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잔혹한 사회와의 결별을 꿈꾸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잔혹한 사회와의 결별을 꿈꾸며

[한미FTA 뜯어보기 416 : 기고] 한미FTA 체결, 이제 진보의 결속 다져야

노무현 대통령의 잔혹한 경쟁철학

'고졸 출신인 내가 이 나라에서 세다고 하는 놈들하고 다 붙어 이겨 대통령 됐다. 세상은 결국 경쟁에서 이긴 놈이 주도하게 마련이다. 낙오하는 놈들은 시대의 주도권을 가질 자격이 없다. 그냥 몰락하게 내버려 두면 난리가 나니까, 대충 개평 몇 푼 줘서 잠잠하게 만들고 우린 갈길 간다.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 살겠지, 그 다음에는 내 알 바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이 혹시 이런 것은 아닐까? 한미 FTA와 관련해서 그가 해 온 발언과 선택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는 경쟁위주의 사회로 이 나라를 상정하고 있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상상력, 대안의 상상력은 그에게 전무하다. 대통령 노무현이 쏟아냈던 말들에 기초하여, 그의 논리를 가상의 방식으로 더 추적해보자.

'밖에 나가봐라. 우리나라 대기업 간판이 곧 우리를 대표하고 있고 이들이 잘 되는 것이 곧 우리 모두가 잘 되는 것이다. 애초부터 안 되는 놈들은 어쩔 수 없다. 낙오자들에게 발목이 붙잡혀 진군을 포기할 수는 없다. 다소 가혹하게 여겨지더라도 경쟁력 강한 놈 만들려면 들판으로 내 몰아야 된다. 센 놈하고 붙다보면 실력이 느는 거다. 내가 바로 그렇게 큰 사람이다. 사실 더 세게 내 몰아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되진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안에서 징징거리고 동네 구멍가게 장사하다가는 옆 동네 왕서방이랑 나까무라 상이 우리 거 다 둘러엎는다. 좀 손해가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맷집이 그냥 좋아지냐? 다 이렇게 저렇게 맞아가면서 훈련하다보면 일류선수가 되는 거다.'

약자는 그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강자가 이끄는 세상이 그에겐 좋은 세상이다. 경쟁에서 진 자의 도태는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이 된다. 이긴 자에게만 모든 것이 돌아가는 잔혹한 사회를 꿈꾸는 집권자의 이른바 결단으로 이 나라는 약육강식 논리의 광포한 질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고 말 작정이다. 이런 곳에서 힘이 약한 사람들은 모두 언젠가는 자신의 자리에서 쫓겨날 운명에 처한다. 하지만 그건 세계화의 대세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미 FTA 찬성론자들은 강변한다.

한 사회가 발전하려면 당연히 강한 자가 있어야 한다. 누구도 그걸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강한 자는 내부의 약자를 희생시키면서 자신의 위치를 차지하는 자가 아니라, 외부의 강자로부터 내부의 약자를 지켜내는 강자일 때 비로소 우리에게 의미 있는 강자다. 대통령 노무현이 앞세우려는 강자는 외부의 강자와 협력하여 내부의 약자를 짓밟는 강자다. 그래서 그가 윽박지르듯 밀어붙인 한미 FTA는 좌절과 절망의 청사진이 되고 있다. 분노가 분출되고 있다. 희망을 매장시키고 있다.

경쟁이 격렬한 세계적 현실에서 우리가 길러내야 하는 강자는 약자들을 팽개치고 저 혼자 살아남는 강자가 아니다. 약자의 눈물과 고통을 대가로 자기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는 자 또한 아니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그런 강자를 우리는 길러내야 한다. 우리는 엘리트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저 혼자만 아는 이기적인 엘리트주의를 배격하는 것이다. 한 사회의 미래를 책임 있게 걸머지고 있는 진정한 강자는 약자가 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시간과 조건을 최선으로 만들어준다. 그가 중도에서 좌절하고 그의 삶을 포기하도록 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두가 이 치열한 경쟁의 현실에서 낙오하지 않게 뜨거운 희망을 만들어내는 그런 존재다.

대통령은 스스로가 경쟁력을 발휘한 강자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한국사회의 주류가 보기에는 미천한 신분에서 지존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만이 아니라 몇 번의 정치적 위기에서 살아남았다고 그렇게 자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기와 대결하고 진 패자들을 쉽게 경멸하는 버릇이 붙었는지 모른다. 부당한 경쟁구조 속에서 희생당해 온 약자들에게 훈계를 서슴지 않고, 간신히 의지하며 버티고 있는 터에 그나마 있던 보조받침을 빼가면서 "너 잘할 수 있어. 이제 뛰어봐" 하고 마구잡이로 다그친다. 그러나 그건, 매우 잔인한 강자다. 그런 식으로 굳어진 경쟁철학은 오만하고 독선적인 집권자를 만들어낸다. 대통령이 그런 강자가 될 때 역사는 비극이 된다.

우린, 지금 그 비극을 어찌 할 것인가를 놓고 사투를 벌이고 있다.

기만적 한미 FTA 협상 국민담화

자,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 그가 국민들 앞에 내민 한미 FTA 성적표의 진상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의 미래를 미국의 대자본과 법률시장의 요구에 넘겨버린 주권매각행위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연장인, 종속적 선진화론이다. 미국제도의 이식이 아닌, 미국의 지배방식 관철이다.

게다가, 교역의 고속도로를 뚫어낸 것처럼 선전하고 있으나 뚫린 고속도로는 이곳에만 있고 미국에는 오솔길 하나 겨우 생겼을까 말까 한 정도이고 그곳으로 가는 조건도 까다롭기 그지없다. 미국 시장을 뚫어내는 협상을 하겠다고 호언했으나 이쪽이 왕창 뚫리는 협상을 했고, 그것도 미리 알아서 뚫어주는 기이한 행동을 했다. 그러니 협상 막판에 막아내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고, 국민들에게 팔랑팔랑 흔들며 성과로 내세울 카드 하나 얻기 위해 국민생활과 시장의 질서에 막대한 문제를 가져올 법과 제도의 구조조정이라는 대가를 헌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미 FTA 협상 이후의 문제에 대한 그 숱한 경고와 문제제기를 하찮은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어느 분야에서 문제가 생기는지 제대로 대답한 사람들이 없다면서, 자기가 모든 것을 가장 잘 알고 판단내린 것처럼 내세운다. 과연 그러한가? 사실 어느 분야 정도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그 파장은 기본적으로 파괴적이다.

다를 분야가 하나둘이 아니니, 최소한 세 가지 정도만 언급해보자.

(1) 그나마 협상의 성과로 내세우고 있는 자동차 분야도 결국, 외제차의 수입 경로를 허술하게 만들어 줌으로써 환경문제만이 아니라 수출과 수입의 균형을 맞추는 작업을 기본적으로 헝클어 놓아버렸고 자동차 내수시장에 과잉경쟁부담만 늘여놓고 말았다. 관세 인하로 다소 늘어난다는 수출도, 사실은 60퍼센트 이상 이미 미국 현지 생산이라는 점을 슬쩍 감춘 홍보이자 미국 시장에서 다른 나라 자동차와의 경쟁에서 우리 자동차가 나중에 되팔 때의 가격인 '중고차 가격(resale value)'이 낮아 수요가 증대되지 못하고 있는 점을 빼먹고 있다. 관세 인하가 곧 중고차 가격 격차를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님에도 마치 관세인하로 우리 자동차의 가격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고 호도하고 있는 것은 자동차 문제 협상으로 우리가 내어준 것들의 실상이 무엇인지 주목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만책일 뿐이다.

(2) 개성의 원산지 문제가 이른바 한반도 역외가공 위원회 구성으로 처리되는 과정의 실상도 국민을 속이는 방식이다. 이만한 근거라도 만들어 놓았으니 다행이라는 식의 주장은, 북한과 미국의 관계 개선이 향후 통상문제까지 포함할 수 있는 단계를 상정할 때 굳이 FTA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관계 변화가 주도하면서 해결될 과제이며, 이번 협정에서 꼬리를 단 핵문제 해결은 바로 그 점에 대한 동어반복이라는 점에서 FTA 협정의 성과라고 결코 이야기 할 수 없다.

그러나 도리어, ILO노동기준에 대한 유보조항이 개성에서의 생산품이 가격 경쟁력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견제장치라는 점에서도 이런 꼬리가 달린 이번 협정 내용은 우리에게, 미국의 입김이 강해질 위원회가 앞으로 북한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 대한 통제와 경제적 간섭을 할 수 있는 수단을 미국에게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우려가 깊다. 결국, 한미 FTA는 한반도 전체에 대한 미국자본의 지배 장치의 일환이라는 현실을 이번 개성관련 협정내용이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개성 공단 문제는 남북 경제통합의 차원에서 포괄적 인정이라는 차원으로 밀고 나가야 했던 것을, 구체적인 지침을 미국에게 승인 받는 식으로 접근함으로써 미국의 한반도 전체 경제에 대한 발언권만 미래적으로 보장해주고 말았다.

(3) 약 문제는 약값 상승과 국민보험체계의 부담 증가, 국민보험체계의 교란, 그리고 미국 보험회사의 시장 확대로 이어지고 이후 국민보험제도 개선은 국가에 의한 보험시장 개입이라는 명목 아래 이들 미국 보험회사의 투자자 제소로 연결될 가능성이 생겼다는 점에서 국민건강권에 대한 심대한 파괴다. 미국에서 국민보험 실시계획이 미국 보험 회사들의 로비로 좌절되었던 실례를 안다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불문가지다. 게다가 이번 협정대로라면 우리제약업계의 원천약 개발 자체도 어렵게 되어 약품 생산경쟁력 제고는 불가능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이 세 가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농업은 두 말 할 것도 없고 영화에 대한 문화적 학살사태인 스크린 쿼터 현행유보 조치를 비롯하여 케이블 방송 PP의 완전개방, 통신 산업 개방과 지적 재산권 분야 등에 이르면 이 나라의 문화적 자생력과 인문학적 상상력의 발전구조는 자칫 초토화되어갈 지경이다.

한마디로, 독 깨놓고 물붓기다. 아무리 열심히 물을 들이 부어봐야 이미 깨진 독에 물은 채워지지 않는다. 사태를 그렇게 만들어 놓고는, 자기가 독 깨놓은 생각은 안하고 물이 채워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라고 하는 격이다.

진보진영의 새로운 결집과 대중들에 대한 헌신

가령, 일본의 명치유신은 19세기 중엽, 일본의 식민지화를 최대한 피하면서 근대적 발전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선택한 매우 주체적인 대응이었다. 그 이후의 발전과정에서 침략적 제국주의로 귀결되는 문제를 가져오긴 했으나, 적어도 명치유신의 과정에서 일본의 내부적 개혁과 준비를 기초로 한 근대화정책은 나름의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아시아에서 유일한 주체적 근대화의 성공사례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무엇보다도 명치유신의 주도세력이 가졌던 국가에 대한 책임의식과 무한책임의 수준은 오늘날 보아도 여전히 교훈적이다. 바로 그렇기에, 지금 일본이 미국과의 통상관계에서 유지하고 있는 독자적 자세는 주목할 만 하다. 명치유신이 진보적 세계사의 한 장을 기록한 것은 아니나, 그 실천과정의 내용과 의미는 우리에게 소화하기에 따라 교사가 될 수 있다.

아시아는 경쟁의 관계만이 아니라 상호 보완의 관계 또한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미 FTA는 이러한 아시아 내부의 지역적 보완의 관계를 배제하고 적대적 요소만 전제함으로써, 지역경제 공동체의 기반을 상당한 수준에서 훼손하고 있다. 민족 내부의 경제적 결합에 대한 주체적 근거도 한미 FTA에 의해 잠식당하고 말게 되었다. 동북아시아에서 중심적 통합주체로서의 역할론은 이렇게 해서 매우 취약한 상태로 되고 만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가 지역 공동체 결속의 기초 위에 미국과 FTAA를 맺는 전략을 취하는 것에 대해 깊이 검토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매우 중요하게 강조할 바는 아직 한미 FTA는 이 나라의 공식정책으로서의 위상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단지 협상의 결과만 나왔을 뿐이다. 바로 여기에서, 진보진영의 새로운 역할이 강력하게 요구된다고 하겠다.

<자본의 대동맹 체제>는 한미 FTA 체결을 중심으로 결속되어 있다. 이들 "자본의 독점구조 완결과, 민중들의 배제"라는 질서가 관철되면 이 나라는 거대한 양극화체제가 되고 말 것이며 다수의 빈곤을 양산하면서 소수의 특권이 굳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사실 노무현 정권은 (1) 특권구조의 철폐 (2) 남북 민족통합의 기초 확립 (3) 대미 주체성 회복이라는 세 가지 중대한 역사적 요구 속에 태어난 정권이다. 그러나 이 중 어느 하나도 이제는 이 정권의 목표로 보이지 않는다. 자신에게 부과된 역사적 책무를 모조리 배신한 결과로, 자본의 보수대동맹의 수장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 이적(移籍) 행위를 해버렸다.

이제 진보진영은 삶과 좀더 밀착한 대안의 상상력과 대안의 정치력을 대중들에게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내놓아야 할 것이다. 진보진영이 꿈꾸는 세상은 잔혹한 강자와 좌절한 약자, 또는 오만한 승자와 만회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패자를 만들어내는 세상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나라다. 약자와 패자에게 기회와 권리를 찾아주고, 자신의 능력과 경쟁력을 모두를 위해 바치는 헌신적인 강자, 또는 그런 뛰어난 인재와 지도자를 길러내는 나라에서 우리는 희망이 현실이 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나라의 대중들이 진보진영이 내놓는 꿈과 실천에 희망을 걸고 기뻐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리의 새로운 미래를 선택하고 만들어 내는 일은 바야흐로 이제 진실로 시동을 걸었다.

독선의 권력 앞에서, 열정은 더욱 뜨거워지고 의지는 더더욱 강렬해지고 있다. 온 몸이 힘들어져도, 정신은 은화보다 더 맑다. 우리는 역사의 유물로 박제되지 않을 것이며, 살아 움직이는 이 나라의 능력이 될 것이다. 천하의 뜻있는 인재들이 진보진영에 합류하여, 새로운 역사를 주도하는 꿈을 꾼다. 이 땅의 현실에 구체적으로 기초한 진보의 대안은 이렇게 만들어져 나갈 것이다.

진보의 정신은 대중의 육체가 될 것이며, 그 육체는 역사의 주인이 될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