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공연기획자 송승환씨입니다. 송승환 대표는 1957년 서울 출생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를 졸업했고 1965년 KBS 아역배우로 데뷔해 똘똘이의 모험, 얄개전, 여로, 아씨 등에 출연했습니다. 1977년 극단 76극장에 입단해 LUV와 요지경 등을 연출하고.. 관객모독,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기했으며 1989년 극단 환 퍼포먼스를 창단했습니다. 1996년 (주)PMC 프로덕션을 창단해 비언어극 난타와 뮤지컬 달고나 그리고 늙은 창녀의 노래 등을 제작했습니다. 동아 연극상 특별상을 비롯해 백상 연기상과 서울연극제 남자연기상. 한국 뮤지컬 대상 특별상을 받았고 현재 한국연극협회 이사이자, 명지대 공연예술학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박인규 : 우선 축하드립니다. 난타가 올해 10월이면 만 10년 되는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코드 또는 공연으로 자리잡았는데 기분 좋으시겠습니다.
송승환 : 네. 처음 시작할 때는 이렇게까지 되리라고는 사실 생각지 못했구요. 다만 한국공연을 가지고 늘 서울 공연 끝나고 나면 지방 몇 개 도시 돌고 나면 더 이상 공연할 곳이 없었는데, 해외수출용 연극 한 번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처음 작품을 만들었는데 어느새 이제 10년이 됐고, 또 10년이 지난 지금도 저희 전용극장에서 매일 공연을 하고 있고. 다행히 매일 관객이 꽉꽉 차고, 그래서 솔직히 말씀드려서 뿌듯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박인규 : 해외수출용 연극을 만들어 보자는 말씀을 하셨는데, 97년 10월에 난타가 처음 나왔을 때 참 신선하다는 말도 많았고, 또 부엌에서 쓰는 칼과 도마.... 두드리는 것만 가지고 했는데도 전 세계 사람들이 좋아하고. 어떻게 이런 걸 극으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송승환 : 제가 연기자로 활동하다가 제작자가... 말하자면 배우란 직업의 한계.. 좀 수동적이죠. 뽑혀야 되는 직업이기 때문에 제가 좀 적극적으로 판을 좀 펼쳐보고 싶어서 공연 제작을 시작했는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까 제작자로서 늘 돈, 경제적인 문제가 컸습니다. 왜냐하면 작품 하나 만들기 위해서 드는 비용을 공연티켓을 팔아서 회수하기 굉장히 힘든 게 실정이구요. 제 생각엔 시장을 넓히지 않고는 공연을 해서 수익을 내긴 영원히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해외시장을 겨냥한 작품을 만들려고 할 때, 우선 언어가 문제였어요. 한국말로 하는 공연을 가지고 해외 나가서 공연하기는 쉽지 않으니까.
언어가 없는 공연, 비언어극을 만들어 보자. 언어가 없으면 소리가 없어지는데 뭔가 다른 소리가 있어야겠지요. 그게 이왕이면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소리면 좋겠다. 그래서 생각한 게 사물놀이였습니다. 사실 사물놀이를 가지고 어떻게 연극을 만들어볼 수는 없을까, 그게 처음의 발상이었구요. 사물놀이는 아시다시피 북, 장구, 꽹과리, 징을 두들기는 우리 음악인데 우리 생활 주변에 두들길 곳이 제일 많은 곳이 어딘가 하니 부엌이었어요. 냄비, 프라이팬, 도마.. 두드릴 게 많잖아요. 그래서 부엌으로 무대가 설정됐고,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요리사니까 요리사들이 등장인물이 되고. 그래서 음식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주방에서의 여러 가지 사건들을 드라마틱하게 만들고, 그러면서 비언어극이니까 소리가 없는 부분을 사물놀이 리듬으로 주방가구를 두들기면서 공연을 만들어 보자. 이렇게 시작이 됐죠.
박인규 : 올해 10주년입니다만, 작년에 외국인 관람객만 100만 명. 지금까지 총 난타를 본 관객이 얼마나 됩니까?
송승환 : 작년 12월 말까지 300만 좀 넘었구요. 지난 3월 말까지 집계가 330만 정도 되는 것 같고 공연 횟수는 이제 9천회를 조금 넘어섰구요.
박인규 : 그리고 기본적으로 국내에서만 팔리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겨냥한 공연이라고 하셨는데, 그럼 얼마나 많은 도시에서 공연했죠?
송승환 : 나라수로는 약 24개국에서 공연했고, 지금도 모스크바에서 난타가 공연 중이거든요. 도시수로는 약 200개 넘는 도시. 왜냐면 저희가 북미투어를 했어요. 그래서 한 달 동안 거의 20여 개 도시에서 공연했고, 유럽 투어를 할 때 여러 도시에서 공연했고. 그래서 도시수로는 200개 도시가 좀 더 되고. 나라수로는 약 24개국 정도.
박인규 : 200개 도시면 진짜 세계적인 문화상품이라고 할 만하네요. 물론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만이 아니라 미국, 유럽, 동남아고 세계인들이 이렇게 좋아하는 이유를 어디서 찾으세요?
송승환 : 우선 저희가 세계무대에 가서 공연이 가능한 것은 비언어라는 장르를 택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우리 언어를 가지고 하는 공연이었다면 공연 자체가 쉽지 않았을 거구요. 두 번째는 사물놀이라는 우리의 타악을 연극으로 만들었는데, 타악이라는 것이 굉장히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 같아요. 특히 우리 사물놀이의 특징은 빠른 리듬에서 휘몰이로 몰아칠 때의 스피드... 그 장단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떤 사람이든 굉장한 흥분감, 카타르시스까지 가죠. 그런 것들이 우선 주효했구요. 다음으로 부엌이라는 공간, 요리사라는 등장인물이 보편성을 가졌던 것 같아요. 요리사들이 한복 입고 나오는 게 아니라 하얀 요리사 옷에 하얀 모자, 어느 나라 어느 호텔에든지 가면 볼 수 있는 요리사 복장.... 이런 것에서 보편성을 갖고 있었고. 또 드라마가 코미디였기 때문에 웃음을 가질 수 있는 요소들, 이런 것들이 세계무대에서 통했던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세계 각국의 보편적인 심성에 어필하셨군요. 제가 듣기로도 어렸을 때 엄마 뱃속에서 제일 처음 듣는 게 심장박동소리기 때문에 타악에 대해서는 상당이 끌리는 게 있다고 하더라구요.
송승환 : 그렇죠. 어느 나라든지 특유의 타악이 있죠. 그런데 우리의 타악, 또 사물놀이는 우리만이 갖고 있는 리듬. 물론 외국인들이 그게 사물놀이인지 뭔지는 모르죠. 그러나 어쨌든 독특하다는 건 느낄 거구요. 그리고 타악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있고. 결국 세계무대에서 성공하려면 그런 보편성과 독특함 두 가지가 어떻게 잘 접목되느냐인데, 난타는 그 두 가지가 잘 접목돼서 성공적인 공연을 할 수 있었죠.
박인규 :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난타도 초연 때와는 많이 달라졌죠?
송승환 : 달라졌죠. 왜냐 하면 처음 초연 때는, 사실 저희가 어떤 개념만 가지고 공연을 만들었기 때문에 구성도 굉장히 허술했고 또 배우들이 사물놀이 연주자가 아니라 연극배우들이 사물놀이를 배워서 했기 때문에 연주도 굉장히 서툴렀고. 그러나 10년이 돼 오면서 구성도 탄탄해지고 배우들의 연주실력도 많이 향상되고. 이제는 걱정이 매너리즘에 빠지는 게 걱정이지 작품은 계속해서 수정하고 보완해 왔죠.
박인규 : 공연을 하시면서 관객들 반응에 따라서 작품이 달라지기도 합니까?
송승환 : 물론 그렇죠. 공연의 특성상 매일 똑같은 공연은 단 한 회도 없죠. 그날 관객이 어떠냐에 따라 공연은 매일 다른 거니까요. 또 그동안 해외와 국내공연을 하면서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작품을 수정한 부분도 있구요.
박인규 : 난타가, 말하자면 송승환표 공연의 주력상품인데 계속 난타만 가지고 갈 순 없는 거 아닙니까? 지금 제 2의 작품을... 비보이를 주제로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송승환 : 물론이죠.. 우선 난타가 올해가 10년이면 많은 분들이 보셨고, 난타 투어를 만들 때가 되지 않았냐는 얘기들도 많이 하세요. 왜냐 하면 지금 난타는 부엌을 배경으로 해서 사물놀이를 가지고 만든 작품이지만, 또 다른 공간을 소재로, 다른 두들김으로, 타악을 가지고. 우선 저희가 난타2를 준비하고 있구요. 또 하나는 '비보이코리아'라는 작품을 지난 1월 막을 올려서 지금 공연중에 있습니다.
비보이는 사실은 2000년도에 UFO라는 작품으로 막을 올렸어요. 그때는 실패했어요. 그땐 비보이가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던 때라 너무 앞서가서 실패한 경우였는데, 그 이후에 한국의 비보이들 역량이 굉장히 좋아지고, 비보이도 가능성이 있는 것이 역시 비언어기 때문에. 난타가 소리로 표현했다면 비보이는 춤으로 표현하는 공연이죠. 그래서 세계시장 진출가능성이 있고. 그래서 비보이코리아를 지난 1월부터 공연 중이구요. 9월쯤에는 좀 더 업그레이드된 비보이코리아를 내놓을 예정이구요.
또 저희가 난타 초창기처럼 여행사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죠. 다음주에는 제가 일본을 가는데 일본의 여행사 사람들을 불러 놓고 비보이코리아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고, 그래서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에 올 때 비보이코리아를 볼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판촉행사를 하러 나갑니다. 그런 마케팅을 앞으로도 펼쳐나갈 생각입니다.
박인규 : 비언어극 말고 대장금도 뮤지컬로 만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준비가 어느 정도까지 돼 가고 있죠?
송승환 : 저희가 2년 전부터 준비를 시작해서 가장 어려운 작업이 대본작업이었어요. 아시다시피 대장금이란 드라마가 TV에서 54부작으로 방영됐으니까 54시간 분량의 드라마를 약 2시간 반 정도의 무대극으로 압축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대본작업에 오랜 시간이 걸렸구요. 그래도 무사히 대본이 제작자로서는 만족할 만하게 나오고 또 거기 따른 음악이 작곡되고 지금 막바지 연습중입니다. 오는 5월 26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막을 올릴 예정입니다.
박인규 : 얼마 안 남았군요. 대장금이라는 드라마가 특히 중국을 비롯해서 동남아에서 하도 유행했다고 해서. 동남아에서 상당히 뮤지컬로도 환영받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세요 가능성은?
송승환 : 일본 NHK에서 대장금이 여러 차례 방영됐고, 중국에서는 CCTV를 를 통해서 여러 번 방영되고 굉장히 높은 시청률을 자랑했기 때문에 굉장히 진출 가능성이 높죠. 중국에선 이미 어느 극장에서 내년 북경올림픽 기간에 대장금을 하고 싶다고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해서 저희와 미팅을 가졌고, 조만간 성사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뮤지컬이 해외에 나가서 요즘 한류라고 하는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나라는 사실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 하면 TV드라마는 시청자 입장에서 틀면 나오니까 공짜 아닙니까. 그러나 뮤지컬은 비싼 입장료를 주고 봐야 되기 때문에 국민소득이 2만불 이하인 나라에서 공연은 쉽지가 않죠.
그러니까 아시아권에서 대장금이 뮤지컬로 만들어져서 진출할 수 있는 나라가 중국, 일본, 홍콩, 대만, 싱가포르 정도. 국민소득이 낮은 나라에서는 아무리 TV드라마로 히트했다고 해도 비싼 입장료 받고 공연하긴 힘들기 때문에. 그러나 어쨌든 다른 작품에 비해서는 굉장히 국내 시장에 국한되지 않고 아시아 시장을 넘볼 수 있다는... 또 워낙 중국 시장이 지금 커져 가고 있고. 일본도 굉장히 좋은 시장인 이유가 우리나라는 서울과 지방의 문화격차가 심하거든요. 사실 서울보다 지방에서 입장료도 싸게 받는 편이고. 그런데 일본은 각 도시마다 문화격차가 거의 없고, 도쿄나 나고야나 오사카나 거의 비슷한 입장료를 받을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큰 시장이죠. 일본과 중국만 해도 대장금이 성공한다면 굉장히 가능성이 높은 시장이라고 봅니다.
박인규 : 다른 것보다도 내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대장금이 공연된다면 단순히 중국 사람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오신 분들이 보기 때문에 상당히 좋은 홍보가 될 것 같고, 기대가 됩니다. 아까 배우만 계속 하다 보니 수동적인 것 같아서 큰 판을 벌여보고 싶어서 제작자로 나섰다고 하셨는데, 또 배우로서도 어려움이 있겠지만 제작자로서도 여러 가지, 말하자면 성장하실 때까지 상당히 어려우셨을 것 같아요. 배우를 할 때와 제작자와의 차이 어떤 게 있습니까?
송승환 : 해보니까 배우처럼 좋은 직업이 없더라구요. 물론 배우도 어려운 일이지만 자기 역할에만 충실하면 되죠. 제작자는 신경써야 할 일이 굉장히 많죠. 작품을 기획하는 일부터 자금을 끌어들이고 캐스팅하는 일, 프로덕션을 꾸려가고 마케팅을 하는 일. 굉장히 일이 많고 복잡하지만 배우로서는 느끼지 못하는 성취감이나 만족도를 느낄 수 있는. 저로서는 배우가 제 선천적인 재능 덕택에 한 일이라면, 프로듀서는 정말 제가 하고 싶어서 택한 일인데 다행히 난타가 잘 돼서 할 수 있는 얘기지만 굉장히 저로서는 만족스러운 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일 어려웠던 건 역시 자금 문제가 참 어려웠고. 요즘은 난타 덕택에 저희가 자금 걱정 안 할 수 있을 정도로 회사가 성장했지만. 99년에 에든버러 갈 때도, 에든버러에 가기 위한 경비가 모자라서 친구집을 담보로 은행돈 빌릴 정도로 굉장히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고. 또 하나는 이제 난타가 10년 공연하다 보니까 제작자 입장에서 말하자면 마라톤을 하는 거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이 마라톤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어요. 대개 공연이라는 게 두세 달 연습하고 두세 달 공연하면 그게 끝나고 또 새 작품을 하고. 그런 마라톤 경험이 없는 배우, 스태프들을 데리고 마라톤을 처음 한다는 것이 제작자 입장에서 좀 어려웠죠.
박인규 : 사실은 지금 송승환씨는 제작자로서 상당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계시지만 많은 분들은 배우로도 알고 있고, 최근까지도 TV드라마에 나오셨고. 제작자로 사실 시작은 일찍 하셨어요. 79년도에 LUV라는 뮤지컬 하시면서 당시 최고 스타였던 김자옥씨에게 100만원을 꿔서 했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어쨌든 난타가 세계적인 문화상품이 되면서 PMC프로덕션이라는 회사도 차리셨고. 좀 뭐한 질문이지만 지금 PMC프로덕션의 연간 매출이나 성적이 어떻게 됩니까?
송승환 : 제가 96년도에 회사를 만들었고 첫 번째 제작한 작품이 유리동물원이었고 남자충동이란 연극을 제작했고. 또 LUV라는 뮤지컬을 다시 한 번 공연했고 네 번째 작품이 난타였는데. 처음 회사 만들어서 자본금은 세 작품 하면서 다 까먹었고, 난타 때부터는 제 파트너가 개인 돈을 투자해서 제작을 시작해서, 처음 3년 동안은 제가 PMC 대표지만 월급도 못 가져갈 정도로 어려웠죠. 난타 전용극장이 생기면서 안정적인 매출과 수익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2000년 난타 전용극장 생긴 첫 회 매출이 70억 정도 됐고. 그 이후 2001년부터 매출이 100억대 이상으로 올라서기 시작하고, 작년 매출은 200억 좀 더 됐고, 1년에 200억 정도 올리고 있습니다.
박인규 : 웬만한 중소기업 이상이네요
송승환 : 문화산업의 가능성을 어쩌면 저희 PMC가 보여준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공연 부분에서.. 매출 200억에 순익 40억 정도를 내고 있으니까, 더군다나 문화산업의 장점이라면 특별한 원자재가 필요 없다는 것이죠. 일반 기업이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장을 지어야 하고 원자재가 필요하고. 그러나 문화산업은 아이디어만 갖고 가능한 산업이죠. 양파하고 오이만 있으면 세계 어디서나 공연하고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박인규 : 요즘은 문화산업이란 말을 많이 하는데, 문화도 산업이 될 수 있고 말하자면 외국에 수출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선구자 중 한 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거기까지 오시기에는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아요. 특히 그런 문화산업을 선도하시는 입장에서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인프라 중에서 이런 게 참 어렵더라. 앞으로 이런 것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떤 게 가장 그렇던가요?
송승환 : 우선 세계진출이 힘들었던 게 정보가 없었죠. 경험도 없었고. 우리 공연을 상업적으로 해오 공연기획자들한테 돈을 받고 팔아본 경험이 없으니까. 난타가 처음 해외진출을 할 때 도대체 어떻게 누구한테 팔아야 되는지 계약서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으니까. 그래서 하나씩 하나씩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면서 난타가 그동안 쭉 해오면서 많은 노하우를 익힐 수 있었구요. 후배들이 다행히 저희 난타를 보고, 난타가 어쩌면 모델이 되고 또 벤치마킹을 하고. 그래서 난타 이후 해외진출작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서 그런 면에서 굉장히 보람을 느끼고 있구요. 이젠 정보도 굉장히 많아졌어요. 에든버러 페스티벌이 저희가 참여했던 99년도에 축제 생기고 50년 만에 저희가 처음으로 한국에서 참여한 공연이었는데 올해 아마 10여 작품 이상이 에든버러에 출품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고. 그만큼 이제 많이 발전한 셈이죠.
박인규 : 우리 정부에서도 문화산업 진흥 얘기를 많이 하고. 나름대로 역할을 많이 하겠습니다만 정부에 대해서 문화산업을 제대로 진흥하기 위해서 정부가 가진 공적인 능력들을 어떻게 좀 활용했으면 좋겠다.. 조언을 해주신다면?
송승환 : 그동안 정부에서 생각하는 문화는 어찌 보면 가난한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 이런 쪽의 시각이 많았죠 과거에는. 그런데 지금 문화를 산업화한다는 얘기가 얼마 전부터 나오면서 주로 문화산업이라고 생각하는 게 영화, 게임, 음반... 이런 쪽을 문화산업의 영역으로 생각하시고. 공연은 아직은 문화산업보다는 기초예술 쪽으로 시각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그런데 공연도 이제 문화산업의 가능성이 뮤지컬 보여지고 있죠. 관객이 굉장히 늘어나고 있고 그만큼 국내 시장이 커지고 있고 대장금이 가령 중국이나 일본에서 성공한다면 적어도 아시아 시장까지 시장이 확대가 되니까요. 산업화가 되려면 시장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선. 작은 시장을 가지고 산업화 할 수 없으니까.
어쨌든 그 문화정책을 만드시는 분들이 문화를 이제는 기초예술과 문화산업적인 두 가지 측면에서 지원방법이나 정책을 생각하셔야 될 때가 된 것 같아요. 여전히 기초예술은 지원이 필요합니다. 지금도 대학로의 100여 개 소극장들이 공연을 끊임없이 하고 있지만 수익을 보는 작품은 1년에 10% 내외거든요. 그러나 그런 창의력을 바탕으로 해서 문화가 산업화 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는 거니까. 기초예술에 대한 지원... 다만 그 지원이 좀 더 선택적으로 집중됐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어요..
박인규 : 안목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송승환 : 그렇죠. 나눠주기 식의 지원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된 지원이 좀 필요하겠고. 또 하나의 시각은 이제 문화를 기초예술이 아닌 산업화로 보는 시각에서, 산업화 되기 위해서 필요한 여러 가지 정책 중 하나는 저는 시장을 넓히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한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데 정부의 도움이 좀 필요할 거고. 또 기본 인프라를 좀 더 탄탄하게 갖춰야 되겠죠. 그 부분은 기초예술에 대한 지원... 그것이 결국 문화산업의 인프라를 갖추는 지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문화산업에 계신 분으로서 한 가지 또 여쭤보고 싶은데, 한류가 굉장히 뜨면서 많이 나갔는데, 일부에서는 우려를 하시는 것 같아요. 너무 우리만 강조해서 지나치게 민족주의적이란 말도 있고. 또 지금 한류가 뜨니까 그거 가지고 단기간에 속된 말로 뭘 빼먹으려고 하다가 금방 소진될 수 있다. 한류가 계속돼 나가기 위해서 특히 문화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 어떤 태도가 좋은 건지...
송승환 : 저는 한류가 단순하게 한국의 음반이 몇 장 더 외국에서 팔리고, 아시아 지역에서... 드라마가 몇 편 더 수출되고 그것에 가치를 둘 것이 아니라, 한류가 다른 산업에 미치는 파생력이 크다는 게 어쩌면 더 영향력이 있는 것 같아요. 한국에 대해서 호감을 갖고 있지 않던 일본 사람들이 겨울연가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한국에 호감을 갖게 되고, 그래서 한국에 오고 싶어하고 한국에 관광을 오고. 중국의 10대 청소년들이 동방신기의 노래에 반해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하고. 동방신기가 입는 한국제 청바지를 찾고. 결국 한류는 한류 자체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산업에 미치는 파생력이 크고. 더 나아가서는 한국의 문화이미지를 만들어 주고 한국의 국가 브랜드를 좀 더 굳건해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한류 그 자체의 영향력보다는 더 넓은 의미에서 산업에 끼치는 파생력과 국가 이미지나 브랜드 가치를 만드는 것에 대한 좀 더 큰 안목에서의 한류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구요. 물론 일방적으로 그렇게 문화가 흘러갈 수는 없겠죠. 교류가 있어야겠지만, 그러나 문화는 역시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릅니다. 우리가 60, 70년대 할리우드영화 보고 외국 팝송 들었죠. 우리의 완성도가 높아지니까 이제 한국영화를 찾게 되고 외국 팝보다 가요를 더 좋아하게 되고. 결국은 문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전까지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마련이구요. 우리가 중국보다는 좀 더 문화상품의 완성도가 높으니까 중국으로 흘러 내려가는 거고 중국의 완성도가 높아지면 또 다시 올 수 있겠죠.
박인규 : 난타 공연 10주년. 자리를 잡았다면 잡았지만 송승환 대표 입장에서는 이제는 시작이라는 생각도 하실 것 같아요. 앞으로 제작, 기획자로서 계획이 있다면 마지막 말씀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송승환 : 기왕이면 난타보다 더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서 좀 더 많은 세계 시장에 우리 공연이 소개되는 일을 앞으로도 하고 싶구요.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한국이 경제적으로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고 하는데 과연 10위 정도의 문화수준을 갖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기죠. 더군다나 난타를 가지고 해외공연을 하면서 너무나 한국문화를 외국 사람들이 모르고 있고 또 한국이라는 나라조차도 아직 모르고 있고. 그런 사람들한테 문화는 어쩌면 수출의 인프라를 까는 게 바로 문화가 아닌가 싶기도 해요. FTA도 타결되고 이제 무한경쟁으로 접어들었는데, 공장을 짓기 위해서는 전기를 들여오고 길을 까는 게 중요한 것처럼 우리가 수출하기 위해서는 문화 인프라를 먼저 깔아서 한국을 알리고 한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작업. 그래서 저도 좋은 공연을 만들어서 거기 일조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박인규 : 공연기획자로 계속 활동하시겠지만 배우로서도 계속 활동을 하시는 거죠?
송승환 : 배우의 좋은 점은, 늙으면 또 늙은 대로 할 역할이 있거든요.
박인규 : 앞으로 배우로서, 공연기획자로서 한국문화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데 많은 역할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송승환 : 고맙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비언어극 '난타' 기획자인 PMC 프로덕션의 송승환 대표를 초대해 '난타' 공연 10주년을 되돌아보고 우리 공연들이 세계무대에 진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말씀 나눠봤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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