을이나 통일촌.. 큰 데가 400명 남짓이고 한데, 그렇다면 예를 들어 학교라든가 병원이나 하다못해 시장, 그런 여러 가지 생활편의시설이 돼 있습니까?
한성희 : 민통선 안에는 식당도 없구요. 외부에서 많이 들어오니까, 마을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식당은 있어요. 그런데 통일촌 같은 경우는 가게도 있는데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정도인데 대성동은 없어요. 거기도 외부에서 손님이 올 경우에는 부녀회원들이 해줘야 되고. 없고. 그리고 파주시에서 군내 출장소를 두고 세 마을 통틀어 일을 보고 있거든요. 그렇지만 병원 같은 건 물론 없구요. 인구 800명에 병원이 되겠어요?
박인규 : 학교는 있습니까?
한성희 : 학교는 두 군데가 있어요. 통일촌의 군내 초등학교, 대성동 마을의 대성동 초등학교, 이렇게 두 군데가 있죠.
박인규 : 안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은 그럼 장보거나 이런 부분에서 불편하다고 안 하세요?
한성희 : 불편하시죠. 지금 보건소가 그 안에 거주하고 있고, 갑자기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사실 그 민통선 자유의 마을, 대성동, 이렇게 하면 보통 국민들이 느끼시기에는 굉장히 멀고 외따로 떨어진 곳으로 보이지만 사실 멀지가 않아요.
박인규 : 금방이더라구요.
한성희 : 예. 사실 문산에서 통일대교까지 10분 15분 정도밖에 안 걸리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의료혜택의 부족은 못 느끼죠. 사실 거기는 차는 필수에요.
박인규 : 그렇겠네요.
한성희 : 가구당 보통 두세 대는 갖고 계시죠.
박인규 : 해마루촌이나 통일촌이나 자유의 마을, 이런 분들이 살기 불편해서 민통선 밖으로 나가서 살고 싶다는 분들은 안 계세요?
한성희 : 그런 분들도 있고. 그러니까 밖으로 나와서 살면 다시는 못 들어가시는 거죠 일단. 다시 들어가실 수 있는 자격은 박탈되죠.
박인규 : 그래도 그분들이 그 안에 사실 때는 나름대로 그 안에 사시는 재미랄까 멋이랄까 그런 게 있을 텐데.. 힘들긴 하지만, 어떤 게 있을까요?
한성희 : 현재는, 그 안에 들어가 보시면 알겠지만 청정지역이고 일단 조용해요. 도로도 잘 닦여 있지만 지나가는 차가 거의 없어요. 그쪽 사시던 분들은 원래 거기서 대대로 오랫동안 살아 왔던 분들이 많고, 그런 데에 익숙해져서 별다른 불편을 못 느끼시는 것 같구요. 그리고 첨단시설은 우선지원이 다 돼 있거든요. 컴퓨터라든가, 물론 핸드폰은 민통선이라는 이유로 좀 늦게 개통됐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죠 사는 건. 그리고 자녀들 같은 경우도 자유의 마을이나 통일촌 같은 경우에는 젊은이들이 많잖아요. 젊은 농부들이 많은 편이에요.
박인규 : 그건 왜 그렇죠?
한성희 : 아무래도 수입이 보장되고 편리한 생활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요? 거기 가보면 우리나라 농촌의 모델이 참 이랬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마을이거든요. 민통선 안에 있는 마을이 굉장히 아름다워요. 집집마다 주택도 시설이 좋고. 평균 한 2.5대 정도 차를 갖고 있죠. 그렇게 생활하기에 불편함은 못 느끼죠.
박인규 : 전쟁의 상처도 많이 남아 있지만 어떤 미래 농촌의 모습이랄까.. 그런 부분도 있고, 만약에 통일까진 안 가더라도 남북 화해가 되면 상당히 미래 농촌의 모델이 될 수도 있겠네요.
한성희 : 그렇죠. 대성동 마을 같은 경우에는 거기는 거의 전쟁을 치르면서 산 데에요. 아무리 휴전이 됐다고 해도 그때 당시에 굉장했었죠. 밤이면 총 들고 지키고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그쪽은.
박인규 : 한 마흔 살에 기자생활을 시작하신 건데, 요즘은 아줌마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하십니다만 아줌마 기자신데, 어떻게 민통선 마을을 자꾸만 취재를 가시게 됐는지..
한성희 : 일단 제가 살고 있던 곳이고, 제 고향이잖아요. 파주시가. 그런데 사실 저도 아버지가 미군부대를 다니셨고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게 탱크, 군인들 지나가는 거, 이런 게 일상으로, 하도 일상적으로 보고 자라서 그걸 저는 당연시하는데 가끔 가다 학교 다닐 때도 서울에서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오면 기절하면서 놀라요. 이런 데는 집을 거저 줘도 못 산다고. 당장 전쟁이 나면 도망갈 데도 없다고. 그런 지역이 바로 파주시였는데, 접전지역이죠. 그런데 파주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있는 민통선 지역의 마을은 아마 다 비슷한 저와 같은 경험이 있을 거고. 그건 또 제가 객관적으로 보니까 저로서는 당연한 기억이지만 일반 국민들은 참 모르고 있는 기억인 것 같아요.
박인규 : 안 가보시면 알 수가 없죠.
한성희 : 예. 그리고 민통선에 대해 잘 모르시고. 그래서 제가 그것에 대해선 계속 관심을 갖고 취재를... 사실 저도 기자생활 하기 전까지는 민통선 안에 들어가본 적이 없거든요.
박인규 : 요즘 듣자 하니 민통선 안에도 토지투기바람이 분다는 얘기가 있어요.
한성희 : 그렇죠. 파주시가 신도시 때문에 참 이상한 방향으로 전국에서 투기바람이 불어서 투기고시지역으로 지금 묶여 있는데, 민통선 지역이라고 예외는 아니에요. 일단 그쪽에 먼저 땅을 갖고 있던 분도 있고. 땅 사고 파는 건 자유롭거든요. 그런데 투기 하시는 분들이 땅에다 투자하다 보니 민통선 지역 안에 있는 땅들도 벌써 매매되는 현상이 꽤 오래 전부터거든요.
박인규 : 우선 그렇다면... 예를 들면 해마루촌이라고 치면 거기 사시는 분들이 갖고 있는 땅이 있을 테고, 외지인이 가진 땅이 있을 텐데 그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이 됩니까?
한성희 : 외지인이 갖고 있는 땅들이 더 많죠. 그런데 외지인이라고 해도 옛날부터 그 마을에 살면서 출입영농을 하시던 분들은 원래 본 소유자들인데 이 분들은 제외를 해야 되겠죠. 갖고 있는 거니까. 본인들의 땅을 그냥 갖고 있는 거니까.
박인규 : 그런데 민통선 안의 땅은 개발도 안 될 텐데 통일을 바라보고 투기를 하는 건가요?
한성희 : 네. 그래서 거기 계시는 군내면 출장소장님이 하시는 얘기가 참 터무니없이 땅이 올랐다.
박인규 : 터무니없다면 대략 얼마에서 얼마로...
한성희 : 사실 그게 무슨 발전가능성이 지금 전혀 없고 개발가능성이 없는데 그 땅을 사재기하고 팔고 또 팔고 사고 되풀이하다 보니 땅값이 올라가고. 땅의 가치에 비해서는 터무니없는 값으로 올랐고. 그게 지금 또 대부분 농토다 보니까 그걸 임대해서 농사를 짓게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고요. 원래 거기 살고 계신 주민들한테는 인삼농사를 많이 지어도 그렇게 큰 이득은 못 본다는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박인규 : 그냥 먹고 살 만한 정도지... 땅을 사신다는 건 남북화해가 되니까 통일을 바라보고 하시는 건가 하는 느낌도 들구요. 그런데 말씀 듣다 보니 민통선 마을이란 데가 지뢰위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살벌할 수도 있는데 뭔가 좀 조용하게 살고 싶다, 이런 분들은 민통선 마을 안에 가서 한 번 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성희 : 그건 당분간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민통선 관련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구요.
박인규 : 말하자면 연고가 있거나 뭐... 특별히 거기 사시던 분이거나.
한성희 : 예. 아들 딸이라든가. 또 거기 계신 분과 결혼한다든가, 이러면 가능하죠.
박인규 : 거기 계신 분과 인연을 맺지 않고 스스로 민통선 마을 안에 들어가서 살고 싶다, 이런 건 안 되는 모양이죠? 아니면, 예를 들면 대성동 자유의 마을이나 그런 데에 전쟁의 위험성... 또 북한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민통선 마을을 한 번 방문해 보고 싶다. 이런 분들은 어떻게 해야 되나요?
한성희 :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대성동 마을은 들어가기 굉장히 힘든 곳이구요.
박인규 : 거기에 아는 분이 있어야 되는 군요.
한성희 : 만약에 거기 아는 분이 초대를 해주면, 그것도 보름 전에 신원.. 주소와 주민번호, 차 갖고 들어가면 차량번호까지 일단 제출을 해야 돼요. 거기 민정부대에다가. 그럼 거기 있는 분이 다 신분조사를 하죠. 최소한 보름 전이에요. 그러면 들어갈 수가 있는데, 들어가는 절차가 복잡하죠.
박인규 : 친구들이 파주에 와서 탱크 보고 놀란다고 말씀하셨는데 민통선 마을에 관한 기사들을 인터넷 같은 데에 쓰신 걸로 알고 있는데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나요?
한성희 : 참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 그리고 저 같은 경우는 제가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거잖아요. 그러니까 더 잘 알 수가 있는데 일반 분들 같은 경우는 사실 DMZ와 민통선의 개념조차 잘 구분 못하시죠. 그리고 DMZ같은 경우는 일반적으로 아마 군대 갔다와서 거기서 근무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거기가 한 50년 동안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곳이라고 상상하지만 사실 전혀 안 그렇거든요. 남과 북 양쪽으로 2, 300미터씩 다 잘라내 버려요. 시야확보를 위해서, 그래서 거기는 사실 그런 지역이 아닌데 그런 식으로 좀 오해하는 경우도 있고. 사실은 민통선 안이 오히려 자연이 그대로 많이 보존돼 있는 곳이 많죠.
박인규 : 그동안 민통선 마을의 실상이랄까, 사는 모습을 일반에 알리는 데 많은 노력을 해오셨는데 앞으로 혹시 그것과 관련해서 책이라든가 계획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죠.
한성희 : 제가 파주시 문화관광해설사 일을 하면서 파주시의 역사, 민통선 안에 많은 역사유물들이 있어요. 허준 선생 묘도 있고 고려 고분벽화도 있고, 아직도 어떤 게 더 발굴될지는 모르죠. 군관할지역에 일반인이 들어가서 학술조사를 할 수가 없죠. 그런 것 좀 한 번 조사를 해서, 파주시뿐 아니라 연천 같은 경우도 거기는 전국에서 발목 잘린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이고, 이 정도로 발목지뢰에 희생된 분들이 많은데 연천 같은 경우도 그 안에 유적들이 많고. 그래서 그런 데의 유적조사를 한 번 해봤으면 하는...
박인규 : 민통선이라는 게 사실 민간인을 통제하는 선인데, 제 나름대로는 남북의 민간인들이 좀 통하는 선이 됐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앞으로 민통선 마을의 여러 가지 모습들 전달하는 데 많은 역할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한성희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파주저널 한성희 차장을 초대해 국토분단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민통선 마을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고향을 버리지 않는 이유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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