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라의 시아파들은 테러의 주범으로 수니파를 지목하며 대대적인 반격 채비를 차렸다. 지난해 2월 알 아스카리야의 황금 돔을 강타했던 폭탄 테러는 시아파와 수니판 간 무자비한 살육극의 출발점이었다.
또 한 번 사마라의 피바람이 우려됐지만 시아파 수뇌부의 이번 반응은 예전과 달랐다. 최고 지도자인 무크타다 알 사드르가 정적(政敵) 수니파가 아닌 같은 시아파가 주도하는 정부를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사원 보호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무크타다는 사흘간의 애도기간 중에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평화 시위"를 벌일 것을 명령한 뒤 "의회에서 종교 사원을 재건할 수 있는 실질적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수니파 사원까지 포함한 재건 계획을 고민하겠다는 얘기였다.
현재 무크타다는 이라크에서 가장 강력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대중의 신망과 함께 강력한 무장세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국민들이나 서방의 이라크전문가들도 미래 이라크를 이끌어갈 지도자 1순위로 무크타다를 꼽고 있다. 문제는 그가 아직은 시아파 지도자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무크타다가 이번 아스카리야 폭파사건에 대한 대응에서 지난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아파만의 지도자가 아닌 이라크 전체의 지도자로 거듭나기 위해 수니파까지 끌어안는 광폭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특히 무크타다가 이끌고 있는 메흐디 민병대 역시 무장 세력을 넘어 제도권 정치 세력으로 변모를 꾀하고 있다는 분석도 따른다. 레바논에서 당당한 의회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헤즈볼라가 그 '역할 모델'로 꼽혔다.
무크타다의 변신에 이란마저 힘을 보탠다면 무크타다는 시아파와 수니파 간의 끝 모를 내전을 종식시키고 종파 간 화해와 통합을 이끌어 낼 특단의 카드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헤즈볼라와 메흐디 민병대는 같은 울타리"
무크타다는 이달 초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의 나지르 라지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메흐디 민병대가 헤즈볼라와 비슷한 경로를 탐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크타다는 "헤즈볼라와 메흐디 민병대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며 "우리는 악마의 군대와 대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울타리에 있다"고 말했다.
무크타다가 공개적으로 헤즈볼라를 정치세력화의 모델로 언급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특히 미국으로서는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헤즈볼라는 1980년대 초반 이스라엘의 레바논 남부 점령에 맞서 결성된 무장단체다. 그후 약 18년간의 무장투쟁 끝에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철수를 이끌어냈다. 아랍세력이 이스라엘과의 무력대결에서 승리한 것이 이것이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이다. 현재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도 헤즈볼라를 모델로 무장단체에서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7월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궤멸시키려 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마디로 헤즈볼라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협박과 회유에 굴복하지 않는 새로운 아랍 정치세력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매뉴엘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도 무크타다가 전략적 판단에 따라 수니파와 협상에 나설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었다.
월러스틴 교수는 지난 1일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페르낭 브로델 센터에 기고한 칼럼 '이라크 전쟁의 종결 : 두 가지 상반된 계획'을 통해 "무크타다와 수니파는 몇 가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며 이 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시아파와 수니파 간의 갈등의 골은 깊지만 △미군 철수 △유혈충돌 종식 △강력한 중앙정부 건설 등의 공통의 목표가 있는 만큼 협력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분석이었다.
특히, 무크타다가 자신의 선조를 숙청한 수니파 일원들과의 '구원(舊怨)'을 풀기만 한다면 양 정파가 함께 정부를 구성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다.
이렇게 양 정파 간의 협력이 가시화할 경우 미국 등 서방 강대국에 이라크 석유개발의 주도권을 넘기는 '석유법'이 의회를 통과하는 것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정적을 껴안을 수만 있다면…
무크타다 진영의 '헤즈볼라화(化)'는 이라크 내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이란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진다.
중동문제 전문가로 저명한 마한 아베딘은 최근 아랍계 인터넷 매체 <사우디 디베이트> 기고를 통해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지역적 연대에 성공했던 이란이 이라크에서도 같은 시도를 할 수 있고 그 경우 무크타다가 최상의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란은 작년 7월 레바논 전쟁에서 이스라엘과 맞서 싸우는 헤즈볼라를 후방 지원해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이란과 미국 간의 대리전 성격이 짙었던 36일 간의 전쟁에서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밀리지 않는 군사력을 과시한 것은 곧 미군에 대적할 만한 이란의 전력을 암시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에 훈련과 조직이 제대로 되지 않은 무크타다의 메흐디 민병대를 20년 전통의 헤즈볼라 군대와 절대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미군과 대척점에 서 있다는 점에서는 유사한 활용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베딘은 "이란이 레바논에서 헤즈볼라를 활용했듯, 이라크에서 무크타다 세력을 활용할 전략적 이유가 충분하다"며 다음 몇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단기적으로는 이란은 무크타다를 앞세워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주둔에 대항할 수 있고 골칫거리인 알카에다와의 연계설을 차단할 수도 있다.
무크타다가 제도권 정치세력으로 편입된다면 장기적으로는 이라크 정부 내에 이란의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으며 메흐디 민병대의 거점기지인 나자프 지역 내 시아파 엘리트 성직자들을 이란 편으로 끌어 들이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미·영 연합군이 물러난 자리에 메흐디 민병대를 중심으로 한 치안 체제가 구축될 경우에는 이란 혁명 수비대가 이라크 안보 체계에 개입할 여지마저 생긴다.
이란 역시 무크타다의 제도권 진입 원해
문제는 무크타다의 제도권 정치세력화 구상에 이란과의 연대가 포함돼 있냐는 것이다.
일단 무크타다 개인적으로는 이란에 대한 호의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딘은 "지난 2003년 무크타다가 이란을 비공식 방문했을 당시, 이란 정부가 보여준 환대가 젊고 경험이 적은 지도자에게는 큰 감동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메흐디 민병대 내 반 이란 정서가 강하지만 이는 오히려 무크타다와 이란 간의 결속을 강화하는 작용을 할 수도 있다.
메흐디 민병대란 이름 아래 활동하는 여러 세력 중에는 범죄단체나 천년 왕국설을 믿는 광신도 단체 등 극단적인 집단들도 존재하는데 이들이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무크타다를 비판할 때 주로 "이란에 지나치게 의존적"이라는 명분을 갖다 붙이고 있다.
이 같은 내부 비토 세력의 반발은 자신의 측근을 하나 둘 씩 제거해 나가고 있는 미군에 대한 경계심과 맞물려 오히려 이란과 연대를 강화하도록 무크타다의 등을 떠미는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무크타다가 당장은 "이라크는 이라크인들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철저한 민족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제도권 정치세력화를 도모하는 길목에서 이란의 힘을 업을 여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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