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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기회'를 놓쳐버린 2006년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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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기회'를 놓쳐버린 2006년 한반도

한반도 브리핑 <34> 북미관계에 포박된 남북관계

연말연시 송구영신의 시기다. 한해를 회고하고 새해를 기대하는 2006년 세밑, 올 한해도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등 한반도 정세는 다사다난했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대북 금융제재로 촉발된 북미 간 대결이 첨예화되어 6자회담이 장기간 열리지 못한 와중에 터져 나온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은 올해 한반도 정세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가기도 했다.

북핵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유지해 오던 남북관계도 결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역풍을 맞게 되고 당국간 대화가 중단된 채 소강국면을 맞고 있다. 연말에 우여곡절 끝에 5차 2단계 6자회담이 재개되었지만 북미간 입장차이가 해소되지 않은 채 사실상 결렬되고 말았고, 남북관계가 아직은 복원의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06년을 차분히 돌이켜보면 북미 갈등이 남북관계를 압도한 점이 가장 특징적이다. 특히 9.19 공동성명을 도출했던 지난해 한국의 역할과 남북관계 개입력과 비교해보면 올해는 북미간 대결관계가 전면에 부각됨으로써 남북관계가 후순위로 밀리고 경색국면에까지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북미관계에 남북관계가 '포박'되어 버린 것이다.
▲ 경의선 복원 현장의 일출 장면. 경의선·동해선 철도 개통식 연기 이후 한반도 정세는 내리막을 걸었다. ⓒ 연합뉴스

울란바토르 연설-철도도로 연결-북한의 NLL 논의 제안

물론 금년 상반기까지 남북관계는 그런대로 유지되었던 게 사실이다. 북핵문제가 지속됨에도 장관급 회담과 군 장성급 회담 및 각종 경제회담과 적십자회담 등이 정상적으로 개최되어 당국간 대화의 지속성을 유지했다.

경협과 관련해서도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 및 철도도로 연결 등이 차질 없이 진행되었고,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협력과 민간 차원의 대북지원 역시 예년처럼 이루어졌다.

상반기 남북관계의 호조 국면을 상징적으로 압축하는 키워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과 노무현 대통령의 울란바토르 발언일 것이다.

18차 장관급회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이 합의되고 곧이어 5월 9일 노무현 대통령이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피력한데다가 남북간 철도연결 시범운행이 극적으로 합의됨으로써 노무현 정부 들어 가장 높은 수준의 정상회담 가능성이 예측되던 시기였다.

미국의 대북 압박이 강화되고 북한의 대미 대결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까지를 고려한 남북관계의 주도적 역할을 통해 한반도 정세를 호전시켜 보려는 상황이 펼쳐져 기대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5월의 가능성을 현실로 실현시키지 못하고 그냥 흘려 보내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의 정상회담 의지를 확인하려 했던 북한의 움직임에 남측은 전혀 준비 없이 대응함으로써 5월의 기회를 망실해버리고 만 것이다.

즉 5월 중순 개최된 4차 장성급 회담에서 북한이 남측의 의지를 떠보기 위해 제안했던, 과거보다 훨씬 유연한 해상경계선 설정 제안에도 불구하고 남측은 NLL(북방한계선) 논의를 회피했고 그 결과 북측은 남측의 정상회담 의지를 의심하게 된다.

결국 약속했던 철도연결 시범운행도 취소되고 급기야 DJ 방북마저 무기한 연기됨으로써 남북정상회담의 기대는 한갓 꿈에 그치고 말았던 것이다.

금년 5월 딱 한번 남북관계가 북미갈등을 압도하면서 문제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었지만 남측의 준비부족과 북측의 소심함으로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이후 한반도 정세는 남북관계가 개입할 공간이 현저히 축소되면서 북미간 직접대결로 진행되었다.
▲ 10월 9일 북한은 끝내 핵실험을 단행해 한반도 위기 지수를 최고조로 올려 놓았다. 사진은 핵실험 이후 판문점의 모습. ⓒ 연합뉴스

곧이어 닥쳐온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은 이제 남북관계의 희생을 각오하고 남측과의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미국과의 직접대결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북측 나름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5월의 기회를 놓친 한반도는 북미 직접대결의 영향권에 놓이게 되면서 이제 북핵문제의 악화라는 외적 환경에 종속되어 대외적 불안정성이 증대됨에 따라 남북관계도 소강상태로 전환되었다. 당연히 이후 남북관계는 공식 중단되고 경색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결국 금년의 남북관계는 북핵에도 불구하고 지속성을 유지하려 했지만 북핵의 악화라는 객관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화중단이라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고 요약된다.

물론 북핵문제라는 불가피한 대외조건의 악화가 남북관계를 규정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견뎌낼 만한 남북관계 자체의 동력과 지속성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분명 한계로 지적되어야 한다.

북핵문제의 악화라는 객관적 제약 하에서 이를 완충해내고 남북관계의 독자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했음을 감안하면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 강행의 이유를 들어 결과적으로 남북관계가 중단되고 만 것은 아직 남북관계의 수준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북 적대정책' 대 '법집행' 인식차 안 깨져

북핵문제에 밀려 관계 중단까지 간 남북관계인만큼 당연히 새해 2007년의 남북관계가 소망스럽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핵문제의 진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6자회담이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일정한 성과를 내야 함은 남북관계의 복원이 바로 북핵문제 해결과정과 불가분하게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 정부는 북핵문제 해결에 일정한 '출구'가 보일 경우 대북 지원을 재개하고 관계 복원에 나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는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 진전이 사실상 남북관계 복원과 발전의 필요조건이 되고 있는 셈이다.

지금 당장은 북미간 첨예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는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계좌 동결 문제의 돌파구를 찾아내고, 이를 통해 6자회담의 가시적 성과와 합의점을 이끌어내야 한다.

예상했던 것처럼 이번 2단계 5차 6자회담은 1년여 전 9.19 공동성명을 복원해내는 게 핵심적 의미였다. 따라서 가장 큰 쟁점은 9.19 공동성명의 외적인 요인들, 즉 BDA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핵실험 이후 상황을 어떻게 핵폐기의 초기 이행조치로 전환할 것인가였다.
▲ 13개월만에 열린 6자회담은 금융제재 문제로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했다. ⓒ뉴시스

그러나 역시 회담 성패의 관건은 BDA였다. 핵폐기의 초기조치와 상응조치를 논의하는 본회담은 오히려 북미간에 별도로 진행된 BDA 협상 결과에 종속되어 버렸다. BDA 문제가 이번 회담 결과의 '입구'였던 셈이다. 입구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세스로의 진입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이번 회담이 BDA 문제로 입구가 끝내 봉쇄되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이 문제에 대한 북미간 현격한 입장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에게 BDA 계좌 동결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상징이자 '상호 주권 존중과 평화공존'이라고 명시된 9.19 공동성명 정신의 위반으로 간주된다. 이런 인식은 이번 회담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반면 미국에게 BDA 문제는 북한 당국의 고질적인 불법활동과 관련된 것이며 9.19 합의와는 관련이 없는 전혀 별개의 문제일 뿐이다. 북한은 BDA 문제 해결이라는 가시적 결과가 곧 미국이 펴고 있는 대북 적대정책의 수정이라고 본다. 따라서 BDA가 선결되지 않는 한 핵폐기 논의를 진전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은 BDA로 상징되는 대북 금융제재가 북한의 불법 활동을 차단하고 미국이 원하는 바의 체제전환에 기여하는 유용한 채찍이라는 점에서 선뜻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BDA 인식차와 핵문제 접근법은 닮은꼴

BDA에 대한 이같은 북미간 인식 차이는 마치 지금의 핵문제를 대하는 양측의 접근방식의 차이와 일맥상통한다.

북한에게 핵보유는 미국의 적대정책과 선제공격을 막기 위한 주권 차원의 방어적 억지력으로 규정되며, 따라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와 북미관계 개선이라는 정치적 해결이 핵포기의 조건이 된다.

그러나 미국에게 북핵은 비확산 규범을 정면으로 위반한 잘못된 행동이며, 따라서 북한의 선 핵포기가 문제해결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

이렇듯 평행선을 달리는 북미간 접근방식이 현실적으로 접점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결국 상호 요구사항을 동시에 교환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즉 큰 틀에서 핵문제는 비확산 규범에 따른 북한의 명확한 핵포기와 주권 규범에 따른 미국의 대북 체제인정 및 안전보장이 서로 교환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BDA 문제 역시 미국이 요구하는 대북 초기조치 수용과 북한이 요구하는 제재 해제를 서로 동시에 들어주는 방식이라면 타협이 가능할 수 있다.

즉 북한이 BDA가 풀린다면 핵포기의 초기조치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인 만큼 미국이 북한의 초기조치 수용을 전제조건으로 BDA를 풀어주겠다는 정치적 타협을 모색함으로써 두 쟁점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번 회담에 성과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핵포기의 초기조치와 상응조치에 대해서는 북미가 어느 때보다 전향적인 입장을 보여줬기 때문에 정치적 타협을 통해 BDA라는 입구가 마련된다면 오히려 이후 9.19 프로세스로 진입하는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다.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요구만 할 게 아니라 서로의 요구사항을 동시에 들어주는 것이야말로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의 상식이자 기본이다. 북미가 이 점을 명심하고 새해에는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6자회담에 임하길 기대해본다.

외적 조건에 의존하는 남북관계 탈피해야

북핵문제의 호전을 기대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새해 남북관계의 향방을 북핵문제 진전이라는 외적 조건에만 의존하는 것은 또 다시 2006년의 부족함을 반복하는 것이 된다.

북미 대결이 심화되고 핵문제가 악화됨으로써 남북관계가 속수무책으로 영향을 받는 것은 이제 2006년 한해로도 족하다. 북핵 상황이 분명 남북관계에 제도적 제약으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북관계 자체의 적극적 역할마저 처음부터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복원해내고 더욱 진전시킴으로써 6자회담과 북핵문제 진전에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2005년 상반기 6자회담이 장기 소강국면에 빠졌을 때 북한을 설득해 회담장에 복귀하도록 한 것은 바로 한국이었다.

6.17 김정일-정동영 면담으로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이끌어내고 결국 이것이 북핵문제 진전의 계기로 작동함으로써 그해 9.19 공동성명이 도출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남북관계 자체의 동력 덕분이었던 셈이다.

또 다시 한해를 맞으면서 남북관계의 복원은 물론이고 북핵에도 불구하고 유지되는 남북관계를 넘어 이제는 북핵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남북관계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해본다.
● 알려드립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프레시안 한반도브리핑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반도브리핑은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으로 요동쳤던 한반도 정세를 구조적이고 실사구시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프레시안은 2007년에도 보다 알찬 한반도브리핑을 만들기 위해 필진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새로 참여하는 전문가들은 서재정 미국 코넬대 정치학과 교수,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정창현 현대사연구소장,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입니다. 이를 통해 한반도브리핑은 동북아 정세 일반과 군사·안보 문제, 북중관계, 북한정치 등에서 보다 다각도의 분석과 해법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기존의 필자 중에서는 서동만 상지대 교수, 김근식 경남대 교수,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임원혁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객원연구원이 앞으로도 계속 활약할 것입니다. 박순성 동국대 교수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한반도브리핑 집필을 당분간 중단하기로 했음을 아울러 알려드립니다.

새해에도 독자여러분들의 보다 많은 관심과 성원, 비판의 목소리를 기다리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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