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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으로 이해하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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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으로 이해하는 역사'

팔레스타인과의 대화 <22> 기록된 전쟁과 기록되지 않은 전쟁

지난 여름 미국 남부 인디언 구역의 어느 상점에서 재미있는 기념품을 보았다. 흙으로 빚어 만든 인형이었다. 머리를 두 갈래로 길게 땋아 내린 할머니가 앉아 있고, 그 할머니의 팔과 다리와 품에 아이들이 마치 아카시아 꽃처럼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인형의 제목은 '이야기하는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자기 부족의 오랜 내력을 이야기해주는 모습이었다.
  
  사실 나도 중요한 것들을 할머니와 어머니의 곁에서 서성거리며 배웠다. 물론 할머니와 어머니가 일부러 가르치는 것은 여자가 일상으로 해야 하는 가사노동과 집안의 어른인 남자,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어떻게 무서워하고 어떻게 복종해야 하는가에 대해서였지만, 그런 것 말고도 어린 내가 듣고 잊지 못하게 되는 '이야기'가 많았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자기네끼리 모였을 때 넌더리 치며 내뱉거나 갑자기 목소리를 작게 해서 속삭이는 비밀에서 '눈치'로 배운 것들. 특히 전쟁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할머니나 어머니는 전쟁 이야기를 할 때 남자들이 하는 전쟁, 그러니까 폭격이나 전투에 대해서는 아주 큰 소리로 넌더리 치며 말했다. 그 다음으로 목소리가 줄어들며 하는 말은 피난 나가다가 아이를 잃어버린 것, 배가 고파 우는 아이들 때문에 가슴 아팠던 기억들이었다.
  
  그 다음, 아주 목소리가 작아지는 이야기가 있었다. 거의 비밀스럽게 말했다. 강간이 무서워서 얼굴에 숯 검댕이 칠을 하고 지냈다는 것. 염병에 걸린 시늉을 하고 오뉴월에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는 것. 누구네 며느리가 밤중에 불려나가 걸음도 제대로 못 걷게 되어 아침에 돌아왔다는 것. 아무개네 어머니가 낳은 아이는 아버지를 모른다는 것.
  
  나는 이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전쟁은 군대에 나가 총칼 들고 싸운 아버지나 삼촌들의 것이라고만 알았다. 그렇게 배웠다. 하지만 그건 보이는 전쟁이고 기록되는 전쟁이었다. 기록되지 않는 전쟁의 범위가 더 넓다는 걸 알게 된 건 아주 많이 살아버린 뒤였다. 아녀자(兒女子)와 노인들의 전쟁이 그랬다. 병들어 홀로 남은 노인, 군부대 주변에서 매춘을 해야 했던 여성, 어머니를 잃고 버려진 아이들의 전쟁은 부수적인 기록으로 남았다. 한국동란 중에 중요한 전투사로 기록되는 전장에서 죽어간 수많은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이 있다면, 그들 뒤에 늙은 부모와 어머니와 아내와 딸이 있었다.
  
  내게 후방의 전쟁, 그 눈에 띄지 않은 참상을 알게 해 준 건 수난의 시절을 살아낸 할머니와 어머니의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치욕들이었다. 전쟁으로 인한 치욕의 상처를 가졌으되 상이용사도 못되고 국군포로도 아니며, 전몰장병이나 참전용사 또한 아닌, 노인과 여자와 아이들이 겪어낸 전쟁도 있다. 전쟁을 이야기할 때 그 무게 중심이 이 두 개의 축에 수평적으로 적용되어야만, 비로소 전쟁의 야만성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게 될 것이다.
  
  어릴 때 들은 말이 아직 귀에 쟁쟁한 거 하나 있다.
  
  인민군이 밥해달라며 총 빼들고 섰고 국군이 밥하라고 총 들고 나서더니, 나중엔 서로 군복을 바꿔 입고 나타나서 인민군 흉보며 성분 파악해 죽이고, 국군 비방하며 동조하게 해놓고 총살하고 그랬단다. 부엌바닥에서 '전사'한 아낙네들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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