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상 최악의 대학 캠퍼스 총기 참사사건의 범인이 한국인으로 알려진 직후 한국 정부가 공식 사과에 가까운 애도 표명을 했지만 이는 도리어 미국 사회에 한국 책임을 부각시키는 역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18일 대두되고 있다.
미국내 한국 전문가들은 미국인들이 한국 국적의 조승희씨가 범죄를 저지른 사실에 주목하기보다 미국내 여러 사회적 부작용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빚어진 참극으로 인식하고 있어 한국 정부의 사과성 표현이 오히려 '한국에 책임이 있는게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통이며 부시행정부 기류에 정통한 미국의 한 관계자는 이날 이메일을 통해 "8살 때 미국으로 건너온 한국인 이민자가 대참사를 저지르면서 성장일로의 한인사회에 역풍이 불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미국내 '반(反)외국인 감정'은 미 독립기념일 이후부터 상존해 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길거리 주유소에서 한국인을 향해 고함치는 일은 일어날 수 있겠지만 그런 일은 이번 참사 발생 전에도 흔히 있던 것이고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며 "미국인들은 한국인이 이번 참사를 저질렀다고 생각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미국인들은 이번 사건을 미국의 비극으로 생각할 뿐 한국이 우리에게 저지른 참사로 생각하지 않고 있어 한국의 사과를 요구하는 의견은 결코 없다"면서 "따라서 한국정부가 공식 사과같은 것을 표명하는 것은 '한국이 책임이 있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미 시민권자가 아니라 해도 무기소지가 합법화돼 있는 곳에서 일어난 범죄에 외국 정부가 책임을 진 사례는 일찍이 없었고 오히려 버지니아 주정부가 희생자 유가족들의 반발을 무마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있는 한반도 정책 연구소인 세종 소사이티도 18일 버지니아텍 총격사건에 대해 성명을 내고 "희생자 유족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하며, 가해자의 국적 때문에 한국과 미국간에 어떠한 판단 착오나 오해가 빚어지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명은 이어 "우리는 차세대 한국 전문가들을 창출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에 따라 한국과 미국간에 있을지 모를 문화적 차이에 다리를 놓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종 소사이어티는 한반도에 관한 한미 정책을 연구하는 젊은 학자들로 구성된 비영리 기관으로 한반도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고 홈페이지(http://www.sejongsocietydc.org)를 통해 남북한 관련 뉴스를 알리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의 주요언론들도 이날 조씨 사진과 함께 32명의 희생자를 낸 버지니아텍 참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도 조씨가 한국인이라는 점을 크게 부각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당국이 조씨가 총격을 가해 사망케 한 여학생의 남자친구를 용의자로 붙잡아 신문하는 바람에 신속한 초동수사에 실패, 사건을 키웠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버지니아공대 경찰은 16일 오전 기숙사에서 총격으로 2명이 숨진 뒤 희생자 가운데 한 명인 에밀리 제인 힐스처(18)의 남자친구 칼 손힐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그를 고속도로에서 붙잡아 조사하는 동안 조씨는 2차 범행지인 공학부 건물인 노리스홀로 난입, 권총을 난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당 티모시 케인 버지니아 주지사는 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 발생 직후 대학구내 경찰과 학교측의 늑장대처 등 문제점이 지적됨에 따라 이를 조사하기 위한 중립적 조사위원회 구성을 긴급 지시했다.
한편 프랑스 일간 르 몽드는 이번 참사는 미국 사회가 무기에 대한 맹목적 숭배, 풍부함과 경쟁이란 '이중의 압제'에 예속된 한 젊은이의 착란 현상, 폭력 등에 직면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사건이라며 미국이 폭력을 제어할 날이 결코 가까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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