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가 22일 미군이 종파 간 분쟁을 막는다며 바그다드의 한 수니파 마을에서 추진 중인 분리장벽 건설에 정면 반발하고 나섰다.
이집트를 방문 중인 말리키 총리는 22일 아므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을 만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바그다드 북부의 수니파 마을인 아다미야를 둘러치는 장벽건설 공사의 중단을 명령했다고 말했다.
말리키 총리는 "나는 장벽 건설에 반대한다"며 "종파 간 다툼으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문제의 장벽은 다른 장벽들을 생각나게 한다고 말했다. 이는 냉전시절 동ㆍ서독을 갈라 놓은 베를린 장벽이나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이 건설하는 분리장벽을 염두에 두고 한 말로 볼 수 있다.
미군은 지난 10일부터 주변 시아파 주민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라며 수니파 마을인 아다미야를 둘러싸는 높이 3.5m, 길이 약 5㎞의 거대한 콘크리트 분리 장벽을 설치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자 아다미야 주민들은 이 장벽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게 아니라 통제하고 가두기 위한 것이라고 반발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아다미야의 수니파 주민들은 티그리스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시아파 마을인 카다미야 사람들과 전통적으로 사이좋게 지내 왔다.
하지만 미군의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한 뒤 누군가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종파 간 분쟁이 격화하면서 두 마을 주민은 별다른 이유없이 서로 적이 돼 싸우고 있다.
미군은 이를 막을 방법으로 분리장벽 설치를 생각해 냈지만 말리키 총리는 수니파 주민들의 반발을 고려해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이라크에서는 미군이 종파 분쟁과 저항공격을 막는다고 주장하며 바그다드를 비롯한 이라크 전역 곳곳에 장벽을 세우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론이 고조하고 있다.
일부 이라크 정치인들은 미군이 장벽건설을 통해 종파 간 분열을 고착시킨다는 비판도 하고 있다.
쿠르드족인 마흐무드 오스만 의원은 AFP 통신에 "아다미야를 둘러싸는 장벽을 세우는 것은 실패의 극치이자 인권을 침해하는 그릇된 방법"이라며 미군과 이라크 정부의 안정화 정책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신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한편 미군은 바그다드에서 저항공격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을 장벽으로 에워싸는 계획을 확대해 추진할 것으로 알려져 말리키 총리가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되고 있다.
미군은 이라크 사령부가 있는 바그다드 공항과 미국대사관, 이라크 정부 청사가 밀집한 그린존(안전지대) 주변에는 저항공격을 막기 위한 콘크리트 방벽을 이미 오래 전에 설치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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