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한국'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세계일주에 나선 윤 씨가 칠레를 거처 안데스의 험로를 자전거로 넘어 지난 4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했다. 아르헨티나는 그의 135번째 방문국이다.
초겨울에 접어들고 있는 안데스의 눈보라를 헤치고 자전거로 남미를 방문한 윤 씨는 아르헨 북부지방 사람들에게 따스한 환영을 받았다. 자전거를 타고 안데스를 넘어온 무모한 여행자인 윤 씨가 신기하게 비쳐졌던 것이다.
입소문을 타고 순식간에 아르헨 북부지방에서 유명 인사가 된 윤 씨가 잠시 휴식을 위해 주유소나 카페에 들르면 지나가는 행인들에 의해 경쟁적으로 대접을 받는가 하면, 도로변의 카페주인들은 그가 찾아주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기도 했다.
2000Km 이상을 달려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한 윤 씨를 기다린 건 여러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들의 기자들이었다. 지방의 목격자들이 그의 특이한 자전거 세계일주를 앞다퉈 제보했기 때문이었다.
현지 언론사들 가운데 아르헨티나 공중파인 <채널2> TV는 4명의 특별취재팀까지 구성해 윤 씨에게 접근했다. 이들은 그의 자전거 여행을 입국에서부터 출국까지 특집으로 꾸며 보도할 계획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하자마자 윤 씨를 밀착 취재한 <채널2> 촬영팀은 그의 애로사항을 물었다. 자전거 한 대에만 의지해 혈혈단신으로 세계일주에 나선 이 한국인을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었던 것이다.
지난 1월 한국을 출발한 윤 씨는 남태평양 연안의 키리바티를 거치며 코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한마디로 큰 코를 다친 것이다. 그는 이 사고로 4시간 가까이 코피를 쏟으며 큰 고통을 받았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병원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여행을 계속했다. 그렇다고 중도에 한국으로 돌아갈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윤 씨의 이런 무리한 여행은 안데스를 넘으면서 다친 코에서 덩어리 피가 계속 흘려 내려 숨 쉬기 조차 어려울 정도로 악화되었다. 이런 윤 씨를 측은하게 여긴 아르헨 북부지역 사람들이 그를 지역병원으로 데려 갔지만 응급처치만 해주며 수도의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해주는 게 고작이었다.
<채널2> 촬영팀의 피디는 이런 얘기를 들은 후 아르헨티나는 치료비와 입원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나라라며 에바 페론 병원으로 윤 씨를 안내했다. 그를 진찰한 에바 페론 병원의 엑또르 란서 의사는 "이 상태를 더 방치하면 코뼈가 부패할 위험이 있다"며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서둘렀다.
란서 의사의 집도로 코뼈수술을 무사히 마친 윤 씨는 숨쉬기가 괴로울 지경까지 간 고통에서 벗어났다. 물론 그는 한 푼의 수술비도 지불하지 않았다. 아르헨 국립 병원은 에비타(에바 페론 전 후안 페론 대통령 부인)의 유지를 받들어 여행자를 포함한 모든 환자들에게 무료치료를 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수술 후 일정기간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여행일정을 변경하고 예정에 없이 아르헨티나에 약 2주일을 더 머물게 됐다. 그는 수술경과가 호전되면 우루과이를 거쳐 브라질, 파라과이 등 중남미 국가들을 거처 미국으로 향할 예정이다.
아르헨 한인 교민대표들은 윤 씨가 코뼈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성심으로 도와준 채널2 촬영 팀을 한국인 식당으로 초대해 사의를 표했다. 이 자리에서 촬영팀은 "우리가 윤 씨와 같은 특이한 도전정신을 가진 한국인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며 "그 역시 우리를 만나 코뼈수술을 무사히 마쳐 고통 없이 여행을 계속하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라고 만족해했다.
한인교민들 역시 윤씨의 잠자리를 챙겨주거나 식사초대를 하는 등 자전거를 타고 세계일주에 나선 의지의 한국인을 성심으로 돕고 있다.
자전거 한대를 이끌고 전세계 135개국을 여행한 윤 씨가 느끼는 세상 인심이 궁금했다.
윤 씨는 세계 각국을 돌면서 각종 사고와 노상강도 위험 등 그야말로 죽을 고비를 수없이 겪었지만 인심과 국력은 다르더라고 술회했다. 그는 가장 인심이 후한나라로 이슬람권 국가들과 아르헨티나를 꼽았다.
그는 "이슬람권 국가 국민들은 자신들이 고통을 겪어서인지 몰라도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대접하는 게 습관화되어 있으며 낯선 사람일지라도 어려운 일을 당하면 자발적으로 도와주려는 후한 인심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이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에 대해서는 "전에는 못사는 나라, 인플레이션이 극심한 부패한 나라 정도로 알았는데 막상 와서 보니 지구상에서 가장 여유있는 나라"라는 게 그의 첫 인상이었다.
윤 씨가 말한 여유는 금전적인 게 아니라 국민들이 삶의 진정한 의미를 만끽하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국력이나 개인적인 재산의 차이와는 상관없이 아르헨티나인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여유롭게 삶을 즐기며 살아간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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