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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의 거짓말, 인터뷰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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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사의 거짓말, 인터뷰의 진실

[기고] 총기난사 사건을 대하는 이태식 주미대사의 위험한 발상

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 이후 지난 17일 이태식 주미대사가 한 발언을 두고 진위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진상은, 이태식 주미대사가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의 인터뷰에서 명백하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의 거짓말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그가 하지 않았다고 했으나 한 발언의 내용 자체가 이번 사건을 자칫 미국 내 소수민족 범죄(ethnic crimes)로 몰아가는 논리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로써 우리들 전체를 공범자처럼 인식하게 만드는 틀 속에 넣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런 인식의 틀이 만일 확산되면 무엇보다도 한인동포 사회의 안전을 더욱 위험에 빠뜨리는 논법이 될 뿐이다.

이 대사 발언, 한인 동포사회 도리어 위험에 빠뜨릴 수 있어

그에 더하여 이태식 대사는 자신이 한 발언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뒤늦게나마 알아차렸는지, 그 수습과정에서 허위진술을 함으로써 국민적 기만을 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그는 국가와 민족의 위신 전체를 추락시켜버려 놓고 아닌 척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외교관이 이 나라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진행자 손석희 교수와 이태식 주미대사의 인터뷰 문제 대목을 살펴보자.

손석희: 아마도 이태식 대사께서 오늘 인터뷰에 응하시면서 조금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그리고 민감하게 인터뷰를 시작하신 이유는 지난번에 말씀하신 내용, 즉 한국과 한국인을 대신해서 유감과 사죄를 표한다, 라는 것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셔서 그런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이 발언은 공식적 발언이셨습니까, 아니면 개인적 발언이셨습니까?

이태식: 그것은요. 지금 말씀하신 사항을 다시 한번 해주시죠. 제가 발언한 내용을 다시 한번 읽어봐 주십시오.

손석희: '대사로서 슬픔에 동참하며 한국과 한국인을 대신해서 유감과 사죄를 표한다'

이태식: 그 '사죄'라는 표현을 제가 쓰지 않았습니다. '사죄'라고 하는 표현은 잘못된 거구요.

손석희: 그럼 정확하게 어떻게 말씀하신 건지요?

이태식: 제가 영어로 표현했는데 그것을 우리말로 아마 쓰다 보니까 그렇게 된 모양인데 사죄라고 하는 영어단어가 어떤 단어인지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사용한 기억이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기억이 나지 않는 이태식 주미대사를 위해서라도 그 자신이 발언한 내용의 육성자료를 푼 녹취록의 대목을 인용해보자.

이 대사의 발언에 "사죄(apology)", 분명히 있다.

그의 발언은 이러했다.

"And as ambassador, representing my country and all of you, I join you in this moment of sorrow to extend my country's as well as my people's regret, apology."

번역은 "저는 우리나라와 여러분 모두를 대표하는 대사로서, 이 슬픔의 순간에 동참하면서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들의 유감, 그리고 사죄를 전하는 바입니다." 가 되겠다.

한국과 한국인을 "대신해서" 정도도 아니고 "대표하는" 대사로서의 발언이다. 게다가 그는 사죄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인 "apology"를 분명하게 사용한다.

여기서 "apology"는 보다 정확하게 옮기자면, "잘못은 전적으로 제 쪽에 있습니다. 저의 죄를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뜻이 담긴 단어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귀책사유(歸責事由)는 이 단어사용에만 국한해서 본다면, 한국과 한국인, 그리고 한인동포 사회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발언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유감 정도에 해당하는 "regret"는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채로 불행한 사태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는 수준인데 반해, "apology"는 국가와 국가 간의 외교적 표현으로서는 엄청난 무게를 가지고 머리를 숙이는 자세가 된다. 외교관인 그가 이를 몰랐다면 외교관으로서의 자격에 문제가 있고, 알고 썼다면 그 이유를 명확하게 해명해야 할 것이며 이런 표현의 사용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그 사용의 부주의함에 대한 그의 책임이 물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이태식 대사는 스스로도 "그 '사죄'라는 표현을 제가 쓰지 않았습니다. '사죄'라고 하는 표현은 잘못된 거구요."라고 뒤로 빠지고 있다. "apology"에 해당하는 "사죄"라는 표현이 얼마나 중차대한 비중을 가진 외교어법인지 그 자신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표현을 쓴 바 없고 기억이 나지 않는 이 대사는 그렇다면 어떻게 말했다고 스스로 기억하고 있을까?

인터뷰의 이어지는 대목을 더 보자.

손석희: 예, 그런데 영어로는 뭐라고 표현하셨습니까? 아까 사죄라고 말씀 안 하셨다고 했는데요. 영어로는, 원어로는 어떻게 말씀하셨는지요?

영어로 표현한 바에 대한 대답이 나오지 않고 다른 부연설명이 계속되자 진행자는 다시 묻는다. 이에 대해 이 대사는 결국 이렇게 답한다.

이태식: We feel very sorry라고 했습니다.

손석희: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유감스럽다, 이런 정도라고 그럼 생각하고 말씀하신 건가요?

이태식: 아니죠. 그 사람들 슬픔에 동참하기 위해서, 이런 사건이 일어난 데 대해서 물론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하고 우리가 조문을 심심한 조문을 조의를 표명하고 그래서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매우 참 죄송하게 생각한다, 이런 것이죠.

손석희: 그것이 유감과 사죄를 표한다는 쪽으로 번역이 돼서 우리 언론에 나왔다는 그런 말씀이신가요?

이태식: 그러니까 그렇게 번역을 한 것 같습니다.


이 대사에게는 안 됐지만 우선 그의 발언에는 "we feel very sorry."라는 대목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참극 앞에서 "We feel very sorry."라니?

그리고 이런 정도의 사건에 대사가 "we feel very sorry."라고 해서도 안 된다. 그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수준의 뜻이라도 sorry라는 단어를 사용해서는 미안의 무게가 너무 가볍고, 또 "나도 참 마음이 아프다"라는 의미로 사용이 된다고 해도 사건의 당사자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표현으로서는 깊이와 공식성을 갖지 못한다. 만일 정말 그렇게 말했다면 도리어 일국의 대사가 이런 참변 앞에서 "We feel very sorry."정도의 조문발언을 했다는 것에 시비가 걸릴 수 있다. 그만큼 외교적 발언은 힘들고 신중해야 하는 법이다.

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언론이 "We feel very sorry."를 이 대사의 말 대로 유감과 사죄를 표한다고 번역하는 수준이라고 책임을 뒤집어쓰고 있다. 책임전가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발언을 했던 현장은 기독교인들이 주가 된 추도모임이라고 한다. 따라서 종교적 표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하겠다. 그러나 그 종교적 표현이 이 정도에 이르면 대사의 발언으로서는 짚어야 할 바가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한 그의 발언 원문은 이러하다.

Perhaps, we have to repent ourselves deeply so that we could advance ourselves to the local community, to share with their deepest sorrow and grief. Perhaps, we will have to repent more in serious manner so that we could extend our hands to feel their sorrow, and to acknowledge their deep agony. This is what we are doing at the moment.

번역은 다음과 같다.

"아마도 우리는 깊이 회개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지역 공동체로 다가가서 그들의 깊고 깊은 슬픔과 애통함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보다 심각한 수준에서 회개함으로써, 우리의 손을 내밀어 그들의 슬픔을 느끼며 그들의 깊은 고뇌를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이 순간에 우리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이 발언이 이러한 비극 앞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각해야 할 죄에 대한 종교적 성찰과 회개라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한국 동포사회를 전제하고 회개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대목 앞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At this stage, our Korean-American community here in Washington and Northern Virginia area, we better humble ourselves to face the reality and that is that this horrendous incident was committed by one of our ethnic members.

번역하면, "이 단계에서 워싱턴과 북부 버지니아 주 지역에 살고 있는 한인동포사회는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를 겸손하게 낮추어야 합니다. 이 엄청나게 끔찍한 참극이 우리 동포사회의 일원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 앞에서 말입니다."

즉, 그는 이번 사건을 "소수민족 집단의 문제(ethnic issue)"로 규정하고, 그 소수민족 집단인 한인동포사회(*ethnic이라는 말을 쓸 때 이는 미국에서, 단지 인종 또는 종족집단이 아니라 <소수민족 집단>을 의미한다.)가 몸을 낮추고 죄를 고백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그가 사용한 회개, "repent"라는 단어는 단순하게 번역하자면 "회개"이지만, 그 의미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그것은 "나는 죄인입니다. 저의 죄를 뉘우칩니다. 용서하소서."라는 의미가 담긴 공개적인 죄의 자백 선언과 용서를 구하는 방식의 표현이다.

한인 동포 사회는 죄 많은 소수민족 집단입니다

만일 그가 한국말로 한국인 교인들을 상대로 이러한 식의 회개를 촉구하는 이야기를 했다면 별 문제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발언이 미국사회에 전해지도록 영어로 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시선집중>의 인터뷰 대목에서 이 대사는 영어로 말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특히 마침 거기에는 연방하원의원도 두 사람이나 참석했고 그 도에 많은 지방 유지들도 참석했고 해서 그 분들을 향해서 제가 영어로 메시지를 전달했는데......"

미국인들 앞에서 "repent"라는 말로, 한인동포 전체가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회개하자는 식의 말을 했던 것이고, 게다가 그는 "영적으로 새롭게 되어(renew ourselves spiritually)" "미국에서 가치 있게 받아들여질 소수민족집단이 될 수 있도록(could be accepted as a worthwhile ethnic community in this country)"하자고 촉구했다.
원문: This is the moment that we will have to renew ourselves spiritually as well as in terms of what we are doing so that we could be accepted as a worthwhile ethnic community in the country

다시 말해서, 이 대사는 이번 사건이 한국인이라는 소수민족 집단의 일원이 저지른 범죄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미국 사회에 한국정부와 한국인 전체를 대표해서 사죄했고, 우리 전체를 죄 많은 민족 집단으로 설정하고 영적으로 새롭게 회개하지 않으면 미국 사회에서 가치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공동체로 스스로 낙인찍고 만 셈이다. 그가 몸을 낮추어 겸손하자면서 "humble"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사용했던 바, 종교적 표현이라고 이해한다 해도 너무 저자세로 일관하면서 이번 사건의 총체적 책임을 한인동포사회의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만 것이다.

단어 하나에 숨은 진실과 거짓

백보 양보해서, 그가 한인동포사회의 안전을 극도로 염려한 나머지 최대한의 사죄표현으로 한인동포 누구라도 다치지 않게 하려는 충정이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그는 결국 이 사건의 핵심이 총기시장의 난폭한 현실과 원자화된 개인을 방치해버리는 미국사회의 냉혹함보다는, 한국동포사회의 정신적 상태에 있다는 식으로 말해 그의 만일에 있었을지 모를 의도와는 다른 발언을 했다.

말하자면 한국과 한국인 자신을 미국 사회에 내놓고 폄하하고 열등시해버렸으며, 그렇다면 그런 소수민족 집단에서 총기난사사건은 당연히 나올 수도 있겠다, 라는 식의 논조를 느끼게 할 표현을 한 것이다. 이런 방식은 다시 강조하건대 한인 동포사회의 안전을 결코 보장해주지 못하고 그 역으로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단어 하나하나에 중대한 의미의 차이를 갖게 되는 국제적인 협정문인 한미 FTA의 영어 원본이 공개적 점검의 대상이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노무현 정권의 자세도 이태식 대사의 모습과 그리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apology"라는 말을 해놓고 "we feel very sorry"라고 했다고 강변하는 그의 모습에서, 한미 FTA 협정문에 사용된 단어들이 어떤 것들인지 모두에게 밝히지 않는 권력의 그림자가 겹친다.

진실에 대한 규명은 그래서 집요해야 한다. 언론의 이 집요함이 사라질 때, 권력과 공직자의 거짓말 행진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엉뚱한 공범자가 되거나, 생각지도 않은 책임을 전가당해 고통을 겪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시선집중>의 진실추적에 대한 일부 세력의 공세는 진실을 두려워하는 자들의 추악한 반격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All the Governments lie!)."라는 경구를 남긴 저 미국의 전설적 언론인 I. F. Stone의 충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권력, 또는 공직자와의 인터뷰는 언제나 진실추적의 최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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