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 이태식 주미대사가 지난 17일 "한국과 한국인을 대신해 유감과 사죄를 표한다"며 "사죄를 위해 한국 교민들이 32일간 금식하자"고 제안한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국회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사대적 발상…차라리 주미대사 물러나라"
민주노동당 정호진 부대변인은 19일 "이번 사건은 국가적 문제도, 인종적 문제도 아닌 만큼 그렇게 해석돼서도 안된다"며 "한국과 한국인이 총기 난사를 저지른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할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정 부대변인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미국사회의 총기난사 사건에 대해 국가와 국민의 이름으로 사죄 발언을 한 이태식 대사의 발언은 인종 갈등과 차별을 전제로 한 사대적 발언"이라며 "대한민국 외교 담당자가 시대를 역행하는 사대적 발상과 자세를 고수한다면 주미대사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 이미경 의원은 이날 당 통합추진회의에서 "이번 사건은 한국 국민 전체가 사과, 사죄하거나 대통령과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다"라며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며 미국에서 처리할 일에 너무 큰 사죄로 사회 전체가 휘청거려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개인이 저지른 것도 국가와 민족 전체로 확대해 본다는 것은 개개인의 자유와 책임, 이를 바탕으로 전체 공동체를 만드는 성숙도가 아직도 미약하다는 것"이라며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진정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기우 원내부대표는 기자의 질문에 "(주미대사의 발언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면서도 "공식적인 외교 발언도 아니고 현지 시민권자와 교포 사이의 갈등을 조정해 온 주미대사의 입장에서 마침 기도회 성격의 모임이었기 때문에 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개인의 자유와 책임에 대한 이해 부족"
국회 통외통위 소속 의원들도 대체로 이 주미대사의 발언에 대해 "적절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한나라당 소속 박진 의원은 "한국계 학생이 저지른 범행이라고 해서 자칫 우리가 지나치게 나서다보면 오히려 자승자박의 결과가 될 수 있다"며 "이번 사태가 한미관계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돼서는 결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다만 "친미주의적 발언이나 사대적 발언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단지 정부 대표로서 한국민이 가진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있어 적절한 표현을 쓰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최성 의원은 "대한민국이 과도하게 한국계임을 드러내놓고 자성하는 것은 일탈적 범죄행위를 미국 주류사회 대 한인 사회의 문제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문제가 생긴다"며 "차라리 교포 2,3세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어떻게 보호할지 구체적인 대안을 세우는 게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의원은 다만 "단순히 친미주의로 매도해선 안 된다. 미국 교포사회에는 한미관계에 대한 민감성 등이 크다"며 "한국 특유의 공동체의 책임 의식의 발로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통외통위 한나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진영 의원은 "이번 사태를 책임지고 대책을 세우고 있는 책임자로서 아이디어 중의 하나거나 개인적인 발언 아니겠느냐"며 "주미대사의 사퇴까지 거론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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