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의 금융제재 협상에서 미국 측 대표를 맡고 있는 대니얼 글래이저 미 재무부 부차관보가 오는 24일 워싱턴에서 금융제재에 관한 기자회견을 열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회견 내용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05년 9월 미국의 조치로 인해 마카오 은행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묶이게 되어 북핵 협상의 최대 장애물로 작용해 온 북한 자금 2400만 달러 중 일부 합법 자금을 풀어주겠다는 발표를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 때문이다.
베를린 회동 긍정평가 잇따라
이같은 추측은 6자회담 북한 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미국 측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지난 주 베를린에서 전격 회동한 후 나온 반응들 때문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회담 후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일정한 합의가 이룩됐다"고 말했고, 김 부상도 베를린 회동에 만족한다고 21일 말했다. 힐 차관보 역시 "유익한 토론을 했다"고 말했다.
금융제재를 해제하지 않으면 핵폐기를 논의할 수 없다는 게 북한의 요지부동한 입장이었던 사실에 비춰 볼 때 '일정한 합의' '유익한 토론' 등의 표현은 곧 BDA에 대한 모종의 해법이 마련됐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금융제재를 담당하는 미 재무부가 합법 계좌 일부를 풀어준다는 보도도 이를 뒷받침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16일 미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일부 해제 검토'를 보도했다. <연합뉴스>도 22일 워싱턴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BDA 동결계좌 중 5∼7개 계좌에 대한 해제를 검토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특히 이 계좌들에 대한 정보는 한국이 제공한 것이라며, 그간 해제 가능성이 거론돼 온 대동신용은행(600만~700만 달러) 및 브리티시 아메리카 토바코(800만 달러)의 계좌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기존 입장 바꿀까 의구심
그러나 그간 대북 금융제재를 이끌어 온 미 재무부와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들이 강력하게 제동을 걸어올 경우 글래이저의 브리핑은 2차 북미 금융협의의 일정을 발표하는 선에서 머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밀러와이즈 재무부 대변인은 이미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대해 "북한과 금융제재를 논의하는 것은 협상을 하는 게 아니다"라며 기존의 강경 입장을 되풀이한 바 있다. 금융제재에 대한 미국의 변함없는 입장은 '법 집행의 문제다. 합법과 불법의 구분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또 한국이 정보를 제공해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5~7개 계좌가 휴면계좌라거나 북한의 입장에서 별 의미가 없는 계좌일 경우 북한이 과연 '미국이 양보했다'고 받아들일 여지가 있겠느냐는 의구심도 있다.
'제재해제가 선결조건' 北 드라이브에 美도 '맞드라이브' 걸어
하지만 북한이 '금융제재를 풀어야 핵폐기를 논의한다'고 고집하듯 미국도 지난 6자회담에서 '핵폐기를 논의해야 금융제재를 푼다'고 '맞드라이브'를 건 상황에서 양측 모두 한 발짝씩 물러서는 타협이 베를린 회동에서 나왔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이 이 회동에서 핵폐기와 금융제재 논의를 분리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실제 북한의 입장과 온도차가 있을 수 있지만 진실과 그리 멀지 않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온다.
이와 관련해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22일 YTN 인터뷰에서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말해 북미 양측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음을 시사했다.
송 장관은 BDA 문제에 대해 미국은 '법집행의 문제'로, 북한은 '필요 이상의 제약을 받고 있는 것'으로 각각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한 뒤 이같이 말하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해결 방식에 대해 (북한과 미국이)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 장관의 말대로라면 미국은 '법집행'이라는 명분을 손상시키지 않는 동시에 '필요 이상의 제약'이라는 북한의 불만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합법 계좌를 풀어주겠다는 방침을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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