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의 1만3천여 직원을 대표하는 직원협의회는 12일 워싱턴 은행 본사 안에서 비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울포위츠 총재가 여자친구에게 부당한 승진과 연봉 인상 특혜를 준 것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고발자 보호단체인 GAP(정부 책임성 확보를 위한 기구: Government Accountability Project)이 지난 3일 폭로한 바에 따르면, 2005년 세계은행 총재에 취임한 울포위츠는 연인 간 간부·직원 관계를 금지한 사내 규정에 따라 세계은행 여자친구 샤하 알리 리자를 국무부에 파견하면서 리자의 직급을 관리자로 올리고 연봉도 두 차례에 걸쳐 두 배가량 인상토록 조치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2005년 11월 이 같은 지시를 담아 인사담당 부총재에게 전달된 메모를 공개하기도 했다.
울포위츠의 '각별한 배려'아래 리자의 현재 연봉은 19만3590달러(약 1억8000만 원)가 됐다. 이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연봉보다도 7000달러가 많은 수준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직원뿐 아니라 이사회에서도 불만이 새나오고 있다. 세계은행 규정은 직원을 진급시키거나 연봉을 올려주기 전 반드시 인사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는데 울포위츠가 이사회와 상의도 없이 이 절차를 생략했다는 것이다.
울포위츠는 또 이 사건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하기보다는 이 사실이 언론과 시민단체에 유출된 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외부 법률회사 자문까지 요청한 것으로 드러나 원성을 사고 있다.
내부 압력 크지만 부시가 '바람막이' 될 수도
이처럼 파문이 커지자 울포위츠는 공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는 이날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 봄철 연차총회에 관한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를 질문받자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며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계은행 이사회가 내놓는 "어떤 예방책도 수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울포위츠는 1만3천여 직원을 대표하는 직원협의회의 사임 요구에 대해서는 답을 피했지만 안팎의 사임 압력이 워낙 거센 탓에 계속 버티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세계은행 직원협의회가 울포위츠에 대한 불신임 투표도 벼르고 있다고 전했다. '공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총재와 어떻게 더 일할 수 있느냐'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설득력이 크다는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날 사설을 통해서도 울포위츠의 사퇴를 촉구했다.
"최근 사건은 세계은행의 도덕적 권위가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심각한 실패"이며 "울포위츠가 자리를 유지할 경우 그 자리는 존경의 대상이 아닌 경멸의 대상이 될 공산이 크다"는 주장이었다.
신문은 또 개발도상국에 융자를 해 주는 세계은행의 기능을 강조하며 "울포위츠가 융자를 해 준 국가에 청렴 정부론을 역설하는 것은 '믿음직한 투쟁'이 아닌 '속 보이는 위선'으로 받아들여 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지난 1998년부터 2001년까지 미 재무차관보를 지낸 테드 트루먼 역시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울포위츠가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루먼은 "스캔들 때문에 정작 중요한 연차총회 사안들이 언론의 외면을 받고 있다"면서 "이것이 세계은행 자체에도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네오콘의 핵심인물인 울포위츠를 세계은행에 보내기 위해 집요한 외교전을 벌였던 부시 행정부가 울포위츠의 '불명예 퇴진'을 두고만 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백악관은 "미국은 여전히 울포위츠를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밝혀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미국은 세계은행 최대 출자국으로 인사권과 운영권에 실제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세계은행 주요 출자국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비공개 소집돼 울포위츠 거취 문제를 논의했으나 내부 진통 끝에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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