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에는 터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이즈미르에서 세속주의자 100만 명이 운집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지난 달 24일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 집권 정의개발당(AKP)가 대통령 후보를 단독 추천하며 세속주의의 보루였던 대통령직마저 차지하려는 야심을 가시화한 이후, 벌써 4번째로 열린 대규모 시위다. (관련기사: 터키 반정부 시위에 100만 인파)
대선은 잠정 연기…7월 총선이 분기점
터키에서 AKP의 세가 비교적 약한 것으로 꼽히는 항구 도시 이즈미르, 이날 이즈미르의 건물과 거리는 온통 터키를 건국하고 정교분리 원칙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사진으로 뒤덮였다. 이즈미르 해변을 가득 메운 세속주의자들은 보트를 타고 근해로까지 나가 터키 국기와 아타튀르크의 사진을 흔들며 선상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대통령은 세속주의자가", "터키는 세속주의에 머물라"는 등 이들이 외친 구호에서는 친 이슬람 정당인 AKP가 대권마저 독식하는 데 대한 경계심이 묻어났다. AKP는 이미 내각과 의회를 장악한 상황이다.
지난달 의회에서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는 AKP가 단독 후보로 내놓은 압둘라 굴 외무장관의 당선이 유력시 됐다.
그러나 건국 이래 국시인 정교분리 원칙을 훼손할 수 없다면 야당이 이의를 제기했고 헌법재판소가 의회 투표에 대해 무효를 선언함으로써 세속주의 야당과 이슬람 성향 여당 간의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됐다.
여기에 터키 군부가 '세속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야당 편에 서자 결국 굴 후보는 후보직을 사퇴했고 대선은 7월 22일로 예정된 총선 이후로 연기됐다. 7월 총선 결과가 연기된 대선 판세를 가름할 새로운 분기점이 된 것이다.
이에 세속주의자 진영이 대규모 집회를 조직하는 것도 선거를 앞둔 세 과시용이란 풀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BBC>는 연일 세속주의자들이 대규모 시위가 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상 선두는 AKP의 차지라고 전했다. 이스탄불 등 터키의 다른 도시에서는 작지만 이슬람 정부를 지지하는 성격의 시위도 함께 열려 AKP에 힘을 실어줬다.
親 이슬람 정당 "이참에 직선제 개헌을"
한편, AKP는 이번 대통령 선출 파행을 계기로 의회가 선출하던 대통령을 유권자 직접 투표 방식으로 전환하고 대통령 임기를 7년 단임에서 5년 중임으로 바꾸는 것을 뼈대로 하는 헌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헌법 개정안은 의회 과반수 찬성을 얻어 1차 투표는 통과했고 의회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2차 투표를 남겨두고 있다. 2차 투표에서 과반수이긴 하나 3분의 2에는 못 미치는 찬성을 얻을 경우 개정안은 국민투표에 붙여지게 된다.
AKP는 개정안이 통과돼 대통령 선출 방식이 직선제로 바뀔 경우 인구 99%가 이슬람 교도인 터키에선 이슬람 정당인 AKP의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후보를 사퇴한 굴 장관 역시 직선제 개헌이 이뤄질 경우 대선에 재출마할 수도 있다는 의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아타튀르크가 공화국을 수립할 때부터 국가의 근간으로 삼아 왔던 세속주의가 약화될 뿐 아니라 의회 다수인 친 이슬람 정당을 군부와 법조, 학계 등 세속주의 지지 세력이 견제해 온 전통적인 정치 구도에도 변화가 불가피해 야당과 군부는 개헌 저지에도 총력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국민들의 직선제 열망을 업고 개헌안이 의회 의결 또는 국민투표를 통과하더라도 세속주의자인 현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야 정식 개헌이 가능하다. 총선에서 AKP가 승리하더라도, 또 개헌안이 통과되더라도 정교분리의 오랜 원칙을 변경하는 데에는 한동안 진통이 불가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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