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량강도에서 태어난 백 외무상은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했고 대외문화연락위원회 부위원장과 외국문출판사 사장 등을 거쳐 1998년부터 외무상으로 활동했다.
그는 '백남준'이라는 이름으로 1990년대 열린 남북 회담에 여러 차례 참가해 남측에도 잘 알려져 있다. 또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과 남북고위급회담 정치분과위원회 북측 위원장,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서기국장 등의 직책을 맡기도 했다.
만성 신부전증을 앓고 있다고 알려진 백 외무상은 2000년 9월 독일에서도 치료를 받는 등 '외유 치료'를 받아 왔다. 그는 지난해 7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차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를 방문해서도 현지에서 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후 열린 ARF에 참석했던 백 외상은 "(금융)제재의 모자를 쓰고는 6자회담에 나갈 수 없다"며 6자회담 복귀를 거부하는 북한의 입장을 상징하는 말을 남겼다.
백 외무상의 후임으로는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강 부상은 백 외무상의 지병 때문에 이전부터도 북한의 외교 정책을 사실상 총괄해 와 정책의 틀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이에 앞서 북한의 대남관계를 총괄해 왔던 림동옥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지난해 8월 사망했고, 계응태 공안담당 비서는 11월 폐암으로 숨졌다. 연형묵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2005년 10월 사망한 바 있다.
한편 백 외무상의 사망으로 또 한번 '조전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과거 연형묵 부위원장과 림동옥 부장이 사망했을 때 남북장관급회담 남측 수석대표(통일부 장관) 명의로 전화통지문 형식의 조전을 보냈다.
그러나 정부로서는 북한 핵실험의 여파로 남한 내 여론이 악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핵실험과 관련된 외교 수장의 사망에 조전을 보내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나 2003년 10월 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가 사망했을 때는 정부 차원의 공식 조전이 발송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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