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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푸들, 너마저…"

블레어 "이라크 철군" 발표로 부시 '사면초가'

일방적인 미국 추종 외교로 '부시의 푸들'이란 비아냥거림을 샀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21일 이라크 주둔 영국군의 병력 감축을 발표함으로써 부시 미 대통령의 이라크 전략에 이별을 고했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했던 영국의 사실상 철군 선언은 지난 달 추가파병 계획을 발표했던 부시 행정부로서는 뼈아픈 '변심'이다.

그 덕분에 부시 대통령은 국내에서는 반대 세력의 파상공세에 시달리고 대외적으로는 다른 파병 국가들의 연쇄 철군 가능성에 노심초사해야 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였다.

▲ 지난 4년간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적극 지지해 '부시의 푸들'이란 별명이 붙었던 블레어 총리가 이라크 철군을 발표함으로써 대미 추종외교에 마침표를 찍었다. ⓒ로이터=뉴시스

부시 따라하다가 블레어 인기 추락


토니 블레어 총리는 21일 하원에서 "올해 수개월 내에 이라크 주둔 영국군 병력을 7100명에서 5500명 수준으로 1600여 명을 감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군은 전쟁 중 4만 명까지 늘었다가 현재 7100명 수준이다.

블레어 총리는 또 "영국군은 할 일이 남아 있는 한 2008년까지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말해 철군 시한을 2008년까지로 못 박았다. 일단은 감축발표지만 사실상 단계적 철군 계획을 밝힌 셈이다. 감축은 이르면 5월 중 시작될 것으로 전망됐다.

영국의 일간 <인디펜던트>는 블레어 총리의 발표를 "미국 추종외교의 실패 자인"으로 규정했다.

무엇보다 영국의 파병 정책에 대해 여론이 매긴 성적표가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5일 영국 여론조사기관인 ICM이 영국 성인 1014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56%가 블레어 총리의 즉각 사임을 주장했다. 노동당 지지층에서도 46%가 임기가 2009년까지 남아 있는 블레어 총리의 조기 사퇴를 원했다.

블레어 총리는 한때 '가장 인기 있는 총리'였던 자신을 '당장 물러나야 할 총리'로 만든 파병정책을 철회함으로써 집권 노동당 차기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20년 이래 최악의 지지율에 고전하고 있는 노동당 내에서도 내년 5월 지방선거 전에 블레어가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 비등한 만큼 끝까지 '부시의 푸들'로만 남을 수는 없는 상황인 것이다.

민주당 "부시, 블레어 본받아야"

영국군 감축 발표에 부시 행정부는 일단 표정관리에 들어간 모습이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영국군이 담당해 온 이라크 남부의 바스라 상황이 바그다드 상황과는 다르다는 것을 연신 강조했다. 종파 간 분쟁이 격화되고 있는 바그다드를 '바스라처럼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미군 추가파병은 불가피하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발을 빼겠다는 영국의 선언이 부시 대통령의 추가파병 계획과 정면 배치되는 것임은 숨길 수 없는 사실로, 반 부시 진영엔 부시 공격에 화력을 더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소재다,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즉각 성명을 내고 "블레어 총리의 결정은 미군 2만1500명을 파견하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결정에 대한 미국인들의 의구심을 확인해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펠로시 의장은 "영국군마저도 이라크를 떠나는 때에 왜 많은 미군들이 추가로 이라크에 파견돼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에드워드 케네디 민주당 상원의원은 "부시 전략에 대한 경악할 만한 반대"라며 "우리의 가장 절친한 동맹국마저 부시의 전략에 반대를 했다"고 강조했다.

상원 국제관계위원장이자 민주당 대선 주자 중 하나인 조지프 바이든 의원은 "부시 대통령은 블레어의 본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영국 다음은 누구?…자이툰 부대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하고 있는 영국의 철군 계획은 다른 파병국들의 연쇄 철군을 촉발할 공산도 크다. 부시 정부에 있어 '철군 도미노'는 의회의 공격보다 훨씬 실제적인 압박이다.

블레어 총리의 발표가 예상보다 늦었고 초기 감축규모도 기대보다 작았던 것은 모두 부시 행정부가 입을 타격을 우려한 영국 측의 '톤 조절'로 풀이된다.

그러나 당장 블레어 총리에 이어 포그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가 이날 이라크 주둔군인 460명을 오는 8월까지 철군하고 그 지역의 치안을 이라크군에게 넘길 것이라고 발표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도 다른 나라 주둔군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아베 정부는 오는 7월 말 기한이 만료되는 이라크부흥지원특별조치법을 2년간 연장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지만 영국의 이번 발표로 인해 국회 등에서 조기 철수를 요구하는 야당측의 목소리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일본은 지난해 7월 이라크 주둔 육상자위대 병력을 모두 철수시킨 뒤 현재는 항공자위대 소속 C130 수송기 3대와 대원 210명이 쿠웨이트를 거점으로 미군과 유엔 직원 등을 대상으로 수송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이에 영국 다음으로 많은 2300명을 파병 중인 한국 정부의 파병 입장에도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2004년 9월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는 처음 3400여명이 파병됐고 현재 2300여 명이 남아 있으나 올해 안에 1200명으로 감축될 전망이다.

정부는 올 연말까지 파병기간을 연장했지만 연내 업무종결 계획을 국회에 제출키로 한 데에다,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철군이 쟁점이 될 경우 연말 무렵의 임시국회에서 더 이상의 연장 결의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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