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2.13합의의 이행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자금 송금 문제로 계속 지연되고 있다. 미국과 한국 정부는 '기술적인 문제만 풀리면 된다'는 입장을 몇 주째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송금에 관해 이러저러한 '설(說)'만 나돌 뿐 뚜렷한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6자회담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에게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 복잡한 송금 절차에 관한 논란은 피로감을 가중시키고 상황을 명확히 인식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주고 있다.
이에 <프레시안>은 BDA 문제에 관한 그간의 취재 결과를 종합해 북한자금의 송금은 왜 안 되고 있으며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를 짚어보는 문답을 아래와 같이 마련했다.
1. 북한은 BDA 자금 2500만 달러를 왜 안 찾아가고 있나?
안 찾아 가는 게 아니라 못 찾아 가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4월 10일 미 재무부가 북한자금 동결 해제를 지지한다고 했고, BDA도 다음날 동결 해제를 발표했기 때문에 북한이 2500만 달러(약 230억 원)를 사과상자에라도 넣어서 현금으로 찾아가는 방법이 있긴 하다. 그러나 북한은 이 돈을 자체를 찾는 것뿐만 아니라 돈을 찾는 과정을 통해 2005년부터 꽉 막혀 왔던 해외 은행에서의 입출금 거래를 정상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것은 북한의 '과욕'이 아니다. 미국도 지난 1월 베를린 북미접촉에서 BDA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는 북한의 정상적인 금융거래 복귀라는 것에 북한과 공감대를 이뤘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금융거래 복귀는커녕 2500만 달러를 다른 은행으로 1회 송금하는 것부터 안 되고 있기 때문에 못 찾아 가고 있는 것이다.
2. 입출금은 왜 못하는 것인가?
미국 재무부가 3월 18일 BDA에 대한 18개월간의 조사를 종결하면서 BDA를 불법금융기관('돈세탁 주요 우려 대상')으로 공식 지정했기 때문이다. 4월 10일 미 재무부가 북한자금 동결 해제를 지지한다고 한 것은 북한이 돈을 찾아가는 것만 묵인하겠다는 것일 뿐 '불법금융기관에 있는 불법자금'이란 꼬리표는 그대로 달려 있다. 그런 꼬리표가 달려 있는 돈을 받을 은행은 지구상에 없다. BDA의 불법자금이 '스치기만 해도' 거래 기록이 남아서 향후 미 재무부의 조사 대상에 들어갈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미 재무부는 지난 3월 말 북한 자금의 송금 통로로 당초 거론됐던 중국은행(BOC)이 자금 중계에 나선다면 돈세탁 혐의를 조사하겠다는 가능성을 흘림으로써 중국은행을 주저앉혔던 적이 있다.
3. 자금을 중계해도 미국이 문제 삼지 않겠다는 보증을 해준다던데…
미국의 보증에 대해 말만 무성하지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다. BDA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이 더 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 있는데(아래 6번에 상술) 그 중 하나가 'BDA 북한자금을 중계해도 향후 문제삼지 않겠다'는 보증이다. 보증에 대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다는 것은, 북한 자금을 중계할 은행이 단 한 곳도 나서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증명한다. 공식적으로 보증 약속을 한다면 중국은행이건 어디건 나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
4. 자금은 어떻게 중계하는 것인가?
러시아와 이탈리아에 있는 은행에 개설된 북한 계좌에 BDA 북한자금을 분산시켜 보낸다는 것이 가장 최근에 나온 시나리오다. 그러나 BDA에서는 러시아·이탈리아 은행에 직접 돈을 보낼 수 없다. 은행과 은행이 외환을 직거래하기 위해서는 '코레스'라는 계약을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BDA와 러시아·이탈리아 은행 사이에는 이 계약이 맺어져 있지 않고, 불법은행으로 지정된 BDA와 이 계약을 맺으려 하는 은행도 없다. 따라서 BDA 및 러시아·이탈리아 은행 양측과 코레스 계약을 맺은 제3의 '중계은행'이 필요하다. 요컨대 'BDA→중계은행→러시아·이탈리아 은행의 북한계좌→북한'이 자금 중계의 경로다. 미국은 이 '중계은행'에 납득할만한 보증을 서줘야 하는데 그런 약속이 없는 상황에서 중계은행을 자임할 금융기관이 없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한국수출입은행을 중계은행으로 내세우는 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이 역시도 미국의 보증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5. 미국의 금융기관이 중계은행으로 나선다는 보도가 나왔다.
가장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다. 그러나 문제는 미 행정부의 태도다. 미국 금융기관이 중계은행으로 나선다는 아이디어는 이번에 처음 나온 게 아니다. 다니엘 글레이저 미 재무부 부차관보는 지난 3월 말~4월 중국 베이징에 10여 일간 머물면서 이같은 의견을 본국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미 행정부는 이 안을 기각했다. 정확이 어느 선에서, 왜 기각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자신들이 불법은행의 불법자금으로 낙인 찍은 돈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등장한 '미국 은행 중계론'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이같은 명분을 버려야 한다. 미 재무부는 미국의 금융기관을 중계은행으로 해 달라는 북한의 요청을 지난주 접수해 오는 10일 쯤 수용 여부를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6. BDA 자금 송금에는 기술적인 문제만 남았다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기술적인 문제라는 표현은 미국과 한국 정부만 쓰는 것으로 정확히 어떤 문제를 지칭하는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BDA에 있는 52개 계좌를 단일 계좌로 통합하는 것, 중계은행을 찾는 것 등을 뜻하는 표현으로 추정될 뿐이다. 그러나 기술적인 문제를 넘어서는 '정치적인 문제'에서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미국이 할 일은 더 이상 없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미국과 한국이 '입을 맞췄다'는 해석도 엄연히 존재한다. 이런 해석은 미국이 할 일이 더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미국이 BDA 자금을 찾아가지 않는 북한을 비난하는 대신 '인내심'을 강조하며 오히려 북한을 달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미국에 더 있다면 △미국의 금융기관을 북한자금 중계은행으로 지정하거나 △어떤 나라의 금융기관이 중계역을 맡더라도 문제삼지 않겠다는 보증을 해 주는 것이 '최소 수준'으로 제기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송금이 되지 않을 경우 미국은 BDA에 대한 불법금융기관 지정을 해제하는 '최고 수준'의 결단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미국은 일단 '최소 수준'의 조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고 수준'의 조치가 필요할 경우가 온다면 한반도 비핵화냐, 소위 '불법거래'에 대한 단죄냐 사이에서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7. 미국은 왜 추가적인 행동을 주저하는가?
경제적으로 북한의 숨통을 조이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미 재무부는 9.11 테러 이후 제정된 애국법 311조에 따라 북한의 돈줄을 차단하기 위해 BDA를 '돈세탁 우려기관'으로 지정해 성공을 거뒀다. 동결 해제된 북한자금을 단순히 중계할 은행이 지구상에 하나도 없다는 현상은 애국법 311조의 성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BDA 문제를 해결해 북핵 2.13합의를 이행시켜 비핵화를 이뤄야 한다는 과제가 있긴 하지만, 숨통을 조금만 더 조이면 북한의 무릎을 꿇릴 수 있다는 유혹도 떨칠 수 없다.
여기에 덧붙여, 비핵화를 중시하는 국무부와 북한 돈줄 차단을 중시하는 재무부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고 조지 부시 대통령은 정책의 우선순위를 잡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재무부-국무부 갈등론'이 있고, '국무부나 재무부 모두 마찬가지'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두 시각 모두에는 미국이 대북 압박 카드를 버리기 싫어 한다는 공통적인 전제가 깔려 있다.
국무부와 재무부가 가진 부처의 특성에 따른 현상일 뿐 미국의 의도를 과장할 필요는 없다는 시각도 있다. 정치적 협상을 중시하는 국무부와 법적 현실을 강조하는 재무부 사이의 충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BDA 문제 관련 프레시안 주요 기사>
1. "미국의 속셈은 북한의 '대외 金판매' 막는 것"
2. BDA는 주범 없는 공범?
3. "美, BDA-北 거래 독려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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