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통신사 <IPS>는 지난달 30일 "작년 12월 말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과 군사훈련을 받은 에티오피아 군 1만5000명이 모가디슈를 침공해 소말리아 남부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던 이슬람법정연맹(ICU)을 공격함으로써 시작된 소말리아 전쟁이 잠시 소강 국면을 맞았다"고 전했다.
UIC 대항세력인 소말리아 과도정부(TFG)와 에티오피아 연합군은 최근 ICU가 장악하고 있던 모가디슈를 탈환한 데 이어 지난달 28일에는 ICU의 최후 보루인 키스마요를 점령함으로써 내전에서의 승리를 선언했다. ICU 세력은 모가디슈를 떠나 외곽으로 옮겨간 상태다.
그러나 평화의 '단 꿈'은 오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ICU가 전력을 정비하는 대로 실지회복에 나설 테고, 침공 자체가 불법이었던 에티오피아 군은 언제까지나 모가디슈에 머무를 수 없는 입장이다.
결국 에티오피아의 중재로 ICU와 TFG가 '민족 연합체'를 구성해 권력을 나눠 갖는 구도를 갖추는 것이 오랜만에 찾은 평화를 지속시키는 유일한 방책으로 보이지만 가깝게는 에티오피아에, 멀게는 에티오피아로 하여금 침공하도록 '사주한' 미국에 이 같은 의지가 있는지는 미지수다.
2개월 만에 인구 1/3이 모가디슈 탈출
에티오피아와 TFG 연합군의 모가디슈 탈환 소식에 부시 행정부는 환호하는 분위기였다.
미국은 클린턴행정부 시절인 1993년 10월에도 모가디슈에서 반군 군벌 아이디드를 체포하려 시도한 적이 있다. 당시 블랙호크 헬기 2대가 격추되고 미군 병사 18명이 숨진 것은 물론 사망한 미군 병사들이 거리에 끌려다니는 등 참혹한 수난을 당한 바 있다. 결국 클린턴 행정부는 미군을 철수시키고 소말리아 사태에서 손을 뗐다.
그러나 미국은 그 뒤에도 암암리에 ICU를 제거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목적은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은 이 지역이 이슬람세력에 넘어가는 것을 막고 친미괴뢰정부를 수립해 일대에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 있다.
중동에서 쫓겨간 알 카에다가 소말리아를 새 거점으로 삼고 있다는 표면적 명분 이면에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으로 확보한 중동지역의 거점을 아프리카로까지 넓히겠다는 계산이 숨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블랙호크의 악몽'을 되살려 이번에는 미국이 직접 나서는 대신 에티오피아를 앞세워 군사개입에 나섰다. 기독교 국가인 에티오피아는 이웃한 소말리아가 이슬람 국가가 되는 데 대해 강한 경계심을 피력해 왔다.
지난해 12월 침공 당시 미국은 에티오피아에 정보와 병참 지원을 한 것은 물론이고 전투용 헬리콥터를 동원한 미군 특수작전부대까지 파견해 전쟁을 도왔다. 지난해 10월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안에도 불구하고 에티오피아의 북한 무기 구매를 눈감아주기도 했다.
그리고 작년 12월말 이래 4개월간의 교전 끝에 일단 ICU를 모가디슈에서 쫒아내는 데에는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IPS>는 현재의 소강상태가 몇 주 이상 가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라고 전했다.
아프리카 지역 전문가인 노스캐롤라이나 소재 데이비슨 대학의 켄 멘카우스 교수는 "지금 당장 모가디슈 내에서 협상으로 돌파구를 찾아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며 얼마 가지 않아 교전이 재개될 것으로 내다봤다.
은퇴 외교관인 데이비드 신 조지 워싱턴대 교수는 "가장 시급한 과제는 지역의 치안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이는 큰 부족에서부터 하위 부족까지, 모든 집단이 '시스템의 일부'라고 느낄 때에만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들이 권력을 나눠 갖기 원치 않는 것이 문제라는 점은 소말리아인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지속적인 평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우리라는 전망이었다.
소말리아는 이미 지난 4개월 간 전쟁으로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전체 민간인 사상자 수가 정확하게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4월 한 달 동안 교전으로 사망한 민간인 숫자만 1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전해진다. 격화된 유혈충돌을 피해 모가디슈 주민의 3분의 1 가량인 40만 명은 모가디슈를 탈출했다.
모가디슈에 남아 있는 주민들도 급성 설사병과 콜레라에 시달리고 있다. 식량과 의약품, 깨끗한 물 등이 모두 부족한 상황이지만 교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유엔이 지원하는 구조대는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美, 쳐들어갈 땐 '적극지원'-수습에는 '수수방관'
이 상황에선 어렵겠지만 TFG 세력을 기본으로 모가디슈 최대 부족인 '하위예'와 ICU 내 온건파까지 포함하는 연합체를 시급히 구성하는 것만이 소말리아 비극의 종식을 위해 기대할 수 있는 마지막 해법으로 보인다.
그러나 에티오피아 정부가 '하위예'의 지도자를 설득한다 치더라도 TFG를 이끄는 압둘라히 유수프가 권력 분점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유수프는 '하위예'의 경쟁 부족인 '다로드'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들 간에 접점을 만들어 내는 일차적 책임은 어쨌든 전쟁에 총대를 멘 에티오피아의 몫일 테지만 에티오피아 정부 역시 옴짝달싹할 수 없는 난처한 처지에 빠졌다.
일단 소강국면을 빌어 에티오피아군을 물리자니 무주공산이 될 모가디슈를 놓고 다시 ICU와 TFG 간 접전이 벌어질 테고, 에티오피아군을 유지하자니 에티오피아가 직접 지원한 TFG의 정통성을 무시하는 처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달 말 반군단체인 '오가덴 민족해방전선(ONLF)'이 에티오피아 내 중국 소유 유전을 습격해 74명을 살해한 것은 에티오피아 정부를 더욱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
대규모 테러전을 벌일 깜냥이 못되는 ONLF가 에티오피아 정부가 소말리아 내전에 코가 빠져 있는 틈새를 노렸다는 것이 이 사건에 대한 일반적인 풀이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에티오피아 내 치안마저 혼돈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에티오피아 정부는 소말리아에서 '발을 뺄 타이밍'을 고르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지난달 28일 에티오피아 정부가 돌연 "임무는 완수됐다(the mission has been accomplished)"고 선언한 것은 철군의 전조로 여겨진다.
에티오피아를 앞세워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정권을 빼앗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던 미국도 전쟁 후 소말리아를 정상화하는 문제를 두고선 에티오피아 정부만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IPS>는 "에티오피아가 철군할 경우 무정부 상태가 될 소말리아"에 대한 워싱턴의 우려를 전했지만 에티오피아 정부를 설득하기 위한 미국 측의 적극적인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 정부가 수수방관하는 데에는 소말리아 상황에 무심한 서구 여론도 한 몫 하고 있다.
미국의 진보진영 매체 <데모크라시 나우>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조사결과 지난 3달 간 미국의 3대 방송 중 <ABC>와 <NBC>는 소말리아에 관련된 보도를 단 한 건도 하지 않았다. <CBS>만이 지난달 22일 저녁 뉴스 시간에 단 한 번 보도를 했지만 이 역시 3줄짜리 단신에 불과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역시 지난 4개월 간 소말리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싸늘한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이라크 담당 유엔 대변인을 지냈던 살림 로네씨는 <데모크라시 나우>와의 인터뷰에서 "전쟁을 시작한 미국의 일방주의보다 더 큰 문제는 국제 사회의 무능"이라며 "작년 레바논 전쟁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음에도 아무런 중재 노력을 하지 않는 유엔 안보리의 침묵이 진짜 문제"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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