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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를 걱정해야 해"

팔레스타인과의 대화 <28> 생명의 위협과 일상의 고통

너는 나를 걱정해야 해. 나는 삶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때로 운명은 우리에게 충분한 신뢰를 주지 못하므로.
  
  시인 모하메드 아부 하쉬하쉬는 내게 자신을 걱정해야만 한다고 한다. 2년 전, 광화문에서 나는 그와 헤어졌다.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간 그에게 나는 메일을 보내면서 신의 도움으로 너는 살아남을 거라고, 그러므로 나는 너를 걱정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그는 내게 자신을 걱정하라고 한다.
  
  시인 키파 판니와 바쉬르 살라쉬를 1년 후 한국의 버스 안에서 만났다. 그때 우리는 '항구 문학의 밤' 행사를 하기 위해 묵호로 가는 중이었다. 갑자기 쏟아진 폭우와 위협적인 산사태, 물에 가득 잠긴 도로 때문에 길 위에서 여섯 시간 이상을 버텼고 결국 돌아오고 말았다. 이상하고 불편한 침묵과 정적. 그러나 각기 다른 공간에서 영영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어색한 눈빛은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돌아오는 길에 여주의 작은 방에서 펼친 우리의 따뜻한 퍼포먼스 때문이었을까? 글을 쓴다는 근본적인 공통점 때문이었을까.
  
  키파 판니, 너는 내게 팔레스타인에 한 번쯤은 와 봐야 한다고 말했다. 나에게는 너무나 먼, 비현실의 공간인 네 조국으로 말이다. 그러나 너는 다시 한 번 말한다. 그곳에 와 봐야 한다고. 팔레스타인의 고통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땅은 너무나 '시적인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 시인이라면, 가장 시적인 땅으로 한 번쯤은 향해야 한다고.
  
  유독 매순간을 '시적'으로 대하던 너를 떠올린다. 나는 당신이 '시적인 것'의 과잉 상태에 있다고 생각했다. 시 때문에 우린 많은 장벽이 허물어졌지만, 너무나 시인 같기만 한 너의 모습 때문에 부담스럽기도 했다. 장난 삼아 내가 당신만 시인인 거 같다고 말했을 때 너는 웃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 있을 가능성의 시간은 5년 정도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 나는 그저 당신의 무릎을 쓸어주며 그렇지 않아, 너는 괜찮아, 라고 간신히 한마디를 던졌을 뿐이다. 조금씩 한국말을 배우고 있던 너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를 따라서 반복하며 아주 조금 웃었다.
  
  나의 일상에는 총과 칼, 군대도 없다. 잘린 머리통과 총검에 난자당한 어린아이의 심장, 탱크에 짓밟힌 노파의 부서진 다리도.
  
  나의 하루에는 숨 막히는 일상의 소소한 고통만이 있을 뿐이다. 옆 동네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통성 기도를 올리며 새벽마다 싸우는 이상한 모녀, 술 취한 사내들의 고성방가, 애욕으로 인한 젊은 연인들의 끈질긴 싸움, 사회생활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불합리한 일들, 때로 이마에 못이 박힌 채 피를 흘리는 고양이와 고양이가 먹다 남긴 쥐의 얼굴, 내 방 바깥 창문을 더듬는 검은 손, 무언가를 노리고 쫓아오는 불길한 그림자들. 나는 이 작은 소음과 작은 불안과 작은 고통 속에서 시를 쓴다.
  
  대추리와 빈민촌 철거, 서울역에 즐비한 노숙자들과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그들의 시체와 비정규직 문제, 한미 FTA, 그리고 북핵 문제까지, 좀 더 굵직한 문제들이 있지만 직접적인 죽음에의 위협으로부터는 벗어나 있는 나는, 거대한 폭력과 살인의 한가운데에 있지 않는 나는, 그러나 골방이나 도로 한복판에서 시를 쓸 때 힘들고 아프다. 시를 쓰면 쓸수록 명징하게 칼날 하나가 심장에 깊숙이 박힌다. 경계는 무화되고 얼굴을 바꿔가며 찾아오는 고통 속에 너와 나는 함께 있다. 당신의 진지하고 극적인 눈빛 속에 나의 괴롭고 쓸쓸한, 지친 눈도 머문다.
  
  '시적인 곳'인 너의 땅. 젖과 꿀이 흘렀던, 그러나 파괴되고 무너진 너의 땅을 이렇게 네 글에서 확인할 때 '시적'이라는 말이 주는 비명을 생각한다. 너는 팔레스타인의 햄릿으로 독백을 준비해두었지만 나는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내 땅의 부조리에서 무슨 독백을 준비해야 할까.
  
  아파트의 희끄무레한 가로등 앞을 걸어가면서 나는 아직 젊지만 늙어버렸다고 말한다. 당신은 내 말꼬리를 자르며 자신이야 말로 늙었다고 말한다. 분명한 죽음 속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는 당신. 무엇인지 모르는 소소한 죽음 속으로 끌려가는 나는 이미 한 생을 함께 보낸 친구처럼 당신의 손을 잡는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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