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대선에서 승리해 향후 5년 간 프랑스를 이끌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는 195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정권을 피해 프랑스로 이주한 헝가리 귀족 출신 아버지와 그리스계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민자의 아들이 불우한 환경과 프랑스 정치판 특유 엘리트주의를 뚫고 엘리제궁의 주인이 되기까지 52년 간 사르코지를 키운 것은 권력에 대한 투지와 열정이었다.
165cm의 작은 체구에 걸맞지 않은 특유의 뚝심은 코르시카 출신으로 황제가 된 나폴레옹의 집념을 연상시키기에, 사르코지에 열광하는 우파들도 그를 비난하는 좌파들도 모두 그를 '사르코시옹'이라고 부른다.
엘리트주의 뚫은 투지의 '워커홀릭'
사르코지는 프랑스 유력 정치인들 대부분을 양성한 엘리트 학교 그랑제콜을 졸업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일반 대학인 파리 10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한 뒤 변호사로 활동하며 집권 우파 정당의 당원으로 정치 인생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는 비주류 출신이란 점 때문에 극우 후보인 장-마리 르펜으로부터 정통 프랑스인이 아닌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스 방송국 <LCI>의 정치 에디터 아니타 헤세는 "변호사 출신으로 일반인들의 문제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길 원했고 사실 일반인들과 가까워 보였다"며 사르코지가 정통 엘리트 출신이 아니었다는 점이 오히려 대중에게 친근감을 줬던 것으로 풀이했다.
7살 때부터 대통령의 꿈을 키웠던 사르코지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고 불우했다. 이혼한 그의 부모는 그와 다른 두 형제를 방치하다시피 했고 부모의 무관심 아래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해야 했던 그는 스스로를 격무로 몰아넣었다.
1983년 28세의 나이로 파리 교외 뇌이 쉬르 센의 시장으로 당선된 사르코지에게는 '일 중독자'란 별명이 꼬리처럼 붙어 다녔다.
헤세는 "그는 과하다하리 만큼 활동적이고 야망이 강한 '워커홀릭'"라며 "결코 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투구 벗고 '화합형 대통령' 될 수 있을까?
한때 시라크의 막내딸과 사귀며 '시라크의 정치적 아들'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던 사르코지는 1995년 대선에서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를 지지해 시라크의 미움을 샀고 한동안 중앙 정치 무대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2002년 선거에서 UMP의 압승을 이끌며 내무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고 2005년 파리 교외에서 발생한 이민자 폭동을 강경진압하면서 유명인 반열에 올랐다.
진압이 과했다는 여론에 "범법자에게 법은 항상 가혹하다"고 응수한 그의 직설화법은 그에 대한 여론의 평가를 극단적으로 갈라놓았다.
타협과 조정보다는 원칙을 앞세우는 그의 뚝심 앞에 우파 유권자들은 열광했지만 좌파들로부터는 '프랑스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란 혹평을 들어야 했다.
이민자들 역시 자신도 이민자 출신이면서 이민자들을 '폭도'로 몰아붙인 사르코지의 작은 체구를 조롱하며 "나폴레옹 콤플렉스를 지닌, 권력에 굶주린 자"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해 왔다.
이에 사르코지 선거캠프의 사무장으로 사르코지와 22년을 함께 한 프랑크 타피로는 "당신은 그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 두 가지밖에 선택할 수 없을 것"이라며 "중도는 없다"고 당당해 했지만, <BBC>는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대통령에게 통합의 역할을 주문해 왔던 점을 지적하며 사르코지가 얼마만큼 자신의 전투적 기세를 누를 수 있는지가 성공적인 엘리제궁 생활을 가늠할 첫 관문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