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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욱 총장의 메시지,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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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종욱 총장의 메시지,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라'"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5/22] 고 이종욱 WHO 사무총장과 30개월간 함께 일한 권준욱 팀장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오늘 5월 22일은 아시아의 슈바이처, 백신의 황제로 불렸던 이종욱 WHO 사무총장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지 꼭 1년 되는 날입니다. 고 이종욱 사무총장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UN전문기구 수상에 선출돼 에이즈 확산 방지와 소아마비, 결핵 예방 등을 위해 인류의 주치의로 활동하면서 무엇보다 행동의 중요성을 역설했다고 하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이종욱 총장과 2년 반 동안 WHO에서 함께 일했던 추억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권준욱 팀장을 초대해 살아생전 이종욱 사무총장에 대한 추억과 글로벌 리더로서 그가 우리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질병관리본부 권준욱 팀장입니다. 권준욱 팀장은 1965년 서울 출생으로 89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97년 미국 미시간 대학교에서 보건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92년부터 보건복지부에서 일하고 있으며 현재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전염병관리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3년 9월부터 2006년 3월까지 WHO 제네바 본부에서 근무헸습니다.

박인규 : 이종욱 사무총장이 갑자기 돌아가신 지가 꼭 오늘로 1년이 됐습니다. 살아 계신다면 나이가 63이신데 아직 한참 일하실 나이신데, 느낌이 어떠십니까?

권준욱 : 세월이 참 빠르다는 통상적인 느낌이 있고 또 한 가지는 사무처장으로 키웠던 마거렛 창 여사가 사무총장이 됐습니다. 그만큼 WHO가 이종욱 박사님의 유지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박인규 : 아직도 살아 계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으세요?

권준욱 : 책을 준비하면서 또 정리하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사진을 보기도 하고요.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미래지향적으로, 꿈꾸셨던 많은 보건사업을 어떻게 승화시켜 나갈지 그런 것도 고민을 해야 될 계기인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작년에 갑자기 돌아가시게 된 게 말하자면 과로하셔서 그렇게 된 건가요?

권준욱 : 사실은 혈압이 조금 있으셨습니다. 출장도 많이 다니시고. 그래서 정기적으로 신체검사를 할 때도 사실은 해외출장을 좀 줄이라는 부하들의 있었습니다. 권유지만 사실 거의 강제명령이다시피 해서 그때부터 자전거도 타시고 살을 빼려고 노력하셔서 집에 오셔서 손목 혈압계로 혈압을 쟀던 기억도 나고. 아마 여러 가지 일에 대한 스트레스나 이런 것들도 상당히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많이 끼친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살아 계셨다면 세계 보건을 위해서 하실 일이 많았을 것 같은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구요.
무엇보다도, 권준욱 팀장이 최근에 책을 내셨어요.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라.' 이게 이종욱 총장님의 평소 소신이었던 모양이죠?

권준욱 : 책이라 하면 저로서는 사실 개인적으로 창피하기도 합니다만, 제가 처음 2003년 9월에 제네바에 갔을 때가 총장님이 7월에 취임하시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땝니다. 사무처장들을 임명하고 사무처장들한테 했던 얘기를 한국식당에서 저희 파견관들을 중심으로 얘기해 주셨습니다. 사무처장들을 임명한 자리에서, 일에 대해서 성공이나 실패나 이런 안 되는 조건에 대해서 전혀 고민하지 말고 옳은지 그른지만을 고민해라.

그리고 옳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행동으로 옮겨서 실천해라. 그러면 그 이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이 되게끔 해줄것이다. 그 말씀을 듣고, 아.. 이게 매일매일 식사시간에 그냥 흘려듣기는 좀 아깝다. 기록을 해놓으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겠지. 무의식적으로 기록하게 됐고. 그것을 귀국 후 블로그에 올렸는데, 총장님 돌아가시고 나서 출판사에서 아마 블로그를 보고 접촉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책으로 펴내고 아무래도 유지를 남기는 게 젊은 세대를 위해서 좋기 때문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박인규 : 저도 지난 주말에 잡았는데 책이 잘 읽히더라구요. 재밌다고 하긴 뭐할지 모르지만 굉장히 생생한 일화들이 많이 있더라구요.

권준욱 : 감사합니다. 그 책은 조금이라도 없는 얘기가 있거나 미화된 부분은 없고 저로서야 이제 와서 돌아가신 총장님께 잘 보일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거의 기록된 원문을 그대로 만든 거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박인규 : 그것은 사실 권준욱 팀장께서 2003년 9월부터 2005년 3월까지 이종욱 총장과 함께 WHO에서 일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쓰신 거죠?

권준욱 : 예. 그렇지만 이종욱 박사님이 식사 시간에는 평범한 개인으로 돌아오셔서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얘기를 다 하셨거든요. 농담도 하셨고 각국의 국가원수를 만났을 때의 솔직한 심정도 얘기하셨고, 사실은 어떻게 보면 속에 있는 내면까지도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박인규 : 뒤에 있는 이종욱 사무총장의 연보를 보니까 이 양반이 나이 31살에 서울공대를 졸업하시고 그때 의대를 들어가셨더라구요. 대기만성형 인물이신가보다... 그런 생각도 들면서, 이번 책도 참 좋았지만 이종욱 총장의 젊었을 때부터의 행적을 누가 좀 쭉 정리했으면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참 도움이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권준욱 : 안그래도 얘기하신 것처럼 WHO 자체에서 이종욱 평전을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재정이 한정돼 있는 기관이기 때문에 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고. 총장님 재직 시절 사무총장의 연설문을 작성했던, 지금은 은퇴한 직원이 주도하고 있는데. 아마도 한국도 다녀갈 계획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박인규 : 지금 책을 쓰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과정이군요.

권준욱 : 그렇습니다. 당시 향후 2년간의 계획을 세웠는데 제가 WHO에 있어 보니까 일이 상당히 지연되는 경우가 많아서 아마도 수 년의 세월이 걸리지 않을까. 다만 이종욱 박사님으로서는 어떻게 보면 행운이신 게, 키웠던 사무처장인 마거렛 창 여사가 총장이시기 때문에 계속 이 사업을 잘 진행시키리라 믿고 있습니다.

박인규 : 누군가가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면 굉장히 빨리 해나갈 수도 있겠네요.

권준욱 : 사실은 WHO가 자체적으로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마무리를 지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종욱 박사님 재직 시절에 WHO 전쳬 예싼이 다른 국제기구는 다 줄어든 것에 비해 거의 4% 이상을 늘려 놓으셨기 때문에 그런 업적을 생각한다면 남아 있는 WHO 직원들이 최선을 다해서 진행을 시켜야겠죠.

박인규 :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이종욱 총장을 기리기 위해서 그분 이름이 담긴 상을 만든다는 말도 있어요.

권준욱 : 그 부분을 제안하게 된 이유가 이종욱 박사님이 사무총장 시절에 한국의 고촌재단에서 상을 제안해온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WHO 본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고, 재원 자체가 제약업을 얻어진 수익이기 때문에. 이종욱 박사님의 지시로 어떤 상을 WHO와 관계된 국제기구에서 제안하게 됐습니다. 그 일을 하면서 상이라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종욱 박사님이 돌아가신 후에, WHO에서 주고 있는 상이 딱 10 가집니다. 그 10개에는 일본의 사사카와재단상이 있고 사실상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상은 서너 개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이번에 한국이 이종욱 박사님 이름으로 상을 제정하는 것은 아주 뜻깊은 일이죠.

박인규 : 고촌재단이라고 말씀하신 데는 제약회사 그런 데인가 보죠?

권준욱 : 제약업으로 돈을 버신 곳에서 재단을 출연해서 국내에서 장학재단도 많이 운영하시고 세계적인 결핵사업에 기여하는 인물들에게 연간 10만 불의 예산으로 상을 수어하게 됩니다. 그 사업을 이종욱 박사님이 지원해주신 바 있습니다.

박인규 : 예를 들어 이종욱 박사상, 리 어워드, 이런 것이 권위를 받으려면 어떤 식으로 하는 게 좋을까요?

▲ ⓒ프레시안

권준욱 :
현재는 이미 지난번 총회 때 복지부 유시민 장관께서 제안하셨습니다만 한국에 국제보건의료재단이 있습니다. 그 재단이 영문 이름을 '이종욱 메모리얼 파운데이션'으로 바꾼 바가 있고. 따라서 그 재단에서 공식적으로 그 상을 지원하고 다만 상의 수여 대상자가 이종욱 박사님이 항상 강조하신 게 보건의료 인프라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차세대 젊은 지도자를 육성하는 데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따라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고인의 유지에도 맞고 한국의 위상에도 걸맞고. 또 우리로서는 연간 10만 불... 상금은 뭐 수만 불이 되겠습니다만 작은 돈일 수 있는데 개발도상국 후진국에서 그 상을 받는 사람은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따라서 이 상이 아마 의미가 크리라고 봅니다.

박인규 : 이미 이종욱 박사님은 가셨지만 그분이 하시던 일을 계속 키우기 위해서는 상을 제대로 만드는 것도 상당히 필요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권준욱 : 국제적으로는 그런 일이 필요하고, 국내적으로는 금년 1주기 추도식이 끝나고 나면 내년이 되면 5월이나 이런 때 WHO 총회도 열리고 하니까, 국제보건과 관계된, 또는 이종욱 박사님 생전에 북한에 대한 결핵이나 말라리아 약품지원에도 관심이 많으셨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가지고 포럼이나 워크샵 등을 통해서 이제는 과거지향적이 아닌 미래지향적이고 유지를 승화시키는 사업둘을 아마 후진들이 추진해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얘기를 이종욱 박사께서 WHO 사무총장 하실 때로 돌아가 보면 총장 되신 것 자체도 굉장히 드라마틱했더라구요. 투표를 7번이나 했고 8명이 후보인데 그 중 6명은 대개 장관, 총리 하시던 분이고. WHO라는 기구가 어떤 것이고 거기 사무총장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권준욱 : WHO는 유엔 산하 전문기구의 하나고 전 세계 각국에 사무소가 있고 6개 지역 사무처로 구성된 약 9500명의 직원을 가진 가장 큰 국제기구입니다. 재밌는 것은 유엔 사무총장이 각국 국가원수급에 버금가는 지위를 갖고 있고, WHO 사무총장도 준국가원수급에 준하는 예우를 받고 있습니다. 이종욱 박사님도, 저한테 사석에서 얘기하시기는 한국에서는 아마도 사무총장 선거에서 될까 말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겠지만 본인은 처음부터 자신이 있으셨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런 자신감이 끝까지 선거운동을 열심히 하셔서 당선되는 데 밑거름이 된 것 같습니다.

박인규 : 그래도 7차까지 간 거 보니까 상대방들이 대단하시더라구요.

권준욱 : 최후까지 남은 사람은 '닥터 피오트'라고 벨기에 사람입니다. 에볼라이어를 발견한 의학자고, 유엔 에이즈라는 국제기구에 이미 사무국장으로 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그러나 그런 것들이 사실은 선거운동만으로 된 것은 아니고, 이종욱 박사님이 WHO의 주요 보직을 다 거치셨습니다. 백신국장이나 결핵국장.. 우리나라에서 결핵은 그 위상이 낮다고 해서 WHO에서의 위상은 대단합니다. 전 세게적으로 200만 명이 결핵으로 연간 사망하고 있으니까요. 에이즈, 결핵, 백신, 이런 것들에 두루두루 공약과 또 선거운동 당시 처음 소신을 펼치는 연설에서 큰 점수를 땄다고 WHO 직원들이 얘기합니다. 따라서 될 만한 분이 됐다는 것이 WHO 내의 평이었습니다.

박인규 : 권준욱 팀장은 이종욱 박사가 WHO 사무총장 되신 지 2달 뒤에 현지에 가셔서 함께 일하셨는데 옆에서 보시니까 이종욱 총장은 어떤 분이십니까?

권준욱 : 아주 소탈하셨고 자기 일에 열심이셨습니다. 저는 사실은 혼이 많이 났던 기억이 많이 납니다. 예를 들면 본인도 그 바쁜 사무총장직에도 밤마다 불어 공부를 꼭 하시는데 젊은 친구들이 공부를 안 한다. 이런 것도 혼을 많이 내셨고. 복장이 좀 안 좋았거나 그럴 경우에는 반드시 양복에 단정하게 넥타이를 메고 다녀야 한다. 이런 지적. WHO 직원들에게도 어떻게 보면 한국적인 모습도 보이셨습니다.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직원이 있으면 바로바로 현장에서 지적도 하시고, 서양 사람들이 볼 때는 상당히 의외의 모습도 많이 보이셨죠. 본인이 믿고 있는 소신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드러워 보임에도 불구하고 단호한 입장도 많이 밝히셨습니다.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또는 한국적인 모습을 간직한 의료계의 대 선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WHO라는 게 세계 전체의 보건을 책임지는 기구로서 거기의 수장을 맡은 이종욱 총장의 업적이라면 어떤 걸 들 수 있습니까?

권준욱 : WHO는 사실.. 세계보건기구는 전 지구의 보건부라고 이해하시면 되고 전 지구인의 건강을 책임지는 분입니다. 먼저 선거공약으로 3by5라는 걸 내거셨습니다. 그건 에이즈 관련인데요 누구도 다들 안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2005년까지 300만 명에 대한 에이즈 치료제를 보급한다. 물론 300만 명을 다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습니다.

또 사스 이후에 신종 전염병...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 이런 것에 대한 대비책도 철저히 하도록 국제사회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WHO 내부적인 개혁도 단행하셔서 회원국들의 높은 지지를 받은 부분이 가장 큰 업적이고. 물론 거기에 조금 어두운 그림자도 있었습니다. WHO 내부에서 직원에 대한 정원 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좀 동요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원칙대로 단호하게 밀고 나가신 그런 리더십이 기억에 남습니다.

박인규 : 정원 조정 얘기가 나왔으니까 물어보고 싶은데 지금 WHO에서 근무하시는 분이 몇 분이고 그 중에 한국분이나 아시아계가 몇 명이나 됩니까?

권준욱 : 대개 WHO 본부에는 약 2500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지금 본부에 이미 이종욱 박사님은 돌아가셨지만 한국사람이 현재 두 사람이 정규직 연구원이 있고 파견직으로 5명이 들어가 있습니다. 각 부처에서 파견이 나가 있으니까요.

박인규 : 그게 많은 겁니까 적은 겁니까?

권준욱 : WHO가 저희에게 할당한 자리에 비해서는 아직까지는 적습니다. 그러나 제가 WHO에 있을 때도 저희 다음 세대, 특히 2,30대 젊은 세대, 의대생을 비롯해서 마친 의사들..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인턴을 하기 위해서 또 WHO에 근무하기 위해서 다녀간 바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금방 WHO에 많은 젊은 세대 한국인들이 자리를 잡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박인규 : 이종욱 총장이 한국인 최로로 유엔전문기구의 총장이 되셨지만 WHO로 따지면 6번째인가 되시죠. 그 전에 아시아계로는 일본 분이 계셨다던데....

권준욱 : 이종욱 박사님 전전임 사무총장인 일본인 출신 나카지마 사무총장이셨습니다.

박인규 : 그 분이 계셨다는 게 이종욱 사무총장이 진출하시는 데 도움이 좀 됐나요?

권준욱 : 이종욱 박사남이 서태평양 지역에 근무하실 때 나카지마 사무총장이 제네바 WHO 사무총장이 되면서 그 후 이종욱 박사님이 백신국장으로 이동하셨죠. 사실은 어느 정도의 은혜가 있었던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다만 이종욱 박사님이 좀 동양적인 모습을 보이신 게, 아주 한국적이라고 볼 수 있고. WHO의 역대 생존한 사무총장들을 다 불러서 모시고 중요한 사업의 성과를 발표하는 시간도 자주 가졌습니다. 초상화도 각 회의실에다 걸고 그런 것들을 통해서 앞선 선배들에 대한 존경을 해야 한다는 걸 직원들한테 보이신 적이 있습니다.

박인규 : 저희는 사실 작년에 반기문 외교부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셔서 상당히 국가적인 경사가 됐는데, 이종욱 박사가 WHO 사무총장이 된 것과 약간 과정은 대비가 되는 것 같아요. 반기문 총장 같은 경우는 거의 거국적으로 도와드렸고 이종욱 박사는 사실 국내에서 잘 모르다가 총장이 되신 다음에 국내에 알려지신 것 같은데, 이종욱 총장이 그렇게 국내에 알려지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보면 혼자 힘으로 올라가시게 된 비결이랄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권준욱 : 제가 본 것은 또 총장님이 직접 말씀해 주신 것은 첫째로는 상품 자체가 좋았구요.

박인규 : 상품이라면 본인의 역할.....

▲ ⓒ프레시안

권준욱 :
그렇습니다. WHO의 주요 보직... 해당되는 결핵국장이나 백신국장을 거치시면서 남긴 업적이 회원국들을 설득시킨 면이 크고. 두 번째로는 일단 선거전에 뛰어든 다음에 대한민국 정부에서 또 많은 지원을 해줬습니다.

박인규 : 일단 뛰어든 다음에는 정부에서 지원이 있었군요.

권준욱 : 그렇습니다. 물론 국내 기반이 없으셨다는 점 때문에 국내에서는 잘 몰랐지만 해외에서는 백신의 황제니 이러면서 언론에 많이 알려진 바 있었고, 외국에서는 JW lEE, 또는 JW 하면 WHO의 이종욱 박사님이라는 것을 보건계에서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박인규 : 역시 개인의 노력으로 되셨군요. 요즘 보면 글로벌 시대라 그런지 젊은 사람들이 국제기구에 많이 진출해서 일하고 싶어해요. 우선 권 팀장님은 말하자면 공무원이신데 어떻게 WHO에서 일하게 되신 건지 궁금하네요.

권준욱 : 보건복지부에서는 보통은 임기 2년 또는 가끔 3년 정도로 파견근무를 순환해서 하고 있습니다. WHO 자체도 그렇게 각국의 보건방역관 업무에 관련된 분들의 파견을 바라고 있고 따라서 상호 좋기 때문에 인적 교류를 하게 되는데, 그런 기회를 제가 가지게 된 거죠. 그리고 우연히도 그 기회가 이종욱 박사님이 사무총장을 했던 시기와 겹쳐지게 된 겁니다.

박인규 : 권 팀장님 같은 경우는 스스로 자원해서 가신 거죠?

권준욱 : 그렇습니다. 그 당시 상당히 경쟁은 치열했습니다. WHO에서 서로 근무해 보고 싶은 마음들이 있었기 때문에

박인규 : 권 팀장님께서는 이미 공무원으로서 자리를 굳히신 다음에 파견근무 형식으로 다녀오셨는데, 그렇지 않고, 그냥 속된 말로 백수인데 국제기구에 가서 일을 해보고 싶다. 그런 젊은이들이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나요?

권준욱 : 그럴 경우 이종욱 박사님을 심지어 찾아온 우리 한국인 후배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박인규 : 그냥 무작정...

권준욱 : 물론 얼굴을 좀 익힌 경우도 있었죠. 그러면 총장님이 확인하시는 게, 일단은 제대로 좀 공부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를 들어서, 주로는 꼭 의학도만 오는 건 아니지만 의사라면 대개는 전공분야가 이왕이면 내과의 감염학 쪽이나 또는 보건학을 하는 것을 원하셨고. 또 어학에서 영어는 기본이고 한 가지 더 해서 이왕이면 불어 같은 걸 좀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부분을 원하셨고.

제일 중요한 것은 비전을 많이 물어보십니다.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꿈을 물어보셔서 그런 부분이 좀 엉성하거나 불분명하면 상당히 싫어하셨죠. 마지막으로 출장이나 현장에서 아픈, 고통받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는 심성이 있어야 한다고 얘기하시더라구요. 그걸 싫어하면 그런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점을 많이 강조하셨습니다.

박인규 : 능력과 비전과 이타심이 있어야 국제기구에서 일할 수 있다. 저희가 국제기구.. 하면 인류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 굉장히 착하신 분만 모이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 권 팀장님이 쓰신 책을 보니까 그 안에 시기도 있고 음모도 있는 것 같아요.

권준욱 :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기 때문에 서양 사람들이나 그런 경우 더 심할 수도 있습니다. 이종욱 박사님의 어록이 있는데, 제가 결핵국에 가 있을 때 WHO 직원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회의때로 그런 얘길 하셨다고 합니다. WHO 내에서는 벽에 대고 내가 한 마디 하면 한 시간 내에 WHO 직원들이 다 알게 된다. 그만큼 입소문이 빠르다는 얘기구요.

또 이종욱 박사님도 저녁식사 시간에 와인을 몇 잔 하시면 마음에 있는 얘기를 하시는데, 밑에 부리는 국장들이 하나같이 맹수들이다. WHO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정글이다. 내가 채찍을 들고 서커스단의 맹수들을 요리할 때는 내 말을 듣는 것 같아도 등만 보이고 돌아서면 물을 수 있다. 그만큼 항상 치열한 경쟁, 이런 것들이 난무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실력이 없으면 금방 도태될 수밖에 없고 허점을 보이면 심하게 얘기하면 당할 수도 있고. 권 팀장님은 실제로 일하면서 어떤 걸 느끼셨어요? 국내에서 정부 관리로 일하시는 것하고 세계보건기구라는 큰 국제기구에서 일하시는 것하고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권준욱 : 가장 큰 차이는 언어 같은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한국 사회 내에서도 마찬가지고 아직까지 저희 세대나 윗 세대는 겸양의 미덕 같은 게 있지 않습니까? 국제기구에서는 그런 것들을 완전히 환골탈태해야지요. 자기가 하지 않은 일까지도 내 것으로 선전하는, 그런 어떻게 보면 당당함, 나쁘게 얘기하면 좀 뻔뻔스러움도 있어야 되고.

회의 때마다 항상 뭔가 자기 발언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켜야 되고. 또 이종욱 박사님 말씀에 따르면 업무적인 것은 기본이고 WHO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맡은 업무뿐만 아니라 저녁시간 점심시간에 얘기하면서 전체적인 업무에 대해서도 자기만의 시각을 드러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된다고 얘기하셨습니다.

박인규 : 한국인이 WHO의 사무총장을 맡았다는 것이 우리 한국의 위상이나 한국의 보건정책과 관련해서 어떤 구체적인 이점이 있는 겁니까?

권준욱 : 총장님이 재직하시던 시절에 BBC방송과의 인터뷰도 있었고 언론에서, 외국에서 많은 접촉이 있었습니다. 항상 물어보던 것이, 대한민국에서 장관 자리를 안 해보시고 WHO를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없느냐는 강한 질문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한국을 빗대서 자신있게 얘기하셨거든요. 저한테 그런 얘길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BBC의 유명한 '하드토크'라는 프로그램에 나가서, 한국인들이 얼마나 정치적이고 얼마나 뛰어난지 당신들은 모를 거다. 그런 한국에서 내가 성장했기 때문에 WHO 사무총장 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라는 식의 얘기. 또는 서울의대 다닐 때 워낙 똑똑한 사람들을 많이 봐서 WHO 나갔을 때 하버드대니 이런 출신들을 봐도 전혀 한국의 똑똑한 사람보다 못하더라. 한국에서 1등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거든요. 일부러 회의 때, 한국과 관련된 회사가 빠져 있으면... 예를 들어 식품 같은 회의가 있을 때 한국의 거대 식품업체를 초대한다든지 이런 것들이 음으로 양으로 한국의 위상을 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WHO 직원들도 눈치 보는 데는 도사들이기 때문에 사무총장께서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사업을 펼칠 때 다들 잘 보이려고 눈에 띄게 좋은 사업을 펼치게 됩니다.

그런 이점들이 좀 사라진 측면이 있죠. 그런 것들이 저는 젊은 세대에게 상당히 꿈과 비전을 심어준다고 생각합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님에 관한 글도 많이 읽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것들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총장님도 생전에 강조하신 인적자원이 제일 중요하다. 젊은 세대가 이걸 통해서, 아.. 이렇게 노력하면 누구라도 될 수 있구나 하는 꿈을 심어줄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박인규 : 권 팀장께서는 2년 반 동안의 WHO의 생활이 본인의 전문가로서의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세요?

권준욱 : 좋은 측면도 있었고 나쁜 측면도 있을 것 같은데요, 좋은 측면은 WHO에서도 배울 것이 많았습니다. 이동하는 사무실 기능을... 전자기기를 이용해서 한다든지. 또 지하에 상황실을 설치한다든지, 일의 추진에서 격의 없는 토론을 벌인다든지, 그렇게 배울 점도 많이 있었고. 부족했던 부분의 하나라면, 현장 출장도 많이 다녔는데 어학에 있어서 불어라든지 모자랐던 부분도 있고. 또 국내도 WHO만큼이나 아주 역동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2년 반을 비웠다가 돌아오니까 국내 업무를 쫓아가는 데도 힘들었던 측면이 있습니다.

박인규 : 또 기회가 있으시면 한 번 나가보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권준욱 : 그러고는 싶지만 젊은 세대에 비해서 능력이 많이 뒤떨어지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박인규 :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가급적 세계에 나가서 세계인들과 어깨를 겨루고 인류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이종욱 박사님 말씀도 좋고, 권 팀장님께서도 많이 경험해 보셨으니까.... 해외에 나가서 일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이런 것들, 이런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런 말씀을 좀 해주시죠.

권준욱 : 실무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처음부터 바로 국제기구에 나가는 것보다는 학생때 또는 졸업 직후에 인턴십을 많이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인턴십은 홈페이지를 통해서 누구나 응모할 수 있기 때문에.

박인규 : 인턴십이라는 건 국제기구의 인턴십 말씀하시는 거죠?

권준욱 :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도... 저희 보건복지부도 그렇고 각 부처에서 그렇게 인턴십이라는 게 재정적 지원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인턴십에 시험이 된 사람에 대해서는 좀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고. 그런 인턴십을 거치면서 경력이 쌓여서 현장에 나가게 되면 국제기구 자체에서는 한국에서보다도 훨씬 더 열심히 일해야 되는데, 그러나 당당함을 잃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이제는 GDP상 11, 12위 대국이고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의 발언력이 상당히 높습니다. 특히나 WHO는 이종욱 박사님을 이미 배출한 국가기 때문에 따라서 자신을 가지고 어떤 역경도 헤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고 매진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인규 : 앞으로 제2, 제3의 이종욱 박사 같은 훌륭한 젊은이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이종욱 WHO사무총장의 1주기를 맞아, 그에 관한 회고록을 펴낸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의 권준욱 팀장과 함께했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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